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베이커 #5] 리얼리즘, 주변부의 테이크(Take)
[션베이커 #5] 리얼리즘, 주변부의 테이크(Take)
  • 이현동
  • 승인 2022.10.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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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 베이커'의 영민한 위장술

※ 글을 시작하기 앞서, 참고로 이번 션 베이커 감독론을 작성하면서 그의 초기작인 <포 레터 워즈>(2000)와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2008)는 감상하지 못했다. 어떠한 스트리밍 사이트도 발견할 수 없어 션 베이커에게 직접 문의해 본 결과 2023년도 중반쯤이 되어야 공유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러므로 두 영화를 다룰 때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국내 관객 수 9.6만 명이라는 기염을 토해낸 독립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를 제외하고는, 많은 이들은 아마 션 베이커의 이름과 작품을 들어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을 것이다. 작가주의 영화 혹은 독립예술 영화라는 꼬리표를 달고 이 정도 관객 수를 동원한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인 것은 분명하다. 전작 <탠저린>(2015)에 이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므로 션 베이커라는 이름은 단순히 성적만으로 규정할 수 없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또 한 명의 기호로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영화를 유통하는 배급사의 입장에서 흥행 성적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업 시스템은 감독에게 절대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령 왓챠, 웨이브, 네이버 등에서 서비스되는 <스타렛>(2014) 이전 세 편의 영화가 현재 어떤 스트리밍 서비스로도 볼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검색엔진의 경우, 네이버에서는 <테이크 아웃>(2004)이, 다음에선 <포 레터 워즈>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안타깝게도 독립영화에 대한 인식 혹은 적나라하게 말해 션 베이커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2008) 촬영현장 스틸컷 ⓒ Imdb

뉴욕대 티쉬 스쿨 출신인 '션 베이커'는 졸업 후 바로 저예산 영화인 <포 레터 워즈>로 영화계에 입성했다. 우디 앨런, 마틴 스콜세지, 스파이크 리 등을 동문으로 한 학교의 명성과는 무관하게, 그는 학교의 지원이나 동문 조력을 받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제작하길 원했다. 늘 제작비를 온전히 충당할 수 없어 궁핍하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촬영을 진행해야만 했다. 하지만 카메라만은 그를 외면하지 않았다.(션 베이커의 이러한 경향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났던 작품은 아이폰5S로 촬영한 <탠저린>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마치 자신의 처지를 투영한 것 마냥 물성에 휘둘리는 인물의 심리를 재현해냈다. 첫 작품인 <포 레터 워즈>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동창 남자 그룹의 하룻밤 사이에 벌어지는 대화라는 점이 예외이긴 하지만, 모든 캐릭터들의 행위가 설령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다큐멘터리적 관찰을 경유한다는 일관된 기조는 그가 추구하는 리얼리즘에 근접해있다. 그 기조의 대상은 일상이며, 그 일상을 통해 추출하는 하위문화를 관조하며 미국 사회에 관한 해체를 우회적으로 감행한다.

그렇다면 해체의 기반이 무엇인지를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션 베이커의 영화 프로세스는 삶의 아이덴티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자 하는 의지로 충만하다. 첫 영화인 <포 레터 워즈>는 영화를 규정할 수 있는 두 가지의 전제인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해체하려는 면모를 보인다. 션 베이커와 친구들의 몇 가지 대화 주제를 녹음하여 영감을 받은 첫 작품에서 가장 주요한 관심사는 정치, 경제, 문화와 같은 외부적이며 고상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많은 여자와 '섹스'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본능적인 논의다. 션 베이커는 이 영화를 '페스티벌'이라 규정하기도 했는데, 이는 2000년도 세기말 당시에 동갑내기인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2000) 황금곰상 수상과 비교된다.(1) 기존 할리우드 영화의 레퍼런스를 저항하려는 리얼리즘의 광란적인 시도인 <포 레터 워즈>는 션 베이커의 야망이 급진적으로 드러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그의 영화는 미국 사회에서 주류로써 논의되지 않는 주변부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려는 관음적인 시도로 응집되어 있다.(2) 히치콕의 <이창>(1957)이 인간의 윤리 의식을 관음적 시선에서 도출해냈다면, 션 베이커는 일말의 도덕과 교훈을 전달하는 것에는 별 흥미가 없다. 어떠한 성찰도 없어 보이는 그의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담아내는 것을 통해 관객들에게 의뭉스러운 메시지를 전언한다. 에릭 로메르는 영화가 자연의 예술이라며, 그림에 그려진 것보다 현실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고 했지만, 션 베이커는 자연이 아닌 도시 주변부의 풍경이 캐릭터와 어떤 역학관계를 이루는지를 추적함으로 독창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한다. 특히, 그 의도를 살려낸 작품 <테이크 아웃>은 다큐멘터리 적 심상으로 인물의 삶의 기록을 전투적으로 담아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소규모 배급사에도 외면당한 이 영화는 극장에 개봉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와 2009년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Independent Spirit Awards)에서 저예산 섹션($500,000 미만의 예산으로 제작되는)인 존 카사베츠 어워즈(John Cassavetes Award)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고, 여러 비평가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어떠한 것보다 <포 레터 워즈>에 이어 현재까지도 션 베이커 영화에 많은 도움을 주는 Shih-Ching-Tsou의 존재는 션 베이커 영화의 정체성을 스케치할 때 언표되는 배경 이미지로 활약한다. <탠저린>에서도 그렇지만 그녀는 가장 최근 션 베이커의 작품인 <레드로켓>에도 배우로 등장하며 동양 이민자의 이미지로 미국 주변부를 배회한다. 션 베이커와 Shih-Ching-Tsou가 공동 감독한 유일한 영화인 <테이크 아웃>은 미국에 거주하는 동양인을 대상으로 한다는 지점에서 션 베이커의 주제 의식을 탐구하는데 있어 적절한 리소스가 된다.

 

ⓒ 영화 <테이크 아웃> 촬영현장 스틸컷
ⓒ 영화 <테이크 아웃> 촬영현장 스틸컷

개인적으로 <테이크 아웃>은 필자가 생각하는 션 베이커의 최고작이며 동시에 긍정적인 의미에서 문제작으로 보인다. 그 이유인 즉 슨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서사와 배경, 인물 관계 '진짜'인지 '가짜'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리얼리즘의 세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특정 서사와 영상미에 의존하고 있는 할리우드의 영화 규범에 종속되지 않을뿐더러 다큐멘터리에는 결여된 '상업성' 또한 추구하지 않는다. <테이크 아웃>이 3,000달러라는 저렴한 제작비로 촬영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그들이 감수해야 할 많은 한계를 함의한다. 이렇게 순탄치 않은 상황에서도 영화는 단단하게 미국 사회를 주행하는 동양인을 그려낸다. 중국에서 온 이민자 밍(찰스장)은 맨하튼 어퍼 웨스트사이드에 있는 자그마한 중국식 테이크 아웃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배달원이다. 사채업자에게 밤까지 800달러를 지급해야 하는 밍은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리고 온종일 배달을 하며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다.

2003년 6월은 뉴욕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던 시기였는데, 이 영화는 그 당시 인물의 서사와 이미지를 조합하며 그 비루한 상황을 극대화했다. 그가 초라하게 눌러쓴 우비와 비를 맞으며 혼잡한 교통 현장을 금방이라도 고장이 날 것 같은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고 많은 손님과 마주하며 그는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돈을 주고받는다. 마치 '체험 삶의 현장'을 중계하는 듯한 <테이크 아웃>의 반복적인 이미지는 이민자 국가라 불리는 미국 사회의 현주소를 덤덤하게 드러낸다. 비자 등의 서류가 미비 된 중국 이민자들과 노예 계약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많은 빚을 껴안게 되는 현실을 다룬 <테이크 아웃>은 배우 캐스팅과 촬영 방식에서 앞으로 다시는 없을 '허구적'인 다큐멘터리를 훌륭하게 조합해냈다.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를 찍고 후, 인터뷰에서 션 베이커는 <테이크 아웃>이라는 여러 측면에서 영화를 다시 만들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3) 트랜스 젠더를 다룬 <탠저린>의 기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현장 조사가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도 아마 <테이크 아웃>의 영향이 아닐까.

 

션 베이커의 지리학

션 베이커의 영화에서 그의 의도를 초상 하는, 가장 강력한 리얼리즘을 표출하는 방식은 지리학으로부터 가동된다. 이 지리학의 배경에는 미국이라는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 뒤편에 자리한 허위 의식과도 결부되어 있다. 이 간극을 가시화하는 작업으로부터 기인하는 션 베이커의 태도는 이전에 언급했듯이 우회적인 방식을 취한다. 그의 영화의 좌표는 특정한 목적, 비판과 갱신과도 같은 사회과학적 논의를 직접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있지 않다. 더 나아가 서사라는 지도를 표기하기 위해 고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그린 지도 위에 직접 가서 탐험하기를 요청한다. 그는 캐릭터가 처한 공간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개념적으로 설정하지 않으려 한다. 물론, <플로리다 프로젝트>나 <레드로켓>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미국적인 존재로 치부되는 디즈니 월드, 미국의 현존을 디제시스적으로 공전하는 트럼프의 연설 등은 초기 션 베이커의 영화에 비해 뚜렷한 지형을 포괄하는 형태이긴 하다.(4) 상술했듯이 그의 지리학의 맹점은 결국 미국의 문제를 상정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하위문화가 겪는 현상을 보편적으로 배열하는 데 의미가 있다.

그것은 결국 션 베이커 자신이 체험한 주변부로부터 이뤄진다. 미국의 주변부에서 희미하게 식별되는 사회 격차는 결국 하위문화가 어떤 것을 내밀화하고 있는지를 개인의 관점으로 추적한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불균형한 지형은 캐릭터의 상황으로 진입한다.

ⓒ 영화 <스타렛> 스틸컷
ⓒ 영화 <텐저린> 스틸컷
ⓒ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 스틸컷

뉴욕 주 남동부에 위치한 맨하튼에 중국인의 삶 <테이크 아웃>, 마찬가지로 뉴욕에 거주하는 서아프리카 불법 체류자의 이야기 <프린스 오브 웨이>, 캘리포니아 샌 페르난도 벨리에서 포르노 배우가 된 20대 여성의 이야기 <스타렛>, 플로리다의 한 모텔에 사는 노숙자와 아이들 <플로리다 프로젝트>, 영화를 만드는 꿈을 갖고 고향 텍사스로 돌아온 포르노 배우 <레드 로켓>, 이 모든 이야기가 포괄하고 있는 배경 이미지는 모두 주류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주변인들이다. 또한 캐릭터가 거주하는 내부 장소 대부분은 4,5평 남짓 되는 비좁은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공간은 제작비 문제로 발생하는 불가항력적 요인이든 그 반대급부에서 연출로 진행된 것이든 간에 지리적 특성으로부터 인물들은 결코 해방될 기색조차 없이 고정되어 있다. 감독은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미국의 희망이 되는 자본을 쥐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불변하지 않는 미국이란 거점을 활공하는 카메라는 어떠한 형태로든 하부구조를 이탈하지 않는다. 션 베이커는 현실을 무자비하게 관음하면서도 종국에는 상투적일지언정 그 주변부에 있는 이들로 회복을 경험한다.

<테이크다운>에서 밍이 잘못된 주문을 받고 돌아와 식당의 요리사인 웨이(저스틴 완)와 다투기도 하지만 결말 부분에서 그가 밍이 충당해야 할 돈을 빌려준다거나 <스타렛>에서 주인공인 제인(드리 헤밍웨이)이 죽음을 생각하는 노인 세이디(베세드카 존슨)의 곁에 머무는 액션을 취하게 한 것은 그의 궁극적 관심은 '공동체'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점을 확고하게 한다(이러한 일관적인 면모를 모든 영화에서 관찰할 수 있다). 그들이 낙망하지 않고 긍정적인 모양을 취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지리학의 기반이 미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민과 희망이라는 인륜성에 초점이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그의 지리학에서 끈끈하게 상호 간의 관계를 형상하는 것은 지도의 좌표가 아니라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나침반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이 나침반은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는 켄 로치의 영화가 리얼리즘이라는 온당한 당위를 격상시키기 위해 선택한, 즉 신이 인간에게 심어놓은 따스한 온기 같은 것일 테다.

션 베이커의 영화에 등장하는 구조물 중에 흥미롭게도 도넛은 일상적인 주변 지형을 감응하는 지대로 배치된다. <탠저린>의 도넛 타임이라는 편의점, <레드로켓>의 도넛 가게, 두 장소에서 Shih-Ching-Tsou는 공통으로 이 가게를 운영하는 매니저로 일한다. 이것이 공통으로 상징하는 연속적 감응이란 형태적인 것도 있지만 관념이란 정신을 사유하기에도 적합한 도구로 해석되는 것이기도 하다. 도넛의 이미지는 일상적으로 접하기가 쉬운 음식이지만 그 모양새를 보면 가운데가 비어있는 도넛은 미국의 허영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주변부 이미지다. <탠저린>에서 이곳은 불륜과 젠더 갈등이 일어나는 장소이고 <레드로켓>에선 마이키(사이먼 렉스)가 포르노 배우라는 사실이 발각되는 장소이다. 그 이미지가 주는 소탈한 형상은 미국의 이미지를 치환하는 암묵적인 언표로 진술되는 셈이다.

 

ⓒ A24

션 베이커의 최근 영화가 허위 의식을 바탕으로 과시할 수 없는 것을 과시해야 하는 처지에 처한 이들의 웃픈 유머가 등장한다는 지점에서 느낀 건 작품성과는 별개로 아쉬움이었다. 대표적으로 <레드로켓>이 그러하다. 직설적으로 말해 이러한 유머 코드가 지나치게 미국적이라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는 <탠저린>을 시작으로 초기 영화에서 관측되지 않았던 탐미적 요소를 삽입하며 얻은 성과물이긴 하지만 거칠고 투박하지만 가장 션 베이커다웠던 리얼리즘의 색채를 반감하는 양면적인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배우 출신이 아니거나 신인 배우를 섭외하는 과정은 션 베이커 영화를 수용할 때 표상되는 그의 스타일이기도 했는데, <레드로켓>에서는 비교적 잘 알려진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지점에서도 양면적이며 한편으로는 의문스럽기까지 하다.(여기서 사이먼 렉스는 19세 무렵 누드 모델과 포르노배우로 활동한 바 있다. 분명 션 베이커가 염두에 두었던 캐스팅 조건이긴 하겠지만, 이 영화가 결국 미국을 명시화했다는 점에 대해선 부정하기 어렵다)(3)

끝으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던 일본과 가족이란 주제와 배경이 언제 어디서든 정서적으로 격동하는 '보편'이란 지대를 형성했듯이, 션 베이커의 영화 또한 지금까지 미국과 하위문화를 떠난 적이 없다. 만약 그가 미국을 떠나 또 다른 형태의 항해를 떠나기로 한다면, 그때 '션 베이커를 어떤 감독으로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정의하고 사유하려는 영화는 시대와 배경과는 무관한 모종의 동질성을 지닌 것일지도.

 

※ 참고

(1)

<포 레터 워즈>는 당시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신기하리만큼 동갑내기인 70년대생 동갑 감독인 크리스토퍼 놀란, 아피차퐁 위라세타꾼, 폴 토마스 앤더슨, 지아 장커의 작품들은 평단의 주목을 받으며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 긍정적인 출발을 알리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영화가 나왔을 당시 세기말을 맞이하고 있었던 1999~2000년은 유행과 같이 번졌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멸망설로 인해 무엇으로도 정의될 수 없는 불균질한 세계 그 자체였다. 우연의 일치인진 모르겠지만 이러한 카오스적 정황에서 2000년도에 개최되었던 제50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우울함이 득실거리는 서사를 담아냈던 <매그놀리아>(2000)가 황금곰상을 받기도 했다.

동시대적으로 보면 션 베이커가 영향을 받았던 수많은 감독이 있지만 흥미롭게도 다르덴 형제의 등장은 션 베이커의 첫 영화의 제작 시기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변곡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1999년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다르덴 형제의 작품 <로제타>(1999)가 리얼리즘이라는 장르의 권위를 복권한 것이 일련의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실제로 션 베이커는 2015년 크리테리온 채널 Top 10에서 <로제타>를 9위를 꼽기도 했다.

(2)

2008년도에 진행되었던 인디와이어의 인터뷰에서 션 베이커는 자신을 회고하기를 6살 때 제임스 웨일의 <프랑켄 슈타인>(1931)을 보고 영화 제작의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그의 관심은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주류 상업 영화에 있었고, 다이 하드의 속편을 찍을 목적으로 뉴욕 대학교 영화과에 입학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던 중 2학년 때 보게 된 에릭 로메르의 <클레르의 무릎>(1970)을 통해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서 유럽 영화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면서 션 베이커는 존 카사베츠, 켄 로치, 마이크 리, 도그마 95운동, 다르덴 형제 등의 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자기만의 스타일로 리얼리즘을 증명하는 이들 중에 션 베이커의 특징은 무엇보다 영화라는 매체가 진실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3)

앞서 이지영 기자가 쓴 <레드로켓>(2021)에 관한 에서 '트럼프식 미국 중심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오브제는, 마약의 겉 포장지로 전락한 미국 국기'라고 표명한 것은 션 베이커를 유효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라 생각한다. 더 직접적으로 말해 <플로리다 프로젝트>에 이어 <레드로켓>은 그의 영화에서 매설되어 있었던 미국이란 코드가 무엇보다 전면에서 등장한 최초의 영화가 아닐까 한다. 이러한 점 때문에 누군가는 그가 갖고 있었던 노련하고 영민한 독립영화의 특성이 기존에 비해 반감되었다는 의식을 할법하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이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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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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