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송환' 송환과 또 다시 송환
'2차송환' 송환과 또 다시 송환
  • 이현동
  • 승인 2022.09.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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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실제와 연결되는 무한한 아카이브의 세계"

<2차 송환>(2022)의 언론 시사회에서 "30년이란 긴 시간 동안 촬영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김동원 감독은 머리를 긁적이며 "저도 어떻게 이렇게나 길게 <송환>(2004)에 이어 <2차 송환>을 다루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하여 유운성 평론가는 과거 창비 웹진을 통해 <송환>에 관하여 "비전향 장기수들과 만나게 된 것이 우연―어쩌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 때문"이라는 짤막한 글을 남겼는데, 이 문장 속에서 김동원 감독의 태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 시네마달

김동원 감독의 기록물은 단순히 '완결'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지 않는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한 획을 그었다고 회자되는 작품인 <상계동 올림픽>(1988)에서 짧게나마 등장하던 정일우 신부가 <내 친구 정일우>(2017)라는 작품으로 상영되기까지 대략 30년이란 시간이 소요된 것도 그의 진득한 노력의 성과라기보다, 신부의 죽음이라는 상황으로부터 결정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는 영화감독이라기보다 아카이브를 수집하는 수집가에 가깝다. 실제 아카이브는 감독의 의도에 의해서만 수집되지 않기 때문에 원초적으로 그의 다큐멘터리는 몽타주의 수행 가능성을 지속하여 내재화하고 양식화하는 기능을 지닌다. 한 인터뷰에서 <내 친구 정일우>가 <상계동 올림픽>의 마무리되지 못한 정서적인 연대를 형성한다는 지점에서 속편이라고 언급한 바 있듯이, 김동원 감독의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현장성과 이야기의 연장성이라는 측면에서 급변하는 사회변화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유기체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송환>을 완성된 작품으로 구현하고자 한 계기가 비전향 장기수들의 북송 가능성이 활력을 얻으면서부터였다는 점도 이런 특성을 공유한다. 감독은 최초로 성립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과 송환계획 발표는 작품을 완결하는데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비전향 장기수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환대와 대접을 받으며 당당하게 삶을 살아가는 장면이 스크린에서 반사될 때, 남한에 남아 장기수들이 송환 운동을 벌이고 있다는 자막은 끝나지 않는 송환의 서사가 재점화될 것임을 기약하게 된다. 감독은 부지런하게도 <2차 송환>이 제작되기까지 그들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카메라로 담았다.

 

ⓒ 시네마달

개인과 공동체라는 두 종류 양식

김동원 감독의 작품은 두 종류의 양식으로 나뉜다. 철거민들의 투쟁을 공격적으로 다룬 작품들 <상계동 올림픽>, <행당동 사람들>(1994), <또 하나의 세상(행당동 사람들 2)>(1999)은 공동체가 급작스레 봉착한 상부 구조의 압력 앞에 툭 튀어나온 시대의 부름으로부터의 응답이라 한다면 개인적인 파토스(Pathos)부터 착안된 작품 <한 사람>(2001), <내 친구 정일우>, 이번에 개봉하는 <2차 송환>등에서 그 경향은 짙게 드러난다. <송환>과 <2차 송환>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개인이 중심이 된다는 것에 있다. 주목받는 개인의 삶은 정치적 함의를 약화하고, 일상성을 강조한다. 이전 작품보다 미국과 일본에 대한 반감이 자주 또는 노골적으로 등장함에도 그것이 불편하다거나 이념적으로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그것은 고된 복역 생활에 관한 고통의 공감과는 별개로 이것은 공동체의 영향력이 제거된 지극히 개인의 목소리로 들려지기 때문이다. <송환>에서 전향 장기수였다가 전향 무효 선언으로 비전향 장기수가 된 김영식 선생의 일대기를 다룬 이번 작품은 <내 친구 정일우>의 유사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의 메인 스피커가 되어 시위를 주도하고, 피아노를 뚝딱거리며 통일의 멜로디를 연주하고, 생존을 위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폐지를 줍기도 한다. 그의 삶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관철되는 모종의 신념은 마치 정일우 신부가 고수해온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도 닮았다.

이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감독은 개인을 부각한다. 4명의 내레이션이 삽입된 작품인 <내 친구 정일우>와 마찬가지로 감독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축소되거나 대체된 형태의 구성을 취한다. 이러한 내레이션의 배제와 연결되는 주체적인 김영식의 목소리는 관객들과 공명하는 원료로써 공급된다. 물론 <송환>에서 조창선을 주요 인물로 내세웠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미약하게 반동할 뿐, 공동체에 포섭된 소리의 한 부분으로 구현된다는 것을 상기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례적으로 김영식의 글씨가 곳곳마다 스크린이란 캔버스에 명기될 때, <2차 송환>은 형식적으로 변주를 꾀하며 의식을 담은 이 아카이브는 개인을 매개한다. 혁명, 계몽의 이미지가 분출되기보단 애곡(哀哭)의 이미지가 표면에 접합된 이번 작품은 공동체의 힘을 상실한 이들의 가늘게 늘려지는 소리다. 공동체나 개인이나 남한 정부를 향한 지속적인 항거는 결과론적으로 어떠한 것도 추출하지 못한다. 단적인 예로 <2차 송환>의 초반과 후반에서 김영식은 지하철과 청와대 앞에서 조국 통일과 시대를 비판하는 목소리, 2차 송환을 촉구하는 광야의 소리와 같이 호소 되지만, 어떠한 위력도 사회에 행사되지 못하는 공허한 소리로 들린다. 두 작품 모두 남한, 북한, 그리고 미국 지도자가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저 송환에 유리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논구한다. 여기서 장기수들과 후원회 회원들은 그저 구조의 억압을 마주하며 기다림의 형태로 무한히 머무를 뿐이다.

 

ⓒ 시네마달

이처럼 긴 아카이브의 흔적은 실시간으로 그들의 운명을 노출시킨다. 필자는 김영식을 주요 인물로 선택한 이유가 감독이 말하듯 그가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로만 치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9명이라는 적은 숫자의 장기수들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의 한계는 더욱 개인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송환을 다루는 두 작품은 동시대적이면서 끝나지 않는 지금의 시간을 떠도는 유령처럼 미묘한 상태로 한국 사회를 유랑한다.

 

끝나지 않을 시간

우선 편의상 <송환>과 <2차 송환>을 송환 시리즈로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사실 앞서 상술했던 차이점과는 무관하게도 송환 시리즈는 1편과 2편은 따로 분류하기가 모호한 지점들이 있다. 오히려 동일한 작품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두 작품의 분기점이 되는 비전향 장기수들의 송환, 그다음 남한에 남은 장기수들과 김영식의 이야기는 공동체를 다뤘던 것보단 덜 극적이고, 행동 양식이 제한되고 반복된다는 점에선 분명히 다르지만 결국 종결되지 않는 송환이란 사건은 이런 공통점을 계승한다. 김동원 감독은 이 작품을 어느 시점에서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다시금 송환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기다림과 평균 나이 91세인 장기수들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러한 연유로 영화가 급박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치 끝나지 않을 시간과 끝날 시간 사이에 간당간당하게 서 있는 그들의 서사가 이 영화에 부여된 유일한 힘이라면 힘일까. 아쉽게도 <2차 송환>은 사회를 향한 극명한 촉구로 관측되는 동시에 영화적으론 김동원 감독의 작품 중에서 그 무게와 두께가 깊지 못하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돌림노래처럼 상영이 끝난 후에도 애처롭게 들리는 김동원의 영화는 여전히 이 땅에 남은 자들이 희망 어린 절규이자 포효다. 이번 작품은 물론이고 그의 다큐멘터리는 앞으로도 사회적, 정치적 맥락에서 억류된 자들의 통곡을 대변하는 목소리와 희망이 될 것임을 기대할 때 우리는 그의 목소리에 기꺼이 동조하게 될 것이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시네마달

2차 송환
The 2nd Repatriation
감독
김동원
Kim Dong-Won

 

출연
김영식

 

제작 푸른영상
배급 시네마달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56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9.2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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