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th TIFF] 'In Her Room' 방구석 욕망
[35th TIFF] 'In Her Room' 방구석 욕망
  • 이현동
  • 승인 2022.11.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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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내부, 장소와 정념이 뒤얽힌 불온의 공간 안에서"

'이토 치히로'는 미술부 스태프와 극작가로 활동하다 <In Her Room>을 통해 최초로 필름 메이커로서 데뷔했다. 미술부 스태프로 활동한 경력 때문일까. 이 작품에서 유심히 볼 수 있는 건 서사의 유연한 진행이라기보다 미학적인 짜임새를 부각하고 있다는 점은 너무도 명약 관학 하다. 

필자는 <In Her Room>을 시대성을 강조하는 '모더니티'적인 영화가 아닌 작가로부터 추출되는 작가주의 경향이 강한 영화로 분류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0)가 함구적으로나마 특별히 로셀리니로부터 얻을 수 있는 '모더니티'라는 개념, 즉 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시대성과 히로시마라는 지역을 탐사하는 전형적인 외적 기제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착복해 있다면, 이를 배제하고 있는 <In Her Room>은 캐릭터의 성격(혹은 욕망이라 할 수 있는), 공간의 형태로 고유의 스타일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이질적 양식의 영화이다.

후에 설명하겠지만, <In Her Room>에서 각기 다른 성격을 규정하는 방의 구조와 기묘한 효과음의 연쇄는 분명 창조적이며 초현실적이다. 이와 유사한 성질을 공유하는 영화, 지금 당장에 떠오르는 영화는 루이스 부뉴엘의 <세브린느>(1966), 켄 러셀의 <크라임 오브 패션>(1984) 그리고 홍상수의 최근 작품 <탑>(2022) 등이 그 사례가 될 수 있을 텐데,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무엇보다 공간이 중첩되는 과정과 중첩된 장소로부터 이중화되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으로 표상된다. 다시 말하자면 이 영화들은 특정한 대상을 지정하지 않는 본유적이며 생래적인 욕망을 이미지화함으로 개인적이면서 보편적인 원리로 판별하기 어려운 정념을 구획한다.

 

© <In Her Room> Film Partners

앞에서 언급한 내용을 충족시키는 첫 장면은 이미지와 사운드의 배열을 통해 이를 증명한다. 추측(지역적인 측면)이 불가한 어느 호수 아래에 물의 진행 방향에 따라 왕복 운동을 거듭하는 풀들의 이미지엔 외부에서 도무지 탐지할 수 없는 기이한 소리가 잔존한다. 마치 인간이 잠수하고 나서 들리는 먹먹한 이 소리의 정체는 외부의 의식과는 단절된 내부의 세계를 지시하는 감각적인 기호로 읽힌다. 이 장면은 영화가 주요한 심상으로 차용하는 외부-내부를 병치하는 장치로 캐릭터와 공간의 상호 교환적인 암시를 최초로 선언하는 장면이다. 그다음 쇼트로 등장하는 치과 의사 스스메(이구치 사토루)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두려움, 관계 맺기에 대한 불안한 정서가 있는 내향적인 성향의 인물인데, 아이러니하게 치과 의사라는 설정은 내부 감각을 관측하기 위한 직업이라는 점에서 그는 잠재적인 존재이며, 표면의 성질로부터 이행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스스메는 마사지 샵에서 근무하는 미야코(바바 후미카)와 조우를 통해 내부에 속박되어 있었던 욕망과 마주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발화하는 성적 욕망은 내면의 변용이 어떻게 극적인 방식으로 영화의 이미지와 결합하는지를 끊임없이 보여준다. 미야코와의 애정은 결국 그의 욕망과 감응하려는 수단으로만 전락하고 그녀의 집을 향한 동선을 변경하는 것은 오해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최초 관계의 종말이 그렇게 오랜 고민과 사유로부터 기인하지 않는다는 지점에서 그는 욕망으로부터 구원받지 못한다. 그 과정에서 미야코의 친구인 료코(카와이 유미)와의 성관계는 그에게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를 교란하는 대상은 욕동에 이끌리는 그 자신이며, 미야코의 존재는 그를 내부적으로 볼 수 있는 일종의 현미경이자 반성의 동기를 제공하는 채찍인 셈이다. 그는 마지막에 미야코가 갖고 싶어 하던 크리스탈을 선물하고 표식으로 이를 남긴다.

 

© <In Her Room> Film Partners

프레임과 방

영화의 흐름을 인도하는 프레임은 방의 구조와 이를 따라 이동하는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공간은 영화의 질료로 캐릭터를 규정하는 방식의 일환이다. <In Her Room>이라는 제목답게 이 영화의 주체가 되는 이미지는 프레임으로 한정되는 방의 모양새다.

영화에서 대표적으로 반복되는 공간은 4종류이다. 스스메의 병원과 방, 미야코의 방, 료코의 방은 캐릭터를 확연하게 구분하는 요소다. 이를 치료하는 스스메의 병원과 방은 그의 직업을 상징하듯 대부분 네모난 모양으로 규칙적인 구조이며, 반대로 미야코는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지 않은 자연주의적 형상을 취하고, 료코의 방은 그 내면의 차가움과 자유를 동시에 가진 듯 어둡고 혼재된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스스메의 성향에 따라 공간은 무척이나 경직되어 있다는 것과는 다르게, 미야코의 방은 언제나 개방되어 있다. 이 경직성과 개방성은 둘의 정신을 은밀하게 해설하고, 이 교류가 관계를 접착하는 가능성으로 늘 틈입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두 종류의 외부적 요소인 방과 접촉하는 내부적 요소, 즉 욕망은 그 공간을 포괄하는 효과음을 통해 다시 한번 연동된다. 맨 먼저 스스메가 미야코의 집에 방문할 때 발생하는 먹먹한 효과음은 최초 첫 장면의 이미지와 효과음을 대조한다면, 둘의 관계의 규명은 이것이 필연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또 한 가지 사례로 스스메와 미야코 그리고 친구인 료코가 관람하는 연극 장면에서도 이 공식은 동일하게 포착된다. 연극을 펼치는 연기자들의 중앙에 커튼으로 가려진 곳은 무엇이 있는지를 전연 식별할 수 없다가 외부가 삭제된 그 안의 조형물은 '뼈'이다. 외부가 제거된 공간 안의 공허한 현존은 이 영화가 욕망을 어떠한 방식으로 묘사하는지를 보여준다.

 

© <In Her Room> Film Partners

<In Her Room>이 전체적으로 포괄하고자 하는 수사는 '내부의 감각을 효과적으로 증폭하고 변용하고 있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보편적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누군가와 공간을 공유하면서 발생하는 의미는 개인과 개인을 연동하는 긍정적 기제로 발굴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붕괴할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간의 반복적인 연대'는 '관계의 무덤'으로 봉인된다. 스스메가 체감하고 있는 '관계성의 결핍'과 '생성이란 내러티브', 즉 지극히 감각적인 사건들은 결국 자신의 주체를 확립하기 위한 고무적인 양상으로 끝을 맺게 된다. 스스메가 자기 얼굴을 조각하며 미메시스 하는 과정이 투입되는 이 영화의 궁극적 형체는, 개인이 갱신되는 이야기이면서 개인과 필연적으로 융합될 수밖에 없는 공간 속에서 어떤 변화가 초래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 성찰임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울러 영화의 캐스팅과 연기를 훈련하는 과정에는 몇몇 흥미로운 지점들이 있다. <In Her Room>의 캐스팅에서 가장 흥미로운 요소는 킹 누라는 일본 유명 밴드의 보컬과 피아노를 맡은 '이구치 사토루'이다. 그가 이전부터 보여줬던 몇 번의 기행 적인 행위와는 무관하게 그의 연기는 제법 차분하게 단련되었다. 스스메의 역할을 맡은 그는 영화의 원작 소설을 반복해서 읽고 그 감정을 연구했다고 한다. 미야코 역할인 '바바 후미카'는 자신의 급한 성향을 억누르고 평소에 천천히 말하기를 연습하고, 료코역의 '카와이 유미'는 료코가 듣고 있을 법한 곡들을 플레이리스트로 선정해 늘 들으면서 감정을 이미지 메이킹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입소문을 타고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영화 <썸머 필름을 타고!>(2022)의 킥보드 역할을 맡은 발랄했던 카와이 유미의 연기 변신은 유독 돋보이고 새롭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In Her Room> Film Partners

In Her Room
감독
이토 치히로
Ito Chihiro

 

출연
이구치 사토루
Iguchi Satoru
바바 후미카Baba Fumika
카와이 유미Kawai Yuumi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36분
공개 제35회 도쿄국제영화제(2022.10.24~11.02)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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