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분리된 삶을 이어주는 타이핑 소리
'나의 피투성이 연인' 분리된 삶을 이어주는 타이핑 소리
  • 변해빈
  • 승인 2023.11.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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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생산성의 생산성, 시간을 버리는 일에 충실하다는 것"
ⓒ 디오시네마

'유지영'은 작가가 돼서 돌아왔다. <수성못>(2018)에서 주인공의 캠코더를 극의 주요 도구로 활용해 청년들의 불안과 권태를 담았던 유지영이,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선 소설가 재이(한해인)와 함께 글을 쓴다. 그런데 재이가 낭독회에서 읊는 토막글을 제외하면 영화는 그녀가 쓴 텍스트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종일 키보드를 두드리는 재이의 모습으로 글 쓰는 풍경을 만들어낼 뿐. 소설의 내용은 임신을 거부하며 아이를 불안의 기저로 삼는 재이의 삶을 투영해 짐작되는 것이고, 감독은 소설을 관객에게 공개할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유지영은 작가의 일생을 살되, 재이의 손을 빌려 최종적으로는 버리기 위한 글을 가지려 한 셈이다. 그는 '버림'의 적절한 시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함께, 이러한 치열한 비생산성이 미래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키우는 포자이며, 낙오자를 생산하는 사회의 원리로 여겨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 디오시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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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인물들은 자신의 비생산적 속성 때문에 불안하다. 재이는 출판 가능성이 보이는 글을 써내야만 작가로 인정받는 삶에 스스로 편입된다. 동시에 직업에 맞춘 삶의 패턴과 채식주의자로서의 지향을 묻어두고 아이를 건강하게 출산하는 몸을 여성의 자격으로 간주하는 시스템을 거부한다. 그녀의 동거인이자 영어학원 강사 건우(이한주)는 학원 개업과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기 위해 분명 무언가를 해내고 있지만, 정작 미래는 임의적이고 가정된 시간에 불과하므로 실패의 기로에 끊임없이 세워진다. 이들의 경력단절과 관계 폐쇄에 대한 불안은 무능력에서 오는 게 아니라 노력을 들이고 감정을 소모한 시간이 끝내 비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질 때의 무력감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153분의 적지 않은 러닝타임이 지나면 관객들은 무엇인가 벌어졌지만 이뤄낸 것 없는 것, 즉 영화가 생산해낸 '치열하고도 충실한' 시간의 '버림'을 마주하게 된다.

인물들은 시간의 경과에 쫓겨 공간으로 도피하고, 유지영은 모든 인간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시간의 성격을 공간화하여 불균등하게 배분한다. <수성못>에서 보여준 공간의 문제(수도권과 지방의 구분, 독립하지 못한 주인공이 머무는 제한된 생활공간, 그리고 '수성못'이라는 유희와 죽음이 맞닿은 세계)는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 이르러 인물들의 공간 점유에의 집착으로 드러난다. 건우는 학원에서의 평판을 늘리기 위해 하루빨리 자기 소유로 된 분점을 욕망하고, 재이는 자신의 공간(작가로서의 입지, 태아와 공유하는 몸과 자유의 면적)이 협소해지므로 집에서 벗어나 호텔로 공간을 확장한다. 재이와 건우의 소속감에 대한 강박적인 욕구는 둘의 동거에서 시작된 영화를 이들의 별거와 신체적 지유의 구금으로 끝맺게 한다. '이상'적인 소속감으로부터 분리를 조장하는 것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거나(재이) 무엇도 할 수 없다(건우)는 선명한 '실감'이다.

 

ⓒ 디오시네마

건우와 재이의 소유욕과 소속욕구는 관객에게 분리불안을 일으킨다. 두 사람의 물리적 공간의 분리는 일차적으로 각각 생산력(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후배 강사와 경력단절의 조건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신인 작가의 등장으로 분리불안의 조짐을 본격화한다. 이상적 삶의 중심으로부터 분리된 이후, 이들에게는 이성적 판단으로부터의 분리, 모체와 태아의 파괴적 분리, 종국에는 생명으로부터의 분리가 연달아 찾아온다. 무엇보다 차별과 위계적 질서로 추동하던 분리는 유달리 공평한 죽음으로 연계된다.

영화의 영어 제목인 'Birth'는 각각 재이의 출간과 건우의 승진, 그 사이 두 사람의 태아가 성장하는 시간적 동시성과 제약에서 비롯된 과부하의 문제를 이들을 둘러싼 공간감의 차원으로 확대한다. 무언가 탄생하기 위해선 생산성을 갖춘 누군가의 시간을 자양분 삼지만, 시간과 공간(포괄적으로는 위치, 지위)의 문제가 늘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것, 태어난 모든 것은 자리다툼을 하며 위치를 교환하고 교체되다 결국은 죽음으로 인계되고 만다는 것, 모체와의 분리에서 시작된 삶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동체와의 분리를 애초부터 예정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유지영은 어떤 실패에 의한 사회로부터의 단절감이나 희망을 절대적으로 제거하여 현실과 이성에 눈을 뜨라고 전하는 감독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적나라한 '실감'에서부터 물리적으로는 자기만의 공간이, 근원적으로는 자기 존중감과 삶을 재건하는 뼈대가 구성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재건의 가능성을 이어주는 관절은 지나온 '비생산적인' 시간을 끌어안는 용기이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가 그런 용기를 주는 방식은 위태롭고 불안한 개인의 경험을 객관화하는 자기 고백적 성격이며, 이는 소박하고 단순한 말 한마디를 분명하고 진지하게 전하는 캐릭터의 태도에서 묻어난다.

 

ⓒ 디오시네마

<수성못>에서, 엔딩에 이르러서까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청년에게 "집(불안의 기저로 삼은 원점)으로 돌아가"라고 전하던 중년의 말 한마디가 있었다면,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는 재이보다 시간을 먼저 '버려본' 적 있는 사람(여성 교수)이 전하는 조언이 있다. "지금 이 시기에는 평소보다 좋은 글이 안 나올 수 있어요. 그렇다고 그 글이 망한 글은 절대 아니에요. (중략) 다만 절대 작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어떤 상황이 와도 계속해서 쓰세요" 그 말을 허투루 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재이의 공간을 채우는 타이핑 소리, 그 작은 소리의 지속이 누군가에겐 동결됐던 심장박동으로 들릴 것이고, 누군가에겐 참아왔던 눈물을 흘려보내는 소리임을 알게 될 것이다.

[글 변해빈 영화평론가, limbohb@ccoart.com]

 

ⓒ 디오시네마

 

나의 피투성이 연인

Birth

감독

유지영

 

출연

한해인

이한주

오만석

최희진

박미현

 

배급 디오시네마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53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3.11.15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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