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베이커 #4] '플로리다 프로젝트' 디즈니 모텔
[션 베이커 #4] '플로리다 프로젝트' 디즈니 모텔
  • 이현동
  • 승인 2022.10.2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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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을 찾지 못한 홈리스들의 뒷모습"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의 제목에는 양면적인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디즈니가 1965년 테마파크를 건설하기 위해 플로리다 올랜도 지역의 부동산 매입을 의미하고, 두 번째는 2008년 경기 침체 이후 주거 환경의 문제를 경험하는 홈리스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일컬을 때 사용되었던 단어이다. 결과적으로, 이 제목은 소외된 시선에 대한 감독의 개인적인 물음이면서, 매력적인 테마파크 주변을 횡행하는 소시민의 삶을 담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표명이다. 이를 통해 션 베이커의 관심이 여전히 사회의 사각지대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의 영화를 구성하는 기호로써 발화된다. 독거노인, 이민자, 트랜스젠더, 홈리스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부유하고 있는 리얼리즘에 대한 미묘하고도 부지런한 관찰은 실상 어떤 윤리적인 교훈이나 사회 문제를 호명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 미묘함이란 그가 영화사적으로 어떠한 방법론을 구사하는지를 비교할 때 발생하는 성질의 것이다.

 

ⓒ 오드

션 베이커의 영화는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몇몇 영화의 관습을 답습한다고도 보이는데, 그중에서도 비토리오 데 시카(Vittorio De Sica)의 영화를 떠올릴만하다. 소시민들의 일상을 주로 다루는 그의 영화는 탐미적인 양식으로 가동되었던 루치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등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데 시카 영화 표면에는 어떠한 비약도 없이 보편적으로 생동하는 민중들의 삶을 다루고자 하는 결의로 결속되어 있다. 그 결의의 정체는 이미지로만 간구되지 않는 삶의 연장성이다. 가난과 사투하는 민중들의 서사는 단순히 종결된 형태로 마감되지 않는다. 그의 대표작인 <자전거 도둑>(1948), <움베르토 D>(1952) 같은 작품의 결말이 긍정과 부정도 없는 중립성을 지닌 이미지들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마지막 장면에서 노동자들과 연금이 끊겨버린 한 노인의 뒷모습에는 일말의 희망도 비극도 없다. 그들의 걸음의 경로는 화면 밖에 있는 관객들을 향한 재귀로써 연장된다.

리얼리즘의 세계란 실제를 모방하는 것을 경유하여 실제를 관측하는 것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주체의 위치를 판별하게끔 요구되는 영화라는 지점에서 데 시카의 영화는 확연히 실제적이다. 션 베이커의 영화는 이러한 리얼리즘을 간접적으로나마 경유한 독창적인 미국 독립영화계 뉴웨이브의 하나의 축이기도 하다.

 

디즈니 월드의 주변부를 경유하며

션 베이커가 위에 언급한 네오리얼리즘에 영향을 받았다는 필자의 개인적인 감상, 서사, 혹은 이미지로 운용되는 핍진성과는 별개로,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돋보이는 해학성이란 어린아이가 가진 무드와 영화 전체를 통솔하는 색감이다. 영화에서 가장 먼저 획득할 수 있는 정보는 아이들의 미소와 라벤더의 색감의 모텔 벽면이다.

어떠한 삶의 굴곡도 가늠할 수 없는 생기로운 몸짓으로 프레임 안을 재기발랄하게 이동하는 아이들은 앞서 설명했던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이중적인 배경에서 의미를 부여하기 적합한 이미지이다.

ⓒ 오드
ⓒ 오드

아이들은 자유분방하게 모텔을 누비며 괴팍한 놀이를 벌인다. 성문화된 도덕법 없는 모텔, 원색계열의 또렷한 색감으로 축조된 건물은 그들이 공상을 펼치는 데 무리가 없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서두에 3명의 아이가 거주민의 차에 일제히 침을 뱉는 장면, 이후 그들을 훈계하는 여성에게 '쓰레기'라는 과감한 욕을 하는 아이들은 반성의 기미도 없이 도주한다. 이 사건의 주축이 된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의 엄마 헬리(브리아 비나이테)에게 항의하는 모텔 매니저인 바비(월렘 데포)와 여성의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의연하게 딸에게 휴지를 가져오라 주문한다. 헬리는 자신의 친화력을 동원하여 여성과 대화를 나누며 우정을 쌓는데, 이때 아이의 행위를 교정하려는 노력이나 일련의 사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합리화하는 태도에서 가족 공동체의 결속은 영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헬리와 무니의 불온한 처지는 그들의 삶을 기구하기 위한 불법적 행위로 이어진다. 가령 도매상에게 향수를 저렴하게 구입하여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행위, 파크 호퍼 티켓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무니는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동심의 세계인 디즈니 월드의 주변부는 결코 어떤 낙관적인 기대도 없이 감옥에 감금되듯 살아가는 이들로 가득하다. 그것은 홈리스인 무니의 가정뿐만이 아니다. 매니저인 바비는 모텔의 운영을 위해 단호하게 룰을 설명해야 하고 방세를 요구해야 하고 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더군다나 외부인이 보는 시선에서 모텔이 가진 디즈니 월드와 같은 착시는 더욱 무참하게 파괴된다. 어느 한 부부가 신혼여행 첫날밤을 보내기 전에 부부싸움을 한 이유는 플로리다 있는 '디즈니 매직 킹덤' 근처의 호텔이 아닌 허름한 호텔에 방문한 것은 호텔의 이름이 다름 아닌 매직 캐슬(Magic Castle)인 탓이다. 이는 영화에서 꾸준히 분리되고 있는 디즈니 월드 주변부에 대한 면밀한 관찰로 이 프로젝트가 어떠한 균열을 일으키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 오드
ⓒ 오드

디즈니 아울렛

이전작인 <탠저린>에 비해 영화의 앵글은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캐릭터들의 활동을 넓게 전망한다. 이것은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일련의 질서와 같이 매개되지만, 실제처럼 보이는 배경과 연기의 정합성을 위해 설계된 전략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를 위해 카메라를 덜 인식하도록 위치되었다는 점과 디즈니 월드가 가진 거대하고도 다채로운 환상성을 지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디즈니 월드를 간접적으로 프레이밍 하는데, 그것은 모텔과 근접해있는 여러 모양의 건물들과 사용처로써 유추할 수 있다. 몇 가지 예로 'WELCOME TO FLORIDA, Take Some Home'라는 벽화, '퓨처 랜드 모텔', 모텔 옆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아울렛 건물들, 디즈니 월드가 아닌 디즈니 기프트를 판매하는 아울렛의 주변부 이미지는 영화의 역설을 견지하기 위해 최적화된 발상들이다. 디즈니 월드의 부정교합은 자본의 논리를 상실한 이가 테마파크의 입구에도 가지 못하고 그 주위를 횡행한다는 것에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이 프로젝트가 온전히 성공했는지를 의뭉스럽게 묘사한다. 아이폰으로 촬영된 마지막 핸드헬드는 리얼리즘의 전위로 기능하는 동시에 션 베이커의 꿈과 희망을 실현하려는 태도와 자조적인 태도가 동시에 묻어 있다. 디즈니 월드로 달려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담은 카메라는 도착한 아이들의 표정과 감정을 포착할 수 없게 했다. 그들이 뛰어놀던 디즈니 '모텔'이 아닌 실제로 디즈니 월드에 당도했지만, 영화는 끝까지 뒷모습만을 담고 있다.

아이를 다루고 있다는 지점에서 몇몇 영화가 선험적으로 떠오른다. 트뤼포 자신의 자전적인 내용이기도 한 <500번의 구타>(1959), 일본 사회 가족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오시마 나기사의 <소년>(1969), 현대 사회에 등장하기 시작한 '비친족 가족'을 다룬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2018)까지 모두 범죄에 참여하거나 이용되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아이가 나오는 영화가 대부분 가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픽션이라는 정체성을 규명하고 있다면,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오로지 특정한 지역을 다룬다는 점과 부단히 일상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구조의 문제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다루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션 베이커가 의도했던 대로 관객들에게 교훈을 얻기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가 결말을 추정의 영역으로 남겨둘지라도 무엇보다 관객 스스로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기를 갈망하지 않을까.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여전히 디즈니 월드와 디즈니 모텔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오드

플로리다 프로젝트
The Florida Project
감독
션 베이커
Sean Baker

 

출연
브루클린 프린스
Brooklynn Prince
브리아 비나이트Bria Vinaite
윌렘 대포Willem Dafoe
크리스토퍼 리베라Christopher Rivera
발레리아 코토Valeria Cotto
멜라 머더Mela Murder
케일럽 랜드리 존스Caleb Landry Jones

 

수입|배급 오드
제작연도 2017
상영시간 11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18.03.07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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