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프디 형제 #1]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 그 환상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을지라도
[사프디 형제 #1]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 그 환상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을지라도
  • 김민세
  • 승인 2022.11.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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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거리를 헤매는 사프디 형제의 유령들"

미국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감독 중 하나였던 '사프디 형제'(형 조슈아 사프디와 동생 벤저민 사프디)는 이제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뉴욕 태생의 시네필 형제가 만든 영화들을 따라가다 보면, 비슷한 연출 태도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온도와 규모는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단편과 장편들이 소박하고 휴머니즘적 주제를 갖고 있다면, 변화의 시작이 되었던 <헤븐 노우즈 왓>(2014) 이후의 영화들은 지극히 장르적인 연출 방식을 취하고,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혼란스러운 미장센으로 시네마로부터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체험을 안겨주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작품에서 변하지 않고 반복적으로 다뤄지는 주제는 '결핍'과 '중독'이다. 도벽을 소재로 하고 있는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2008), 싱글 대디이자 영화 중독자인 사프디 형제의 아버지를 캐릭터의 모티브로 하고 있는 장편 데뷔작 <아빠의 천국>(2009), 뉴욕의 마약 중독자 홈리스의 논픽션에 기반한 <헤븐 노우즈 왓>, 미끄러지는 목표를 두고 빠져나올 수 없는 도주와 탐색의 게임을 하는 <굿 타임>(2017), 도박이라는 불확실에 중독된 유대인 보석상의 이야기 <언컷 젬스>(2019)까지. 이 중 비교적 초기작에 속하는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은 '사프디 형제의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중독과 결핍, 그리고 그것이 만드는 환상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에 대한 대답 같은 영화이다.

 

ⓒ Red Bucket Films

도벽이 있는 주인공 '엘레노어'(엘레노어 헨드릭스)는 환상 같은 현실의 연속으로 행복을 얻는다. 식당에서 가방을 훔쳐 현금과 자동차 열쇠를 얻게 되고, 우연히 만난 친구의 도움으로 열쇠에 맞는 자동차를 찾는다. 그리고 직접 운전을 하며 뉴욕에서 보스턴까지 짧지만 환상 같은 여정을 떠난다. 심지어 처음 해보는 운전까지도 큰 사고 없이 잘 해낸다. 환상이자 거짓 같은 시간의 연속. 그리고 그 시간을 축복하듯이 새벽의 일출과 함께 델로니어스 몽크의 'Pannonica'가 연주된다. 항상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가는 유사 여정을 다뤘던 사프디 형제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은 엘레노어와 조이가 보스턴이라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과정의 시간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매우 우연적이고 부자연스러운 사건과 행운의 연속. 그렇기에 이 영화를 개연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굉장히 어색하고 이상해진다. 그렇지만 이런 장면들을 영화 밖에서 보고 있는 우리들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챌 수 있지만, 영화 속의 엘레노어는 환상에 젖어 자신의 운명을 알아보지 못한다. 결국 환상은 그녀가 절도죄로 체포되며 끝난다. 이제 그녀를 향한 세계의 행운은 멈췄고, 이 행운을 지속시키려면 그녀의 새로운 상상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절도로 체포된 후 잠깐 경찰차에서 나와 동물원 북극곰을 보는 엘레노어. 그리고 이어지는 환상 시퀀스 속에서 그녀는 계곡물의 몸을 담그고 북극곰과 함께 놀고 있다. 스스로 만든 환상이 끝나면 엘레노어는 경찰차 안에서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환상 같은 일상(돈가방을 훔치고 조니와 보스턴에 가는 시퀀스)과 무너지는 환상(북극곰과의 시간이라는 환상 시퀀스). 부실한 인형(<아빠의 천국>에서 등장했던 거대한 모기의 형상을 떠올리게 만든다)으로 만들어진 환상 속 북극곰은 그녀가 만든 환상이 현실 속 우연으로 만들어진 행운과는 달리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자신의 행운을 자의적인 환상으로 만들어낼 수 없음을 알게 된 그녀는 이전의 행동을 반복하며 다시 훔치는 삶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으리라.

 

ⓒ Red Bucket Films

경찰서에서 나온 엘레노어는 다시 거리를 떠돌고 물건을 훔친다. 이런 그녀의 행동은 아무런 죄책감 없이 막무가내였던 이전 모습들로 보았을 때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과연 엘레노어는 단순히 이전 삶을 반복하는 것일까. 일련의 환상 끝에서 현실을 마주한 그녀는 그 어떤 변화와 성장도 겪지 못한 것일까. 스스로 만든 환상의 조악함을 깨달은 엘레노어는 경찰서로 향하는 경찰차 안에서 전에서는 살펴볼 수 없었던 가장 허무한 표정을 하고 있다. 그 침묵의 얼굴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환상이 환상임을 인식하는 것. 행운은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 그럼에도 엘레노어는 다시 행운을 기대하며 환상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그때의 기억을 '다시 감각하는 것'이다. 마치 마약을 구하기 위해 뉴욕 거리를 헤매는 마약 중독자처럼(<헤븐 노우즈 왓>). 혹은 위험을 감수하는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도박 중독자처럼(<언컷 젬스>).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 이후 사프디 형제의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경찰서에서 나온 뒤 뉴욕 거리를 헤매는 엘레노어의 유령이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사프디 형제는 어떤 영화를 찍든 간에 그 뉴욕의 거리로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엘레노어는 그 환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지금까지 자신이 마주했던 환상은 조악한 허구라는 사실을 깨달음에도 환상으로 회귀한다. 가게에서 음반을 훔치고 음악을 들으며 거리를 걷는다. 환상의 시간이 아니라면 엘레노어의 거리에는 음악이 흐르지 않을 것이다. 그 환상이 엘레노어를 구원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녀가 걷는 거리 위에 음악 한 곡은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재즈의 즉흥 연주 방식처럼 구체적이지 않은 시나리오를 갖고 즉흥적으로 촬영한 조쉬 사프디의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은 엘레노어를 구원하지 않는, 그러나 살아가게 하는 연주이다.

환상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엘레노어, 환상 같은 허구를 마주하는 우리. 북극곰의 환상 시퀀스 끝에 다시 찾아온 현실의 무력감을 지켜봐야만 하는 우리는, 지금까지 봐온 영화가 결국 영사기가 꺼지면 사라질 환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올 것이다. 환상으로서의 영화로. 암전 후 천천히 그 위로 떠오르는 빛을 보고야 말 것이고, 그 빛이 꺼지는 순간까지 기다리고야 말 것이다. 그 환상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을지라도, 각자의 눈을 갖고 같은 방향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각자의 또 다른 재즈곡을 연주할 수 있지 않을까.

환상적인 새벽의 빛과 함께 영화의 중반에 흐르던 'Pannonica'는 엔딩 크레딧에서 반복되며 우리에게 말한다. "그 환상을 이어나갈 사람은 당신이라고"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Red Bucket Films

도난당하는 것의 즐거움
The Pleasure of Being Robbed
감독
조쉬 사프디
Josh Safdie

 

출연

엘레노어 헨드릭스Eleonore Hendricks
조쉬 사프디Josh Safdie
조던 발데즈Jordan Valdez
웨인 친Wayne Chin
프란체스카 라프렐Francesca LaPrelle
앤디 스페이드Andy Spade
아리엘 슐만Ariel Schulman

 

제작 Red Bucket Films
제작연도 2008
상영시간 71분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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