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th SIWFF] '그 아이는 귀족' 그 슬픔이 아름다운 이유
[24th SIWFF] '그 아이는 귀족' 그 슬픔이 아름다운 이유
  • 변해빈
  • 승인 2022.09.0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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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곳에서도, 끝끝내 당신의 삶은 당신을 위해 기다린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2022)에서 멀쩡한 정신으로는 불행만 증명하며 살게 된다는 남자에게 "그 불행이 오거든 웃으며 환대하라"던 여자의 말이, 그녀 자신의 찬란한 웃음으로 되돌아왔을 때의 감동은 끝도 없었다. 애초에 그 말의 의미를 몰랐던 것이 아닌데도 <그 아이는 귀족>을 보면서 뒤늦게 상대가 조금 더 환하게 웃기를 간절히 빌어보게 될 줄은 알지 못했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고대하는 것들

하나코(카도와키 무기)가 약혼자와의 파혼을 가족에게 알린 다음, 독사진을 찍기 위해 사진기 앞에 선다. 하나코를 바라보는 가족들은 어쩐지 어수선한 채로 그녀의 파혼이 차라리 기회라고 믿는 듯하다. 오프닝을 장식한 이 장면에서 그런 기대에 에워싸인 하나코의 고요한 몸짓은 귀족 집안의 몸에 밴 태도를 넘어 슬퍼서 지친 기색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기색을 비운으로 단언하기에는 가지런한 미소가 지닌 모종의 아름다움도 함께 있다. 이 포기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고위 가문 간의 성대한 결혼이건 도처에 깔린 슬픔을 그러모을 여자의 숙명이건 우리에게 무언가를 오래도록 고대하게끔 만든다.

하나코 가문과 그녀의 남편이 될 아오키 코이치로(코라 켄고) 가문이 기대하는 것은 계층 간의 변함없는 세속적 대물림이다. 가문의 지위와 위엄을 유지하겠다는 기대 안에서 <그 아이는 귀족>의 인물들은 한없이 가혹한 인연으로 읽힌다. 관계의 중심에 선 아오키는 하나코에 관해선 모르는 것이 없고, 미키(미즈하라 키코)에 관해서는 또렷하게 알고 싶은 것이 그다지 없다. 미키와의 보이지 않는 규약은 비밀스러운 사실을 감내하는 하나코의 여로 속에 놓인다. 가문 내부의 여자와 상류 계급 외부의 여자는 그렇게 간극으로 존재한다.

하나코와 미카가 고대하는 것은 다섯 장으로 구분된 영화의 간극을 매끄럽게 잇는 낯선 이와의 싱크로율이다. 이쓰코(이시바시 시즈카)가 주선한 하나코와 미키의 회동은 두 사람의 싱크로율이 그저 사랑의 실패가 주는 처연한 비애로 관철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하나코가 아오키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정보는 미키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과 다름없는 뭉툭한 양립으로 그려진다. 두 사람은 간극의 틈을 구별하고 경계하는 시간을 아낀다. 이쓰코를 중심으로 역삼각형 배치로 포착됐던 이들은 서로의 간극을 소모하기보다 액체처럼 흘러 어린 날의 이쓰코의 깨우침대로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하나코와 미키는 누구랄 것 없이 삶의 절망과 불운은 될 수 있는 한 소거하고 언제든 무엇인가를 뒤바꿀만한 가능성을 원한다.

헤어짐의 싱크로율은 타인의 불행 대신 택한 슬픈 마음으로 가시화된다. 하나코와 미키는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 하나 상대가 느낄 새 없이 이별한다. 더군다나 두 사람의 슬픈 마음은 헤어짐의 순간에 마주한 상대에게서 느끼는 감정보다 먼 곳에서 온다. 거기에는 대학 입학을 기념하는 사진 속에서 환한 웃음을 남김없이 짓지 못했던 미키의 얼굴이 꿈처럼 되살아나는 고향의 잔상이 있고, 제 뺨을 때린 이와 그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이의 불행을 바라는 일보다 아득하게 그리운 하나코의 미소가 있다. 하나코와 미키는 그런 슬픈 시절을 가져본 적 있어서 편안하게 웃는 법을 모르는 아오키의 불행을 바랄 수 없던 걸지도 모른다. 가문의 체면으로 아이를 잃은 슬픔이 자신이 고대하던 삶이 아닐지라도, 깊은 상실을 겪은 이의 슬픔을 나누는 삶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과거의 어느 여인처럼.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당신과 나 사이에

그럼에도 <그 아이는 귀족>에서 무엇을 고대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하나코와 미키의 싱크로율이 우연을 동력 삼아 은밀하고 미약한 낌새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첫 대면과 재회는 영화를 이끄는 절대적 골격이라기보다 직선주로에서의 일부로서 하나다. 다시 말해 하나코와 미키는 서로를 위해서 혹은 상대와 비교 우위 내에서 어떤 선택에 기울지 않는다. 이들의 선택에 개입되는 대립점이 있다면, 요컨대 자기 과거와 미래이면서 자신의 기쁨과 슬픔의 문제다. 두 여인(하나코와 미키)이 기대하는 삶의 반대편에는 그들을 기다리는 두 여인(이쓰코와 리에)이 있을 뿐이다. 이때 양편의 기다림이란 날 선 염탐이나 불쾌한 내사, 무엇보다 내외부로 구별되는 계급과 위계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다. 그것은 마주 선 당신의 슬픔이 내게도 언젠가 오리라는 기쁜 믿음이며, 그런 슬픔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나날들을 고대하며 ‘언제든’ 웃어도 된다는 전언이 된다.

아오키와의 관계를 청산한 미키에게 함께 하자는 친구 리에(야마시타 리오)의 말이 “오래도록 기다렸던 것” 같은 낌새만으로도 충분한 건 상대가 그녀의 기쁨뿐 아니라 슬픔을 부정하지 않는 존재여서다. 우연히 재회한 하나코에게 불현듯 위로를 건네기로 한 미키의 낌새가 있기에, 하나코를 향한 이름 모를 아이들이 보내온 손 인사가 웃어도 된다는 외침처럼 막연한 거리를 뚫고 다가오지 않았던가. 다시금 카메라 앞에 선 미키의 웃음이 일몰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것 역시 리에의 “더 활짝 웃어”라는 말이 이들의 간극 사이를 부드럽게 흐르는 이쓰코의 연주 소리로 기꺼이 증폭될 수 있어서다.

<그 아이는 귀족>은 기다린 적 없던 절망과 비운이 ‘당신’과 ‘나’ 사이의 애틋한 웃음이 되어 되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영화다. 하나코와 아오키의 재회를 기쁘게 맞이하게 되는 건 누구도 기대하지 않던 우연한 순간에서 비롯된다. 외부의 의도가 개입된 지난 시절마저 위무하는 하나코의 웃음이 아오키의 우울한 빗물 대신 공간을 에워싸기 때문일 것이다. 비를 몰고 다닌다는 남자의 걸음은 여자의 눈부신 웃음소리를 따라 멈춘다. 그 웃음소리가 이쓰코의 연주 소리가 되어 다시 한번 인물 사이에 충만하게 흐를 때 ‘당신’과 ‘나’의 얼굴은 먼발치에서 낌새만으로 서로를 마주 보게 한다. 하나코의 눈물 고인 얼굴은 오프닝에서처럼 여전히 아름다움 속에 있다. 그녀의 아름다운 슬픔은 가문이 기대하는 삶 속의 아오키 앞에서 웃어도 된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 말은 오프닝의 마주할 상대가 없던 하나코의 얼굴 앞으로도 성큼 다가서 있을 것만 같다.

[글 변해빈, limbohb@ccoart.com]

 

ⓒ 영화 <Aristocrats>(2020) 제작위원회

그 아이는 귀족
Aristocrats
감독
소데 유키코
SODE Yukiko

 

출연
Mugi Kadowaki
Kiko Mizuhara
Kei Ishibashi
Guin Poon Chaw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125분
등급 12세 관람가
공개 제24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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