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블론드' 포르노조차도 찍을 수 없는 카메라의 무기력함
[NETFLIX] '블론드' 포르노조차도 찍을 수 없는 카메라의 무기력함
  • 김경수
  • 승인 2022.10.0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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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카메라의 음험한 응시만이 가득하다"

〈블론드〉를 있는 그대로 보고자 영화를 둘러싼 온갖 노이즈를 일부러 외면했다. 동명 소설 원작의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의 팬이기에 특히, 메릴린 먼로의 삶 일부만을 떼다가 그녀의 삶을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되, 그것을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만 묘사해 영원히 먼로, 혹은 노마 진 베이커의 총체성을 파악할 수 없게끔 만드는 원작의 서술 기법에 제법 놀랐던 터라서 더욱 그러했다. 원작에 어느 정도 기대감을 지녔기에 영화를 논하기 전에 먼저 원작을 논할 수밖에 없다.

 

ⓒ 넷플릭스NETFLIX

조이스 캐럴 오츠는 '메릴린 먼로'가 자신의 '모비 딕'이라 밝혔다. 또한 원작 속 작가의 말에는 이 작품이 메릴린 먼로의 삶을 전유해 제유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우선, 작가가 한 말을 이해하려면 『모비 딕』을 이야기해야만 한다. 허먼 멜빌의 『모비 딕』에 등장하는 흰고래는 해석자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의 이성으로는 절대로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한 존재라는 점에서 그것을 해석하는 데에 여러 체계가 필요했으며, 지금도 흰고래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내가 동의하는 해석은 이 흰고래가 곧 남성성이라는 거다. 생물학과 인류학, 역사 등 어떠한 지식을 동원하든지 간에 흰고래는 해석이 이루어질수록 더욱 거대한 존재로 거듭난다. 『모비 딕』에서는 사전식으로 나열되어서 넘쳐흐르는 팩트가 흰고래를 더욱 두렵게끔 느끼게 하는 픽션으로 작동한다. 흰고래는 픽션에 둘러싸여서 영원히 해석할 수가 없는 존재로만 남으며 기어이 인간을 무너뜨리고야 만다.

『모비 딕』의 흰고래는 수천 년에 걸쳐서 형성된 근대적 남성성을 한 육체에 압축하는 제유로 기능한다. 메릴린 먼로를 빌려서 흰고래의 성별을 반대로 뒤집고자 하는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독창성은 그야말로 놀랍다. 『블론드』에서 메릴린 먼로에 대한 팩트를 제거하며, 되려 사실을 증류하기를 택한다. 오츠는 『모비 딕』의 서술 전략을 뒤집되, 독창적인 서술 기법으로 메릴린 먼로를 그려낸다. 『모비 딕』에서 흰고래를 그려내는 서술 화자는 (아마 신적인 위치에 서 있는) 단 한 명뿐이다. 반면, 『블론드』에서는 서술 화자가 한 명으로 가정되지 않으며, 메릴린 먼로의 내면을 여러 목소리로 쪼개는 방식을 선택한다. 소설의 중심인물은 노마 진 베이커이나 처음부터 메릴린 먼로의 서술이 개입해 이 둘의 경계가 뒤엉킨다. 그리고 여기에다 주인 없는 목소리들이 삽입되며, 메릴린 먼로가 쓴 시들과 일기까지 더해진다.

이는 영화의 외-화면 내레이션과 비슷한 기법으로 묘사된다. 사회가 정해둔 여성성을 갈망하며 연기하고 있는 메릴린 먼로와 노마 진 베이커의 트라우마와 애정결핍은 이러한 스타일 안에서만 개연성을 지닌다. 창녀로도 혹은 지적인 성녀로도 여겨지는 대중의 이중 대상화에 시달리며 평생토록 신음해야만 했던 메릴린 먼로의 삶을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일은 쓸모없는 일일지 모른다. 그것은 먼로를 몰아세우는 여성혐오적인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이라는 모비 딕을 더욱 거대하고, 저항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블론드》는 사실 그대로 묘사할 때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의 희생양으로만 묘사되었던 메릴린 먼로를 구원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여성의 구원이기도 하다. 어떠한 한 인간의 내면은 그이가 얼마나 주체적일 수 있냐에 비례하며, 내면을 무한하게 확장하는 것은 그이를 주체로 구원하는 것이어서다.

 

ⓒ 넷플릭스NETFLIX

이렇듯 지면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원작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영화 <블론드>가 적어도 원작의 서술을 독창적으로 살려주기를 내심 바랐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실존 인물을 픽션으로 만들 생각이라면, 최소한 파블로 라라인의 〈스펜서〉(2021)가 이룬 성과만큼만 이루어내기를 바랐다. 영화는 원작의 결을 정면으로 거스르며 원작을 파괴해버린다. 영화가 원작과 비슷하거나 똑같은 서사를 지녔다고 한들, 스타일을 모방하지 않는 이상 둘을 동일선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을 터다. 〈블론드〉의 앤드류 도미닉 감독은 노마 진 베이커 혹은 메릴린 먼로라는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흥미가 없다.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의 폭력을 드러내는 데에도, 남성성을 드러내는 데에도 지독하리만치 무기력하다. 여성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판타지는 지니고 있되 포르노조차 찍을 용기조차 없는 무기력한 카메라의 음험한 응시만이 가득하다.

〈블론드〉의 문제는 서사의 빈자리가 많아서 온전히 픽션으로 읽히지 않는다는 데에서 시작한다. 원작이 조이스 캐럴 오츠가 메릴린 먼로가 아니라 노마 진 베이커를 픽션 속 인물에 불과하다고 설득하는 데에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는 데에 비해,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노마 진 베이커의 서사에 빈 구멍이 생기기에 관객들은 그녀를 메릴린 먼로의 전기적인 사실과 비교해 해석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생긴다. 메릴린 먼로는 여성성을 제유하는 존재가 아니라 텅 빈 캐릭터로 인식되기에 이르며, 관객은 이 영화가 픽션이라는 것을 더는 견딜 수 없게 된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텅 비어 있기에 캐릭터가 도식적으로 움직인다는 데에서도 문제가 생긴다. 노마 진 베이커가 하는 모든 행동은 아버지를 갈망하고자 하는 엘렉트라 콤플렉스와 임신중절에 대한 트라우마라는 두 원인에서 비롯되고야 만다.

결국, 영화의 문제는 이러한 양가적인 판타지가 먼로를 모순적인 여성상으로 가공해낸다는 것이다.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먼로를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을 지닌 존재이면서도 관능적인 육체를 동시에 지닌 존재로 가공한다.

먼로는 남성에게서 사랑받고자 판타지에 복속되기를 바라며, 남성의 판타지 안에서만 존재하기에 이른다. 이는 작품의 구성과도 이어진다. <블론드>는 네 파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마가 어떠한 남성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누어지고 있다. 이는 섹스 심벌로 스타덤에 올랐던 메릴린 먼로가 처했어야 할 숙명과도 같다. 그녀에게서 사적인 것은 소멸되었으며, 영화는 단 한 순간도 노마가 남성에게서 떨어져 있는 순간을 그리지는 않는다. 그녀는 남성과 가부장제, 자본이 만든 픽션으로 제작되었으므로 그녀에게 주체성은 허락되지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요소로 인해서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으로 인해 자기만의 방을 박탈당해야만 했던 여성의 이야기로도 볼 수도 있을 듯했다. 영화는 그녀가 언제 어디서든지 파파라치들의 카메라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으며 곳곳에 파파라치 카메라를 장치로 삽입하며, 그녀에게 사적인 공간이 없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여기서 감독의 태도는 모호하고 무기력하다. 노마 진 베이커가 주체성을 박탈당하는 영화라기에 그녀는 주체성을 지닌 적이 아예 없다. 트라우마로만 움직이고 있기에 아버지를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동기를 제외하면 노마의 주체성은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노마가 왜 감독과 아서 밀러(애드리언 브로디)를 놀라게 할 정도로 다독가인지 설명하지도 않을뿐더러 그녀의 재능이 무엇인지 소개하지도 않는다. 그녀가 사적으로 어떠한 인물인지가 전혀 드러나지 않기에 우리는 그녀가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녀는 시대착오적인 판타지를 지닌 남성의 희생양으로만 등장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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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블론드〉의 폭력성은 카메라가 노마를 인간이 아닌 기계로 다루고 있다는 데에서 드러난다.

앤드류 도미닉 감독은 노마를 포르노로 착취하지 않는 대신 기계화한다. 이 영화의 불쾌함은 이 영화가 포르노라는 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포르노조차도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감독이 호언장담했듯 차라리 이 영화가 포르노라면 비판하기 쉬웠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블론드〉가 차라리 포르노로 바뀌기를 바랐다. 영화는 성교 장면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여성의 특정 부위를 프레임으로 절단하지 않고, 그보다도 더 폭력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그린다. 노마는 장-뤽 고다르의〈비브르 사비〉에 등장하는 나나(안나 카리나)를 연상하게끔 한다. 노마의 첫 번째 오디션 장면은 명백히 〈잔 다르크의 수난〉혹은 영화를 보고 우는 나나를 연상하게끔 하는 구도로만 찍힌다. 〈비브르 사비〉가 그러했듯이 〈블론드〉는 노마라는 한 여성이 잔혹한 시스템으로 인해서 착취당하고 있는 것을 다룬다.

그러나 〈블론드〉는 카메라로 여성의 신체를 기계처럼 여겨서 분해하고 파괴한다.

노마가 임신중절 수술이 시작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 임신중절 수술을 하려는 순간부터 카메라는 노마의 자궁 시점으로 전환된다. 심지어 구멍 사이로 수술 도구가 삽입되기에 이른다. 잠깐의 순간이지만 이는 인간이 볼 수 있는 가장 폭력적인 쇼트 중 하나일 것이다. 카메라가 여성의 신체를 파괴하고 그 안으로 삽입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의 불쾌함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앞서 등장했던 노마의 신체가 CG로 인해 일그러지고 마는 쓰리썸 장면보다도 훨씬 폭력적이다. 무엇보다 영화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는 태아와 난자와 정자는 여성을 출생에 복무해야만 하는 어머니라는 관념으로 그려내고자 한다. 여성을 포르노로 찍지 않되, 여성에 대한 판타지로 여성의 신체를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블론드〉는 메릴린 먼로라는 어울리지도 않는 육체와 페르소나에 갇혀버려서 평생 그것을 연기해야만 노마 진을 구출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여성 신체를 적극적으로 파괴한다. 문제는 메릴린 먼로의 육체가 사람이 아니라 딥페이크나 리얼돌에 가깝다는 것이다. 〈블론드〉는 앞선 이유로 올해의 가장 폭력적이고도 끔찍한 영화일 것이다. 영화에서 여성을 리얼돌로 사물화하는 최초의 영화일뿐더러, 차마 포르노를 찍을 용기는 없으면서 성적인 판타지는 다 이루고 싶어 하는 카메라의 무기력감, 아니 발기부전을 드러내는 최초의 영화이기도 해서이다.

[글 김경수, rohmereric123@ccoart.com]

 

ⓒ 넷플릭스NETFLIX

블론드
Blonde
감독
앤드류 도미닉
Andrew Dominik

 

출연
아나 데 아르마스
Ana de Armas
애드리언 브로디Adrien Brody
바비 카나베일Bobby Cannavale
자비에르 사무엘Xavier Samuel
줄리안 니콜슨Julianne Nicholson
에반 윌리엄스Evan Williams

 

제작 Plan B
제공 넷플릭스NETFLIX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6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공개 2022.09.28

김경수
김경수
 어릴 적에는 영화와는 거리가 먼 싸구려 이미지를 접하고 살았다. 인터넷 밈부터 스타크래프트 유즈맵 등 이제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모든 것을 기억하되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중이다. 코아르에 연재 중인 『싸구려 이미지의 시대』는 그 기록이다. 해로운 이미지를 탐하는 습성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영화와 인터넷 밈을 중심으로 매체를 횡단하는 비평을 쓰는 중이다. 어울리지 않게 소설도 사랑한 나머지 문학과 영화의 상호성을 탐구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의 이미지가 하나하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에 따라 생태학과 인류세 관련된 공부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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