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하나의 예감을 얻는, 그 아이의 이야기
[interview] 하나의 예감을 얻는, 그 아이의 이야기
  • 홍상현
  • 승인 2022.11.0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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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 초청작 <히라이테> 슈토 린 감독 인터뷰
「히라이테」는 2019년  단편 「당신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로 제작에 참여한 「이십일세기 소녀」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처음 한국을 찾았던 슈토 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히라이테」는 2019년 단편 「당신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로 제작에 참여한 「이십일세기 소녀」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면서 처음 한국을 찾았던 슈토 린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아저씨는 아저씨 마음 다 알아요?"

김지운이라는 독보적인 장르영화작가를 필자의 뇌리에 결정적으로 각인시킨 스타일리시 비극 <달콤한 인생>(2005)에서 극 중의 모든 남성들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당돌한 여성, 희수(신민아 분)는 자신의 캐릭터를 놀라우리만치 적확하게 표현한 이 말을 입 밖에 낸 적이 없다. 적어도 근 십 년 만에 다시 본 119분 16초짜리 국내배급본이나 어렵사리 구해서 확인해 본 2백 자 원고지 437매 분량의 시나리오 상으로는 그렇다.

영화의 마케팅에 참여한 유능한 카피라이터가 썼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이 한 마디를 접하는 순간 머릿속에 21세기 초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팜므파탈의 강렬한 이미지가 환기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한 특별한 것은 이런 그의 모습이 필자에게는 관객 입장에서든 평자 입장에서든 조금도 싫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아니, 묘한 해방감마저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카타르시스.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 억눌리다 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에 폭발해버릴 수도 있는 감정을 안전하면서도 관례적으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배출시키는 이 도덕적 기능을 드라마에 부여했다. 아울러 이를 성립시키는 것은 동일시(identification)의 효과다. 수용자는 드라마 속 인물에게 스스로를 투사, 감정을 이입하고, 서사에 정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체험한다. 이 과정에서 관객의 관심과 공감을 자극하는 인물 유형은 완벽하고 도덕적이라기보다 오히려 인간적 결점을 지닌 예가 많다.

 

와세다대학교 영화연구회의 일원으로 영화제작을 시작한 슈토 린 감독은 「또 같이 자자」등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독특한 컬러의 작품들로 인정받아왔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와세다대학교 영화연구회의 일원으로 영화제작을 시작한 슈토 린 감독은 「또 같이 자자」등 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독특한 컬러의 작품들로 인정받아왔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지난여름, 3년 만에 정상 개최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필자는 앞서 소개한 <달콤한 인생>의 희수를 연상시키는 캐릭터가 '무려' 원톱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심지어' 무대는 관동의 지방중소도시 고등학교인 놀라운 청춘영화를 보았다. 바로 경쟁부문에 초청된 슈토 린 감독의 <히라이테>.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으로 당대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와타야 리사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에서 만 스물일곱의 청년감독 슈토 린은 청년 시나리오 작가 이재준의 표현을 빌리면 '콩알 같은' 외모의 야마다 안나를 캐스팅해 천방지축 제멋대로에, 자기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지만 비호감은커녕 궁극의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 깜찍한 팜므파탈을 그려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스타일에 활달한 성격의 소유자인 주인공 아이(야마다 안나 분)는 과묵하지만 총명하며, 수수께끼 같은 그늘조차 근사하게 느껴지는 같은 반 친구 다토에(사쿠마 류토 분)를 좋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다토에에게 이미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심각한 것은 그 상대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점. 병약하고(1형 당뇨병 환자)는 어두워 보이는 분위기 외에 어떤 매력이나 존재감도 찾아보기 어려운 미유키(이모우 하루카)였기 때문이다. 가슴 찢어지는 아픔과 견딜 수 없는 분노 속에서 아이는 미유키에게 다가가는 아이. 그렇게 누구도 예측 못했던 형태의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히라이테」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으로 당대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와타야 리사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히라이테」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으로 당대 최연소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와타야 리사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홍상현

2019년 단편 <당신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로 제작에 참여하신 <이십일세기 소녀>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되신 이후, 두 번째 장편 <히라이테>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되시면서 다시 한국에 오셨습니다.

슈토 린

번번이 이렇게 상영 기회를 주시니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여러 가지 상황들이 나아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을 방문했으니 '앞으로 좀 더 많은 관객분들을 만나 뵐 기회도 주어지리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홍상현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늘 드리는 질문입니다. 한국영화를 즐겨 보시나요. 좋아하시는 작품이나 감독, 배우가 있으신지요.

슈토 린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8)를 너무 좋아해요.

<히라이테>를 찍기 전에 보고 엄청나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은희'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이 너무 신선하고도 생생해서, 마음 둘 곳 없는 그 시절의 여름날 오후를 직접 따라다니며 체험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리고 이번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김세인 감독의 <같은 속옷을 입는 두 여자>(2021)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영어가 서툴러서 자막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요. 그래도 라스트신의 암전이 아직까지 뇌리에 새겨져 있어요. 일본에서 꼭 다시 보고 싶습니다.

 

주인공 아이는 과목하지만 총명하며, 수수께끼 같은 그늘조차 근사하게 느껴지는 같은 반 친구 다토에를 좋아한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주인공 아이는 과목하지만 총명하며, 수수께끼 같은 그늘조차 근사하게 느껴지는 같은 반 친구 다토에를 좋아한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홍상현

이번 작품은 영화제가 개막 이전부터 김현민 프로그래머가 강력 추천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을 것 같은데요.

슈토 린

상영 종료 후에 많은 관객 분들이 말을 걸어주셔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게다가 김현민 프로그래머께서는 저한테 편지까지 보내주셨는데요. 영화를 깊이 바라봐 주신 데 대해 이 기회를 빌려 진심 어린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특히,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주인공이 이름이 '아이(愛)'라는 점이 아이러니하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에는 생략돼있지만 원작에 지적하신 내용의 독백이 그대로 나오거든요.

 

홍상현

다음은 필모그래피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 보죠. PFF(Pia Film Festival)어워드를 수상하신 <또 같이 자자>(2016)부터 다채로운 컬러의 작품을 만들어 오셨는데요.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슈토 린

제가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남성을 잘 그릴 수 없다는 게 고민이기도 한데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다토에 역의 사쿠마 류토 배우와 일할 수 있었던 건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언젠가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렛 버틀러 같은 심오한 인물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다토에는 옆 반의 미유키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어가는 중. 하지만 아이는 병약하고 어두워 보이는 분위기 외에 어떤 매력이나 존재감도 찾아보기 어려운 미유키가 아무래도 마뜩치 않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다토에는 옆 반의 미유키와 비밀스러운 관계를 이어가는 중. 하지만 아이는 병약하고 어두워 보이는 분위기 외에 어떤 매력이나 존재감도 찾아보기 어려운 미유키가 아무래도 마뜩치 않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홍상현

이번 작품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 초청되셨는데요. 여성영화에 대한 감독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슈토 린

제가 존경하는 여성감독이 얼마 전 돌아가신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과 대담을 하다 "아직 찍어야 할 영화를 절반 정도밖에 찍지 못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어요. 저는 여성이 연출한 영화를 더 보고 싶고, 그런 제 소망이 점점 실현되어가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또, 일본에서 '여성감독'이라 불릴 때는 '감독'이라는 명칭 앞에 굳이 성별을 붙이는 게 남성적 시선인 것 같아서 위화감을 느꼈는데, 이번에 "여성영화제"라는 명칭을 접하면서는 오히려 제가 여성감독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

 

홍상현

슬슬 <히라이테>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이번 작품은 아쿠타가와상 수상작가로 한국에도 편이 많은 와타야 리사 씨의 동명 타이틀 원작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다만, 잘 아시다시피 영화화란 단지 문자를 영상으로 옮겨놓은 것이 아니에요. 게다가 감독은 데뷔 당시부터 개성적인 작풍과 재능으로 대단히 주목을 받아오신 영상작가이시기도 하지요. 이번 작품을 슈토 린 영화로 재창조하기 위해서 어떤 부분에 가장 힘을 기울이셨나요.

슈토 린

이번에는 처음으로 주인공과 거리를 두면서 각본을 쓰고 연출하는 게 제 목표였습니다. 원작 소설은 주인공 아이의 1인칭에 휩쓸리듯이 읽히는데, 그녀가 워낙 자기중심적이고 익센트릭(eccentric)한 인물이어서 카메라가 어느 정도 객관적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몰입을 강요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게요. 이런 시도를 해보면서 정말 애초의 생각대로 인물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영상의 매력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아울러 '영상화'한다는 의미에서 '몸'을 보여주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마음을 여는 아이'와 '몸을 여는 미유키'가 문득 이어지는 순간이 영화에 나타나듯, 신체의 본연의 자세에 대해 시나리오 집필 단계부터 여러 가지를 의식했어요.

이런 말씀을 드리다 보니 "살갗과 살갗이 합쳐지는 곳에 영혼이 있다"는 철학자 미셸 세르의 말을 발견하고 눈이 번쩍 뜨였던 기억이 새롭네요. 책은 너무 어려워서 끝까지 읽을 수는 없었지만요. (웃음)

 

「히라이테」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하이틴 로맨스의 전형들을 가뿐히 무시”하며, “삼각관계라는 익숙한 소재를 동반하지만 이성애 중심의 서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히라이테」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하이틴 로맨스의 전형들을 가뿐히 무시"하며, "삼각관계라는 익숙한 소재를 동반하지만 이성애 중심의 서사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홍상현

제게 특히 <히라이테>가 재미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부분에서 고교생이 등장하는 이른바 '하이틴 로맨스'의 전형성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슈토 린

그건 아마 원작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겁니다. 제가 십 대 때 원작 소설을 읽으면서 이 기묘한 삼각관계에 깊은 감동을 받았거든요. 개인적인 관계성이 보편적인 울림을 낳는 이야기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요.

 

홍상현

동장인물의 애정표현이 상당히 과감한데, 그것이 상업적인 목적보다는 의미의 전달과 미학적인 완성도에 기여하고 있어서 좋았습니다.

슈토 린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 부분과 관련해서라도 '몸'을 보여주는 표현을 강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히라이테」의 제작에 들어가면서 슈토 감독이 정한 목표는 주인공과 거리를 두면서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히라이테」의 제작에 들어가면서 슈토 감독이 정한 목표는 주인공과 거리를 두면서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홍상현

대단히 매력적이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연애영화의 주인공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는 않은 까닭에, 주로 여성의 자의식을 이야기하는 독특한 청춘영화에서 활약하고 계신 야마다 안나 배우도 <히라이테>를 통해 배우로서의 정점에 올라선 느낌인데요. 처음부터 캐스팅을 염두에 두고 계셨던 건가요?

슈토 린

자신을 몇 살로라도 보이게 만드는 캐리 멀리건의 눈동자를 좋아하는데요. 야마다 안나 배우도 눈동자가 매우 인상적인 연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고쳐나가는 동안 출연을 타진했죠. 극 중에서 주인공이 '눈동자가 어둡다'는 말을 듣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모습을 어떻게 표현해줄지 기대가 됐어요.

 

홍상현

기무라 아이라는 인물의 표현을 위해 감독으로서 어떤 것을 요구하셨는지요.

슈토 린

아이 자신, 스스로에 대해 알 수 없어 혼란 빠져있는 인물이니 '이해하지 못하는' 정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기해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홍상현

전형적인 청순가련형의 이미지로 등장하지만, 결국 그런 선입견을 깨버리는 미유키를 연기한 이모우 하루카 씨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미유키에 대한 연출의 포인트는 뭐였나요.

슈토 린

원작을 읽었을 때부터 미유키라는 인물을 동경해 왔습니다. 신성화(consecration)해 버렸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이모우 배우가 이걸 깨 주셨어요. 대사와 언행, 소품 하나하나를 이모우 배우와 확인하면서 '아, 유키도 성모 마리아가 아니라 평범한 어린 여성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그녀의 교활함과 나약함, 광기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벚꽃처럼 흩날리는 종이학의 나무로 대표되는 「히라이테」의 미장센. 문자 그래도 ‘강렬’하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벚꽃처럼 흩날리는 종이학의 나무로 대표되는 「히라이테」의 미장센. 문자 그래도 '강렬'하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홍상현

벚꽃처럼 흩날리는 종이학의 나무가 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의 미장센이 말 그대로 궁극의 아름다움을 보여줍니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어떤 비주얼 플랜 세워서 실행하셨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슈토 린

막상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저 자신 '쓰긴 썼는데 어떻게 찍지?'라고 걱정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미술팀에서 마법처럼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독립영화 시절에는 다 제가 중심이 돼서 준비해야 했거든요. (웃음)

 

홍상현

음악을 담당하신 이와시로 타로 씨는 국제적인 거장이신데요. 더욱 감탄하게 되는 것은 그런 이와시로 타로 씨의 음악이 그 자체의 매력보다 전혀 새로운 슈토 린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한 소요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슈토 린

사실 처음 받아본 음악들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서 반 이상을 다시 만들어 주셨어요. 음악에 관한 지식도, 재능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제 의도를 하나하나 헤아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해주시기까지 했죠. 영화에는 정답이라는 게 없지만 영상에 당신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순간 비로소 이야기가 제 손을 떠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더없이 기뻤고, 지금 이 순간까지도 진심으로 감사드릴 뿐입니다.

 

주인공 아이는 천방지축 제멋대로에, 자기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지만 비호감은커녕 궁극의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 깜찍한 팜므 파탈. 더러는 한없이 여린 구석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주인공 아이는 천방지축 제멋대로에, 자기밖에 모르는 욕심쟁이지만 비호감은커녕 궁극의 카타르시스를 자아내는 깜찍한 팜므 파탈. 더러는 한없이 여린 구석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홍상현

촬영을 하면서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은데, 혹시 하나 소개해주실 수 없을까요.

슈토 린

아이가 다토에에게 속옷 차림으로 다가가는 장면을 촬영하기 직전에 야마다 안나 배우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기에 기억 속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어요.

 

홍상현

감독의 입장에서 가장 애착이 가시는 장면은 무엇인가요.

슈토 린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웃음)

질문하신 취지와 살짝 거리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크랭크업 하루 전에 촬영한 장면입니다. 영화의 종반부에 아이가 엄마랑 대화하는 신이었는데요. 두 사람을 현장에서 지켜보는 저로서는 '아, 그에게도 집이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왠지 안심이 되면서 울컥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히라이테」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역동적 전개와 상상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는 상업영화로서의 매력요소 또한 겸비한 작품이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히라이테」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역동적 전개와 상상의 허를 찌르는 반전이라는 상업영화로서의 매력요소 또한 겸비한 작품이다. (C)2021 Unlock Your Heart Film Partners

"<히라이테>는 격렬한 여자아이의 이야기가 하나의 예감을 얻는다는 내용의 작품입니다.

작품이 공개되면서 관객 분들에게 '사랑을 동경한다'는 말씀을 많이 듣고 충격을 받았었어요. 실제로는 사랑에 계속 저 자신을 덧씌우는 까닭에 스스로에 대해 '이런 성가신 인간이라니! 정말 최악이야!'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거든요. 그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아무쪼록 이 영화를 버터야 할 것이 많은 나날을 보내고 계신 분들께 추천해 드리고 싶다는 겁니다.

영화제에 오셔서 날카로운 질문이나 따듯한 말씀을 건네주셨던 여러분의 열정을 앞으로도 오래오래 기억하면서, 오직 단 한 사람뿐인 당신을 위한 영화를 만들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주인공 아이를 닮은 강렬한 분위기를 풍겨내던 청년감독과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차기작 계획에 대해 물으니 "누구도 본 적이 없는 작품 속에서 오직 그 안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는 관계성을 조명하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왜 아니겠는가. '누구도 본 적이 없는' 독특함이 기본 전제가 되리란 건 익히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으니 '오직 그 안에서밖에 찾아볼 수 없는 관계성'에 기대의 비중을 좀 더 두고 기다리면 틀림없겠지. 내년이 될까? 아니면 내후년? 생물학적 연령이 느는 것은 반갑지 않으나 시간이 조금은 빨리 흘러가 주었으면 좋겠다.

[인터뷰 홍상현, krpopper@ccoart.com]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ㆍ일 양국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 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 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주최 디지콘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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