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수집가로서 영화를 만든다
[Interview] 수집가로서 영화를 만든다
  • 김민세
  • 승인 2022.09.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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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대상작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신동민 감독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작년 하반기 극장에서 만났던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최근에 있어서 가장 사적이면서도 기이한 한국독립영화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많은 한국영화들이 다뤄온 가족이라는 개념의 이미지를 무너뜨리고 앙상한 관계로만 남아있는 어색한 모자의 일상. 여름밤의 꿈을 꾸는 것처럼 펼쳐지는 일상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들. 무엇보다 연속적이지 않은 구조 속에서 어머니를 연기하는 배우가 바뀌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배우라는 형식으로 누군가를 재현한다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최근의 한국독립영화를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된 '가족'과 '일상'이라는 단어를 과감히 벗어던지는 형식적 실험이다. 그것을 읽어내는 과정은 영화와 현실을 주제로 한 감독 신동민의 고민 자체를 들여다보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알 수 없이 뭉클해지는 어떠한 진심이 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그때의 선명한 기억을 안고 어렴풋한 기억을 되새기며 신동민 감독을 만났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라는 한 편의 영화를 중심으로 시작했던 인터뷰는 신동민이라는 작가, 신동민이라는 사람, 나아가 지금 여기에서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그의 깊은 고민을 중심으로 한 대화로 이어졌다. 그는 실험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흐름과 어쩔 수 없는 기질이라는 말로 자신의 영화를 설명했다. 그가 영화에 대해 가진 기본적인 태도는 거대한 포부나 야망이라기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솔직한 응시였다. 의식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작업을 설명할 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했다'는 맥락의 말을 반복했다. 그 말에는 어떠한 한탄이나 포기와 비슷한 심정도 있었지만, 진심어린 진정성과 용기 또한 있었다. 그의 신중한 말에 귀 기울이면서 받았던 위로를 되새겨본다. 부족하지만 조금이나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그와 함께 고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 모쿠슈라

김민세

첫 장편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가 극장 개봉한 지 1년 즈음이 되어간다. 처음 관객들하고 만날 당시 기억나는 순간들은 없는가. 시간이 많이 지나긴 했지만 기억에 남는 특별한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다.

신동민

시간이 빠른 것 같다. 거의 1년 가까이 지나고 보니 당시 기분이 잘 생각나지도 않는다. 지금은 다른 영화 촬영을 마치고 편집 중어서 그 작업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때가 있다면, 지금 촬영을 마친 작품에서도 나오는 장면이다.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시사를 했던 때로 기억하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펑펑 우시던 관객 한 분이 계셨다. GV를 마치고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내 어머니와 대화를 하고 있더라. 영화가 본인 부모의 이야기와 똑같았다고 하면서, 지금은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어떻게 그 시간을 버텼는지를 물었다. 나와는 직접적으로 얘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관객과 만나기 전에는 내 영화가 단순히 '개인적인 기록'이 될 것으로 생각했고, 관객에게도 그렇게 닿을 것이라 예상했다. 관객을 만나고 나서는 이것이 단순히 나만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도 수용이 될 수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던 것 같다. 처음부터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의무감에 영화를 찍으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보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민세

'개인적인 기록'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어쩌면 그것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하나의 계기였는가. 영화 대학에 진학하였는데 어렸을 때부터 영화에 대한 어떤 애정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신동민

영화를 보는 것은 좋아했다. 그런데 고전 영화라든가,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영화라든가, 꼭 봐야 한다고 말하는 그런 영화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아무것도 몰랐다. 어렸을 때는 시골에 살아서 영화든 만화든 비디오 방에서 비디오를 구해서 봤고 비디오 방이 없어진 뒤에는 인터넷이나 DVD로 봤다. 오히려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본 적은 많지 않다.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극장을 태어나서 처음 가봤다. 그때 봤던 영화가 <신기전>이었다. 그 뒤로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극장을 열 번도 안 갔을 거다.

그러다 재수를 하게 되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킬링 타임으로 봐왔던 영화나 드라마들에서 배우가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 같다. 영화감독이라는 사람은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배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화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했다. 근데 가보니까 연기는 안 하고 글을 쓰라고 하고, 영화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더라. (웃음) 알고 보니까 영화 연출 학원이었던 건데. 그땐 정말 소심해서 학원에다 안 다닌다는 말을 못 하고 계속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행인 것 같다. 연기는 못 했을 것 같고. 그래서 유년 시절 극장에 대한 판타지는 없다. 부모님과 극장에 간 것도 GV를 다니면서가 처음이었다.

김민세

신기한 지점인 것 같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를 보면서 극장의 체험을 느끼는 것보다는 왠지 모르게 하나의 홈비디오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라운관 티브이에서 틀어질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마지막에 캠코더로 촬영된 장면도 그런 생각을 더한 것 같다.

신동민

아무래도 극장에서 본 영화보다 집에서 본 영화가 훨씬 많아서 그런 게 아닐까. (웃음)

 

영화 <당신에 대하여> ⓒ 서울독립영화제
영화 <당신에 대하여> ⓒ 서울독립영화제

김민세

장편 외에 2021년에 <당신에 대하여>라는 단편도 제작이 되었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느껴진다.

신동민

2020년에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를 편집하면서 동시에 작업하던 영화였다. 장르를 뭐라고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겉으로 표현되기에는 실험 영화로 구분이 되는 것 같다. 근데 사실 실험 영화는 실험을 해야 실험 영환데 나는 이 영화가 실험을 하고 있거나 앞장서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 이야기를 보통의 극영화의 방식과는 다르게 풀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았던 장소의 이미지 위에 어머니가 해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내가 직접 내레이션을 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진행했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편집을 시작하기 직전에 집에 있던 캠코더를 발견했었다. 이게 뭐지 하고 보니까 옛날에 아버지가 우리 가족들을 담았던 영상이 있더라.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그 영상이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남겨준 편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 6mm 캠코더로 우리가 살던 동네들, 내가 어머니와 영화를 찍었던 장소들을 찍었다. 내가 영화를 찍었던 장소는 영화를 찍으면서 나와 어머니가 공유한 공간이기도 하므로 대부분 내가 살았던 곳을 찍었다고 말할 수 있다. 처음에는 집에서 발견한 그 캠코더로 작업을 하다가 나중에 고장이 나서 비슷한 기종과 연식의 캠코더를 구해서 촬영했다.

영화의 앞부분이 이런 식이고 뒷부분은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와 비슷한 방식이다. 이 영화의 주연이었던 신정웅 배우가 다시 출연을 하는데, 당시 신정웅 배우가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던 이야기들을 4~5컷 정도로 극영화의 방식으로 풀어냈다. 그렇게 해서 총 30분 정도의 분량으로 완성이 되었다. 보통 스토리라고 하면 시간순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것을 말하지 않나. 물론 각색한 지점들은 있으나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와 <당신에 대하여> 모두 그때의 주변 상황들에 따라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장선상 위에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민세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도 마찬가지로 실험 영화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극영화의 범주 안에서는 실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들이 존재한다. 영화로 하는 실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동민

사실 그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다. 내가 실험을 하고자 영화를 찍은 것도 아니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일반적이지 않은 구조 때문에 누군가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좁히거나 확장시킬 수 있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기획한 것은 아니다. 영화를 찍다 보니까 각 챕터마다 다른 지점이 있었던 것이고, 어떻게 보면 운이 좋게도 영화 안에서 변화한 부분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한 내 생각들과 일치하기도 한 것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화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고, 그 변화가 한 영화 안에서 삐걱대는 모습들과 달라지는 시선들을 만들어 낸 것 같다. 내가 그때 가지고 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다 보니까 그렇게 표현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를 찍을 때마다 어머니와의 관계 또한 계속 변화하지 않겠나. 이야기를 써 내려갈 때도 '이렇게 해야지'라는 결심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내가 좀 멍청해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웃음) 그때 있었던 것들을 충실히 하다 보니까 이렇게 진행이 된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은 확실히 있었다. 제작 과정을 걸쳐서 어머니를 연기한 전문 배우와 작업을 하고 배우가 된 어머니와도 작업을 했던 셈인데, 그 둘 모두가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전문 배우와 작업했던 것이 어머니에 대한 착각과 오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어머니와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의 시발점이었다. 그런데 촬영과 편집을 마치고 한참이 지나고 나니까 어머니를 연기했던 배우도 어머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다고 배우가 된 어머니 또한 마냥 어머니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 어머니도 어머니를 연기한 거니까. '어머니이기도 하면서 아니기도 하다'는 양면의 생각들이 떠올랐다. 제작 당시에 어머니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형식적인 측면이든 윤리적인 측면이든 고민을 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 양면적인 두 가지 가능성이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부분들이 실험적이라고 이야기되는 것 같다.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 모쿠슈라

김민세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치밀한 영화적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배우가 영화에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연기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저 상황에서 감독은 어떻게 연기 디렉팅을 했을지 계속 궁금해지는 영화였다.

특히, 3부에서 진짜 어머니와 배우가 연기했던 어머니가 만나는 장면은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기이한 장면 중 하나이다. 따지고 보면 배우의 컨티뉴이티(continuity)가 파괴되는 셈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스토리보드를 그리고 현장에서 영화를 찍을 때까지, 소위 말해 옥에 티를 방지하기 위해 컨티뉴이티를 파악하고 오류를 잡아내는데 시간을 들이곤 하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이 파괴된 컨티뉴이티가 엄마를 향한 진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진심을 담아내는 과정에서 컨티뉴이티는 잠깐 미뤄두어도 되겠구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동민

이야기 나온 장면에 좀 더 말을 덧붙이자면. 그 장면을 그렇게 찍고 싶었던 다양한 이유가 있다. 2부에서 어머니 역으로 출연하신 노윤정 배우가 3부에서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는 실제 어머니와 만나는 것으로 장면을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사실 노윤정 배우가 아니라 다른 배우를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근데 전부터 개인적으로 노윤정 배우를 내 이전 영화에서 어머니를 연기한 사람으로서 어머니에게 소개를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고 배우도 바쁠 텐데 큰 이유도 없이 어머니와 술자리를 만들어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영화 안에서 둘을 만나게 하였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1부를 촬영할 당시에는 어머니가 노래방에서 일을 했는데 3부를 촬영할 때 그 일을 관두고 실제로 상조 일을 하게 되었다. 촬영한 시기는 2부, 1부, 3부 순이다. 그때 노래방을 새로 운영하게 된 사람과 어머니가 노래방에서 함께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어머니와 비슷한 또래와 같은 성별의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삶과 비슷한 일들을 겪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을 뭉뚱그려서 보는 것일 수도 있는데. 그 대화를 듣고 그 둘이 50대 여성으로서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고 같은 고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3부의 상대역을 전혀 다른 배우로 섭외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같이 영화를 찍었던 노윤정 배우로 쓰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를 연기해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노윤정 배우가 3부를 찍을 당시에 와서는 어머니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고 어머니의 역사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김민세

어머니를 둘러싼 관계들과 어머니에게 해주고 싶었던 바람들이 영화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되는가.

신동민

그렇게 말하니까 효자인 척하는 것 같은데. (웃음) 어머니를 위해서 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어서 그렇게 한 것 같다. 내가 영화 안에서 보고 싶은 것을 본 거다.

김민세

계속해서 어머니와 함께 가족을 소재로 한 영화를 찍어왔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가 다루고 있는 가족의 인상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

사실 최근 많은 한국 독립 영화들이 가족을 다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들이 가족에 대해 가진 태도 중 하나는 가족을 하나의 개념으로 접근하고 어떠한 상을 만들어내려는 것에 있다. 그런데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가족이라는 개념 안에 갇히지 않고 인간 대 인간의 관계로서 어머니와 아들을 그려내고 있다고 느꼈다. 평범한 어머니와 아들의 일상적인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자세히 보면 일반적으로 영화가 다루는 가족과는 다른 느낌이다. 관계를 포착하고 응시하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신동민

감사하다. 사실 내가 가족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나에게 왜 가족 영화를 만드는지에 대해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그것을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 고민 끝에 다다른 결과는 내가 재능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웃음)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서 지금 당장은 이렇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주위에 있는 것들을 보고 느끼는 방식으로 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가족 영화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것 같다. 그 당시 영화를 찍고 있었던 순간에 어머니와 다투거나 하는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내가 그때 사기를 당했다고 한다면 사기와 관련된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까.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 모쿠슈라

김민세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단편으로 찍었던 작품들을 추후에 장편으로 완성한 영화다. 많은 단편 영화 작업은 장편으로 넘어가기 위한 기회를 만들기 위한 것, 또는 장편 이전에 스스로 단련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는 단편이나 장편이라고 말하기에 특이한 지점이 있다. 단편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신동민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어 조심스러워지는 주제 같다. 사실상 장편과 단편에 딱 떨어지는 기준은 없지 않나. 영화제마다, 국가마다 장편과 단편을 나누는 기준도 다를 것이고. 그리고 장편만의 리듬이 있다고 얘기하지만, 그것도 작품마다 제각각 다를 것이다. 2시간, 1시간, 1시간 반, 심지어 9시간 분량의 장편 영화도 있으니까. 그래서 딱 잘라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장편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먼저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것이고, 훨씬 더 많은 힘과 체력이 들어간다. 지금 편집 중인 작업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 반면 단편 작업을 할 때면 장편보다는 부담이 적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단편 작업이 장편으로 넘어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었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지금은 나도 데뷔했지만 아직도 영화감독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계속한다. 고정적인 수입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보니까. 그런 면에 있어서 단편 영화는 개봉을 해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투자를 한만큼 회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단편 영화도 많게는 천만 원 이천만 원 들어가는데. 이런 구조가 있기에 단편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장편으로 넘어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외국에서는 단편 영화만 찍으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작업을 이어 나가는 감독들도 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단편 영화로 어느 정도의 수익을 얻는 요소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김민세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가 제작되던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용인대에서 지도교수를 맡았던 장건재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은 작품인데 학부 시절부터 대학에서 지도를 받았던 것인가.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신동민

전주영화제에서 <잠 못 드는 밤>을 보고 처음으로 장건재 감독을 알게 되었고, 그 후에 용인대에서 지도교수와 제자로 만났다.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의 3부 '희망을 찾아서'의 지도교수였다. 그리고 휴학 시기 <달이 지는 밤>에 스크립터로 참여하면서 많이 가까워졌다.

사실 세 단편을 합치는 기획 자체는 '희망을 찾아서'를 만들기 전부터 얘기가 나왔었다. '희망에 찾아서'의 지도를 받으면서 그 전에 찍었던 1부 '군산행'과 2부 '태평 산부인과'를 보여드리니까 이번에 찍는 단편이랑 같이 합쳐보면 어떠냐고 제안해주셨다. 그 당시에는 무산이 되었지만 <달이 지는 밤> 촬영이 끝나고 다시 얘기가 나오면서 제대로 해보게 되었다. 2019년 12월쯤이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장건재 감독의 제작 방식을 봐오면서 배우들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들과 자세가 가장 와 닿았던 것 같다. 물론 그것은 너무나 당연해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은 장건재 감독과 작업을 하면서 깨달았다. 영화를 찍는다는 것도 결국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라는 것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김민세

완성된 시나리오가 있음에도 즉흥적인 연기 연출을 하였다. 현장에서 즉흥성을 발휘하는 데에 있어서 갖고 있는 태도나 기준이 있는가. 또는 이를 위해서 현장 환경은 어떻게 조율하는가.

신동민

특별한 노하우는 아직 없는 것 같다. 물론 배우가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내 어머니는 전문 배우가 아니다 보니까 카메라를 의식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 많은 스탭들을 불편해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전문 배우들도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겠지만. 그런데 결국 중요한 것은 감독이 배우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신호들을 주고, 그것에 대해 다시 물음을 던지면서 관계를 맺는 순간들인 것 같다. 듣기가 중심에 있긴 하지만 듣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느끼게 하는 것, 전달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누군가에겐 쇼맨십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그 피드백을 통해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은 사실일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다 하고 싶은 대로 한 것 같긴 하다. (웃음) 배우들에게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과정은 꼭 있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 나만의 재료들을 갖고 있다가 배우들에게 이런 건 어떠냐고 다시 제안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배우가 느끼는 것 사이의 접합점을 찾으려고 하였다. 생각해보면 연출부로 일하면서 봐왔던 장건재 감독도 항상 배우들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 모쿠슈라

김민세

적은 인원으로 촬영 스탭을 꾸린다고 알고 있다. 그것도 배우의 연기를 위해 만든 하나의 환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동민

환경이라기보다는 돈이 없어서 그렇다. (웃음) 나, 촬영, 프로듀서, 이렇게 셋이서 촬영을 했다. 내가 동시녹음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프로듀서가 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끔씩은 촬영도 내가 맡아서 했다. 이것이 지금 내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방식인 것 같다. 만약 내가 스탭들을 더 많이 모으고 제대로 준비를 한다면 영화를 6년 뒤에나 찍을 수 있지 않았을까. 물론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그래도 그 나쁜 점이 내 영화의 단점으로 부각되지는 않도록 노력했다.

김민세

어머니를 배우로 출연시키는 것에 대해서 결심이 있었을 것 같다. 단순히 비전문 배우를 쓰겠다는 선택과는 다르지 않나.

신동민

2부 '태평 산부인과'를 찍고 나서 영화감독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영화를 찍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것으로 영화를 생각하고 있다. 마치 신의 위치에 있는 듯이 내가 생각하는 무언가를 편하게 만들어내려는 욕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감독의 위치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자만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도 했고. 예술가가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행위 자체에 중요도를 높이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감독이 해야 되는 것은 무언가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것을 수집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로 어머니에 대한 영화를 찍으려면 어머니와 함께 작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앞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같이 가는 것이지 그것들을 조종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다. 물론 그렇게도 좋은 영화들은 만들어질 수 있다. 근데 내가 갖고 있는 기질은 이런 것 같다.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많은 조종을 했겠지만. (웃음)

그래서 어머니가 일하는 노래방에 가서 '영화를 찍어야 되는데 돈이 없어서 배우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던 말로 시작이 되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저런 생각의 과정들이 있었지만, 배우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는 말이라고 판단했다. 그냥 도와달라고 한 거다. 처음에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시다가 나중에는 아들이 해달라는데 해줘야지 하시더라.

김민세

전문 배우를 기용한 2부가 극영화에 가깝다고 한다면 3부는 다큐멘터리처럼 진행된다. 다큐멘터리를 찍어볼 생각을 해본 적은 있는가. 혹은 극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신동민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큐멘터리를 찍을 생각은 전혀 단 하나도 없었다. 어머니 그 자체를 찍는 게 목적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어머니 그 자체를 담아내는 것이 나의 속마음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실제로 다큐멘터리로 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카메라로 계속해서 누군가를 바라봐야 하고. 그러기엔 어머니와 나 사이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용기라는 단어를 꺼낸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봐왔고 추구하는 것들에 있어서 극영화에 더 재미를 느꼈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지금은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겠지만. 다큐멘터리를 찍고자 하는 관심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만약에 있었다고 한들 내가 어떤 방법으로 이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더 오랜 시간 고민하지 않았을까. 다큐멘터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왕빙의 <미세스 팡>과 차이밍량의 <너의 얼굴>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었다. 사실상 3부를 찍으면서 가장 중요시 했던 영화가 그 두 영화였다.

김민세

어머니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픽션이 필요했다고 보아도 되는가.

신동민

그렇다. 어떤 벽이 필요했다. 만약에 그 벽이 없었으면 영화를 안 찍었을 수도 있다. 문제없이 잘 산다는 거니까.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도 있는데. 영화를 안 찍는 것이 관계에 있어서 제일 나을 수도 있다. (웃음) 영화를 안 찍는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벌어지지 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거니까. 계속해서 그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은 어떤 문제가 있고 삐거덕거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근데 내가 가진 편견일 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는 대상에 뛰어 들어가서 그 사람이 살고 있는 범위를 침입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 모쿠슈라

김민세

지금까지 어머니 배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신정웅 배우와는 어떻게 작업하게 되었나.

신동민

학교 지인에게 소개를 받았다. 배우의 실제 성격이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차분하고 조용하다. 그 당시에 다른 사람들과는 나의 관심사와 생각들을 나눴지만 어머니에 있어서는 조금 더 퉁명스럽게 대했던 지점들이 있었다. 신정웅 배우의 묵묵한 모습들이 내가 생각했던 그런 아들과 어머니의 관계를 표현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묵묵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상대방의 말을 듣는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신중함에서 내가 생각한 아들을 보았던 것 같다.

김민세

생각해보니 영화에서 신정웅 배우는 계속 듣고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오지 않나. 반면 어머니는 항상 잠을 자고 있거나 누워있다. 듣는 입장에 있는 아들의 실루엣과 누워 있는 어머니의 실루엣이 주는 질감이 인상적이게 다가왔다.

신동민

실제로 어머니가 암 투병 생활을 해왔었고, 지금은 완치를 하셨지만 합병증으로 약을 많이 드신다.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시다. 그래서 앉아있는 것보다 누워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셨다. 어머니와 무언가를 함께 하질 않다 보니까 같이 있는 시간은 밥을 먹을 때, 또는 어머니의 말을 내가 듣고 있을 때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어머니와 공유하고 있는 접점의 시간일 텐데. 그런 순간들을 영화에 담다 보니까 누워서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등장하게 되었다.

김민세

신정웅 배우님과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에 이어서 <당신에 대하여>까지 작업을 해오셨다. 자전적인 부분이 들어간 캐릭터인 만큼 페르소나로 봐도 되는가.

신동민

기회가 되면 또 함께 해보고 싶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이번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일부러 피했던 것 같다. 추후에 같이 하게 된다면 아들 역을 맡았던 배우 역으로 신정웅 배우를 쓰지 않을까. 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신정웅 배우를 떠올렸을 때 '내가 만든 영화에 아들 역으로 출현해준 배우'라는 생각부터 든다. 그게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신정웅 배우가 아들 역을 맡아야 한다는 규칙 같은 건 없다.

누군가는 이것을 보고 전략이라고 할 수도 있다. 키아로스타미 3부작이 이렇게 만들어졌지 않았나. 근데 나는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 그냥 내가 창의력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이 사람이 가장 편한 상태에서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사람의 상황 안에서 이야기들을 써보고 섭외를 부탁하는 것은 어떨까. 만약 정말로 신정웅 배우가 '내가 만든 영화에 아들 역으로 출연해준 배우' 역을 맡게 된다면 그 사람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 역할은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배역이 아닐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한다고? 내가 더 잘할 거 같은데.' (웃음) 그렇게 스스로가 믿을 수 있는 상황을 이용하는 것이 나의 방식인 것 같다. 전략적이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이 내가 계속해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김민세

영화에서 내용, 형식, 배우 중 어떤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물론 그 셋이 완벽하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동민

세 개가 결국은 하나가 되는 지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 세 가지를 어떤 비율로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토마토스파게티를 보면 소스가 있고 면이 있는데 그 각각의 재료는 빠질 수 없지 않나. 그 각각의 중요도를 나눈다면 결과를 보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 같다. 우선은 영화를 찍어야 알 수 있다.

김민세

자신의 필름 메이킹에 있어서 기준이자 중심이 되는 감독이나 작품이 있는가.

신동민

예전에는 <사랑에 빠진 것처럼>, <잠 못 드는 밤> 같은 영화들을 보면서 진짜는 무엇일까, 지금까지는 나는 무엇을 고민했을까 하며 많은 생각을 하곤 했다. 근데 최근에 와서는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봐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직 찾고 있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윤리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없을까를 따지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시대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래서 그 답을 찾는 기준을 스스로 정해두려고 하지 않고 그 순간순간에 집중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피해를 받는 사람은 없을지, 기분이 나쁘고 불편하지는 않을지 혼자서의 기준을 계속해서 쌓아나간다. 물론 장건재, 차이밍량, 키아로스타미, 왕빙 등, 정말 좋아하는 감독들이고 그들로부터 많이 배운다. 근데 내가 찍는 것들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와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에 내 밖의 다른 기준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느낀다.

영화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 모쿠슈라

김민세

영화 안의 윤리적인 기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신동민

영화에는 욕망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결국은 내 기준안에서 선택하는 것이고 그 선택은 매우 많다.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씬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이며, 쇼트는 어떻게 배치할 것이며, 쇼트 안에는 미술의 선택이 필요하고, 배우들은 누가 등장하고, 누가 얼마큼 걸치고, 쇼트의 사이즈, 앵글 등 모든 것들이 감독이 바라보고 있는 선택이다. 그런 선택들이 모여서 최종적으로 어떻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항상 고민하는 것은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것을 타인이 마주하게 되었을 때의 심정을 비교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머니와 아들이 대화를 하는 장면을 찍을 때, 나는 이런 대사를 하면 대사의 의도가 더 잘 드러날 것 같다고 요구를 하면 어머니는 '나라면 그렇게 말 안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잖아.'라고 대답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과 배우가 원하는 것이 서로 반하거나, 혹은 배우가 원하는 것이 있는데 나는 그것보다 더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이다. 그 사이를 조율하려 노력한다.

현장에서 배우들의 말을 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우의 말을 들으면 배우가 어디까지 이야기할 수 있고, 어떤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파악할 수가 있다. 듣기 전에는 그 말들이 어떠한 개인적인 아픔이 될 수 있고 상처가 될 수 있는 것을 알 수 없다. 배우에게 '이렇게 말해도 남들은 신경 안 써'라는 식으로 요구하는 것은 폭력적이지 않나. 그래서 배우가 어떤 대사를 말하기 싫다면 어떻게 하면 배우 스스로가 그 대사에 납득할 수 있을지 계속해서 조정을 해나간다.

카메라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 또한 윤리적인 측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인물의 앞모습을 먼저 비추는 것이 옳을지, 뒷모습을 먼저 비추는 것이 옳을지, 이런 것도 결국은 인물에 대한 태도이다. 예를 들어 3부에서 등장하는 삼촌은 실제로 나의 삼촌인데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연기 경험이 없다. 삼촌이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삼촌은 뒷모습, 어머니는 앞모습이 보이도록 촬영했다. 이때도 삼촌의 앞모습을 찍지 않았던 이유는 삼촌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배우가 무슨 말을 하느냐 안 하느냐를 떠나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이 사람이 부담스럽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편하게 해나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했을 때. 그것은 결국 카메라의 사이즈, 위치, 조명, 스태프의 수 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계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기준이라기보다는 매번 달라지는 것이고 어딘가에서 가져올 수 없는 것이다.

김민세

그런 상황 안에서 연기하는 것은 배우이지만 그것을 담고 기록하고 연기 디렉팅을 하는 것은 결국 감독이다. 본인의 욕망과 배우의 바람이 충돌할 때, 이것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은 없는가. 돌이켜보았을 때 후회가 들 수도 있고 오히려 확신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신동민

비전문 배우와의 작업, 즉흥적인 측면이 더해져서 그런 생각들이 펼쳐지는 것 같다.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근데 최근에 돌이켜 생각이 드는 건. 내가 극영화를 찍고, 전문 배우와 작업을 하고, 정해진 시나리오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쇼트를 찍는다고 하더라도 불안한 건 똑같을 것 같다. 그것을 누군가는 떨쳐버릴 수도 있지만, 나에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고자 하는 것들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불안은 내가 잘하고 있더라도 존재할 것이다.

전문 배우와 비전문 배우에는 결국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연기 디렉팅의 자세가 변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바뀌는 것이지 전문 배우와 비전문 배우가 그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최근에 깨달았다. 사실 오히려 비전문 배우랑 작업을 하면 조금 더 편한 점이 있다. (웃음)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더 편한 마음으로 부탁을 할 수 있다. 그들은 보통 그들의 삶을 살고 있고 나는 그들의 삶을 바탕으로 하는 연기를 부탁하는 편이라서 요구할 것이 딱히 없다. 요구하는 순간 헝클어진다. 그래서 본인들이 살아가던 환경에서 하던 대로 해달라고 일부러 뭉뚱그려서 부탁을 한다. 반면 전문 배우와 작업할 때는 캐릭터의 전사부터 시작해 이야기를 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이 사람이 오해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렇게 굳이 따지자면 비전문 배우와 작업하는 것이 편하다. 왜냐하면 책임감 없이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웃음)

김민세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다음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이전에 밝혔다. 당시에 언급했던 그 작품이 맞는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신동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어머니랑 아버지의 성묘하러 가는 이야기를 찍었다. 예전 인터뷰할 당시에는 한 장면만 생각해두고 있었다. 작년 말부터 살을 붙이다 보니 지금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처음부터 아빠를 영화에 나오게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다.

올해 안으로는 완성하고 싶다. 그렇다고 영화제 일정에 맞춰서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면서 여유롭게 해야겠다는 생각 중이다.

[인터뷰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모쿠슈라

바람아 안개를 걷어가다오
Mom’s Song
감독
신동민

 

출연
김혜정
신정웅
노윤정

 

배급 모쿠슈라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73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1.10.28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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