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th DMZ Docs] '부부' 픽션과 논픽션, 그 변주를 목도하며
[14th DMZ Docs] '부부' 픽션과 논픽션, 그 변주를 목도하며
  • 이현동
  • 승인 2022.10.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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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영화는 감각 속에 영원히 거주한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고령의 거장 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이 제작해왔던 스테레오 타입인 다큐멘터리는 그를 특정화하는 양식 그 자체였다. 그러나 이번 작품 <부부>(2022)에서 그는 고유한 정체성을 탈피하려 한다. 359분의 <Near Death>(1989)나 245분의 <벨페스트, 메인>(1999)과 같이 다소 긴 호흡을 가진 작품들을 창작해온 그가, 64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상영시간과 픽션이라는 장르를 경유할 때 발생하는 것은 일련의 질문들이다. 예를 들어 60년 동안이나 일관되게 다큐멘터리를 창작의 동력으로 삼았던 그가 '어떠한 심경의 변화로 이번 작품을 계획하게 되었겠느냐'는 질문 말이다. 이와 유사한 예로 평균적으로 긴 상영시간의 영화를 선보였던 필리핀 영화감독 라브 다이즈(Lav Diaz)이 갑자기 한 시간 정도 되는 영화를 제작했다면, 동일한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만큼 어떠한 창작자든 자신이 축적해온 아이덴티티라는 것이 갑작스레 변화할 때, 비평가들은 이전의 선례들을 복기할 수밖에 없다. 이전에 프레드릭 와이즈먼은 영화제작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응답을 한 바 있다.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어떤 정통적인 방법이나 어떤 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영화 제작자와 이론적으로 관객들을 위해서 작동하는 것입니다."―프레드릭 와이즈먼

프레드릭 와이즈먼은 영화를 관객들을 위해 존재하는 유기적인 대상으로 정의한다. 이는 그의 영화가 단순히 장르적으로 구속되지 않았음을 선언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가 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라는 퍼포먼스가 자신의 의도에 가장 근접하고 있음 또한 말하고 있다. 다큐멘터리가 인간의 경험과 정서의 에너지를 가장 증폭할 수 있는 매개로 전제된다고 한다면, 픽션으로 선회한 최초의 작품 <부부>가 과연 그가 주창해온 논-픽션의 규칙에서 얼마나 변주하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것이 감상의 주요 포인트가 될 것이다. 물론, 나는 그가 장르라는 범주에 크게 연연하지 않을뿐더러 결코 형식이 그의 영화를 온전히 규정할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의 메시지는 형식보다도 감독의 정신을 선행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고 공포했던 것처럼 삶의 자유와 그 안에서의 끊임없이 솟구치는 노장 감독의 변주를 본능적으로 긍정하고 싶어진다. 그런 점에서 90살이 넘은 노장의 이 시도는 진실로 실존적인 변화로 치부될 수 있을 것이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픽션을 논-픽션으로 항해하면서

프랑스 브르타뉴 해안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프랑스의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을 가진 휴양지 벨일(Belle-Île)에서 진행된 이번 프로젝트는 정원을 소유하고 몇 채의 집을 임대하고 있는 친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착수되었다. 작업이 진행될 당시에 벨일을 포함한 다수의 휴양지는 펜데믹으로 인해 봉쇄되거나 방문 또한 드문 상황이었다. 이때 감독과 촬영팀만이 남은 이 비밀스러운 장소 안에서 어떠한 외부의 요인 없이 이뤄진 작품의 배경은 이런 고독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펜데믹은 불가항력적으로 제작 환경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지만 반면에 감정의 감도는 더욱 관객들의 감정과 밀접하게 교감할 수 있도록 주입되었다. 히타 아제베두 고메스 <내림 마장조 삼중주>(2022)나 호나스 트루에바의 <누가 우릴 막으리>(2021), 그리고 라두 주데의 <배드 럭 뱅잉>(2021)에서 마스크의 착용과 펜데믹에 대한 언급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주목해보자. 영화가 이러한 현상계의 실존을 스크린에 반영할 때 급진적으로 영화는 실로 우리의 것이자 기억을 소생시키는 기폭제가 된다.(앞서 히타 아제베두 고메스의 '내림 마장조 삼중주'에 관한 「이해의 하모니」라는 글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개념인 '스크린적 리얼리즘'을 빌려 논한 바 있다)

덧붙여서 <부부>는 프레드릭 와이즈먼 감독 개인의 고독과도 결부된 회상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인 지포라 바츠하우(Zipporah Batshaw Wiseman)이 결혼 66년만에 세상을 떠난 지 두 달이 지난 다음 시작된 프로젝트라는 점은 이를 간접적으로 증언한다. 그는 인디와이어(IndieWire)와의 인터뷰에서 "<부부>가 자신의 아내를 고려한 작품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애써 회피하지만, 소피아 톨스토이를 연기한 나탈리 부테푸의 독백에는 '예술가였던 레프 톨스토이와 자신의 개인적인 반성이 묻어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위에 언급한 두 종류의 내적 원리는 영화에 은밀하게 침투하고 있는 논-픽션의 기류로써 감지된다. 더군다나 <부부>가 실제의 기록을 토대로 구성된 내용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영화가 단순히 픽션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계속 말했듯이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형식은 오직 관객을 위해 봉사하며, 더 나아가 형식을 넘어선 창작 행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내의 말과 이미지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 톨스토이가 주고받은 편지와 일기장으로부터 출발하는 이 이야기는 글이라는 포탈을 타고 과거로 넘어간 다큐멘터리 감독 프레드릭 와이즈먼이 들려주는 아내의 의식을 관류하는 '언어'다. 언어와 마찰하는 이 영화의 반복적인 이미지의 대부분은 목가적인 풍경으로 구성된다. 청량한 하늘과 유순하게 머물고 있는 구름, 바위를 침식하는 깊고도 옅은 파도들, 계곡 사이에 흐르는 고요한 물결,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과 꽃잎 등은 영화의 색감을 유지하고 구성한다. 그 사이를 유연하게 만드는 디제시스 사운드는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공간음으로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영화화법을 고스란히 삽입한다. 이미지와 말의 교접할 때 이는 극적으로 현시되기보단 일상의 정취를 구현해내려 한다.

그 결과로 영화에서 그녀의 독백이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 레프 톨스토이를 겨냥하고 있다는 사실보다 한 여자의 '말'로써 인식된다. 여기서 모든 소피아의 연기는 연극적이기도 하다. 자신의 행복을 강탈한 남편을 '그때나 지금이나 종잡을 수 없다'고 정의하는 소피아의 얼굴은 불신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소피아는 남편을 향한 비탄에 허덕이다가도 변덕이 죽 끓듯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긍정적 감상에 잠기기도 한다. "나의 선함과 악함이 날씨에 좌우된다"는 말, "사람들의 기분에 겸허히 나를 맡기려고 해"라는 등과 같은 말이 드러내듯 그녀의 감정은 늘 불안하고 황망하며 그리워한다.

모든 설정 쇼트는 소피아의 독백과 어떠한 공통점과 의도, 그리고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상념적이며 그녀의 혼돈과는 관계없이 각각의 쇼트는 간결하고 짧게 구성되어 있다. 또한, 카메라는 어떠한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는 경제적이라고까지 판별할 수 있을 정도인데, 가령 소피아가 외화면 밖으로 이동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스킵된다. 다음 쇼트로 이동할 때 소피아의 움직임은 고스란히 그 방향성을 유지하며 카메라는 그 감정을 추적한다. 그러나 <부부>를 보고 있노라면 이미지를 구동하는 어떠한 논리를 발견하기 어렵다. 소피아와 교접하는 풍경이 프레임에 배열될 때 어떠한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다큐멘터리의 이미지가 관객들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관찰'하는 영역을 계속해서 구축하는 논리라면, <부부>의 이미지는 어떠한 관찰도 낭비하지 않는 오직 감각만을 촉발하는 정념의 이미지로 구현된다.

우리는 오직 소피아의 독백을 통해 발산하는 표정과 몸짓, 억양과 발걸음과 같은 제스처를 통해 그녀가 겪고 있는 감정의 결핍을 얼핏 체감할 수 있을 뿐이다. 수미상관으로 소피아가 촛불 앞에 앉아 글을 읽고 쓰는 행위가 유일하게 영화의 시작과 끝을 구별할 수 있는 장면이자, 유일하게 이야기를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이미지다. 그녀의 말은 영원할 것 같이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쇼트에서 그녀가 남편에게 편지를 기록하려다가 멈추는 소피아의 손짓이 말하듯 <부부>에서 “부부”는 감정과 이미지의 연장하려 하는 보편적인 시도로 관측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영화의 메시지는 첫 번째로 프레드릭 와이즈먼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면서도, 두 번째로는 누구에게나 부부로서 나눠야 할 위무와 격려, 반성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Wat Films, Zipporah Films

부부
A Couple
감독
프레더릭 와이즈먼
Frederick WISEMAN

 

출연
나탈리에 부테푸
Nathalie Boutefeu

 

제작 Wat Films, Zipporah Films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63분
등급 12세 관람가
공개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22.09.22~2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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