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심연'이라는 총체적 이미지
[Interview] '심연'이라는 총체적 이미지
  • 홍상현
  • 승인 2022.10.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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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사형에 이르는 병>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
「사형에 이르는 병」은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개근하고 있는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의 신작. 국내에서 번역ㆍ출판되어 화제를 모았던 동명타이틀 소설이 원작이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사형에 이르는 병」은 최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개근하고 있는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의 신작. 국내에서 번역ㆍ출판되어 화제를 모았던 동명타이틀 소설을 영화화 했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팽팽한 긴장감 속에 김반장이 정인규를 몰아친다. 딱히 도드라지는 점이 없으나 시종일관 가장 용의점이 짙은 것으로 묘사되던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훌쩍이고 있었다.

"자, 이제 말해봐. 어차피 넌 못 빠져나가. 혈액형은 이미 B형으로 확인이 됐고 이제 DNA 감식 결과가 나온다. 다 털어놔, 사실대로. 털어놓고 나면 시원할 거야."

지역 토박이 출신 박형사가 허겁지겁 증거감식결과 봉투를 들고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다.

결과는 불일치.

수사반의 무기력과 범인 체포에 대한 강박감이 절정에 달한 끝에 유력용의자를 체포한 김형사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심문을 진행한 결과, 자백을 받아냈지만 결정적인 증거물인 모근이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사건이 미제(unsolved)의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는 순간. 충격 때문일까 북받쳐오르는 울분 때문일까 김반장은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만다.

 

코로나 19가 세계 영화산업을 멈춰버린 2020년 이후에도 꾸준하게 신작을 내놓으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코로나 19가 세계 영화산업을 멈춰버린 2020년 이후에도 꾸준하게 신작을 내놓으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는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이상은 필자가 내용을 추린 김광림의 희곡 <날 보러 와요>의 클라이맥스. 봉준호의 재능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각인시킨 <살인의 추억>(2003)의 원작인 이 작품에는 520만 관객의 의식에 각인된 비 오는 날의 터널도, 예의 송강호의 역사적 대사("밥은 먹고 다니냐?")도 나오지 않는다. 총 19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작품이 도입부와 종결부를 빼면 모두 단 세 개의 공간, 수사본부 사무실과 취조실, 그리고 다방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살인의 추억>에 등장하지 않는 박 기자가 당시 담당 형사들의 근황을 알리며 작품을 마무리한다.

마에스트로의 걸작에 마스터피스에 더하고 뺄 것이 있겠나마는 1996년 한국연극계를 뒤흔든 이 작품이 멀쩡히 다니던 정외과 대학원을 그만두고 연극영화학과 학부 진학이라는 '폭거'를 저지른 원인 중 하나인지라 애정이 각별한 필자로서는 원작에서 객석을 쥐락펴락하던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의 대치가 대폭 줄어든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내 쓸데없는 생각으로 치부해버리고 마는데, 한정된 공간에서 두 배우가 대사를 주고받는 정도로 관객의 집중도를 유지하기 어려울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이런 필자의 결론을 속단이었음을 증명했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사형에 이르는 병>에서 미궁 속을 헤매는 주인공과 연쇄살인범의 양보 없는 두뇌게임의 무대를 상당 부분 소극장을 연상시키는 면회실 세트로 한정하면서도 현란한 영화적 표현을 통해 성공적인 서스펜스서사를 완성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할머니 장례식 때문에 고향에 내려온 대학생 마사야(오카다 켄시 분)는 어렸을 때부터 관계가 소원한 아버지(스즈키 타쿠지 분)가 불편하기만 하다. 그런 그에게 어렸을 때 자주 다니던 빵집 주인 야마토(아베 사다오 분)로부터 편지가 온다. 남녀 고등학생과 여성 직장인 등 24명을 연쇄살인 한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야마토는 마사야에게 자신은 마지막 살인의 피해자인 여성 직장인을 죽이지 않았다며 진범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야마토의 말에 마사야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점점 그에게 빠져들고 결국 끔찍한 진실과 마주한다.

 

「사형에 이르는 병」은 주인공과 연쇄살인범의 양보 없는 두뇌게임의 무대를 상당부분 소극장을 연상시키는 면회실 세트로 한정하면서도 현란한 영화적 표현을 통해 성공적인 서스펜스서사를 보여준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사형에 이르는 병」은 주인공과 연쇄살인범의 양보 없는 두뇌게임의 무대를 상당부분 소극장을 연상시키는 면회실 세트로 한정하면서도 현란한 영화적 표현을 통해 성공적인 서스펜스서사를 보여준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홍상현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BIFAN에 개근하고 계십니다. (웃음) 더욱이 이번에는 코로나19 이후 2년 만에 맞는 통상개최라 더욱 감회가 특별하실 것 같은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아, 어떤 형태로든 통상 개최는 기쁜 일이죠. 영화는 관객이 봐줘야 비로소 세상에 태어났다고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다만 아쉬운 건 작품만 초청되고 제가 신작 촬영 때문에 직접 여러분을 뵈러 갈 수 없었다는 겁니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꼭 참석하고 싶어요.

 

홍상현

원작이 이미 3년 전 한국에서 번역·출판돼 화제를 모았던 동명 타이틀 장편소설입니다. 영화화를 결심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아베 사다오 배우가 연기하는 하이무라 야마토라는 시리얼 킬러의 캐릭터를 접하고 장르적 매력을 느꼈습니다. 일단 저 자신 그 인물을 직접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미스터리서사도 무척 독특해서 작가적 흥미를 유발했고요.

 

홍상현

초기에 시라이시 감독의 존재를 세계에 어필하는 계기가 되었던 <흉악>(2013)을 봐도 그렇지만 역시 '아웃 로(outlaw)'의 영역에 서있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가장 큰 재능을 발휘하시지 않나 싶습니다.

시라이시 카즈야

그렇습니다. 지금까지의 작품들에서도 그랬습니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아웃 로의 특성을 갖는 캐릭터한테 여전히 끌려요. 그런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행동을 통해 사회의 어둠이나 뒤틀림 등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서 아닐까 싶습니다.

 

2018년 「흉악」으로 한국 관객에게 야마다 다카유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시리이시 카즈야 감독은 이번작품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이름 없는 새」로 인연을 맺은 아베 사다오 배우를 빌런으로 캐스팅, ‘상냥한 살인마’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2018년 「흉악」으로 한국 관객에게 야마다 다카유키의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시리이시 카즈야 감독은 이번작품에서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이름 없는 새」로 인연을 맺은 아베 사다오 배우를 빌런으로 캐스팅, '상냥한 살인마'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홍상현

영화의 타이틀처럼 여러 가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대사회의 인간군상을 그리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유형을 나열하는 것 외에도 인물을 제시하는 데 있어서 나름의 원칙이 있었을 것 같다는 느낌인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그 '병'이 어떤 대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게 <사형에 이르는 병>에 내재된 주제를 파악할 수 있는 힌트가 될 겁니다. 말씀처럼 '마음의 병'은 분명 존재하는데, 이것이 사람에게서 기인하는지, 혹은 사회가 이미 안고 있었던 것인지 불명확하다는 물음이야말로 이 작품이 태어나도록 해 준 문제의식이거든요.

 

홍상현

아베 사다오와 오카다 켄시, 두 배우가 분한 야마토와 마사야의 두 사람의 두뇌게임이 라스트신까지 눈을 뗄 수 없는 재미를 선사해줍니다. 연출의 스타일도 이제까지의 작품들과 아무래도 조금은 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은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그렇죠. 말씀처럼 제게도 정말 새로운 도전의 의미를 갖는 작품이었어요. 다만, 연출에서의 접근자체를 평소와 다르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보다 서사의 완성에 있어서 무엇이 최선일지를 생각했죠. 아울러 이 작품은 미스터리니까 시종일관 그 특성을 의식하면서 관객의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홍상현

극 중에서 형무소의 면회실이라는 공간이 큰 의미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특히 상황에 따라 조명이나 배경영상 등 소극장 무대를 연상시키는 다양한 표현이 빛났는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감사합니다. 바로 면회실의 작은 공간이 <사형에 이르는 병>의 메인 무대였거든요. <흉악>이라는 작품에서도 면회실이 메인 무대였기는 한데, 그때는 지나치게 적극적인 연출을 하지 않고 담담한 묘사에 방향을 맞췄어요. 이 작품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사형에 이르는 병>에서는 연출을 위한 모든 메커니즘, 즉, 조명, 배경 영상 등을 동원해 야마토와 마사야 두 인물의 감정적 기복을 최대한 디테일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각본상 배우들의 움직임이 적은 까닭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고요.

 

「사형에 이르는 병」의 백미인 면회실 장면의 촬영장.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연출을 위한 모든 메커니즘, 즉, 조명, 배경 영상 등을 동원해 야마토와 마사야 두 인물의 감정적 기복을 최대한 디테일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사형에 이르는 병」의 백미인 면회실 장면의 촬영장.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은 연출을 위한 모든 메커니즘, 즉, 조명, 배경 영상 등을 동원해 야마토와 마사야 두 인물의 감정적 기복을 최대한 디테일하면서도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홍상현

주인공이 혼란을 느낄 때마다 야마토와의 사이에 놓여있는 벽이 사라져 두 사람의 신체접촉이 가능해진다는 묘사에 어떤 상징적 의도가 있는지 궁금한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말씀하신 부분은 원래 각본에 없었고, 딱히 현장에서 연출하려는 생각도 없었는데요. 촬영이 진행하던 중에 갑자기 두 인물이 서로의 체온과 감촉을 느끼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이 일단 그 장면에서만큼은 서로에게 거울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도 있었던 데다, 오직 마사야 만이 야마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홍상현

면회실의 유리창에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의 겹쳐지는 형태가 스토리 전개에 따라 바뀌는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라이시 카즈야

눈여겨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리에 비치는 서로의 모습을 겹쳤다 떼었다 하면서 결국 궁극적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두 사람의 거리감을 관객여러분께 각인시켜드리려는 의도에 따른 표현이었어요.

 

홍상현

마사야 역의 오카다 켄시 배우의 연기가 정말 훌륭했습니다. 세상에서 고립되어있는 인물로 시작해서 결말부에는 미궁에 빠진 사건의 해답을 찾아내는 모습으로 변모하는 게 놀랍더라고요.

시라이시 카즈야

극장에서 보실 수 있는 마사야의 캐릭터는 오카다 배우와 충분히 소통해서 만들어 낸 결과인데요. 오카다 배우 자체가 워낙 스마트한 사람이기도 한 데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시나리오 분석을 엄청 치밀하게 해 놓은지라 제가 따로 주문할 내용이 없었어요. (웃음) 진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한국 관객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카야마 미호 배우는 주인공에게 계속 혼란을 주는 인물인 에리코로 등장한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한국 관객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카야마 미호 배우는 주인공에게 계속 혼란을 주는 인물인 에리코로 등장한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홍상현

다정한 살인마라는 야마토의 캐릭터를 보면서 역시 발군의 연기력을 가진 개성파 배우, 아베 사다오가 아니라면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그의 캐스팅을 전제하고 계셨던 건가요?

시라이시 카즈야

<이름 없는 새>(2017)에서 함께할 당시 아베 사다오 배우의 눈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야마토 역으로 어떤 배우를 캐스팅하면 좋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아베 사다오 배우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게다가 막상 캐스팅해보니 영화에선 보여줄 수 없었던 야마토의 과거에 대해서까지 상상력을 발휘해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셨죠.

 

홍상현

생물학적 연령으로만 생각하면 아들에 가까운 오카다 배우와의 케미스트리도 뛰어났습니다.

시라이시 카즈야

저 자신, 두 사람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까 불안한 한편 너무 기대됐어요.

특히 이들의 연기가 완벽하게 맞부딪치는 면회실 장면 촬영을 가장 마지막에 진행하면서 두 사람의 연기를 보고 엄청나게 감동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감정을 대사에 훌륭하게 반영하는 모습을 보노라니 제가 거기에 연출을 더하고 말고 할 것도 없더군요. (웃음)

 

홍상현

<사형에 이르는 병>에서 또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 관객이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나카야마 미호 배우가 주인공에게 계속 혼란을 주는 인물인 엄마(에리코)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물창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궁금한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나카야마 미호 배우는 제게 있어서도 특별한 배우이자 아이돌입니다. 에리코는 비밀스러운 과거와 유소년기의 트라우마를 안고 있고 그로 인해 주인공에게도 계속 혼란을 유발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은 삶 가운데서도 평범한 생활을 유지하려고 늘 안간힘을 쓰죠. 게다가 어떤 거짓말도 하지 않는 가운데 가정의 평화를 지키려 노력하고요. 한편으로 과거의 일들을 포함, 현재 자신의 모습으로써는 도저히 타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는데, 나카야마 배우가 이 언저리의 섬세한 감정을 너무 잘 표현해주셨어요.

 

초기에는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시간이 갈수록 비중이 늘어나, 끝내 작품의 중심으로 들어와 버리는 아카리 역의 야마자키 유 배우는 근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었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초기에는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시간이 갈수록 비중이 늘어나, 끝내 작품의 중심으로 들어와 버리는 아카리 역의 야마자키 유 배우는 근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되었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홍상현

초기에는 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다가 시간이 갈수록 비중이 늘어나, 끝내 작품의 중심으로 들어와 버리는 아카리 역의 야마자키 유 배우의 연기도 '도대체 이런 배우를 어디서 찾아냈지?'라고 생각할 만큼 뛰어났습니다. 게다가 이번 작품이 세 번째로 출연한 영화라는 점이 놀라운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미야자키 배우와는 오디션을 통해 만났습니다. 200명 가까운 지원자 가운데 아카리 역에 가장 어울리는 연기자였죠. 아카리는 야마토에 대해 알아갈수록 점점 변해가는 마사야의 곁에서 관객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새 작품을 침식해가는 인물인데요. 이로 인해 역으로 야마토의 영향력을 가늠하게 해 주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이 지면을 빌려 단언해드리자면, 정말 성공적인 캐스팅이었어요,

 

홍상현

<사형에 이르는 병>을 보면 볼수록 추리의 형식을 빌려 현대사회를 해부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라이시 카즈야

제대로 보셨습니다.

사람이나 사회에 어느새 녹말처럼 쌓여 있는 병리가 얼마나 이번 작품에 제대로 그려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는 창작활동을 이어가면서 항상 이런 부분을 의식하고 있어요. 비단 이번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엔터테인먼트영화라 할지라도 조금씩이나마 사회에 대한 해부를 병행해 갈 수 있도록 힘쓸 작정이고, 또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홍상현

범행의 장소인 오두막집이 동화에 등장하는 공간처럼 그려집니다. 게다가 불을 지르는 장면에서는 야마토의 의상마저도 아주 독특한 느낌이었는데요.

시라이시 카즈야

야마토가 좋아할 음악이나 찻잔, 도구, 의상 등을 일부러 일본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유럽풍의 분위기로 준비했어요. 일반적인 사회, 혹은 속세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과 거리를 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였지요. 아무래도 <사형에 이르는 병>이라는 작품 자체가 리얼리즘영화와는 거리가 있으니까요.

 

「야마토가 좋아할 음악이나 찻잔, 도구, 의상 등을 일부러 일본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유럽풍의 분위기로 준비했어요. 일반적인 사회, 혹은 속세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과 거리를 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였지요.」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의 술회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야마토가 좋아할 음악이나 찻잔, 도구, 의상 등을 일부러 일본적인 것과 거리가 있는 유럽풍의 분위기로 준비했어요. 일반적인 사회, 혹은 속세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과 거리를 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서였지요.」 시라이시 카즈야 감독의 술회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홍상현

촬영 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았을 것 같은데 한 가지만 소개해주실 수 없을까요.

시라이시 카즈야

음. 그다지 즐거운 이야기는 아닌데요.

오카다 배우가 숲에서 쫓기는 장면을 촬영하다 부상을 당했어요. 충분히 조심하고 있었음에도 미처 예상 못했던 변수가 있었던 거죠. 한참 고민하다가 상황을 그대로 안고 촬영스케줄을 진행하기 위해 시나리오를 바꿨습니다. 영화관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극 중에서 마사야가 부상을 입는다는 설정은 애초에 각본상으로 존재하지 않았어요.

 

홍상현

감독의 입장에서 가장 애정을 가지고 계신 장면은 무엇인가요.

시라이시 카즈야

아, 무척 어려운 질문인데요. (웃음) 저로서는 어떤 장면이라고 딱 잘라 말씀드리기 힘들 것 같아요. 매 신 마다 추억과 여러 가지 아이디어로 가득 들어차 있거든요. 그럼에도 질문의 취지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대답을 해보면, <사형에 이르는 병>은 제가 야마토라는 캐릭터를 시각적으로 현실화시키기 위해 메가폰을 잡은 영화입니다. 그런 이유로 아베 사다오 배우가 연기하는 야마토의 이미지는 제게 아주 큰 의미가 있어요. 그의 무섭고 깊은 어둠과, 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빛 없는 눈. 오싹한 느낌 속에서도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상반기 극장가에서 흥행 면에서도 「신 울트라맨」, 「유랑의 달」 등과 경합하며 관객몰이를 했던 「사형에 이르는 병」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비프를 통해 다시 한 번 관객을 만난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상반기 극장가에서 흥행 면에서도 「신 울트라맨」, 「유랑의 달」 등과 경합하며 관객몰이를 했던 「사형에 이르는 병」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비프를 통해 다시 한 번 관객을 만난다. (C)2022 Lesson in Murder Film Partners

"큰 줄기에서 보면 진범이 누구인지 가리는 서스펜스지만, 곳곳에 스릴러나 호러의 요소가 뒤섞여있다는 점에서 장르영화에 가까운 엔터테인먼트필름이죠. 일단 호러영화를 본다는 느낌으로 극장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데이트무비로 어떨지는 모르겠지만요. (웃음) 특히, 젊은 관객분들이 많이 오셔서 즐겨주시면 더 바랄 게 없겠고요.

객석에 앉으시면 야마토와 마사야가 주고받는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스릴을 느끼는 한편 예상치 못한 대목에서 튀어나오는 위트를 즐기실 수 있을 거예요. 글자가 아닌 총체적 이미지로서의 심연을 영화관에서 체험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거든요."

 

필자와 부천에서의 첫 만남이 이뤄진 계기였던 <고독한 늑대의 피>(2018) 이외에도 2018년에만 장편영화 세 편, 이듬해에 다시 장편영화 세 편에 한 편의 드라마, 심지어 코로나19가 세계영화산업을 멈춰버린 2020년 이후에도 꼬박꼬박 신작을 내놓으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개근 중인 시라이시 감독의 한국관객을 향한 열의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필자로서도 영화제 GV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받게 되는 독자의 메일이나 SNS 메시지에서 "이번 영화는 개봉할 것 같나요?"라며 여러 차례 질문을 받게 만드는 그의 작품이 아무쪼록 올해도 팬들을 찾아갈 수 있기를.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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