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베이커] '레드 로켓' 윤리를 상실한 홈리스는 어떻게 기동력을 얻는가
[션 베이커] '레드 로켓' 윤리를 상실한 홈리스는 어떻게 기동력을 얻는가
  • 이지영
  • 승인 2022.09.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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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의 이기주의를 포장하는 상징들"

'션 베이커'가 미국 사회에서 스포트라이트에서 벗어난 소수자 혹은 소외 계층에 꾸준히 애정을 담은 시선을 조명해왔다는 것은 새롭게 지적할 것도 없이 자명한 일이다. 특히, 홈리스와 매춘부 캐릭터는 그의 전작들에도 줄곧 등장하는데, 이 둘의 공통점은 원하는 곳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기동력이 없다는 것이다. 중산층은 시내 외곽의 주택촌에 주거하면서 직장이 있는 도심으로 왕복 이동을 하는 반면, 홈리스와 매춘부는 다운타운 한복판에 기거하거나 거리를 배회하면서, 신체를 불특정 타인의 시선에 노출한다. <탠저린>(2015)에서도 볼 수 있듯이 때로는 타인의 차 안에서 성매매를 하기도 한다. <레드 로켓>(2021)의 주인공 마이키(사이먼 렉스) 역시 홈리스(Homeless)일 뿐 아니라 기동력이 없는(Carless) 인물이다. 영화는 이 인물이 어떤 수단을 통해 기동력을 얻게 되는지, 텍사스시티를 가로지르는 그의 왕복 운동 안에 내포된 원리를 해부한다.

 

ⓒ A24

영화 오프닝 시퀀스는 포르노 배우의 에이전시를 운영하며 살던 LA를 떠나(실은 쫓겨나) 버스로 고향인 텍사스시티에 진입하고 있는 마이키의 클로즈업된 표정으로 시작한다. NSYBC의 'Bye Bye Bye'라는 노래는 경쾌한 리듬으로 이전 삶에 대한 작별을 고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을 알린다. 언뜻 보면 마이키는 전형적인 블루칼라 노동자의 외양을 하고 있으나, 그는 백인 주류 사회에도,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에도 속하지 않는 은퇴한 포르노 스타이다. 정치적으로는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숨은 지지 기반, 일명 '샤이 트럼프'라고 알려진 주변화된 백인 남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별거하고 있던 아내 렉시(브리 엘로드)와 장모(브렌다 다이스) 집에 기생하며, 차츰 블루칼라 계층인 정유 시설 노동자들과 중산층 가정의 백인 소녀인 '스트로베리'(수잔나 손)에게 동시에 이득을 취하며 사회적인 재기를 꿈꾼다.

이 기회주의적이고 도덕적 판단이 거세된 인물에게는 두 계층 모두, 마치 땅에서 나는 석유처럼 자신에게 대가 없이 운 좋게 주어진 '자원'처럼 여겨진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 캠프의 유명한 구호와 자신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마이키의 행보는 서로 공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구호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미국중심주의와 개인의 이기주의의 극단적인 민낯을 션 베이커는 이번에 여느 전작들보다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다. 먼저 '도넛 홀'이라는 기회의 땅을 만나기 전, 마이키가 임시방편으로 선택한 생존방식은, 미국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가정에서 백인 남성에게 주어진 역할을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보호자가 필요 없다고 하며 그를 쫓아내려는 아내 렉시와 장모를 설득하기 위해 그는 집을 보수하고 잔디를 깎고 개에게 먹이를 주며, 아내와의 성관계도 주기적으로 맺는다. 그가 소위 가부장의 권위를 회복하는 기점은, 정확히 마약을 팔아 번 돈으로 집세를 대신 내는 시점부터다. 경제력으로 관계의 우위를 점한 것을 인지한 순간부터 피상적인 역할놀이는 보란 듯이 와해되고, 폭력적이고 저열한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

 

ⓒ A24

<레드 로켓>은 정치적이지 않은 인물들의 풍경을 통해 오히려 일종의 정치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영화가 비판하는 것은 이기주의를 공허하게 포장하고 있는 상징들이다. 예컨대 트럼프식 미국중심주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오브제는, 마약의 겉 포장지로 전락한 미국 국기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 애국주의자라고 칭하며 국기 모양 종이에 마약을 말아 파는 마이키나, TV 앞에서 트럼프의 연설을 듣고 있는 렉시와 장모의 표정은 어딘가 이성이나 도덕적 판단이 마비된 것처럼 무감동하고 무표정하다. 또 하나의 오브제는 로니가 참전용사로 사칭할 때 입은 미 군복이다. 이는 결핍된 자아를 과장된 남성성으로 위장할 때 쓰이는 또 다른 포장지다.

마이키가 홈리스의 처지에서 벗어나 집을 점유하고 가장의 권위를 다시 회복하는 일로부터,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이라는 신기루와 같은 꿈을 좇게 되는 전환점은 '도넛 홀'이라는 도넛 가게에서 스트로베리를 만나는 순간부터다. 이 둘이 첫 대면 하는 시퀀스는 철저히 마이키의 1인칭 시점 샷으로 연출된다. 등 돌린 도넛 가게 점원의 모습은 시선에 들어오지 않았다가, 계산하기 위해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그가 환심을 사고자 했던 아내와 장모는 어느새 주변부로 밀려나 아웃포커싱 된다. 짙은 립스틱과 빨간 셔츠를 입고 얼굴엔 주근깨가 난 소녀는, 본명은 레일리이지만 자신의 별명이 '스트로베리'라고 소개한다. 탐스러운 과실을 그대로 현현한 소녀와 그녀를 상품화함으로써 재기를 꿈꾸는 백인 남성이 품은 금단의 욕망은 본능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유발한다. 이들의 정사씬에서 사용된 빈번한 컷 편집과 급작스럽고 빠르게 원경으로 물러나는 카메라 이동과 같이, 션 베이커는 관객이 누구에게라도 심리적 거리를 조금이라도 좁히지 못하도록 차단한다.

 

ⓒ A24

앞서 홈리스인 주인공이 어떻게 기동력을 얻었는지 자문했었다. 마이키는 출근할 때는 렉시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퇴근 시에는 스트로베리가 운전하는 모친의 차를 얻어 타고 출퇴근을 반복한다. 마이키는 매 순간 소녀를 거짓된 허상과 쾌락이라는 잘못된 방향으로 오도한다. 한 번도 그의 진짜 집 앞에 내려 달라고 하지 않으며 부촌의 한 집을 자가로 사칭하여 총으로 위협까지 당한다. 그러면서도 데이트를 빙자하여 그녀를 스트립쇼와 같은 유흥의 세계로 인도한다. 한편으로 마이키는 이웃집 남자 로니(이선 다르본)의 차를 얻어 타고 드라이브를 즐기며 나르시시즘적인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결정적인 말 한마디로써 연쇄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내지만, 정작 그 자신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죄의식을 갖지 못한다. 즉 그는 기동력을 얻음에 있어서 타인의 도덕적 타락이나 희생을 담보로 잡는 착취적인 면모를 일관적으로 보인다. 나아가 무고한 이들로 하여금 사회적인 추락 혹은 매장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끈다. 그렇다면 이 인물은 끝내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마이키와 스트로베리가 '도넛 홀'을 떠나서 LA로 떠나려고 할 때는 마이키의 입장에서는 낙원으로 다시 입성하는 것이며, 스트로베리로서는 유년과 청소년기의 마지막 낙원에서의 추방이다. 렉시에게 이별을 고하자마자 이웃들에게 무력으로 현금과 옷을 모두 갈취 당한 마이키는 무력하게 축 눌어진 거대한 성기를 드러낸 채 도시의 정유소들을 가로질러 스트로베리에게 걸어간다. 그는 낙원에서 추방되어 수치심을 알게 된 아담이 아니라, 어떠한 윤리도 더이상 작동하지 않는 하이퍼-자본주의의 '낙원'으로 다시 입성 하려는, 수치심을 모르는 아담이다. 그 낙원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기에, 다른 어떤 곳도 아닌 스트로베리의 집 그 자체일 지 모른다. 찬란한 광휘 속에서 빨간색 딸기 비키니를 입은 소녀가 관능적인 미소를 띠고 문을 열어줄 때, 이 둘 에게는 가장 어두운 전망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이는 표상된 이미지와 그 의미나 해석 사이에 극명한 명암대비를 이룬다. 이렇게 희망적인 동시에 절망적인 연출은, 마이키의 왕복운동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또 다른 렉시와 스트로베리의 추락만이 계속된다면, 이 홈리스에게 주어진 구원은 영원히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 하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A24

레드 로켓
RED ROCKET
감독
션 베이커Sean Baker

 

출연
사이먼 렉스
Simon Rex
브리 엘로드Bree Elrod
수잔나 손Suzanna Son

 

제작 A24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1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23.03.12

이지영
이지영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평이한 문장이지만 사색을 담은 글을 씁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의 일면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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