'트랜스' 가능성의 패턴, 패턴의 가능성
'트랜스' 가능성의 패턴, 패턴의 가능성
  • 이현동
  • 승인 2022.11.2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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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 트랜스 휴먼 H+"

도내리 감독의 <트랜스>(2022)는 예고편에서도 가리키듯 사이버 아방가르드 장르를 표방하고 있는 독립 영화이다. 여기서 '사이버 아방가르드 장르'라는, 이 혼종스러워 보이는 명칭이 주는 뉘앙스는 결국 모종의 질문을 유도하기 마련이다. 가령 '사이버가 어떻게 아방가르드적으로 표명될 수 있는지'를 묻거나, '과연 아방가르드라고 불리는 이 미학적 전위, 전복적 사유의 표본으로 합당한 지'를 물을 수밖에 없다. 다소 거칠게 말하면, 사이버 아방가르드는 그저 홍보의 수단으로써 인용이지 않을까.

도내리 감독은 <트랜스>를 SF영화라 부르지 않는다.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를 B급 SF영화를 부르는 총칭인 사이파이(Sci-fi)로 호명한다.(물론 둘은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사이파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저예산으로 제작된다는 점인데, 그러다 보니 그 자체가 주는 날 것의 느낌, 그로 인해 파생되는 급진적이거나 불균질한 멋은, 사실 자본을 투입한 작품들보다 상대적으로 훌륭한 경우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츠카모토 신야 감독의 <철남>(1989)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은 실제로 연기, 제작, 연출까지 그가 혼자 해냈을 뿐만 아니라 특수 효과 연출인 스톱 모션을 최대한 가미하며 컬트적인 사이파이 장르를 생산했다.

 

ⓒ 마노엔터테인먼트

어찌 됐든 도내리 감독이 인터뷰에 언급했던 몇몇 영화들, <인셉션>(2012), <아이 인사이드>(2004), <항생제>(2012) 등의 레퍼런스는 뇌 과학, 다중 우주, 타임 루프, 트랜스 휴먼이라는 이 혼합을 꽤 유효하게 풀어냈다. 윤리의 부재로부터 시작하는 <트랜스>는 트랜스 '휴머니티'가 아닌 트랜스 '휴먼'이라는 초월적 능력을 통해 상반된 방식으로 세상을 변혁하려는 자들의 사투를 다룬다.

영화에서 다루는 윤리성, 인간이 가진 비인륜적 성격이 극복되어야 하는가의 대답은 실상 '과학'이 추동하고 있는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양식과 대응된다. 몇몇 가설은 통해 영화 안에서 설득력을 얻기도 하고, 서사를 직조하는데 적합한 장치로 배열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한결같이 무한하게 양산되는 '가능성'으로 착안한다. 이를테면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피이태(윤경호)는 트랜스 휴먼이라는 가설을 명확하게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비인륜성으로 촉발되는 혐오 의식은 이런 불확정성 또한 가능한 것이라 믿고 실험을 지속한다.

<트랜스>에서는 과학을 소재로 이야기를 연결하기도 하지만, 고민영(황정인)이 믿는 종교성에 대한 물음, 이 또한 확실성과 불확실성의 이론으로 잔재하면서 트랜스 휴먼의 등장 당위성을 윤리, 혹은 믿음의 문제로 치환하려는 태도가 이 영화에 끊임없이 잔류한다. 영화의 플롯도 이런 '가능성'의 원리로부터 기인한다. 타임 루프물답게 시공간의 경계가 계속 무너지며, 도내리 감독이 언급하듯 패턴의 변주로부터 영화의 성격을 유추할 수 있는 이 영화의 특징은 처음부터 결말까지 명확하게 이야기가 규정되지 않는다.

일반적인 영화적 패턴을 부인하고 붕괴하려는 막강한 돌파력은 전적으로 감독의 의도이자 <트랜스>의 힘이다.

여기서 직관적으로 보이는 인물들의 이름은 제법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중립적인 성향, 관찰자 입장에 서 있는 고민영은 그 이름이 나타내듯 '고민'하는 사람이고, 트랜스 적인 이름인 피이태는 형'태'가 변할 여지를 가진 이름이며 나는 철이 싫다는 이름의 나노철은 전기 주입을 받았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역할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이는 영화의 진행과 함께 점차 중첩되고 결합하는 형태로 의미를 지닌다.

 

ⓒ 마노엔터테인먼트

플롯으로 패턴 쓰기

<트랜스> 속 집단 괴롭힘이 발생하는 장소인 '교실'은 윤리 의식이 소거된 세계, 인륜성이 망각된 세계다. 교실의 최초 시퀀스는 고민영이 폭행당하는 나노철(김태영)을 응시하다가 창밖에서 들리는 비명으로부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암묵적으로 반복해서 패턴화되거나 변주되는 이 시퀀스는 총 5번 등장한다. "패턴이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는 피이태의 말과 함께 영화의 세계는 트랜스 된다. 최근 개봉작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 또한 마찬가지인데, 이 영화의 세계는 계속해서 시공간을 전환하거나 회귀하려 한다. 다만,  이 영화가 가족주의적 회상을 전제로 한 영화에 속한 것이라면, <트랜스>는 개인의 실존으로부터 거시적으로 확장되는 영화다. 패턴의 변주로부터 유일하게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고민영의 존재는 살인 사건이 일어난 현장의 목격자로 관찰자 입장에서 영화를 유영한다.

영화에서 그녀를 규정하는 외형은 영화의 진행과 더불어 분화된다. 먼저는 그녀가 가진 거식증은 무의식 혹은 의식적으로 가진 혐오의 패턴 안에 속박된 존재임을 지속해서 보여준다. 그녀는 남자아이들로부터 성적인 수치를 당하는 과정에서 도구로 사용되는 케첩이 잔뜩 뿌려진 소시지, 마요네즈를 넣은 햄버거, 오줌 등은 모두 노골적으로 남성의 생식기를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된다. 또한, 그녀의 고통은 단순히 이런 겉으로 보이는 외부요인으로부터만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녀는 기독교인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고통의 문제, 즉 신정론(신이 허락하신 것은 고통의 문제에도 합당한가)의 문제가 합당한 지 묻는다. 세상 종교에서 초월적인 존재에 근접한 하나님이 고통의 문제를 인간의 '자유의지'로 응답하는 기독교인을 보며 민영이는 어떠한 것도 해소하지 못한다.

얼핏 나오는 시퀀스로 민영이의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의 구성원들은 별 관심이 없다. 거식증인 그녀에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형식에 불과한 엽서와 함께 식탁 위에 케이크를 올려놓은 것이 전부다. 종교성의 부재, 가족에게까지 외면받는 민영이의 삶은 변주를 암시하는 잠재적인 형태로 영화 안에 기능한다. 그런 그녀에게 피이태는 패턴을 바꿀 수 있는 구원자로 기묘하게 접근한다. 포스트 휴먼을 논하는 그는 육체적 진화, 컴퓨터를 인간으로 만듦을 통해 초월자로 군림하려 한다. 뉴런의 전기신호에 불과하다는 인간을 정의하고 뇌의 패턴의 변화를 통해 민영이 가진 왜곡된 인식으로 발생한 병인 거식증을 치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 마노엔터테인먼트

트랜스의 1부는 피이태의 만남, 괴롭히는 무리의 우두머리인 마태형의 죽음과 동시에 첫 장면으로 재설정된다. 2부의 패턴에선 나노철의 모습은 없고, 피이태가 행방불명된 채로 시작된다. 본격적으로 '트랜스 휴먼' 실험이 돌입하기 위해 자연의 전압을 버텨낸 나노철을 납치한 피이태를 저지하고자 민영이는 그를 미행한다. 테슬라 코일 장치와 필라델피아 실험을 모티브로 가동되는 피이태의 실험은 우주 변화가 곧 인간의 변화라는 구호와 함께 다시 3부로 이동한다. 빠르게 종결되는 3부는 나노철의 높은 전압으로 피이태를 살해하고 도주하고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4부와 5부는 민영이 자신을 관찰하는 왜곡된 형태로 진행된다. 여기서 주요한 패턴은 민영이의 의식이 급격하게 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영이는 피이태와 나노철의 형태로 계속해서 변주한다. 서두에 피이태의 쇄골에 박힌 칩도 그녀에게 있다. 이 모든 형태가 트랜스되고 있는 민영이의 외형은 결국 시간의 관성을 이탈하여 과거로 회귀하고자 실험의 당사자가 되어 관 안으로 들어간다.

"진화에는 역행이 없다"는 피이태의 말을 무시하고, 민영은 연기가 되어 판별할 수 없는 어느 시간 속으로 트랜스 된다. 영화의 패턴은 이런 그녀의 행방에 관한 가능성을 해방하지만, 감독이 제시하고 있는 주제는 동일하다. 민영이를 향한 혐오는 단순히 시간과 공간, 영화의 멀티 버스로 구획되고 있는 세계를 독해하는 동일한 방식으로 착안된 것이며 이는 도내리 감독이 말한 해방의 서사와 결합한다. 이는 바로 두 가지 차원인 셈이다. 영화 형식의 해방, 혐오로부터의 해방은 이 영화의 제목이 '트랜스'라는 점을 주시하게 한다. 흥미롭게도 감독의 이전 작품 단편들이 드라마 장르인 데 반해, 이번 첫 장편이 사이파이 장르라는 다소 난해하고 연출적인 테크닉을 요구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감독의 이번 시도는 앞으로의 활동에서도 큰 동력으로 사용될 여지가 많아 보인다. 다음 영화도 사이파이 영화라고 하니 어떤 변주된 형식의 영화를 갖고 대중들 앞에 설지 기대해봄 직하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마노엔터테인먼트

트랜스
Trans
감독
도내리

 

출연
황정인
윤경호
김태영

 

제작 네거티브필름
배급 마노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93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11.17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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