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머나먼 길을 찾아, '수리남'에 꿈을 찾아
[NETFLIX] 머나먼 길을 찾아, '수리남'에 꿈을 찾아
  • 이현동
  • 승인 2022.09.15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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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은 잠시 거류한 장소인가, 아니면 그의 본래 시네마틱 장소인가"

윤종빈의 마초적 규율성

윤종빈 감독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마초적인 영화로 손꼽히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의 전성시대>(2012)를 연출하고 한 인터뷰에서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남성 중심의 문화가 피곤하게 느껴진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그의 영화는 이를 탈각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초성에 대한 이미지의 열망은 여전히 굳건하다. 그의 페르소나인 하정우를 필두로 선 굵은 배우들을 주연으로 활용하며 그가 피력한 남성의 세계는 그의 영화 공식을 뚜렷하게 조준한다. 또한 일종의 수정주의인 K-웨스턴 <군도: 민란의 시대>(2014)를 제외하고는 그가 겨냥하는 공동체의 형식도 철저히 이에 부합한다.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마초 집단의 사례인 <용서받지 못한 자>(2005)의 '군대'를 시작으로 '호스트바', '조폭', '안기부', 그리고 이번 <수리남>(2022)의 '국제 범죄조직'에 이르기까지 윤종빈의 아카이브는 일관성을 유지한 채 모종의 규율을 제시한다.(익살스럽게도 그의 첫 번째 단편 영화의 제목이 <남성의 증명>(2004)이다) 그렇다면 왜 마초일까.

윤종빈의 영화에서 일률적으로 남성은 '파열된 남성성에 대한 나열'이다. 윤종빈의 장르를 집권하는 남성들의 제스처는 위계로부터 통제된 세계로부터 탈주하려는 시도로부터 출발하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마초적 특성이 결국 끝까지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증언한다.

ⓒ 넷플릭스

군 생활의 부조리, 거래로 이어지는 남녀관계, 조직 문화에서의 폭력의 일상화, 아직도 성립할 수 없는 분단의 평화와도 같은 인륜성의 부조화는 감독이 해체하려는 저항 의식과 관련이 있다. 마초적 규율성의 종말, 그 한계와 허무, 즉 감독이 언급하는 파기되지 않는 집단의 형식은 결국 단일성이 아닌 앞으로도 진행형임을 예고한다. 괴이하게도 여성이 그의 영화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하거나 존재가 미약하다는 것을 비판하는 여론은 <수리남>에서도 이어지는데, 이것은 윤종빈 영화의 특성을 감식하지 못한 몰지각한 평가이다. 무엇보다 남성은 윤종빈에게 하나의 장르적인 소비로 치부되는 동시에 동일한 담론인 '마초성이 얼마나 비일관적인가' 혹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로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마초성에 대한 파기다. 이러한 규율을 밀도 있게 형성하는 방식에는 카메라 앵글이 관여한다.

 

리얼리즘이란 기의

무엇보다 이러한 기제에는 감독의 분명한 내부요인이 감지되는데, 그것은 리얼리즘이라는 기의다. 이 기의는 카메라와 연기가 맺고 있는 공격적인 발화를 기점으로 진행된다.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과 같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윤종빈 감독의 초기 작품은 내용과 촬영방식에서 이와 더욱 밀접하게 연계된다. 그를 수면 위로 고개를 내놓도록 한 작품 <용서 받지 못한 자>는 윤종빈의 최초의 리얼리즘을 향한 심오한 웅변으로서 무려 10분이나 되는 롱테이크 삽입을 통해 군대의 무자비한 현실을 재현한다. 리얼리즘을 증폭하는 영화의 공간, 캐릭터의 대사들이 영화와 현실을 결합하는 도구가 될 때 우리는 마치 집단 최면에 걸린 것처럼 무엇인가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위력이 얼마나 강대한지를 스크린을 통해 상기시킨다.

<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스티 보이즈>(2008)가 왜곡되지 않은 현실 그대로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연출되었다면, 그 이후의 영화는 자본력이 확충되면서 그가 존경하는 감독인 마틴 스콜세지를 비롯한 할리우드 영화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관측할 수 있다. 일면에선 윤종빈의 영화적 선회가 퉁명스럽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영화에서 오락성과 유희가 공명하는 앙상블은 도리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은 이전 작품보다 다소 경량화된 리듬으로 스콜 세 지의 <좋은 친구들>(1990)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군도: 민란의 시대> 같은 경우는 타란티노의 스타일을 오마주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은 점도 이를 시사한다.

 

ⓒ 넷플릭스

또한, 스콜세지의 많은 영화가 실제 인물들을 모티브로 한 것과도 유사하게 <공작>(2018)이나 <수리남>(2022)도 실존 인물과 그 배경을 공유한다는 측면에서 그의 영화가 점차 변화를 거듭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두 작품에선 마틴 스콜세지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내레이션이 등장하는데, 이야기 전체를 세공하는 음성과 플래시백의 활용은 과거를 향한 연민이면서도 감독의 메시지가 잠재된 폭죽의 도화선과 같이 대기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6부작인 <수리남>은 윤종빈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돋보이는 속력을 갖는다. 비록 리얼리즘이란 방식은 소거된 지 오래지만. 이와는 무관하게 윤종빈이 가진 앵글과 캐릭터의 구상력은 여전히 공간을 활공하는 축이다.

 

관음과 관찰 그 경계

윤종빈 감독의 카메라 앵글은 픽션과 논픽션을 왕복하며 탈골된 형태로 기능한다. 이는 캐릭터와 공간이 어떻게 결합하고, 분리하고, 구별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다. <수리남>에서 두드러진 점 중 하나는 캐릭터를 관음하는 카메라의 시선이다. 이는 이 드라마의 특성인 캐릭터의 구사하는 롤플레잉이 카메라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에 관한 규칙에 해당한다. 이런 규칙을 통해 윤종빈 감독이 의도하는 범인 찾기 게임, 즉 일명 마피아 게임을 유추하기 위한 단서들로 파편화되는데, 가령 관음과 관찰의 시선은 다음과 같이 이동한다. 마약을 유통했다는 오해로 감옥에 수감된 강인구(하정우)에게 국정원 팀장인 최창호(박해수)는 전요한(황정민)을 체포하기 위한 작전을 제안하려 면회를 온다.

그 과정에서 1) 카메라는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클로즈업 한다. 2) 그들을 철창 밖에서 롱 숏으로 촬영한다. 3) 친구인 전요한을 통해 살해당한 박응수(현봉식)의 소식을 듣게 된 강인구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4) 다음 앵글은 처음으로 밖이 아닌 안쪽에서 롱 숏으로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히 촬영한다. 대부분의 이런 촬영 공식은 시퀀스마다 존재한다. 캐릭터의 표정과 시선, 이 모든 제스처가 프레임에 꽉 구속되어 있다가 광의적 전시되는 전략은 이 영화의 장르적인 경향성, 마피아 게임의 역할극(롤플레잉)의 일환으로 '중립적인 시선'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서사의 주변부를 3인칭으로 관음하면서도 1인칭으로 관찰한다. 이야기의 진행단계에서 조직과 조직 사이의 모호하고도 불투명한 관계를 활공하는 이 시선은 서스펜스를 증폭시키는 열쇠이자 <수리남>의 프레임 전체에 종속된 마피아 게임의 생존하는 단서이다.

 

ⓒ 넷플릭스

유형과 무형의 액션

윤종빈의 영화에서 액션은 몸이 아닌 구강 액션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작품인 <공작>(2018)이 남한과 북한 사이의 협작과 관련하여 무형 액션을 선보였다면 이번 작품 <수리남>에선 두 종류의 액션을 동시에 구현한다. <공작>의 빌드업이 이번 작품을 위해 작정된 것처럼 보이는 팽팽한 액션 활극은 6부작이라는 긴 시간 내내 감각적으로 촉발된다.

먼저, 수리남의 액션은 협상에 의해 타결되고 타격 되는 리듬 게임처럼 움직인다. 하지만 상위 조직과 하위 조직, 그리고 국정원과의 암투가 직접적인 발화로 이어지는 유형 액션의 시퀀스는 그리 강렬하게 체감되지 않는다. 강인구는 전술적으로 자신의 능청스러운 기질은 목적을 위해 온 힘으로 표현하고, 변기태(조우진)의 초점 없는 눈빛으로 프레임에 무언의 의미를 촉구하며 최창호는 적들 앞에서 가래를 뱉는 것과 같은 모든 캐릭터의 독자적인 리액션은 <수리남>의 여백을 복구하는 기능적이면서 잠재적인 영역으로 기술된다. (필자는 이가 캐릭터의 힘을 신뢰하는 최동훈 감독의 케이퍼 무비와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의 말과 행위는 또 다른 캐릭터에게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고, 그 파동이 영화 세계를 흔들 때 그것은 도미노처럼 이야기를 향해 무너지게 된다. 칼과 칼이 총과 총이 마주할 때보다 말과 말이 부딪힐 때 무형의 액션은 유형의 액션을 은폐하는 잠재태의 형식이라는 점에서 우위에 있다.

<수리남>에서 적의 리듬을 교란하는 계산적인 전략으로 작동하는 롤플레잉은 피로할 정도로 강도 높은 서스펜스를 가동시킨다. 서스펜스가 가장 강렬하게 접촉하는 순간은 최초로 강인구, 최창호, 전요한이 코카인 거래 체결을 위해 대면할 때이다. 이 대면 장면은 총 세 번의 장소의 변경과 언제 파기될지 모르는 롤플레잉 구도를 통해 긴장감을 배가한다. 비행장, 콘도, 한치의 빛도 허용되지 않는 숙소에서 진행되는 협상에서 이 영화는 감각적으로 무형 액션의 크기를 비약한다. 공간에서의 빛이 점차 소멸되고, 그들의 표정과 말투는 상대방의 대응에 의해 변용된다. 이때 그들의 정체를 의도적으로 함구하고 변용하기 위한 일종의 임기응변은 영화 고유의 리듬을 구축하고 철저하게 오락성을 공식화하는 감독의 태도로 일축된다.

윤종빈은 6부작이란 비교적 긴 호흡이 있는 드라마 형식일지언정 그 안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했다. 이번에 다시금 확인한 사실은 그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해놓은 유능한 시네아스트라는 것이었다. 타란티노 영화를 떠올릴 법한 <수리남>에서 모든 관객은 마피아 게임의 3인칭 관전자로 군림한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넷플릭스

수리남
Narco-Saints
감독
윤종빈

 

출연
하정우
황정민
박해수
조우진
유연석
장첸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6부작(371분)
등급 19세 관람가
공개 2022.09.0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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