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웃음의 양면
'스마일' 웃음의 양면
  • 배명현
  • 승인 2022.10.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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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웃음이 달갑지 않은 이유"

'웃음'이라는 단어는 직관적으로 긍정적인 것들을 연상케 한다.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 혹은 감동이나 뭉클한 것. 그리고 그 밖에 우리가 좋아했던, 혹은 여전히 좋아하는 것들. '왜 웃는지'에 대해선 설명하기 힘들지만, 웃을 때의 감정 상태가 어떤지는 쉽게 말할 수 있다. 웃음이란 긍정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그렇다면 타인의 웃음은 어떠한가. 타인의 웃음도 비슷하지만, 우리는 아주 가끔 이상한 웃음을 목격할 때가 있다. 전혀 웃을 수 없다고 생각한 상황에서 웃고 있는 모습. 이때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공포나 슬퍼하는 얼굴보다, 웃고 있는 얼굴에 더 큰 기묘함을 느낀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스마일>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웃음에 대한 근원적 공포를 다룬다. 그리고 오컬트라는 세계관으로 작품의 부피를 부풀린다. 영화는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본 어린아이 '로즈'(소시 베이컨)로부터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정신과 의사가된 로즈는 어느 날 증세가 심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어떤 것이 자신을 죽일 것이라 말한다. 로즈는 의학적 판단을 하기 위해 소통을 시도하지만, 그녀는 소통이 어려워 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갑작스레 몸부림을 치며 쓰러지더니 일어나 웃으며 자기 목을 그어 자살해버린다. 그리고 그날 이후 로즈에게 기묘한 환상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현실이 망가지기 시작한다.

죽음이 타인에게 끈질기게 '전염'된다는 설정에서 <스마일>은 데이비드 로버트 밋첼의 <팔로우>(2014)를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한 인간의 트라우마가 공포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아리 에스터의 <미드소마>(2019)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스마일>의 핵심은 개인과 세계의 충돌이며 이 세계를 오컬트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예로 <팔로우>가 10대의 성과 성병을 '귀신'으로 은유할 때 귀신에게 도망치는 이들은 한 명이 아닌 청소년 무리이며, <미드소마>(2019)가 가족의 죽음과 타인에 대한 감정을 연결시켜 이를 호르가라는 마을을 통해 드러냈을 때 밝혀지는 건 오컬트적 세계관의 신비함이 아닌 개인의 심연이다.

그러나 다분히 오컬트적 세계관 위에 서 있는 <스마일>은 인간의 세계 바깥에 있는 존재에 대한 인식을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밀어 붙이며 이 세계가 가능한 이유를 소통의 불가능성에서 찾는다.

이 설정은 <스마일>이 가진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 낸다. 로지는 그녀의 환자가 자살하는 걸 본 다음 죽음이 그녀에게로 옮겨 온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의 환자가 죽기 전에 그토록 다급하게 말한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 죽음이 얼마나 개인적인 것인지. 다른 이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심지어 같은 경험을 공유했던 사람에게조차 거부당하는 형태로 공포의 공유는 부정된다. 다만, 이 현상을 추적하면서 죽음을 막을 방법 하나를 알게 된다. 그것은 타인에게 죽음을 전염시킬 수 있는 환경 자체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설정이 드러내는 건 현재 여기에 있는 '나'와 '세계'의 소통 불가능성이다. 물론, 이 불가능성이 새롭거나 전복적인 소재는 아니다. 오컬트 공포 영화의 고전이라 불리는 <악마의 씨>가 전달한 공포가 '내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믿음이 사실은 얼마나 쉽게 붕괴되는가'라는 걸 생각해볼 때, 이 소재는 54년이나 된 '사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 소재가 어째서 여전히 공포라는 장르로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는지'이다. 그리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선 <스마일>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위에서 말했듯, 영화에서 죽음은 목격을 통해 '웃으며 자살하는 이상 현상'이 전달된다. 로지는 자신과 그 어떤 인과도 없는 환자에게 죽음이 옮는다. 이때,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인 약혼자에게 자신이 환자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반복하게 된다.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어!" 그녀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악마의 씨>에선 악마를 추종하는 '집단'이라는 점에서 소통이 가능하고, <팔로우>에선 10대라는 바운더리로 집단이 존재하며, <미드 소마>에서는 호르가라는 마을이 시스템을 우지하고 있다. 하지만 <스마일>에서는 셋 이상의 군상이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건 오직 개별적인 형태의 타인들뿐이다.

그리고 이 개인들을 비집고 인간의 세계 그 밖에 있는 어떤 것이 비집고 들어온다. 이 오컬트적 존재가 만들어내는 건 공포 그 자체이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감정과 죽음이라는 공포. 인간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이 사태가 진행 중인지 알 수 없다. 이 죽음은 인간이 인식하고 사고하는 세계 바깥에 있는 존재의 영향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 볼만한 점은 로지가 이 존재로부터 도망치며 느끼는 감정이 공포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공포와 동시에 '고양감'을 느낀다. 그녀는 죽음에 맟서 삶에 대한 의지를 단단하게 세우고 절대 죽지 않겠다 다짐하고 방법을 강구한다. 이 의지는 기둥이 되어 그녀를 버티게 해준다. 이는 영화의 후반에 자신의 과거 트라우마와 대면하며 아픔과 작별을 고하는 시퀀스로 등장한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스마일>은 이 모든 과정에 일말의 연민도 보이지 않고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는다. 러닝타임의 끝에 다가서자 로지가 보여준 행동과 의지를 한순간에 무력화해버린다. 영화는 그녀를 비웃듯 로지를 불태워 죽이고 또 다른 타인에게 죽음을 전염시킨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염세적인 결말이 가능한 이유는 영화 속 세계관이 오컬트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세계와 무관하게 움직이는 세계, 인간의 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세계, 그리고 인간의 의지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는 세계가 있기에 가능하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의지를 통해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여기서 인간은 과학적이고 합리적 존재가 아닌, 그저 세계 그 어딘가에 존재하는, 그리 특별하지 않은 것이 된다. <스마일>은 이를 명백하게 보여주려는 듯, 로지가 죽음이 옮겨가는 현상을 '전염'이라 부르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이 과정을 전염이라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전염이란 접촉한 타인에게 옮는 것을 의미하나, 영화 속에서 이 옮음이 가능하기 위해선 한 명의 목격자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붙는다. 이는 인간의 판단이 세계의 입장에서 얼마나 부정확하고 불합리한지를 보여준다.공교롭게도 오컬트 세계를 다룬 영화들은 공통적으로 세계 속 개인을 점점 더 파편적이며 무기력하게 보여준다. 오컬트라는 장르로 은유한 현실의 세계가 얼마나 지난해지고 있는지를 (무)의식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건 아마 기분 탓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 장르가 가장 현실의 거울상에 가깝다는 아이러니를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롯데엔터테인먼트

스마일
Smile
감독
파커 핀
Parker Finn

 

출연
소시 베이컨
Sosie Bacon
제시 어셔Jessie Usher
카일 겔너Kyle Gallner
칼 펜Kal Penn
롭 모건Rob Morgan
캐이틀린 스테이시Caitlin Stasey
주디 레이즈Judy Reyes

 

수입|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15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2.10.06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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