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사랑의 불확정성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사랑의 불확정성
  • 이현동
  • 승인 2022.08.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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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슬로는 어떻게 변화하였는가"

개인적으로 '요아킴 트리에'의 거침없는 노림수가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전작인 <델마>(2018)를 복기해보면, 그의 신작에 대한 기대는 한풀 꺾인 상태였다. 그의 영화에서 초능력이 등장하거나 초현실적 배경의 삽입은 캐릭터의 정서가 변용되는 과정, 강렬한 연대에 대한 어떤 중립적인 상호작용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시공간이 뒤틀리며 논리적 귀결이 불가해한 첫 장편 <리프라이즈>(2006)나 <라우더 댄 밤즈>(2015)의 콘라드(데빈 드루이드)가 염력으로 사물을 움직일 때 그것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모를 영화적 설계이면서 현실과 의식을 반영하는 잠재적 형국이라 표현할 수 있다면, <델마>는 감독의 작전을 모두 오픈하면서 잠재적 형태로 기능하는 공상이 결국 주제 의식을 전달하는 수단으로만 남용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필자에겐 빈약한 결과물로 여겨졌다. 유독 델마(에일라 하보)와 주변인들의 관계가 허무하게 소모되거나 낭비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건, 아마도 새로운 장르적 발상과 이미지를 구현하려 할 때 배태되는 어색한 상징들 때문일 것이다. 여성을 첫 주연으로 삼은 <델마>가 여성의 목소리를 해방하려는 공동체로서의 페미니즘의 호소와 결집되어 있다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2021)의 여성은 조금 더 개인적인 실존과 연관성을 지닌다. 두 작품에서 작용하는 기능과 설정이 전혀 다른 방향을 지닌다는 점을 유념할 때,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조금 더 요아킴 트리에의 본래의 모습으로 회귀하는 영화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 그린나래미디어

각종 영화제에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쏟아졌던 긍정적인 평가를 제쳐두고, 먼저 '이 영화가 요아킴 트리에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부터 질문을 해볼 수 있다. 

필자는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오슬로 1부와 2부를 합쳐놓은 듯한 인상을 받았다. 1부인 <리프라이즈>(2006)의 노르웨이 청년들의 우정과 사랑, 2부인 <오슬로, 8월 31일>(2011)에서 도시를 독해하는 공허하고 잉여적 시선은 동시에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를 구축하는 자재들로 위치한다. 또한 그의 몇몇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음울한 시대 배경과 청년세대를 동력으로 차용한다는 지점에서 유독 대만의 뉴웨이브 영화를 닮았다. 에드워드 양의 <해탄적일천>(1983), <타이페이 스토리>(1985), 차이밍량의 <청소년 나타>(1993), <애정만세>(1995)과 같은 서늘한 초기작품들이 그 예시다. 물성의 감옥으로부터 도주하지 못하는 삶의 무상하고도 무거운 번민들이 폭로될 것처럼 잔존한다고 할 때, 요아킴 트리에의 오슬로 3부작으로 대비되는 초기 영화 역시 결코 낭만적으로 현실을 응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10년여 만에 제작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서 노르웨이 그 자체를 대변하는 '오슬로'와 '감독'은 긴 시간 동안 어떤 변화를 경험했을까.

우선, 이번 영화가 로맨스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고 할 때 사료되는 중대한 질문은 '장르 영화의 순전한 공식에서 탈피한 영화, 즉 클리셰를 어떤 방식으로 봉합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출중한 외모를 가진 남녀 로맨스 장르가 지니고 있는 시시콜콜한 클리셰가 관객들의 욕구를 충족하는데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고 가정한다면 실상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도 이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혹여나 그것이 이별을 상정할 때 발생하는 애달픈 그리움에 관한 것이라든지, 더욱이 자신의 길을 투철하게 나아가는 인물상을 그린 영화라는 것도 제법 식상한 작법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자크 데미의 <쉘부르의 우산>(1965),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를 모티브로 한 로베르 브레송의 <몽상가의 나흘 밤>(1971)이나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2003) 등을 연상하는 것이 적절한 사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작품들은 로맨스를 다룰 때 프레임의 질감이나 캐릭터의 특정한 상황, 뮤지컬이라는 특수한 연출 등은 여전히 참고해야 할 작품이라 생각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유의미한 연출 중 하나는 영화 전체를 조율하는 시간의 흐름을 12장의 에피소드를 연대기적으로 분류하여, 책과 뮤지컬을 보듯이 그 지속가능성을 연결하기도 하고 차단하고 절단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몽타주의 활극은 이 영화가 가진 '불확정성'을 언표하려는 또 다른 전략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연출과 율리에(레나타 레인스베)의 불안하고도 확정되지 않는 삶의 형태는 영화 전체를 견인하는 요소로 충만하게 영화의 곳곳마다 생기를 불어넣는다.

 

ⓒ 그린나래미디어

최악의 여자와 최선의 남자

오슬로 3부작의 종장인 이번 작품은 전 1, 2부에 비해 음울하고도 서늘한 정서를 배제하고, 싱그러운 에너지를 탑재한 율리에라는 캐릭터를 활용해 활력 있게 서사를 저글링 한다. 두 명의 남자를 교대로 교제하면서 겪게 되는 14장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한)에피소드들로 구성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는 요아킴 트리에의 말대로 '성인을 위한 성장 이야기'다.

감독은 성장 이야기라는 점을 성립시키기 위해 프롤로그에서 율리에의 성향과 배경을 설명하는데 압축적으로 시간을 할애한다. 율리에는 내면에 귀속해 있는 불안함을 극복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공부하길 선택하고, 성적에 대한 인정을 받기 위해 의대를 지망하기도 한다. 계속해서 그녀를 혼동케 하는 대상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관한 불분명한 심리다. 몸을 다룰 때 '목수가 된 것 같다'는 그녀의 표현은 심리학을 공부하겠다는 일념으로 변환되고, 우연히 찍은 핸드폰의 사진을 보며 자신의 재능과 관심은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즉 발적인 다짐과 결단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심하게도 물질의 중력에서 탈주하지 못한 율리에는 서점 알바로 전전긍긍하며 불확실한 삶 한 가운데에 놓인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율리에 역을 맡은 레나테 레인스베가 <오슬로, 8월 31일>(2011)에서 작은 역할을 한 이후로 주연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즉 배우로서의 불안한 현실과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율리에는 현실과 영화의 경계 사이를 메타적으로 공유하는 관계로 볼 수 있다. 유일하게 그녀의 가치를 알아본 건 요아킴 트리에였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에 잠식하고 있는 불안은 물질로부터 착취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점화될지 모르는 관계의 스위치를 담보로 한 불안이다. 마치 베르너 파스빈더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1974)라는 제목이 지시하듯 진정한 불안은 관계로부터 증식된다. 이민자, 나이, 인종, 생활환경 등의 격차는 구조화된 실존하고도 그 결여적 상태를 공유한다고 할 때, 불안은 모든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장치로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기본적인 뼈대는 이런 구조적 양상보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불확정한 관계를 강조함으로 에릭 로메르(Eric rohmer)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즉흥적이고 우발적인 또는 유동적인 접근을 통하 일종의 유희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율리에와 연인이 되는 두 명의 남자 악셀(앤더슨 다니엘슨 리)와 에이빈드(헤르베르트 노르드룸)의 만남은 모두 즉발적으로 시작된다. 첫 번째 관계인 29세 율리에와 45세 악셀의 나이 차이에서 오가는 대화 주제 중 하나는 아이를 갖는 것이다. 악셀의 요구에도 율리에는 아직은 아니라고 말할 때 둘의 균열은 차츰 미래를 예견하듯이 다음 챕터인 2로 진입한다.

 

ⓒ 그린나래미디어

챕터 2 '바람피우기'라는 제목에서 율리에는 최악의 여자로 굴절되는데, 그녀는 현재 남자친구인 악셀이 있음에도 다른 남자와 연애감정을 나눔으로 '최악'이라는 제목의 윤곽이 이 챕터에 있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래픽 노블의 작가인 악셀의 출판 기념 사인회가 길어지자 율리에는 집으로 복귀하려 한다. 이때 그녀가 이동하는 장면을 핸드헬드로 뒤를 쫓으면서 촬영하거나 그녀 주변을 위주로 위치한 후경과 전경, 측면, 얼굴을 클로즈업함으로 그녀의 감정 상태를 다각도로 표면화한다. 무심코 길거리를 지나가다 어느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한 율리에는 그곳에서 에이빈드를 만난다. 서로 애인이 있는 두 남녀는 바람을 피우지 않는 적당한 룰을 정해 선을 넘지 않기로 작정하지만, 악셀에게 없는 매력에 결국 매료되고 만다. 악셀의 만남에서 부재했던 시간이 정지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모든 감각이 마비될 정도로, 혹은 주변 인식이 불가능할 정도의 황홀한 감정은 불확정한 삶의 형태를 붕괴할 정도로 강렬함을 선언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악셀은 율리에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이미 먼지가 묻은 관계를 청산한다. 후에 악셀이 췌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율리에는 그를 열심히 간병한다. 악셀은 그녀에게 "그동안 아쉬웠던 것이 네가 얼마나 멋진지 깨닫게 해주지 못한거야"라거나 임신을 한 그녀에게 "남자만 다정한 사람이면 괜찮다"는 말을 하며 율리에가 악셀을 배반했던 최악의 선택과 관계없이 그 선택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최선의 남자로 자리매김한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율리에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배우의 스틸컷을 찍고 사진을 편집한다. 신인 배우로 보이는 여자는 연기를 못한 것 같다며 자신을 자책한다. 율리에의 과거를 보는 듯한 배우의 모습은 성장드라마의 재구성이자 계속해서 갱신될 누군가의 역사이다. 카메라 앵글은 율리에가 사진을 편집하는 장면을 줌 아웃 함으로서 <오슬로, 8월 31일>의 비좁은 창문을 통해 감금당했던 현실을 긍정적으로 개방한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의 여자와 남자를 보는 시선을 유심히 관찰해보면 짤막한 클립처럼 배치된 미투 운동, 페미니즘, 그리고 후반부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악셀의 성차별주의적 발언 등 영화의 불확정성은 단지 율리에를 통해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델마>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다루는 이슈가 동일하면서도 강도와 밀도에 있어서 차이점을 두고 있는 것은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가 더욱 개인의 경험에 근접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슬로라는 무대는 시대적 요청이 뒤따르는 무대이고, 10년 전에 비해 수면 위로 드러난 젠더 갈등의 이슈는 개인의 영역까지 침입하여 변화하고 있는 현재를 직시하게 한다.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미래의 오슬로를 예상하면서.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그린나래미디어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감독
요아킴 트리에
Joachim Trier

 

출연
레나테 레인스베
Renate Reinsve
앤더스 다니엘슨 라이Anders Danielsen Lie
헤르베르트 노르드룸Herbert Nordrum
마리아 그라지아 디 메오Maria Grazia Di Meo
한스 올라브 브레너Hans Olav Brenner

 

수입|배급 그린나래미디어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8.25

이현동
이현동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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