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라스의 여름' 슬프고 경이로운 삶을 위한 마법 같은 기다림
'알카라스의 여름' 슬프고 경이로운 삶을 위한 마법 같은 기다림
  • 변해빈
  • 승인 2022.11.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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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의 영화를 대서사시로 일컫고 싶은 이유"
ⓒ 영화사 진진

<알카라스의 여름>은 솔레 가족의 집을 담은 버드 아이 뷰 앵글에서 시작해 같은 앵글로 끝난다. 한 채의 집과 마당, 그 주변을 울타리처럼 에워싼 농작물과 수목이 어우러진 풍경은 광활한가 하면 아담하고, 위태로운가 하면 의연한 정취로 화답한다. 도심과 거리를 둔 작은 마을, 다시 외따로 떨어진 집 한 채에 불과하지만, 롱테이크가 결합된 넓은 화각 안에는 사방을 기준으로 의외로 엄밀한 규격이 존재하면서 삶의 애환을 모두 느껴지게 한다.

같은 생활 터전서 절기(節氣)를 지나는 동안 어떤 날은 좀 절망스럽다가도 그것을 잊게 할 평온이 불현듯 생겨나는 삶의 양식이 부분적으로 혼재하면서 하나의 가족과 집이, 마을과 공동체가, 한 인간의 세상이 만들어진다.

<알카라스의 여름>에서 전면적으로 쓰인 시선의 이동, 시점의 전환은 일부분의 사건과 정서적 반응으로의 매몰을 경계한다. 카메라는 3대가 모여 사는 집안의 대를 잇듯 가족들 사이에서 배턴처럼 전달된다. 덕분에 이 영화에서 자그마치 열넷이나 되는 가족 구성원 중 누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층적 세대와 인물들의 시점을 빌려 다각도에서 재인하고 체험하게 만드는 시도로부터 카를라 시몬의 한 절기의 시간은 대서사시와 같은 인상을 준다.

 

ⓒ 영화사 진진

1.

오프닝, 아이들이 놀이 중이다. 상황극의 대화와 의성어가 어지럽게 뒤섞인 아이들의 목소리 틈으로 프레임 외부의 소음이 끼어든다. 아이들은 하던 것을 멈추고 소리의 방향을 따라 시선을 돌린다. 카메라는 무언갈 응시하는 얼굴을 차례로 옮겨가며 그 위에 한참 머무른다.

뒤늦게 기중기로 견인되는 자동차가 화면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여전히 뚜렷한 내막이 밝혀지지 않은 채 카메라는 땅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골머리 앓는 어른들에게로 옮겨 간다. 이때, 영화는 핸드헬드와 클로즈업 숏(혹은 이와 유사한 미디엄 숏)으로 규격화된 프레임에 인물을 단독으로 담아낸다. 덕분에 이들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대화, 인기척을 느낄 때면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몸짓으로 반응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선이 향한 '미지의 영역'을 다음의 동선으로 점찍은 상태에서 그곳으로 이동하기까지의 '지연의 감각'을 빈번하게 형성한다는 점이다. 오프닝에서부터 주어진 '공백감'은 얼마간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들면서 영화의 불안한 분위기와 심상을 극대화하는 것 같지만, 이것이 패턴처럼 반복되면 응시에 대한 응답을 기다리는 힘으로 에너지를 달리 소비해보게 된다.

이 같은 '정보의 지연'은 사전에 예고된 퇴거에 대한 난폭한 기운을 비축하는 장치이기보다, 일말의 희망에 대한 버티는 몸짓으로 읽힌다. 시선을 이끄는 곳은 생활을 위협하고 불안을 가중하는 코앞의 현실이며, 이들은 그것을 해결할 방도가 없다. 불확정 상태에서 비롯된 '미지의 지평'은 퇴거에 대한 번복이나 경제적 여건을 기적적으로 뒤집는 낙관과 다르다. 주어진 자력이 있다면 잠시나마 현실에 대한 자각, 곧 땅의 소유권을 둘러싼 애꿎은 박탈감을 지연시키며 프레임에 대한 소유권을 쥐어보는 것이다. 카메라는 솔레 가족의 퇴거를 확정하는 어떤 현장으로 안내하기보다 인물에게 조금이나마 더 머물려는 것 같다. 카메라의 최소 반경과 거듭 미뤄지는 기한은 터전에서의 정착을 향한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으려는 역설적인 운동감을 자아낸다.

 

ⓒ 영화사 진진

<알카라스의 여름>의 인물들은 도무지 '공유되지 않는 생각과 고민' 탓에 고립되지만, 주변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가족의 목소리로 인해 외롭지 않다. 전형적인 대가족의 풍경이 조성되면 1:1 대화는 군데군데 동시적으로 진행되면서 여러 목소리가 중첩된다. 솔레 가족은 상대의 부름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도, 한 대화로의 진지한 몰입과 돌파구를 마련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과잉 중첩된 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은 미지를 향한 응시와도 같은, 보이지 않는 질서 속의 '기다림의 시간'이다. 친구들과 군무를 맞추던 마리오나(세니아 로제트)의 공연의 실패와 달리, 할아버지와 아이들의 화음, 그것이 위로처럼 다가오는 까닭은 속도가 미세하게 어긋나면서 발생하는 '어떤 공백' 때문이다.

거실을 무대로 삼아 아이들이 공연하던 장면, 아이리스(아이네트 주누)의 선창으로 시작된 1절의 노래 구절에는 할아버지와 마리오나의 목소리가 뒤이어 얹어지고, 2절에서 아이리스의 박자와 음정이 무너지면 할아버지가 선창하며 아이의 목소리를 기다린다. 그것을 듣는 가족 중 마음으로 따라 부르는 이는 또 얼마나 될까. 이미지를 잠시 배제하고 앞뒤로 붙은 자막의 개연성에 집중해보면 얼마나 많은 대화가 뒤죽박죽 섞여 있는지, 또 그런 혼란을 자연스럽게 이어 붙이는 가족이라는 관계의 (아이들의 표현을 빌려) 마법 같은 힘을 믿어보게 된다.

 

 

2.

감독의 장편 데뷔작 <프리다의 그해 여름>(2018)의 마지막, 프리다는 비로소 울어버림으로써 엄마의 죽음에서 비롯된 이별의 가혹함과 상실의 외로움, 결핍을 배양하는 기억의 위용을 체험해보게 된다. 엔딩 크레딧까지 연장된 아이의 울음소리는 "나의 엄마 네우스에게"라는 감독의 헌정 문구와 만나면서 어린 날 감독의 기억 일부가 영화적 세계로 확장되었음을 확인하게 한다.

"단편적인 기억을 지닌 한 사람의 세상은 어떻게 좁아지고 무엇으로 넓어지는가" <알카라스의 여름>은 그 물음의 연장선에 있다. 비협조적인 태도로 가족 내 시한폭탄처럼 여겨지던 아버지 키멧(조르디 푸홀 돌체트)이 누구도 울지 않는 틈에 끝내 울어버리던 장면. 그는 자신의 시야에 걸린 모든 것들을 강박적으로 다그치거나 애써 외면하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다. 시선을 피해 등 돌린 아버지의 초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이들은 마지못해 거두었던 눈길을 한밤중 잠 이루지 못하고 다시 밝힌다. 아버지의 초상이 아이들에게 가혹하다면 세월과 무관하게 어린 날과의 별거는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고 키멧에게 서글프다면 무언가를 금세 잊어버리기엔 그의 눈물이 더는 미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영화사 진진
ⓒ 영화사 진진

미국 공학자 고든 벨(Gordon Bell)은 "전자 기억 시대의 눈의 역할을 대체하는 카메라는 찰나의 장면을 놓치거나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 포착하지 않으므로, 생물학적 기억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한다"고 전한다. 그러나 '카를라 시몬의 카메라'는 공백과 반복으로 한 절기의 기억을 다르게 보게 하는 요체를 마련한다. <알카라스의 여름>에는 같은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된다. 희생된 토끼를 추모하는 기도의 몸짓, 개폐되지 않은 수로와 복숭아 바구니의 추락, 무화과 선물이 토끼 사체를 통한 복수로, 그리고 반복되는 할아버지의 처연한 노랫가락.

교차되고 순환하는 시선의 문제는, 괴롭고 불안한 순간을 중단하고 분절하면서 동일한 상황을 노년과 중년, 소년과 유년의 관점으로 재구성해 보인다. 그렇기에 엔딩의 기록적인 시점 샷의 지연 끝에 다다른 풍경이 슬픔만 남기는 것은 아닐 테다.

각자의 위치에 머무르던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인기척을 기점으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곳으로 모여들 때의 기이한 경이로움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인간이 아이일 때 아픔과 연민, 슬픔을 거칠게 배웠다가, 이를 서서히 망각하고선 다시 깨달아 가면서 죽을 때까지 성장하는 존재라는 것을, 선형적 흐름으로서가 아닌, 계절의 순환과도 같은 연결의 통로로 전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가 자라나면서 어른의 분노를 새삼 서글퍼하게 되고, 어른은 소년 시절의 고독을 노인이 되어서야 안쓰럽게 대할 줄 알게 되는 아이러니한 삶이라는 계절들. <알카라스의 여름>은 뒤늦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돌이킬 수 없거나 그럴 수 없게 될 한 시절을 조금은 다정하고 애틋하게 대해보게 만든다.

[글 변해빈, limbohb@ccoart.com]

 

ⓒ 영화사 진진

알카라스의 여름
Alcarràs, Alcarras
감독
카를라 시몬
Carla Simon

 

출연
조르디 푸홀 돌체트
Jordi Pujol Dolcet
안나 오틴Anna Otin
세니아 로제트Xenia Roset
알베르트 보쉬Albert Bosch
아이네트 주누Ainet Jounou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2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11.03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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