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황무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없는 외침
[Interview] 황무지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없는 외침
  • 이지영
  • 승인 2022.10.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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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모니카>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것은 사방이 소통할 수 없는 황무지에 유배 가는 것과 같다. 그곳에서는 언어가 사라지고,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짐승과도 같은 울음소리와 표정, 본능적이고 감각적인 충동들만이 존재한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틈이 벌어진 관계는 일상적인 말일지라도 대화를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움을 동반한다. 소통의 단절에 빠진 가족과 연인들의 말은 상대에게 가 닿지 못한 채 혼자만의 독백이 되거나, 혹은 각자 모두가 자발적인 실어증을 앓는다.

 

관계 회복을 염원하는 인물들의 대안 언어를 담아내는 방식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세 번째 장편<모니카>로 다시 한국 관객들을 만난 안드레아 팔라오로(Andrea Pallaoro) 감독은 관계의 단절 속에서 고독을 앓고 있는 인물들이 취할 수밖에 없는 비언어, 혹은 대안 언어들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들의 소리 없는 절규와 회복에의 염원을 자신만의 영화 언어로 표현한다. 트렌스젠더 배우 트레이스 리셋(Trace Lysette) 주연의 <모니카>는 죽음을 앞두고 기억조차 잃어가고 있는 어머니(패트리샤 클락슨)를 돌보기 위해 수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주인공 '모니카'에 대한 이야기다.

<모니카>는 1.2:1의 좁은 화면비 안에 담기지 않는 풍경이나 서사에 대한 관객들의 상상력과 참여를 자극한다. 모니카가 집에 돌아온 직후에 관객은 프레임 바깥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정보를 거의 받지 못한다. 그리고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즉 과거 전사에 대해서도 아주 불완전한 힌트만 받을 뿐이다. 즉 이 영화는 모니카가 소통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고립된 '지금'의 상태와 그녀의 육체적인 감각만이 모든 지각을 압도하는 '이곳'에 붙박여 있다.

<한나>(2017)에서 샬럿 램플링이 아름다운 연기를 선사한 '한나'는(오프닝에서 그녀가 연기한 실핏줄이 다 드러난 얼굴과 동물적인 소리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상처를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군중 속으로 도망친다. 반면 <모니카>에서는 군중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입지를 되찾은 모니카가, 노래를 부르는 조카 브로디를 바라본다. 마치 이것은 시야를 넓혀서 은유적으로 세상을 향한 프레임을 확장하는 것과도 같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을 만나,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여 감독이 구축하고자 하는 영화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안드레아 팔라오로 감독
안드레아 팔라오로(Andrea PALLAORO) 감독은 1982년 이탈리아 트렌토 출생으로 캘리포니아예술대학에서 영화연출로 석사 학위를, 햄프셔대학에서 문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첫 장편 연출작 <메데아스>(2013)는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두 번째 장편 <한나>(2017)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어 여우주연상인 볼피컵을 수상했으며 세자르영화제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르는 등 유수 영화제에 초청 및 수상했다. <모니카>는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이다. ⓒ 부산국제영화제

이지영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했다. <모니카>(2022)를 통해 관객들과 만난 소감은 어땠나.

안드레아 팔라오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오게 되어서 정말 행복하다. 4년 전에는 <한나>라는 작품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왔는데, 그때도 멋진 경험을 하고 돌아갔다. 특히, 당시에 한국 관객들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 한국 관객들은 모두가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로 영화를 보러 왔고, 질문들도 모두 수준이 높아서 인상 깊었는데, 이번 <모니카> 첫 상영 때도 부산의 관객들로부터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이들은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을 하고, 집중해서 보는 것 같았다. 관객들과 교감하고 내 영화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감독으로서 무척 기쁜 일이다.

이지영

당신의 최근 두 영화는 모두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나>의 샬럿 램플링(Charlotte Rampling), <모니카>의 트레이스 리셋과 패트리샤 클락슨(Patricia Clarkson)은 모두 스크린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언어와 문화권, 젠더 등 개성이 서로 다른 여성 배우들과 작업한 그간의 경험은 어떠했나.

안드레아 팔라오로

영화를 찍을 때 늘 흥미롭게 생각하는 것은 (배우들과 함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영화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세 명의 배우 모두 훌륭한 예술가들이고, 같이 일하게 되어 진심으로 영광이었다. 이들 모두가 강력한 존재감이 있어서 같이 일하면서 많은 영감을 받으며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물론, 서로 다른 색깔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각각의 배우들과 일할 때는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세 명 모두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샬럿 램플링 같은 경우, 14살 때 큰 스크린으로 본 루키노 비스콘티의 <저주 받은 자들 The Damned>(1969)에 등장하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다. 언젠가 저 사람과 일하고 싶다는 꿈을 그때부터 갖게 되었다. <한나>에서 그녀와 같이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나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깊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나에게 개인적으로도 무척 뜻깊은 일이다.

<모니카>의 주연을 맡은 트레이스 리셋에 대해서는 사실 모니카의 역할을 할 배우를 찾는 데만 1년 정도가 걸렸다. 그래서 30명 정도의 오디션을 봐도 적합한 배우를 찾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트레이스를 보는 이야기를 나누자마자 이 사람이 모니카라는 존재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모니카를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배우는 아주 드문데, 트레이스는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모니카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상태를 완벽하게 표현해 주었다.

그리고 패트리샤 클락슨은 8년 전에 모로코에 있는 마라케쉬 영화제에 내 작품이 초대받은 적 있다. 그때 패트리샤가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과 함께 나에게 감독상을 준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했는데, 이번 기회로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패트리샤 클락슨은 그 긴 커리어 동안 엄청난 연기를 보여준 여배우이기 때문에, 그녀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었다. 이 모든 것이 굉장히 기쁘면서도 마법과도 같은 일이다. 이런 배우들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가 영화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부산국제영화제

이지영

위에서 언급한 루키노 비스콘티 외에도, 관객으로서 좋아하거나 감독으로서 지향점이 되는 감독이 있나.

안드레아 팔라오로

정말 많은 감독들이 떠올라서 끝도 없이 리스트를 작성 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가장 먼저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Michelangelo Antonioni)에게서 가장 많은 영감을 받았고, 그가 나를 이끌어주는 지향점이 되는 감독이다. 동시대 작가들 중에서는 루크레시아 마리텔(Lucrecia Martel), 대만의 챠이밍 량(蔡明亮, Chai Ming Liang), 그리고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Rainer Werner Fassbinder)도 정말 좋아하는 작가들이고, 내 필모그래피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자신만의 영화 문법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방법을 제시하는 감독들이다. 그리고 이들이 보여주는 세상을 통해서, 전에는 몰랐던 무언가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그런 감독들의 영화를 좋아하고, 내 영화를 통해서도 그런 작업을 하고 싶다.

이지영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에게는 주제나 미학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영감을 받았나?

안드레아 팔라오로

안토니오니 영화에서는 인물과 풍경과의 관계, 그리고 풍경이 다시 관객과 갖는 관계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 또 그의 영화에서 인물들의 심리를 파고드는 방식이 정말 놀라웠고, 영화를 볼 때마다 매번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것을 느꼈다. 이것은 영화 작품이 줄 수 있는 놀랍고도 드문 경험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과 총체적인 작품 세계는 볼 때마다 새롭게 정립되는 느낌이라, 그런 점에 끌린다.

그리고 또 한 측면으로는 관객과 맺는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관객에게 어떤 것을 느끼고 생각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주면서 그들이 독립적으로 인물이나 이야기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해주는 작품들이 좋다. 즉,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주는 작품이랄까. 이를 통해 관객들이 자신을 투영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에 많이 끌리는 편이다. 이는 내가 감독으로서 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 부산국제영화제

이지영

<한나>와 <모니카> 두 영화 모두, 오랫동안 단절되었다가 억지로 접합된 가족 관계가 나온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뿌리 내린 갈등과 간극은 내러티브로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관객들은 이들 사이에 감도는 어색한 공기를 느끼고, 몇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과거의 일을 추적해야 한다.

안드레아 팔라오로

좋은 지적이다. 방금 언급한 <한나>와 <모니카>뿐만 아니라, 첫 장편인 <메데아스>(2013)까지 지금까지 세 작품을 만들었는데, 그 첫 작품에서도 공통으로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 가족과 연인 사이의 관계 등 이런 '관계'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축이었다. 그리고 내 영화 속 인물들이 직면한 핵심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가족이나 사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관객에게 어떤 정보를 보여주고 보여주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은, 어떤 섬세한 경계가 있고, 그에 따라 결정한다. 어떤 정보는 관객에게 일부러 보여주지 않아서 좀 더 적극적으로 상상하여 참여를 할 수 있게 유도하는 측면도 분명히 있었다.

이지영

배우들과도 캐릭터의 전사를 공유했는가, 아니면 이것도 각 배우들의 상상과 느낌에 맡겼는지.

안드레아 팔라오로

인물들의 전사는 최대한 디테일하게 쓴다. 그리고 배우들과 치열하게 사전 준비를 하며 이를 전부 다 공유한다. 그래서 캐릭터가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그 배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를 배우들이 전부 다 알도록 한다. 또 한 가지는 시나리오를 쓸 때, 영화에 들어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쓰는 장면들이 있다. 영화에는 들어가지 않고 촬영도 하도 않겠지만, 배우들이 이야기와 캐릭터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장면까지도 작업을 한다.

이지영

육체적인 상호작용을 포착하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인물들의 몸을 다양한 앵글로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캐릭터에 대한 미스터리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이들의 스킨십이 함축된 의미들을 전달해주는 것 같았다. 특히 모니카와 엄마 사이의 포옹과 마사지, 그리고 한나가 니콜라에 이야기를 들려주며 머리 쓰다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안드레아 팔라오로

내 생각에 감각, 더 정확하게는 '감각적 충동'은 영화 언어에서 상당히 큰 중요성을 갖고 있다. 언어가 소통의 단절이나 분열을 표현하는 데 더 많이 쓰인다면, 인물의 정신과 감정상태를 이해하고 관찰하는 데는 몸의 언어를 보는 것이 더 효율적일 때도 있다. 그래서 인물의 움직임이나, 육체적인 존재감이 한 공간 안에서 어떻게 보여지고 다른 사람과는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가 때로 진실을 훨씬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 부산국제영화제

이지영

<한나>의 도입부에서는 한나(샬럿 램플링)의 얼굴 핏줄이 다 드러나는 강렬한 표정과 함께, 내면으로부터 분출되는 동물적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당신의 영화를 통틀어 사운드를 가장 압도하는 씬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것은 한나의 직접적인 감정 표출이 아니며, 그녀는 내면에 억눌린 분노와 고통을 연기 수업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분출하고 있다. 이 장면을 첫 씬으로 선택한 이유와 감정 표현에서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는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안드레아 팔라오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 방식이라기보다는, 대화를 넘어서서 소통하고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언어로 하는 대화는 본인을 100%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반면 행동을 관찰하면, 그 사람의 정직하고 꾸밈없는 순간과 인물에 대한 진실을 포착할 수 있다. 이를 머리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이고 육체에 충실한 진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지영

모든 영화에서 음악을 굉장히 절제적으로, 거의 금욕적으로 쓰고 있다. 그 이유를 듣고 싶다.

안드레아 팔라오로

음악은 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일단 영화를 위해 음악 스코어를 쓰는 일은 거의 없다. 영화의 일부일 때만 유기적으로 음악이 쓰인다. 인물이 TV를 보거나 라디오를 듣고 있을 때, 혹은 주변에서 밴드가 연주하고 있을 때 영화 내부의 소리로 음악이 들어가는 편이다. 또한 이런 소리들은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 관객들에게 정보를 주는, 보충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지영

케이틀린 아리즈멘디(Katelin Arizmendi) 촬영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그녀의 필모에는 <듄>, <스왈로우>도 있는데, 어떤 촬영 스타일이나 철학에 끌렸는지.

안드레아 팔라오로

케이틀린의 필모그래피 중 특별한 작품을 보고서 협업을 제안한 것은 아니다. <모니카>의 촬영감독을 구하던 중에 처음으로 케이틀린을 만났는데, 2시간 동안 대화를 하면서 직관적으로 이 사람과 잘 통한다는 생각하게 되었다. 실제로 같이 일하면서도 생각이 잘 통했다. 이토록 헌신적이며 진지하고, 함께 일할 때 즐거운 조력자를 만난 것은 큰 행운이다.

우리 둘 다 비주얼을 추구하는 부분에 있어서 실험하고 도전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모니카>를 보면 남들이 잘 쓰지 않는 1.2:1의 화면비로 촬영되었다. 관객들이 이런 앵글이나 화면비 등의 영화적인 문법에 익숙하지 않아서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따라서 초반에는 굉장한 모험이었다. 이 화면비가 내 영화의 캐릭터를 관찰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색다르면서도 가장 적당한 시점을 가졌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고수했다. 특히, 내면적인 것과 외면적인 것의 연결을 강조할 때는 탁월했다. 풍경에 있어서도, 프레임 바깥에 있는 것들에 더 궁금증을 자아내고 집중시키는 효과를 기대했는데, 이를 잘 충족한 것 같다.

 

ⓒ 부산국제영화제

이지영

어떤 대상을 돌본다는 것은 당신의 영화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인 것 같다. <한나>는 직업적으로도 가사도우미로 일하는데, 감옥에 수감된 남편, 시각장애인 소년 니콜라, 강아지를 돌본다. <모니카>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돌본다. 하지만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데, 과거에 받은 상처들을 상기하거나 때로는 누군가의 부재를 떠올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나가 니콜라를 돌볼 때는 만날 수 없는 손자(샤를리)의 부재를 더 느끼게 될 것이고, 모니카가 딸로서 처음 엄마를 돌볼 땐 성전환 이전의 아픈 가족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나>에서는 강아지가 밥을 먹지 않고 돌보는 것이 힘들어지자, 다른 집으로 떠나보내는 장면도 있다. 이러한 인간적인 감정들을 깊이 탐구한 계기는 무엇인가.

안드레아 팔라오로

먼저 이런 질문을 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나도 처음 생각해본다. 굉장히 흥미로운 질문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 인생에서 그 사람에게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게 된다는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일방적인 아니라, 서로가 각자에게 필요한 부분을 제공하면서 서로 의존하게 된다. 이렇듯 두 사람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관찰하는 것은, 개개인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준다. 의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내 안의 어떤 본능적인 부분 때문에 영화 안에서 반복돼서 나타나는 것 같다.

이지영

<한나>에서는 연극 대사를 채 끝마치지 못한 한나가 지하철 안으로 도망치듯 끝난다. 반면 <모니카>에서는 모니카의 조카 '브로디'가 공연을 끝까지 해내며, 모니카가 이를 지켜보는 씬으로 마치는데. 전작보다는 모종의 희망과 회복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었던 것일까.

안드레아 팔라오로

좋은 질문이다. 두 영화 모두 '버려진다는 것'에 대해 다루고 있고, 단순한 버려짐이라는 행위뿐만 아니라 버려짐으로 인해 생겨나는 결과와 인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내게 있어서 '버린다는 것'은 타인을 알아봐 주지 못하고 나 자신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엔딩으로 돌아가 보면, <한나>에서는 결국 한나라는 인물이 버림받음에 맞서 일어서지 못한다. 상처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자기 정체성이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끝나는 인물이다. 하지만 모니카는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분연히 일어선다. 나에게는 현대의 영웅(Modern Day Heroine) 같은 여성이다. 그녀는 용서를 하고, 그 용서를 통해 치유 받는다.

마지막 장면에 브로디가 미국 국가를 부른 장면은, 당연히 국가가 상징하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함의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모니카가 브로디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 시선 속에서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이 읽혀지는 것이고, 과거와는 다른 그런 시간들이 있을 것임을 암시한다. 희망적인 엔딩으로 의도한 게 맞다.

이지영

공통분모가 많은 세 작품을 찍었다. 많은 감독들이 그러하듯이, 반대급부로 주제나 미학적으로도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나. 앞으로의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안드레아 팔라오로

아직은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개발 중이고 생각 중이다.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 결론을 내리지는 않은 상태이다. 방금 말한 대로, 지금까지 안 해본 이야기에 나 자신을 던져보고 싶은 그런 생각도 있다. 앞으로 한두 달 정도는 차기작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인터뷰 이지영, karenine@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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