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이열치열 이한치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이열치열 이한치한
  • 이현동
  • 승인 2022.11.0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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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표현하는 가장 충실한 완곡어법"
ⓒ 필름다빈

박송열의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2022)는 전작 <가끔 구름>(2017)에 이은 지극히 미니멀한 작업환경에서 기획된 작품이다. 특히나 두 작품에서 동일하게 등장하는 박송열과 원향라는 감독이자 배우 또는 스태프로 직접 개입하였다는 지점은, 아이러니하게도 프로덕션의 한계를 넘어서 독창적인 작품을 자유롭게 구현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다. 두 사람이 참여한 작품 모두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경을 공유하며 모종의 연대를 확립하는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가끔 구름>에선 '연인'으로 이번 작품에서는 '부부' 사이가 된 그들은, 영화적이거나 혹은 현실적일 수 있는 시간의 간극과 관계의 변용이란 측면에서 연속성을 획득한다. 영화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프레임은 정적으로 캐릭터와 환경, 즉 영화 전체 성격을 규정한다. 앵글은 움직이는 법이 없고, 단 두, 세 차례 정도 패닝 하는 카메라 무빙 또한 둔감하다. 표면적인 형식이 유출되는 카메라 앵글도 그러하지만, 감정을 담는 캐릭터의 제스처도 동일한 감도를 갖고 행위한다. 부부는 환하게 웃는 법도 없지만 비탄한 현실을 바라보며 원망하거나 간곡하게 호소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미동 없는 모든 발화의 원천을 가늠할 수 있는 단서는 영화 제목에서이다. 낮과 밤, 그리고 덥고와 춥고 사이에는 '왜'와 '어떻게'라는 것은 생략되어 있다. 영화에서 영태(박송열)이 감독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이 강조되지 않으며 어떠한 사정으로 그만두게 되었는지는 별 관심이 없다. 박송열 감독의 영화를 파악할 수 있는 직관적인 특성은 왜 그들이 가난한 상황에 부닥쳤는지를 열거하거나 일일이 언급하지도 않으므로 얻게 되는 단단한 주체성이다. 이 주체는 극적 연출을 통해 얻게 되는 영화적 규범 혹은 상업성을 위반한다. 영화적인 것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회피하지 않고 일상이란 양식으로만 집약하는 대담함은 자율성을 확보한 영화가 가진 뚝심이 무엇인지를 응시하게 한다. 그들의 일상이 어떠한지를 단순하게 표상함으로 완성되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삶에 대한 교훈이나 자기반성과 같은 다소 관습적인 형식을 벗어나 특유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개척해낸다.

 

일상이란 '유머'

척박하기 그지없는 실직한 부부의 삶에 박송열 감독은 이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유머'라고 말한다. 왜일까. 감독이 상정한 유머는 영화 전체의 맥락 안에서 유연하게 공명한다. 그의 말마따나 촬영 현장 분위기와 장면에 따라 설정된 유머는 영화의 리듬을 결정하는 축으로 가동한다. 가만 보면 이 영화는 일상이란 옷을 탈의하는 법이 별로 없다. 실상 자기 행위를 반복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일상이라면, 근본적으로 일상을 탈각하려는 속성을 지닌 영화란 매체는 일상적으로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두 가지 결합, 일상과 영화가 온전한 작품으로 탄생하기 위해선 당위적 조건으로 다큐멘터리 적 감각 혹은 일상의 변용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일련의 사건이 요구된다.

 

ⓒ 필름다빈

 

박송열 감독은 불가결하게도 일상을 교란하고 증폭하기 위한 수단으로 '유머'를 사용한다.

먼저, 특정 사건이 일상에 개입하기 이전에 그들은 같은 위치에서 같은 행위를 거듭한다는 것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집 바닥에 앉아 상추에 삼겹살을 가득 담아 소주 한잔을 시원하게 걸치고, 정희는 보조교사로 취업하기 위해 메일로 계획서와 이력서를 보내기에 급급하고, 알바로 대리운전하는 영태는 매일 새벽에 들어와 TV를 보며 맥주와 스낵을 먹으며 밤을 지새우다 잠이 든다. 그러던 중 영태의 카메라를 빌려 가는 선배 명수(김효진)로부터 전개되는 서사는 차츰 블랙코미디로서 모양을 갖추게 된다. 동시에 영태에겐 대리운전 이외에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게 되는데, 첫 번째는 명수로부터 소개받은 일자리로부터 발생하는 에피소드고, 또 한 번은 연락이 없던 고3 동창생에게 다단계 영입을 받은 에피소드이다. 중간에 대학교 동기 동생이 준 기회로 아내 정희(원향라)도 대타로 보조 교사 일을 하게 되지만, 수업에 지각을 하고 그 이후에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하고 다시 일상을 전전긍긍한다.

이 모든 외부적인 만남은 그들의 경제력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부부의 유머는 자기 파괴적인 속성을 지닌다. 정희가 상념 어린 표정으로 비 오는 외부를 응시하고 있을 때 영태는 그녀를 찾아가 말을 건넨다. "우리 이번 달 돈이 부족할 것 같은데, 보일러를 아껴둘 걸 그랬나"는 정희의 말에 영태는 "우리 삶의 질이 중요하니까, 사채까지 쓴 건 아니니까"라고 답한다. 여기서 삶의 질이란 현 상황에서 향유할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현실로 승화시켜 유머로 변용한 이 장면은 실제 감독 박송열의 캐릭터를 대입한 주체이자 의미로 기능하는 것은 아닐까.

그다음 시퀀스는 이러한 영태의 말을 배반하듯 사채를 쓰게 되는 동기로 작동한다. 친척들이 모인 정희 어머니의 생일 축하 파티 자리에 그들 부부만이 봉투를 준비하지 못한 것을 불평하는 영태에게 반감을 지니게 된 정희는 가방을 들고 대출받기 위해 집을 나선다. 300만 원을 빌린 그녀에게 연체되지 말라는 지속적인 사채업자의 문자는 카메라를 빌려준 영태의 행위와도 결부되어 있다. 사채를 쓴 사실을 알게 된 영태는 곧장 명수를 찾아 카메라를 돌려받고 사채를 갚고자 한다. 지금껏 영태를 피해 다니던 명수를 우연히 만나 카메라 가격 이상인 300만 원을 강압적으로 받아낸 그는 바가지를 씌운 것 같다는 불편함을 토로하는 정희의 말을 듣고 100만 원을 돌려주게 된다.

여기서 박송열 감독의 일상을 구현하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물성과 밀착되어 있으며, 이를 타파할 수 있는 것은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아님을 드러낸다. 인물이 가진 '순박함' 또는 '정직성'에서 나온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마지막 시퀀스가 가진 의미는 주제적으로 통일성을 지닌다.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 명수의 인스타에 올라와 있는 새 차 사진을 본 영태는 사진 구석에 적혀있던 주소를 발견하고 새벽에 그 위치를 배회한다. 그리고 그 차를 가만히 쳐다보고는 다시 집을 향하는 영태의 뒷모습에는 어떤 처연함이라든지 반대로 결의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가오를 간직한다. 영화에서 돈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조응하지 않는다. 일상과 동행하며 연대와 유머를 촉발하는 장치인 물리적인 힘인 돈은 오히려 그들의 삶의 태도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 필름다빈
ⓒ 필름다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하던 사랑이나 좀 하자"라는 <가끔 구름>(2017)의 마지막 대사는 박송열이 시현하고 있는 직선적인 세계와 공명한다. 일상의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현실을 살아가는 것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영화가 구축하고 있는 사물들의 배치는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단조롭다. 유독 집의 모양새가 그러한데, 구조상 2인 소파와 2인 식탁, 침대 사이즈마저 두 명이 겨우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없어 보인다. 공간의 제한은 결국 카메라가 프레임에 담을 수 있는 한계를 명명할뿐더러 그들의 감정을 표명하는 함축적인 사례로 등장한다. 누구도 초대할 수 없는 좁은 환경이라는 것과 둘만의 공간으로 유지되는 이 양가적인 배열은 불가항력적으로 그들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 데 활용된다.

영화의 공식처럼 여겨지는 부부의 스킨십은 기존, 주류 형식에 저항하려는 미묘한 방책이다. 부부 캐릭터는 성적인 스킨십 없이 마치 전우처럼 우애를 나눈다. 둘이 함께 잠을 청하는 장면보다 한쪽이 침대에서 누워있거나 기상하는 장면이 더 많다. 결국 이것은 영화 전체를 총괄하는 수사적 태세이기도 한데, 그것은 감독이 탐구하고 있는 영화적이라고 말하는, 이제는 정의된 규범도, 현실적인 것도 아닌 일상을 대하는 겸양 쩍지만 긍정적인 발상을 할 수 있는 관객 내부의 공상적 공간을 상정함으로 이 영화가 가진 순박함은 우릴 따스하게 해 준다. 남자와 여자 혹은 부부로 공존하는 일상을 살아가는 그저 살아가는 이야기, 이것은 우리의 이야기이다. 비록 간소화되고 경량화된 삶의 형태가 캐릭터의 세계를 구축할지언정 회피하지 않고 나아가는 당당함은 그의 영화가 표상하는 사랑스러움이 가진 매력임이 분명하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필름다빈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Hot in Day, Cold at Night
감독
박송열
PARK Songyeol

 

출연
박송열
원향라
허중회
손민희
서철
신원우
김효진
이태리

 

제작 사랑하자
배급 필름다빈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9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10.27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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