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대개 인연을 둘로 나눈다. 결심하는 자와 선고받은 주체로. 전자의 경우엔 맞잡고 있는 손을 먼저 놓는다는 점에서 결심하는 사람이고, 후자의 경우는 허공에 어색하게 떠 있는 손을 활짝 펴 보이며 멀어지는 사람에게 흔들어줄지, 말지를 결정한다는 점에서 주체라 볼 수 있다. 놓는 사람(작용)과 그 행동에 반응하는 사람(반작용)이 있어야 이별은 성립하게 된다. 이 때문에 어떤 이별에 있어 결심하는 자와 주체가 없다면, 이 이별은 이별이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같은 논리로 둘 다 주체일 경우도 이별일 수 없다. 맞잡은 손을 동시에 놓아 생긴 빈자리에는 이별이 아닌 다른 단어가 쓰여야만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손잡은 모두가 주체가 돼버리는 이별은 가능하다. 이 세상에는 맞잡은 손을 강제로 절단해버리는 참혹이 있기 때문이다.
데이빗 로워리 감독의 <고스트 스토리>(2017)는 내게 그런 이별을 생각하게 한다. 맞잡은 손을 절단하는 것도 모자라 그 두 사람을 저 멀리 떨어뜨려 놓게 하는 그런 이별. 인사 없는 그런 이별. 남겨진 사람의 마음도 떠나 버린 사람의 마음도 될 수 없는 그런 이별. 인간의 이해나 감정과는 무관하게 벌어지며 어쩌지 못하는 상태를 말이다. 이 영화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커플인 C와 M은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며 교외의 낡은 집에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C가 세상을 떠나게 되고 M은 홀로 남겨진다. C는 유령(고스트)이 되어 M이 홀로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 집에서 M의 곁을 배회한다. 유령의 입장에서 시간은 인간의 그것과 다르게 흘러, M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집을 나서고 집의 주인은 여러 번 바뀌게 된다. 하지만 C는 같은 자리에 남아 무언가를 계속해서 기다린다.
이 기다림이 다른 이별보다 더 슬프게 느껴지는 까닭은, M에게 그 무엇도 전할 수 없다는 C의 절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에게 벌어진 이별 자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닥쳤다는 점에 있다. 선고가 있는 이별은 슬픔을 흔적으로 남기지만, 그렇지 못한 이별은 고통을 남기니까. 비통이란 단어의 존재는 아마 이를 증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는 한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의 한가운데서 참사가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았다. 아니,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이별하지 못 한 사람들의 이별이 그들을 고통 주고 있다. 그렇기에 29일의 참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이란 사회는 그 공간에 있던 이들과 그들을 잡고 있던 손을 순식간에 잘라버렸으나 그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있다. 이 땅에는 가해자 없이 고통받는 사람들만 남았다.
그럼에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죽음을 힐난한다.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에 이른 것은, 그리고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인지를 드러낸다. 나는 그러한 생각에 이제는 화가 난 다기 보다 슬퍼지고 마는 편이다. 세계의 어둠이 점점 더 많아짐을 느낀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날 오후 7시까지 이태원에 있었고 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완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수많은 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있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참상이 일어났음을 확인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여전히 살아있다는 안도감보다 그들을 대신해 살고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부채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아무것도 나아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감에 빠진다.
나는 여기서 서두에 써놓은 '참혹'이란 단어가 가진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어떤 말도 남기지 못 한 사람들과 어떤 말도 해주지 못 한 사람들의 심정을,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 아픔과 두려움과 억울함 그 이상의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그 절망의 크기와 양태를. 아마도 그들을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쉬운 이해는 오만이 될 것이기에. 하지만 내게 이것만은 가능할 것 같다. 여전히 아파하는 이들과 영혼들에 안식을, 부디 덜 아파하시기를. '고스트'로 너무 오래 아파하시지 않기를. 나는 진심으로 그러시기를 현재진행형으로 바라고 있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