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격정적 사색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격정적 사색
  • 변해빈
  • 승인 2022.09.19 10: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율리에, 당신은 혼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내 것이 아닌 도심과 어디론가 흘러가던 바람이 나를 따라 걷고 있는 듯한 외로움만 생생하다면 평생 그런 번뇌에 사로잡힌 데도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 그린나래미디어

그녀를 보기만 해도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관객이 율리에(레나테 레인스베)에 관해 무엇이라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착각 속에 데려가는 영화다. 이해도의 결여나 오류로서의 착각을 지적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율리에에 관해 우리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이 필요한 영화다. 당연하게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12개의 장을 에워싼 구성은 율리에라는 존재를 함축해서 주입하고 설명하는 전형적인 장치다. 게다가 영화는 그녀를 알기 위해선 빠른 리듬으로 전환되는 수많은 이미지의 나열, 이를 부연하는 내레이션이 인물의 대사 위에 그대로 섞어 두 개의 사운드가 불규칙하게 중첩되는 것 정도는 개의치 않는다. 노골적으로 말해, 이 영화가 굳이 여러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음을 명시하고 실제로 그렇게 구분한 까닭은 각 전환지점에서 광범위한 시공간적 경과를 겪는다든지 혹은 장을 구분하는 소제목 없이 이해하는 데에 큰 노력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14번의 구분은 '곡예스러운' 율리에의 행위를 파악하는 일과 미세한 시공간의 변화에 마저 소모되는 조금의 에너지도 낭비하지 않으려는 시도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것이 아니라면, <라우더 댄 밤즈>(2016)에서 콘라드(데빈 드루이드)가 자신에 관해 '과도하게' 솔직하게 나열해 소개한 글의 형식처럼 여러 장을 비순차적으로 뒤섞어도 율리에란 존재를 알게끔 하는 장치거나, 차라리 그런 콘라드의 글과 그것을 활용한 고백법이 실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시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율리에의 모호한 정동이나 내밀하게 응축된 결핍과 감춰온 말들은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상, 깊고 낮은 지대를 확장해간다. 적어도 파편적인 '장'은 관객에게 율리에라는 인간에 관해 혼란을 덜어내고 무엇이라도 알게끔 한다. 그 무엇이 '착각으로' 기능하는 이유는 다음의 한 구절을 통해 보탬을 얻을 수 있다.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싶은 욕구, 역할의 집합체가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의미 있는 일에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싶은 욕구는 언제나 우리를 따라다니며 여성들을 점점 더 정신없는 일상, 사랑이라는 망상, 영원이라는 피난처로 밀어 넣는다."(앤 모로 린드버그, 「바다의 선물」, p.76) 여기에 부연하면 율리에는 불안에 다면적으로 취약한 인간, 자기만의 선이 온전하므로 이따금 스스로가 버거워 도피하는 인간, 그리고 '자신조차 모르는 자신'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존재다. 따라서 원제(<THE WORST PERSON IN THE WORLD>)를 수식하는 '사랑할 땐'이라는 조건이나 다수를 포괄하는 '누구나'는, 율리에라는 고유하고 절대적인 속성에 관해 매우 협소하고 평면적이고 또 안타까운 15번째 소제목이다. 해당 작품에서 사랑을 이야기하면, '사랑에 빠진' 존재보다 '사랑이라는 망상'을 깨우친 인간의 불안과 도피의 기록, 사랑 바깥으로 빠져나와 혼자만의 고요를 탐색하는 혼란한 여정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 그린나래미디어

세상에 혼자 남겨질 때

어째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 율리에가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관심을 기울인 걸까. 특히, 그녀가 사랑에 얽매인 존재로 언급되길 거부하고픈 이유는 또 무엇이고. 그건 영화를 통해 율리에에 관해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순간들에 마음이 동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 영화가 검은 은막을 걷어내고 최초로 보여준 것은 외따로 떨어진 율리에의 모습이다. 그녀의 감각은 멀리서 도달한 오토바이 소음 따위에 기운 지 오래고, 인파가 몰려든 카메라가 위치한 방향으로 얼굴을 내비칠 기력이 더는 남지 않았다. 화면 속에 생동하는 물체는 손가락 끝에 매달린 담배 연기가 유일한데, 그마저 율리에의 한숨을 따라 가늘게 흐른다. 플래시 포워드 된 해당 컷은 율리에에 관한 여러 정의 중, 좌시하기 쉬운 한 가지를 놓치지 말라는 신호와도 같다. 요아킴 트리에가 영화의 시공간을 자잘한 단위로 분절해가며 보여준 율리에의 세계 속에서 그 무엇보다 너그러이 공들여 부조한 것은 누구도 그녀에 관해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 사색의 시간에 놓인 혼자만의 몸짓이다. 이것은 다수와의 비교우위에 따라 비롯되기도 하지만 감독은 물리적으로 인물들이 절대적인 혼자가 되도록 한다. 인물들은 어둠과 벽과 프레임을 경계로 군중들과 분리된 상태를 자처한다. 혼자 남겨졌을 때마저 헤드셋과 이어폰을 활용해 외부의 감각을 차단하여 완연한 혼자가 된다.

우주의 감각이 율리에를 중심으로 흐르는 동안 그녀가 상상하는 오슬로의 광경이 영원으로 둔갑한 대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율리에는 실제로 혼자 남겨진다. 그녀에겐 아주 오랫동안 홀로 프레임을 가로지르는 시간이 주어진다. 앞서 언급한 컷의 연장선상에서, 율리에는 연인이자 만화가인 악셀(앤더스 다니엘슨 리)의 기념행사 도중 먼저 그곳을 빠져나온다. 누군가의 사랑보다 직업과 일에 관한 욕구와 결핍이 그녀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결혼식 시퀀스에서 '의사'인 자신의 의학적 소견을 나누는 대화는 우연이 아니다.) 그마저도 그녀의 생각에 관해 추측한 단면일 뿐이다. 이제 율리에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는 홀로 귀가하는 그녀를 한참이고 뒤따른다. 그럴 때면 기어이 대사와 내레이션은 소극적이고, 세상의 모든 인간이 그녀를 등진 것처럼 주변은 공허하게 비워진다. 존재하는 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율리에 그 자신뿐이다. 심지어 영화는 마지막 남은 인간(율리에)마저 화면 구석으로 밀어내고 검게 그을린 자국처럼 지워내(아웃 포커스) 그 무엇보다 격정적인 사색의 시간을 마련한다. 오직 율리에의 심연이 외치는 소리가 '나' 없이도 가득 찬 도심과 지나가던 바람을 붙잡고 나란히 발맞추며 귀가의 시간을 늘어트리고 있을 뿐. '세상을 조금 더 산' 악셀이 건넨 조언들과 버섯 환각에 빠진 율리에를 향한 에이빈드(할버트 노르드룸)의 "내가 여기 있어"는 해내지 못한, 혼자가 되었을 때의 사적인 생각들이 그녀를 에워싼다. 그곳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율리에의 생각이 불안과 취약함을 외면하지 않고 도피하는 위태로운 심혼을 다음 프레임 내부로 몇 번이고 들여보낸다.

새로운 아침을 맞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외화면의 패닝 카메라처럼 둘러보던 때, 생명을 잉태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인 집안 어른들의 30살의 계보와 멀어진 기분, 상반된 견해를 나누며 신랄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라디오 부스 속 사람들을 한참 지켜보다 종결된 장, 슬픈 소식을 들은 날의 무감각한 걸음들. 절연한 관계와 세상과 일찍이 고별한 이들마저 율리에를 홀로 있게 만든다고 덧붙인다면 "혼자가 되는 게 두렵다"던 그녀에게 너무 잔인하려나. 돌이키면 그녀가 정신적인 것에 매료되고 시각의 예민함에 관심을 기울이던 것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일이 아니던가. 결국,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홀로 사색에 빠진 한 사람의 몸짓에 관한 영화다. 율리에는 장을 넘어가는 내내 생각에 빠져있고, 관객은 그녀의 생각에 관해 잠시도 머릿속을 비울 수 없다. 스스로가 원하는 것도 생각해내지 못하면서 "나도 모른다"는 생각을 토해내지 않으면 거짓된 실감에 부흥하는 것 같고, 제정신이 아닌데도 생각을 멈출 수 없거나 죽는 게 원망스러워 '평생'을 남발하는 옛 연인의 절박함보다 그가 내뱉은 말이 제 생각과 다르다는 게 우선인 건 왜일까. 확실한 해답도 주질 않으면서 타협 없이 몰려오는 이 생각들은 어째서 그녀를 '최악의 인간'으로만 이끄는 걸까, 하는 연이은 생각들….

 

ⓒ 그린나래미디어

그간 요아킴 트리에가 추구한 '혼자'만의 감각은 기도와 초능력, 인위적으로 약속된 밤이라는 신비, 약물의 쾌락과 망상의 언저리에서 맴도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정 존재 안의 원초적인 체험은 비동시성을 수반하여 상대로 하여금 다음의 행위를 기다리게 만들지만, 그렇기에 체험의 주체가 홀로 상념을 견디지 않으면 다음'장'은 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영화의 여러 기술적 장치가 부리는 전능도 우연과 운명의 너그러움에도 기대지 않는다. 그러므로 율리에는 고립되고 소외된 혼자가 아니라 육체와 정신을 스스로 움직이는 영혼의 평정으로서 혼자서 하는 생각으로 실존함을 통감한다.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혼자가 되는 일이 어떠한 초자연적 능력보다 더 나은 다음 장을 불러오는 동력이 된다.

요아킴 트리에의 전작 속 매혹적인 비현실의 도구들이 도달하지 못한, 사색이라는 빈털터리의 격정을 <델마>(2018)로부터 "거부하던 것을 언젠가는 마주하게 된다"고 전하던 그 자신의 말처럼 비로소 율리에를 통해 대면하게 된 것 같다.

 

그녀만이 아는 것

율리에의 바람과 달리 에필로그의 속 영화의 주연은 이별을 연기 중인 어느 배우다. 배우는 흐느낌의 강도를 높이라고 요구하는 감독에 의해 같은 컷을 두 번 연기한다. 잠시 후 스태프의 틈에서 등장한 율리에가 배우의 스틸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상대를 불러세운다. 그녀는 감독과 달리 배우에게 직전의 감정을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고 전한다. 그러자 율리에의 앞에는 누구라도 단번에 알아차릴 기세의 흐느낌이 아닌 내면의 슬픈 마음에 관해 사색에 빠진 이의 얼굴이 있다. 그 얼굴로는 배우가 연기하는 미지의 캐릭터가 겪은 이별의 내막을 알 수 없고 무언가를 잘 해내고 싶은 그녀의 지나온 궤적을 관통할 수는 없다. 다만 율리에가 필요한 것, 율리에의 사진에 남은 것은 단지 마주 앉은 상대가 떠나고 혼자 남은 이의 외로운 풍경이다. 스틸 사진을 촬영하는 일이 율리에가 진정 바라던 다음의 '장'인지는 미지수지만 그녀의 사진 속에는 촬영 현장의 군중들과 (영화 속 영화의) 관객들은 알 수 없을 혼자만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걸 바라보는 율리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동안 내 사색의 시간은 풍요로웠다.

[글 변해빈, limbohb@ccoart.com]

 

ⓒ 그린나래미디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감독
요아킴 트리에
Joachim Trier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
Renate Reinsve
앤더스 다니엘슨 라이Anders Danielsen Lie
헤르베르트 노르드룸Herbert Nordrum
마리아 그라지아 디 메오Maria Grazia Di Meo
한스 올라브 브레너Hans Olav Brenner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8.25

변해빈
변해빈
2020년 경기씨네영화관 영화평론 우수상, 박인환상 영화평론 부문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현재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