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의 김민영'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누군가의 성적표
'성적표의 김민영' 영원히 소멸되지 않을 누군가의 성적표
  • 이현동
  • 승인 2022.09.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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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로부터 증식되는 기억의 주술"

미디어 작가로 알려진 히토 슈타이얼은 『진실의 책: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에서 벤야민을 거론하며 사물의 정체성 혹은 언어성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물들은 자신들에 내재하는 에너지와 힘들을 교환함으로써 서로 직접 소통한다. 사물의 언어는 약동하는 에너지로 변하는 질료의, 소리 없는 교향악이다. 그리고 이 말 없는 언어는 다양한 번역을 통해서 인간의 언어가 되는데, 이 언어의 본질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Bennenung)이다."

―『진실의 책: 미술 분야의 다큐멘터리즘』, p217

 

'사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라는 히토 슈타이얼의 물음에서 우린 사물의 잔상을 주의 깊게 목도하게 된다. 사물과 마주할 때 인간은 반사적으로 시각적, 촉각적, 아니 모든 감각을 동원해 사물이 말을 하지 않더라도 언어로 인식한다. 음성 언어로 발화되지 않는 사물의 언어란 무엇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명증하게도 인간의 사유로 규정된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또한 사물과 같아서 통상적으로 2시간가량 되는 상영 시간은 온전히 자기 번역으로 매개된 고독한 시간이자 공적인 시간으로 언어화된다. 누군가는 사물을 보며 외로운 번역을 하고, 또 누구는 공적인 번역을 통해 일종의 합의를 한다. 사물이 무엇인가를 표명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면 반드시 시간성이 개입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끊임없이 시간의 연속성을 추궁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 엣나인필름

<성적표의 김민영>(2021)을 구성하는 사물은 기억의 소산으로 인물들의 에너지를 교류하는 도구로써 소환된다. 작품에서 사물은 종종 말이 없다가도 시간의 기류를 타고 다시금 말을 한다. 사물의 '말함'이 번역으로서의 말함이라고 한다면 사물을 번역하는 번역가는 시간을 질료로 그 형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작품에서 번역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정희(김주아)는 사물의 의미를 정립하고 재확립함으로 민영(윤아정)과의 관계, 혹은 그녀라는 존재를 번역한다.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플래시백의 이동과 가볍게 종결되거나 생략되는 대화, 의도적인 프레임의 절단 혹은 방치, 그리고 소박한 미장센의 구현과 캐릭터에 기생하고 있던 과거를 독특한 운율과 색감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소박한 기억의 세계

<성적표의 김민영>의 최초의 오프닝은 3명의 학생으로 구성된 삼행시 클럽이라는 소소한 모임으로부터 시작된다. 수능 디데이 100일을 맞이하여 마지막으로 공포되는 '김민영'이라는 이름의 '삼행시'는 제한된 양식으로 가동된 <성적표의 김민영>이라는 세계를 가리킨다. 영화에서의 프레임이 주로 한정된 장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정희와 민영의 기숙사, 흩어진 삼행시 클럽의 구성원들이 대화를 나누는 '줌'이란 프로그램, 테니스장의 사무실, 서울에 있는 민영이의 오빠 집, 대학 성적표와 다이어리, 숲이 우거진 액자 속 그림, 가족사진, 심지어 식당에서 식사하던 정희가 민영이의 전화를 받고 그 거리를 회전하여 다시금 돌아오는 동선까지를 상기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양식은 공간을 한정하면서도 시선의 방향에 대해선 여지를 둔다.

 

 ⓒ 엣나인필름

공간에서 잔여하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과 여전히 그 공간과 사물을 점유하고 '정희의 위치'다. 민영과 수산나(손다현)는 대학교에 입학하고 다른 라이프를 누리지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던 정희는 고향 청주에 머무른다. 그녀는 순박한 고민을 늘 상 간직한다. 어떻게 삼행시 클럽을 유지할 수 있을지와 기숙사 메이트로 추억을 함께 축적한 민영이의 버킷리스트는 완성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그녀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정희는 사람들이 말하는 미래, 현실감각 없이 면접에서도 테니스 왕자를 찾는 엉뚱한 면모를 갖고 있다. 영화는 현실의 무게와 인물의 관계를 진지하거나 무겁게 그리지 않는다. 정희는 일자리에서 느릿느릿하고, 실수하더라도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대학에 가지 않는 그녀를 부모 또한 나무라지 않는다. 경영상의 문제로 정희가 해고될 때 자신의 현실을 비관하지도 않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급박함에 쫓기지도 않는다.

이러한 정희의 느긋함은 이 영화의 리듬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형식 그 자체이다.

영화의 표면을 유희적이며 회상의 형식으로 만드는 몇몇 단서 중 하나로 지목되는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라는 시트콤은 삭막한 사무실의 공기를 환기해주는 동시에 과거와 연동된 세계에 대한 스케치로 묘사된다. 자신이 당면한 현실보다 과거를 소생시키려는 노력에서 영화의 구조와 내러티브는 점차 명료해지고 뚜렷해지는 것이다.

 

 ⓒ 엣나인필름
 ⓒ 엣나인필름

사물의 현존

소박한 일상을 대변하는 비좁은 공간에서 정희의 세계를 확장시키는 것은 '기억 속에 묻혀있었던 사물'이다. 서울로 올라온 민영이를 방문하는 정희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서 현재로 워프하는 시간 여행자처럼 과거의 사물을 운반한다.

정희는 민영이와의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자신이 간직하고 있었던 '김민영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것 또한 과거 '난쟁이가 쌓아 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의 변형이라는 점에서 위에 언급했던 시트콤과 유사한 형태로 기능한다)이라는 버킷리스트를 그녀 앞에 꺼낸다. 햇반으로 경단 만들기, 고무 동력기로 5분 동안 비행하기, 텀블링하기 등이 적혀 있는 이 리스트와 플래쉬백 되는 둘의 과거는 현재로서 변환되지는 못한다. 민영의 현실은 과거를 기약하지 못할 정도로 정희가 고대한 반응 앞에 무심하다. 편입을 위해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민영이가 대학 성적표를 확인하고 다급하게 온종일 교수에게 보낼 메일과 씨름할 때 정희의 사물은 뒷전이 된다. 방을 가득 채운 정희의 사물의 '말함'과는 무관하게 민영은 과거에 머물러있는 정희를 바라보며 '현실적인 것이 필요하다'며 조언한다. 두 종류의 시간의 충돌은 사물의 의미를 희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어느 한쪽을 현재화하는 과정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민영이의 일방적인 이야기에 화가 난 정희는 "내 현실도 있는 것"이라며 응수한다.

그러나 둘의 현재는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밀접하게 결합하지 못한다. 교수에게 이의신청하러 간다는 말을 쪽지로만 전달한 민영이와 이를 확인하는 정희의 공간은 과거도 현재도 없는 무형의 공간으로 위치한다. 영화의 후반부 구도는 정희가 민영이의 비밀일기를 발견한 이후로부터 둘의 시선을 플래시백으로 매칭한다. 아이돌이라는 꿈에 도전하기 위해 댄스학원에서 춤을 배우고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녹화하고, 생활비 부족으로 허덕이거나 동기들과의 갈등이 삶을 잠식할 때 그녀는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며 읊조리며 방황한다. 민영이의 과거를 관찰한 정희는 말이 아닌 소멸하지 않는 기록으로서의 매체인 글로 그녀를 표현한다. 패션 감각, 사회성, 인간관계, 베풂 등의 항목은 민영이를 향한 애정 어린 조언이다. 엔딩에서 정희는 '숲의 정령'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이름이 아닌 민영의 이름으로 출품한다. 이때 그림은 숲에 웅크리고 앉아 무엇인가를 채취하고 있는 인물로 매치업된다. 이 매치업에서 정희의 음성 추측되는 소리에 뒤를 돌아 미소를 띠고 있는 민영이의 모습은 암시적으로 그들의 관계가 초록빛을 내고 있음을 가리킨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서사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대화의 비완결성, 공간을 점유하는 사물들의 현존, 투명한 정서를 유발하는 미장센의 배합을 통해 거창한 수사가 없이도 충실하게 기능하는 영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엣나인필름

성적표의 김민영
Kim Min-young of the Report Card
감독
이재은
임지선

 

출연
김주아
윤아정
손다현
임종민

 

제작 탁구필름
배급 엣나인필름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97분
등급 전체관람가
개봉 2022.09.08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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