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로호' 방류되지 않는 미스터리
'파로호' 방류되지 않는 미스터리
  • 김민세
  • 승인 2022.08.3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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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의 서사, 시뮬라시옹의 세계"
ⓒ 더쿱디스트리뷰션

<파로호>의 미스터리는 방류되지 않는다. 실종과 살인을 포함한 의문스러운 사건들이 화천의 허름한 모텔 주위로 스며들고, 사건이 지닌 미스터리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하나의 지점으로 침전한다. 영화의 제목이자 주요 배경 중 하나가 되는 '파로호', 즉 호수에 빗대어 말했을 때, 들어오는 물은 있는데 그 물이 어딘가로 흐르거나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셈이다. 그 고여있는 호수를 맴도는 서사는 그 안에서 서로 겹쳐지고 뒤섞이며 불명확한 결말 안에 갇힌다. 감독 스스로가 인정하고 밝혔듯 현실과 환상 사이의 모호함이 이 영화의 정체성이기 때문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모호함의 정체성은 하나의 기호가 다른 기호와 겹쳐지거나, 대체되거나, 서로를 잠식하게 되는 기호 간의 유희를 가능하게 한다. <파로호>에서는 이러한 유희가 결국 하나의 이미지로 모이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주요한 흐름이 바뀔 때(시퀀스가 바뀔 때), 공간이 바뀔 때(씬이 바뀔 때), 또는 응시하는 대상이 바뀔 때(쇼트가 바뀔 때), 그것은 전환이나 발산이 아니라 반복이나 수렴에 가까워 보인다. 이때 수렴하는 이미지는 모텔이라는 공간, '도우'(이중옥)라는 인물로 귀결되며 영화 자체를 '호수 안의 이미지'로 재현한다.

왜소하고 위축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도우의 육체, 계속해서 물이 새는 모텔의 천장은 차오르는 미스터리의 수압을 견뎌야 하는 영화의 운명과 불현듯 겹쳐지며 그 형상이 프레임 안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기이함을 더한다.

 

ⓒ 더쿱디스트리뷰션

<파로호>에는 두 가지 환상이 있다. 확실한 환상과 불확실한 환상. 예를 들어 영화의 초반부, 홀로 작은 모텔을 운영하고 있는 도우가 치매 증상이 심해지는 엄마로 인해 스트레스에 시달릴 때, 그는 철물점 주인에게서 엿들은 새로 지은 좋은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그가 목을 매단 채 공중에서 한참 몸을 뒤틀 때, 장면은 침대에서 일어난 그의 얼굴로 전환된다. 그의 자살 시도가 꿈이었음을 드러내는 몽타주이다. 그러므로 도우의 자살은 확실한 환상임이 증명된다.

반면 자신을 이름 없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호승'(김대건)이 나타난 뒤는 어떤가. 영화의 후반부, 도우가 철물점 주인에게 린치를 당하고 있을 때, 사라졌던 호승이 갑자기 다시 나타나 철물점 주인을 살해한다. 기절했던 도우가 자신의 침대 위에서 정신을 차리고 그 현장으로 다시 돌아갈 때, 모텔의 1층과 2층 사이 계단의 벽에 흩뿌려졌던 피와 시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추후 그 시체는 도우와 엄마가 함께 지내던 방에서 발견된다. 그 살인의 범인은 호승이었을까, 도우였을까. 왜 호승은 갑자기 나타나 도우를 도운 것일까. 호승은 그저 도우의 또 다른 자아였던 것일까. 만약 이것이 환상이라면 환상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가. 살인이라는 맥락 아래 도우라는 기호가 호승으로 대체된 것일까. 아니면 살인 사건 자체가 실재하지 않았던 일종의 맥거핀이었다고 할 수는 없을까. 결말은 이러한 질문에 끝까지 답하지 않는다. 사라진 핏자국과 함께 기호는 증발해버린다. 기호 간의 유희 속에 사건은 불확실한 환상만으로 남아있다.

하나 애초에 환상의 범위를 한정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환상은 그저 환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과의 경계를 넘나들며 기호 간의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불연속적인 쇼트의 연결이 과연 도우의 자살 시도가 꿈이었다는 것을 단정 지을 만한 확실한 증거가 되는가. 철물점 주인의 죽음을 둘러싼 기호가 도우와 호승, 또는 도우라는 호승 사이에서 미결로 남겨졌던 것처럼, '도우'가 '스스로'를 '죽였다'는 확실한 환상의 명제도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변경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 명제가 은유하는 듯한 여러 가능성이 있다. 1) 엄마가 스스로 사라졌다는 가능성. 2) 도우가 엄마를 죽였다는 가능성. 3) 호승이 엄마를 죽였다는 가능성. 4) 호승이 여자를 죽였다는 가능성. 영화는 1)과 4)를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서사가 진행될수록 2)와 3)의 또 다른 가능성이 발견된다. 그리고 이 모든 가능성을 매개하는 하나의 확실한 환상. 자신을 스스로 죽이는 도우의 이미지. 그것은 호수 안의 가능성들이 수렴되어 드러내고 있는 '호수의 표면' 또는 '이미지의 착각'이다.

 

ⓒ 더쿱디스트리뷰션

<파로호>의 유희하는 기호들은 현실과 환상 너머 의미의 세계에도 존재한다. 오로지 가족 형태의 유사성으로 묶인다고 불 수 있는 미용실 원장과 도우의 관계각 그러하다. 루게릭병에 걸린 남편을 홀로 보살피는 미용실 원장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엄마와 도우의 관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환상이자 비현실적인 존재로 등장한 호승과 달리, 미용실 원장이 놓인 현실적 상황을 맥락으로 엄마의 자리를 원장의 남편이 대체한다. 그러므로 시시때때로 미용실 구석의 방에서 종을 울리며 도움을 청하는 남편은 버튼으로 벨을 울리며 도우를 불렀던 엄마의 은유가 된다. 이상한 반복. 엄마가 사라졌는데 엄마가 울리던 벨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엄마의 입에서 나오길 바랐던, 더 이상 살 수 없으니 죽여달란 말은 남편의 입에서 나온다. 원장의 남편은 도우 앞에 또 다른 형태로 도착한 의미로서의 대체된 기호, 은유로서의 엄마다. 또는 되돌아온 죄책감의 무의식이다.

사라진 기호는 자꾸만 사라지거나, 계속 그 자리에 남아있다. 이 기이한 셈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한밤중 도우를 찾아온 다방 종업원 미리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또 다른 내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이것은 이 영화의 거대한 은유이다. 증식과 복제를 반복하는 기호들. 기호의 셈을 무효화시키는 유령의 셈법.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인가. 그것들이 최종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미스터리는 호수에서 시작해 호수로 모인다.

이렇게 한 곳으로 수렴하는 미스터리는 한 영화가 서사를 이어 나가는 방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서사는 한 지점에서 시작해 가능성의 세계로 확장되는가. 또는 가능성을 지닌 파편들로 시작해 한 지점을 가리키는가. <파로호>의 서사는 후자에 속한다. 영화의 시작을 열고 끝을 닫는 서늘한 호수의 이미지. 이와 겹쳐지는 액자 속의 호수. 한국전쟁 당시 전사한 북한군이 묻힌 곳. 개와 엄마와 정체 모를 한 여자가 죽은 곳. 산 한가운데 고여있는 물. 물이 새는 모텔의 천장과 결국 넘쳐흐르는 바구니. 거울 밖의 도우와 거울 안의 도우. 이 파편의 향연들. 무엇이 환상이고 무엇이 실제인가. 모든 것은 또 다른 판본을 복제하길 반복하는 호수의 서사, 시뮬라시옹의 세계로 진입한다. 그 안에 남아있는 것은 정처 없이 떠도는 미결의 기호들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더쿱디스트리뷰션

파로호
Drown
감독
임상수

 

출연
이중옥
김대건
김연교
변중희
강말금
공민정

 

제작 한국영화아카데미
배급 더쿱디스트리뷰션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0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8.18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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