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새로운 파도를 맞이하는 창작자의 자세
[Interview] 새로운 파도를 맞이하는 창작자의 자세
  • 이지영
  • 승인 2022.09.13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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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올해의 큐레이터 '조영욱' 영화음악감독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뒤돌아보며 걷는 창작자가 있는 한편, 앞에 놓인 길을 성큼성큼 걸어가는 창작자가 있다. 올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만난 조영욱 영화음악감독은 본인이 후자라고 말한다. 장르와 예술·상업 영화를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앞으로 달려온 그의 음악 작업은,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 영화사의 음악적인 DNA가 되었다. <접속>(1997), <클래식>(2003), <신세계>(2012)와 같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들부터, 오래 작업을 함께 이어온 박찬욱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에는 그의 노고가 들어가 있다.

코아르CoAR에서는 조영욱 음악감독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돌아보며, 위와 같은 구체적인 작업 방식뿐만 아니라 그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음악적 취향, 창작자로서의 철학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특히, 최근작 중에서 현대 음악과 영화 음악을 접목하였다는 <헤어질 결심>(2021)과, <헌트>(2022)와 <수리남>(2022) 같은 대규모 스케일의 액션 영화에서 음악 작업을 어떻게 이끌었는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헤어질 결심>의 높은 산처럼 꼿꼿한 음악 감독으로서의 원칙과 철학, 늘 새로운 파도를 맞이하는 창작자의 자세와 일에 대한 사랑을 들을 수 있었다.

 

조영욱 영화음악감독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지영

필모그래피를 보니, 그동안 무수히 많은 영화 음악 작업들을 쉼 없이 이어왔다. 끊이지 않는 창조성의 원천은 무엇인가. 특히, 기억에 남았던 작업이 있었는지.

조영욱

영화와 음악을 사랑하고, 그 작업을 즐기는 것이 크다. 이 작업을 꾸준히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루틴한 일이 아니고 할 때마다 새롭게 시작하니까 지겹지 않다. 체력만 버텨준다면.

아무래도 데뷔작인 <접속>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왔으니, <접속>에 대한 빚이 늘 있다. 하지만 작업을 하다 보면 옛날 것보다는 최근 작업에 애정이 가게 마련이다. 현재의 내가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간중간 버팀목이 되어준 <올드보이>(2003) 같은 작업들이 있지만 그래도 최근에 한 것들이 가장 만족스럽다. 왜냐하면 세월이 지나면 항상 지난 작업의 허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타인은 '이 사람의 최고작이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창작하는 본인은 최근의 작업이 만족스러울 것이다. 아마도 모든 창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이지영

<올드보이>처럼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자신을 다시 뛰어넘는 일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다는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그동안 영화와 음악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가 수십 년에 걸쳐서 조금씩 발전해왔을 것 같다. 초반 작업과 지금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조영욱

초반에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으니까, 유행에 좀 더 민감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면이 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그걸 더 발전시키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음악 스타일도 옛날과 지금이 좀 다르다. 

또 하나는, 예전에는 영화 안에서 음악이 돋보이기를 원했지만, 지금은 어떻게 더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서 함께 시너지를 일으킬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서 음악 스타일도 예전보다 변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아무래도 실력이 조금씩 늘게 되는 것도 있다.

이지영

음악을 삽입하지 않는 것을 결정하는 것도 음악 감독의 일이라고 들었다. 이번 <헤어질 결심>(2021)을 보면서 음악이 없는 데도 숨소리라든지, 음향 효과가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많았다.

조영욱

이것도 하면서 실력이 늘어난다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음악을 돋보이게 넣으려고 치중했다면, 이제는 효과와 음악의 분배를 중시한다. 감독한테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결국 최종 결정은 감독이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장면에서 음악보다는 숨소리와 호흡소리를 부각시키는 게 좋지 않겠냐고 제안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감독이 음악으로 감정을 잡아주는 게 좋다고 할 때도 있다. 이런 의견 충돌이 생기면 서로 논리적으로 대화를 한다. 감독이 설득되면 그렇게 진행을 하고, 그래도 음악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최종 결정은 감독이 내린다.

이지영

영화에서 음악이 너무 돋보이지 않으면서 최적의 조화를 이루는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역으로, 음악이 돋보이는 영화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조영욱

마침 뮤지컬 영화 제안이 하나 오기는 했는데, 개인적으로 끌리지는 않는다. 개인적인 취향으로는음악이 주인공인 것보다 화면과 음악의 조화를 만드는 걸 더 즐기는 편이다. 모두가 상상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라 되려 엉뚱한 음악을 넣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든지, 이런 예측 불가능성에 좀더 희열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뮤지컬 영화를 보다 보면, 공연장에서 충분히 볼 수 있는데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한다. 물론 <셸부르의 우산>이라든지, 빈센트 미넬리의 유명한 뮤지컬 영화들, 그리고 90년대 <물랑 루즈> 같은 뮤지컬 영화는 훌륭하지만, 굳이 내가 직접 작업을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은 든다. 아티스트에 대한 영화들도 흥미는 그다지 못 느끼고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취향인 것 같다.

 

영화 <올드보이> ⓒ 쇼이스트 , CJ ENM

이지영

작곡가들로 이뤄진 팀을 이끌었다고 들었다. 작곡에서 협업한다는 게 일반인 입장에서는 잘 상상이 안 간다. 추상적일 것 같기도 하고, 음악적인 의견 대립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개인 작업과 다른 점은.

조영욱

<올드보이> 때부터 팀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은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분업을 하자는 의미로 시작한 것이었는데, 하다 보니 팀으로 일하는 방식이 나한테는 잘 맞았다. 팀으로 일할 때는, 먼저 시나리오를 가지고 와서 다 같이 읽고 회의를 한다. 각자가 느끼는 시나리오의 방향, 각자 이 영화의 음악이 어땠으면 좋겠다, 주제음악은 어땠으면 좋겠다, 이런 의견을 교환한다. 그 의견들을 내가 취합을 한다. 이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고, 아웃라인을 잡는다.

이지영

음악의 아웃라인을 잡는다는 게 아직은 추상적으로 느껴지는데 어떤 방식으로 표현을 하는 것인지 부연해준다면.

조영욱

예를 들면, 올해 <헌트>라는 영화를 했고, 9월 9일 넷플릭스에 올라갈 <수리남>이라는 영화를 했다. 이 2개로 예시를 들면, 둘 다 스릴러 풍인데 음악은 다른 지점이 있다. <헌트>는 사이즈 때문에 대규모 오케스트라를 쓰고 진중한 영화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의 저음부를 더 부각시켰다. <수리남>의 경우는 황정민과 하정우의 캐릭터가 둘 다 튀는 편이다. 저음보다는 좀 더 고음을, 하이 스트링으로 내자고 제안한다. 묵직한 소리보다는 통통 튀는 소리, 하프 같은 악기를 좀 더 많이 쓰고 스트링에서는 하이 스트링 쪽을 부각시켰다. 템포로 치면, 이 영화는 관객들이 보면서 지루하지 않게 느끼는 게 중요하니까 약간은 빠른 템포로 가자든가. 보통은 이런 식으로 작업한다.

이지영

이렇게 설명을 들으니 잘 와 닿는다. <헌트> 얘기가 나온 김에, 최근에 언론 시사회와 관객 반응이 뜨거운데 이정재 감독의 데뷔작에서 작업을 함께 했다. 첫 호흡을 맞춘 경험이 궁금하다.

조영욱

이정재 감독과 작업하는 것은 굉장히 즐거웠다. <헌트> 시나리오를 몇 년 전에 한번 본 적 있다. 그때는 이게 영화로 만들어지기 힘들겠다 싶었는데, 어느 날 사나이 필름에서 <헌트> 시나리오를 받아 다시 읽었더니 아주 잘 고쳤다고 느꼈다. 한 시나리오를 4년 동안 붙들고 있었다고 하는데 원래 시나리오에서 이 정도로 끌어올렸다는 것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감독하고는 <신세계>(2013)를 같이 해서 서로 안면도 있다 보니 부담 없이 일을 했다. 이정재 감독은 굉장히 꼼꼼하고 디테일하고, 집요하다. 이것이 감독으로서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 ⓒ CJ ENM

이지영

<헤어질 결심>에는 다양한 층위의 음악이 나온다. 할머니 휴대폰에서도 흘러나오는 음악, 해준이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 차에서 들리는 음악, 그리고 일상 속에서 문자 메시지의 타자 치는 소리도 타악기의 소리 같이 들렸는데 이런 다양한 층위의 작업이 재미있었을 것 같다. 일상생활에서 온 소리들인데 모든 소리가 음악적으로 들렸다.

조영욱

화면 속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박찬욱 감독이 시나리오 단계부터 정해서, 내가 어떻게 할 수는 없는 것들이었다. 그 외 음악들은, 가령 <안개>나 말러 교향곡 중에서 스코어처럼 쓰였던 장면에서는 이런 식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이 장면에서 <안개>를 반복해서 틀어서 더 부각하자'라든가, 말러 교향곡도 실제 장면에서 스코어 형식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두 사람의 심리 상태를 표현해주는 방향으로 제안을 했다.

이지영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역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각본집을 읽으면서, 실제 영화에서 달라지는 부분들을 발견했다. 특히 해준의 문자 타자 소리와 목관 소리가 어우러지다가 절묘하게 끊기는, 유머러스하게 편집된 부분이 있다. 이 부분도 음악감독의 역량이 개입한 것인지.

조영욱

그런 것들은 감독하고 음악을 고르고, 편집에 맞춰서 음악을 수정한다. 그리고 화면의 박자에 음악의 흐름을 맞춘다. 이런 것은 영화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적이다. 영화음악이 다른 장르하고 다른 점이 있다면, 변화가 많다는 것이다. 인물의 감정이 기쁘다가도 갑자기 슬퍼지고, 그런 부분을 잘해야 한다. 영화음악을 한다면 필수적인 역량이다.

이지영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을 로맨틱 코미디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설명할 수 없이 복잡한 이야기다. 이럴 땐 음악이 갖는 스탠스가 모호해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 작업할 때 어렵지는 않았나.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분석한 과정이 궁금한데.

조영욱

처음 <헤어질 결심>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이 시나리오는 상업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박 감독에게 너무 재밌다고 피드백을 했고, 박 감독도 시나리오를 올렸을 때의 반응이 역대급으로 좋았다고 했다. 그런데 편집한 걸 정작 봤을 때는 박 감독이 원래 시나리오보다는 감정을 많이 눌렀던 것 같았다. 시나리오에서는 훨씬 감정이 폭발하고, 긴장되고, 사랑스럽고, 이런 묘사가 드러난다. 그래서 박 감독답게 절제되고 담백하게 만들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작업할 때 특이했다. 멜로디가 뚜렷한 음악을 사용하면 잘 안 맞았다. 멜로스러운 것을 써도 이상하고. 그래서 이 영화 중에 멜로디가 중심이 된 음악이 사찰에서의 씬하고 엔딩씬 단 2개밖에 없다. 박 감독하고 둘이서 음악을 고르다가, 무슨 음악을 해도 잘 안 붙는다며 고민을 했다. 결론적으로 나온 게 현재의 음악이다.

이지영

박찬욱 감독은 디테일에 누구보다 강할 것 같다. 아니면 훌륭한 감독의 미덕 같은 것일지.

조영욱

훌륭한 감독의 미덕은 다른 사람의 조언을 잘 듣고 잘 판단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는 한 씬에서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곰곰이 잘 듣는다. 그리고 판단을 해서, 의견이 좋다고 생각하면 누가 제시했든 간에 그 의견을 받아들인다. 고집불통으로 대하는 감독들도 가끔 있는데, 박 감독의 뛰어난 장점은 다른 사람의 것을 다 자기 것으로 흡수해버린다. 그럼 자기 것이 된다.

이지영

<헤어질 결심>은 꼭 사운드가 좋은 상영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요즘 OTT의 시대가 되면서 집에서 컴퓨터로 영화를 더 자주 보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런 시대 흐름 속에서 극장에서 영화 보기를 고수하는 편인가.

조영욱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음악뿐만 아니라 호흡 등 음향효과도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기 때문에 사운드가 좋은 곳에서 보면 훨씬 재미있다. 극장용으로 만든 영화들은 극장에서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제에서 올해의 큐레이터를 하면서도 느꼈다. <겟 카터>를 DVD로 한 3번 정도 봤지만 이번에 극장에서 보니까 달랐다. <서스페리아>도 어렸을 때 본 영화인데, 극장에서 보니 정말 놀라웠다. 색깔 표현이 특히. 모니터가 담기에 부족한 부분이 있고, 극장에서 보면 감독이 의도했던 것을 모두 볼 수 있다.

 

 

영화 <헤어질 결심> ⓒ CJ ENM

이지영

새로운 음악에 자신을 어떻게 노출하는지 궁금하다. 특별히 음악을 찾는 소스가 있는지.

조영욱

외국에서 레코딩을 할 때마다 재즈나 클래식 콘서트들은 자주 간다. 그리고 원래부터 음반 수집광이어서 계속 새로운 음반을 찾아서 듣는다. 보통은 사람이 자기가 듣던 것만 찾아서 듣기 마련인데, 내 경우는 CD를 구입할 때 내가 안 들어본 음악 같으면 구매한다. 최근에는 현대 음악들을 집중적으로 듣고 있다.

이지영

클래식과 현대 음악에 조예가 깊은 것 같다. 기억에 남는 클래식 콘서트도 있었나.

조영욱

베를린에서 레코딩을 할 때는 항상 베를린 필 콘서트를 자주 갔다. 한번은 시간을 일부러 내서 함부르크의 엘프 필하모니를 들으러 갔다. 굉장히 좋은 홀이 있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이 지휘한 바르토크 <현을 위한 오케스트라(Divertimento for String Orchestra Sz.113)>라든지, 크리스토프 에셴바흐(Christoph Eschenbach)가 지휘하는 슈만 공연도 기억에 남는다. 이반 피셔의(Ivan Fischer)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연주도 기억에 남는다.

이지영

최근에 가장 많이 듣고 있는 음악을 소개해준다면.

조영욱

개인적으로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를 좋아한다. 일반인들도 듣기에 좋은 음악이다. 다른 것들은 감상용이 아니라 공부하려고 듣는다. 일하고 상관없이, 순수하게 취미로 듣는 건 주로 재즈음악이다. 클래식 중에서는 베베른(Anton von Webern)이라는 현대음악 작곡가를 많이 듣는다. 현대 음악에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는데 영화 음악에 현대 음악을 좀 더 접목시켜보려 애쓰고 있다. <헤어질 결심>에서 그런 것들을 많이 해봤다. 개인적으로 이런 음악은 박찬욱 감독이 아니면 해볼 기회가 흔치 않다.

이지영

<올드보이>부터 <친절한 금자씨>(2005), <박쥐>(2009), 그리고 <아가씨>(2016)까지, 풍성한 현 사운드가 들리는 클래시컬하고 낭만적인 음악 취향일 것 같은데 조금은 의외다. 영화음악에 현대음악을 적용하고 싶은 이유는 이 시대에 맞는 더 모던한 음악을 하기 위함인가. 아니면 취향은 세월이 흐르면서 변한 것인지.

조영욱

이것이 좋고 나쁨의 문제라기보다는 개인 취향에 가깝다. 취향은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 변하기도 하지만, <올드 보이>같은 경우 취향의 문제는 아니었다. 좀 더 화려하고 유희적으로 이 영화를 끌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박찬욱 감독 특징이 점프 컷이 많고 이야기 스토리가 설명적이지 않다. 그런 것을 염두에 두고 음악이 스토리를 더 보완해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그때는 멜로딕한 음악을 썼다.

반면에 <헤어질 결심>은 두 사람 사이의 기묘한 분위기나 긴장감이 흐른다. 사실 로맨스라는 것은 한편으로 서로서로 관찰하는 것이다. 연인이면서도 피의자-검사로서 서로 의심도 하고. 그 기묘한 분위기에 초점을 맞추어 그 분위기를 설명해주는 음악들이었다.

이지영

언제나 영화에 적합한 선택을 내린 것 같다. 그렇다면,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된 유명한 곡들을 작업했지만,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끼거나 추천하고 싶은 사운드트랙이나 트랙 넘버가 있는지.

조영욱

한두 개가 아니라 꼽기가 쉽지 않다. 작업한 영화 중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도 있고 실패한 것도 있다. 또 칭찬받은 것도 욕을 먹은 것도 있다. 그럼에도 다 내 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사실 창작한 사람에게는 그런 차별이 없다. <올드보이>나 <클래식>, <뷰티 인사이드>같은 작업도 했는데 그것들은 OST 판매량이 엄청났다. 사실 수입도 꽤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다른 것보다 더 좋아하지는 않는다.

내 특징 중 하나는 뒤를 잘 안 돌아보는 성격이다. <올드보이>가 성공했다고 하면 빨리 떠나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과거에 잘 연연해하지 않는 편이다. 이를테면 <올드보이>가 성공했다고 해서 또 <올드보이>처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지영

마지막으로, 영화 음악의 기쁨과 괴로움에 관해 묻고 싶다. 가장 보람 있는 것과 힘든 점은 무엇인가.

조영욱

영화 음악이 재미있는 건 할 때마다 새롭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계속할 수 있다는 점이 즐겁다. 작업할 때는 항상 어떻게 새롭게 할지 고민하고, 그 안에서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기는 한다. 새로운 시도가 안 받쳐주는 영화도 있기는 하지만. 힘들 때라면, 일이 잘 안 풀릴 때다. 씬과 씬 사이에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가장 작업을 하기 힘들다. 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 음악을 할 수 없다.

[인터뷰 이지영, karenine@ccoa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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