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분단'이라는 장르
[Critique] '분단'이라는 장르
  • 이상용
  • 승인 2022.08.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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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이전의 분단 영화
박평호(이정재)와 정우성(김정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장르의 역사에서 장르영화로써 '분단 영화'는 없다. 분단은 정치와 역사의 문제이고, 대한민국을 포함하여 몇몇 나라에서 겪었거나 진행 중인 현재의 상황이다. 분단의 현실은 멀거나 가까운 과거로부터 누적되어 문제들이 뒤엉켜 복잡한 양상을 띠기 마련이며, 분단국가의 형태는 상이하다. 한반도를 제외하고 널리 알려진 분단국가는 독일이었다. 동독과 서독으로 분리되어 있던 독일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이듬해에 통일되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남한과 북한, 동독과 서독처럼 절반으로 분할된 분단국가의 형태가 등장했지만 이러한 유형이 모든 분단국가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중국과 대만처럼 영토의 비율이 현격한 차이를 지닌 경우도 있고, 그리스계와 터키계의 오랜 갈등으로 1974년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뉜 키프로스 섬도 있다.

현재 중국으로 불리는 '중화인민공화국'은 1988년 이전에는 '중공'이라고 불렸다. 공산주의 국가라는 것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그런데 남한에서 중공이 중국으로 불리면서 이전까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던 대만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이 사실은 분단 영화의 변천사와 무관하지 않다. 달라진 명칭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던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여주는 일면이기 때문이다. <헌트>(2022)를 비롯해 분단을 다룬 수많은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듯이 '반공'은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의 중요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였고, 신탁 통치와 함께 시작된 남북의 분단은 한국 전쟁을 거치며 한반도에 강력한 냉전의 논리를 형성했다. 반공의 이념은 1970년대의 유신 체제와 1980년대 군부독재를 거치며 국시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에 '중공'이 중국으로 바뀌면서 반공을 앞세우던 태도가 달라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1990년대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윤종빈 감독의 <공작>(2018)에서 묘사하듯이 '반공'은 위기의 상황에서 어김없이 소환되어 기득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쓰인다. '반공'은 남한과 북한이 은밀하게 거래하는 정치 공학이다. 대중 영화의 상상력은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거나 남과 북이라는 이분법을 탈피하는 시선을 던져왔다. 과거의 이분법만으로는 변화하는 시대를 헤쳐갈 공존 방식을 찾을 수 없고, 반공을 위시한 선전·선동은 피로감을 누적시켜 왔다. 대중 예술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환원주의적 정치를 벗어나 달라진 목소리를 낸다.

 

엄철우(정우성)와 곽철우(곽도원) ⓒ NEW
리명운(이성민)과 박석영(황정민) ⓒ CJ ENM

이러한 흐름의 본격적인 시작은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였다. 이 작품은 첩보 영화의 새로운 출발이자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기원이 된 작품이다. <쉬리>가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모델이라는 것은 기이해 보인다. 실질적인 영화의 제작 규모가 크지 않았을뿐더러 영토를 둘러싼 분단의 현실이 영화의 시공간에서는 서로에게 총을 겨누는 스펙터클로 용해된다는 사실은 진짜 같은 거짓말로 보이는 착시를 일으킨다. 남한과 북한의 요원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대립을 표현한다는 것은 지겹게 되풀이되어 온 '정치적 언어'에 대한 피로감을 노골적으로 전시하는 형태일 수도 있고, 분단의 상황은 더 이상 현실이 아니라 스펙터클(구경거리)에 불과하다는 일종의 조소가 되기도 한다. <쉬리>의 진짜 같은 거짓말은 한국형 블록버스라는 영화의 스펙터클과 현실의 피로함을 절묘하게 뒤섞어 버린다.

사실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이나 북핵 관련 뉴스의 등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 사회 전반의 동요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영화는 더 이상 동요를 일으키지 못하는 뉴스를 첨예한 갈등으로 '장르화'한다. 최근 웹툰과 스크린을 오간 '강철비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남과 북의 대치 상황에 '핵'의 공포가 더해지면서 일촉즉발의 위기가 펼쳐진다. 문제는 발칙한 상상력만이 아니다. <강철비>(2017)의 결말은 북한의 핵 절반을 남한이 받아오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이제 핵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힘의 균형과 분배의 정의가 된다. 재난 영화를 내세웠지만 분단 영화이기도 한 <백두산>(2019)의 해결책도 엇비슷하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로 인한 거대한 한반도의 위기를 북핵으로 막아낸다는 설정이다. 이 과정에서 남한과 북한의 주요 인물이 협력한다. 북핵은 재난의 해결책으로 등장하며, 구원의 모티브가 된다.

북핵은 더 이상 갈등의 요소가 아니다. 이러한 상상력을 분단 영화의 자극적인 요소로 넘길 수도 있지만 오히려 대중영화는 핵을 통한 파멸의 게임이 진부하다고 말한다. 물론 장르영화나 대중 영화의 문법에 친숙한 관객이라면 재난의 상황이든, 핵의 위협이든 안전한 결말로 끝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대중영화 속에서 분단의 갈등은 지루한 내면화의 반복이고, 오락적인 차원에서 분단은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긴장감을 높이는 두 시간짜리 오락의 동력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핵을 다르게 결론짓는 지점에 이르면 오락의 차원을 넘어서는 건드림이 있다. 반복적으로 다뤄지는 분단 영화 속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것은 지루한 교설이나 억지스러운 화해가 아니라 확연히 달라진 발상의 전환이다.

 

이명현(김윤진) ⓒ 강제규필름

분단 영화에는 또 다른 심층이 있다. <쉬리>가 북한과 남한의 표면적 대립이 아니라 대중의 무의식 아래로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유중원이 사랑한 이방희라는 존재 때문이다. 한석규가 연기하는 특수비밀요원 유중원은 북한 최고의 저격수 이방희를 찾는 한편 자신들의 작전이 매번 노출되자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하는 작업을 벌인다. 그런데 연인 명현과 결혼을 한 달 앞에 두고 그는 이방희의 정체를 알게 된다. 자신의 연인이 바로 이방희였다. 이방희는 유중원에게 사랑의 대상이자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교착 상태는 분단을 소재로 하는 첩보 영화들이 즐겨 다루는 전략이다. <헌트>에서 김정도(정우성)는 박평호(이정재)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한다.

이들과는 좀 다른 결이지만 <공작>(2018)에서 북파 공작원 박석영(황정민)과 북경 주재 북한 고위간부 리명운(이성민)은 서로에게 주었던 선물을 착용하고 촬영 현장에 나타나는 마지막 모습을 선사한다. 현실의 정치는 더 이상 두 사람을 직접 대면하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나눴던 우정은 현실을 넘어서 교환된다.

그것은 정치 영화이기보다는 헤어진 이를 그리워하는 멜로드라마적 상상력이다.

분단 영화의 심층은 핵의 위협이나 갈등이 아니라 사랑, 우정, 의리 사이에서 신의를 지키려고 하는 인간적 감성에 호소한다. 이방희의 경우처럼 '배신감'이 크면 클수록, <공작>의 경우처럼 박성영과 리명운을 갈라놓는 현실의 장벽이 높으면 높을 수록 애정의 강도는 커진다. '갈라진, 갈라질 수밖에 없는 연인'이라는 공식을 깔고 이 위에 상업적으로 포장할 수 있는 액션을 구현하면서 표층과 심층의 드라마를 구사한다. 남한과 북한의 대립은 언제든 총을 꺼내 들 수 있는 상황 논리를 부여하고,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든(일부 조폭영화나 형사물에서나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총격전을 더함으로써 액션 강도를 높이며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명칭을 가능케 한다. <쉬리>가 처음으로 성취한 지점이 이곳이다.

 

분단 영화의 두 가지 경향

강제규 감독의 천만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또 하나의 분단 영화였다.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피난길에 오른 가족의 모습과 이 과정에서 징집되는 상황이 펼쳐진다. 결국 북한의 군인이 된 형과 남한의 군인으로 증오하는 동생 사이의 갈등이 영화의 후반부를 채운다. <쉬리>의 연인을 형제로 변형하면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는 상황이 또다시 재현된다.

가장이자 맏형인 진태(장동건)가 군인이 된 것은 동생 진석(원빈)을 구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대대장을 살해한 후 북한군으로 전향하여 붉은 깃발 부대를 이끌며 공포의 대상으로 변한 것도 동생이 죽은 줄 알았던 탓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가족애로 좁히면서 전쟁으로 인해 일그러진 가족사를 그려낸다. 한국 전쟁은 분단이 만들어 낸 역사적 사건이었고, 포화의 한 가운데서 대치된 군인들을 통해, 서로를 의심하고 오해하는 갈등의 드라마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형제 사이의 오해를 통해 남과 북의 대결구도를 정리해 나간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장르영화에 있어 '분단 영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가 한국 영화에서 이토록 빈번히 등장하는 이유는 한국이라는 '로컬리티'의 문제다. 분단은 20세기에 시작된 가장 큰 정치, 사회적 갈등이며, 가족과 개인의 트라우마를 만들어 내었고,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깊게 스며있다. '분단'이 야기되는 역사를 소재로 하는 영화이든, 분단을 둘러싼 갈등을 다루는 영화이든 모두 '분단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분단은 다양한 영화의 장르로 펼쳐져 있다.

이러한 한국의 분단 영화는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해 볼 수가 있다. 하나는 분단 상황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분단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분단 상황이 초래한 과거와 현재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첩보 영화'다. 장르영화의 기준으로 환원해 보자면 분단 영화는 '전쟁과 스릴러(첩보 스릴러)' 장르로 나뉜다. 강제규 감독의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여기에 해당한다. 자연스럽게 오늘의 분단 영화는 강제규 이후의 길을 모색하는 셈이다.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런데 강제규 이전의 분단 영화들도 전쟁과 첩보 스릴러의 장르 전략 속에 놓여 있었다.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이만희 감독의 두 편의 영화를 언급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1963년에 선보인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한국 전쟁 영화의 클래식 중 하나다. 서울수복 후 북진 하면서 벌어지는 해병대의 내부의 갈등과 화해를 다루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은 중국군과의 최후 격돌에서 보여지는 전우애를 통해 모든 비극을 녹여낸다. 신탁 통치 시대의 스파이를 소재로 삼는 이만희 감독의 <암살자>(1969)는 이분법을 슬쩍 비켜나 공산당 내부의 갈등을 다룬다. 당대 최고의 액션 스타 장동휘가 연기하는 암살자는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임무에 성공하지만, 그 역시 당원 1호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당원 1호마저도 최후를 맞이하는 '허무의 끝'을 보여준다. <헌트>를 본 관객이라면, 간첩의 허무한 결말이 분단을 다룬 1960년대 이만희의 영화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단이 야기한 불신은 영원한 우정이나 연대를 가능케 하지 않는다. 끝없는 배신이 난무하면서 불신과 죽음의 결말이 어두운 그림자로 영화의 결말을 채운다.

1960년대 분단 영화의 좀 다른 시도 중 하나는 007시리즈의 국내 유입이었다. 1965년 국내에서는 007시리즈 중 처음으로 개봉한 <위기일발>은 5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였고, 이 숫자는 오늘날에 비추면 500만 이상을 훌쩍 뛰어넘는 흥행 기록이다. 1960년대 액션 영화의 대가로 손꼽을 수 있는 정창화 감독은 이듬해 <순간은 영원히>(1966)를 내놓는데 첩보원의 특수 무기, 자동차 장면 등 전반에 걸쳐 007시리즈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이 필름은 완전한 판본으로 볼 수는 없다. 한홍 합작으로 제작된 영화는 한동안 유실되었다가 홍콩에서 발견되어 사운드를 제외한 필름 상태로 복원되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007시리즈를 모방하여 1960년대 한국영화가 한류의 부흥을 타고 국제적인 제작을 시도한 것을 확인할 수는 있다. 정창화 감독은 홍콩의 쇼브라더스와 함께 장중문, 왕호 등의 홍콩 스타들을 등장시켜 한국, 홍콩, 대만, 일본 등에서 촬영했다. 그 후 여러 영화들을 합작의 형태로 제작한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1970년에 <엑스포 70 동경작전>과 <황금 70 홍콩작전>을 선보였던 최인현 감독 역시 이국적인 무대를 배경으로 조총련, 중국, 북한의 간첩들을 등장시킨다. 그는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 출신 감독이었고, 신필름은 한국 최초로 대형 스튜디오 시스템을 지향하였다. 선악의 이분법이 또렷한 장르영화의 단순함이 상투적이기는 하지만, 이 영화들을 명절 대작으로 빠르게 제작할 만큼 유행에 민감한 한국 영화의 형태를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요소는 첩보 영화의 주요한 고려사항이다. 시각적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3), 윤종빈 감독의 <공작>(2018), <강철비2: 정상회담>(2019), 그리고 <헌트>(2022)에 이르기까지 로케이션과 무대장치를 통한 화려함은 첩보영화의 특징 중 하나이며, 분단 영화가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포장되는 주요한 전략이다.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 영화의 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심층적 탐구'다. 전쟁과 첩보물이라는 장르적 프레임을 벗어나는, 공동체와 개인 사이 문제에 집중하면서 보편적 인간의 문제라는 보편적인 화두를 전면에 내세운다. <헌트>에서 김정도(정우성)의 분노는 북한의 공작원이 아니라 광주에서 민간인을 학살한 군부독재를 향해 있고, 대통령을 사살하려는 인물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가짜 공동체'에 분노하는 개인의 출현을 선언한다. 기존의 첩보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다.

간첩 박평호(이정재)도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남과 북의 평화적인 통일을 열망한다. 두 인물은 국가 이데올로기 혹은 국가적 명령에 호응하는 인물이 아니라 개인의 분노와 열망을 드러내면서 분단의 갈등을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어 간다. 국가의 명령이 아니라 개인의 정의로움과 선택을 강조하면서 이분법의 선택을 허물어 버린다. 2010년대 이후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북한이든 남한이든 다양한 개인을 앞세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노력을 보여주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공작>의 주인공 박성영(황정민)이 상부의 명령에 저항하는 모습은 그가 단지 스파이가 아니라 남과 북의 화해를 꿈꾸는 진정한 개인이 아니었는가를 돌아보게 만든다.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2013)에서 자신을 파멸시키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동명수(류승범)를 향해 반격을 시도하는 표종성(하정우)의 모습은 더 이상 희생당하는 비극적 개인이 아니다. 그는 아내를 구하기 위해 첩보원으로서의 능력을 최대로 발휘한다.

<쉬리>나 <태극기 휘날리며>의 개인은 기존의 분단 영화 속 인물과는 좀 달라졌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분단 이데올로기에 의해 희생당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새로운 분단 영화의 주인공들은 더욱 과감하게 저항하는 개인을 통해 기존의 이데올로기를 흔들어 버린다. 그것은 장르영화의 탐구 결과이기도 하다. 첩보 영화 장르의 독특한 면모 중의 하나는 '본 시리즈'를 비롯한 여러 첩보 영화들이 제공하듯이 정체성의 질문을 던지기에 유리한 장르였고, 한국의 '첩보 영화' 또한 이 점을 집요하게 탐색한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서 근원적인 의문을 던진다. 그 결과 개인을 말살하는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면서 보편적 인간의 모습으로 나아간다. <헌트>의 선택은 그 결과물들이다.

물론, 분단 영화는 전쟁과 첩보물 이외에도 코미디를 앞세우거나 전혀 다른 장르와 접목하는 경우도 있다. <은밀하기 위대하게>(2013)처럼 첩보 영화의 외관을 갖고는 있지만 실상 일상적 코미디로 일관하는 영화나 이해준 감독의 <나의 독재자>(2014)처럼 자신을 김일성이라고 믿는 아버지를 둘러싼 부자간의 갈등을 다루는 감성의 영화도 있다. <쉬리>가 개봉한 해에 코미디 감각을 내장하고 북한의 인민을 위해 남한 슈퍼 돼지의 유전자를 탈취하고자 애쓰는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1999)처럼 간첩(스파이)의 행동에 깔려 있는 민중을 향한 애정을 내놓은 작품이 있다. 이 영화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도 국가적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하는 개인으로부터 벗어나 보편적 인간의 감성과 인간애를 향해 기치를 높이는 것이다.

 

대체 역사로서의 <헌트>

흥행을 이끌고 있는 <헌트>는 많은 정보와 설정들이 가공된 영화다. 안기부에 미그기를 타고 귀순환 이웅평의 일화는 황정민의 깜짝 출연과 능글맞은 연기로 확연하게 한눈길을 끈다. 하지만 영화의 톤이 확연하게 달라지는 탓에 흐름이 끊어지는 것 같은 질감을 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헌트>는 영화 속 캐릭터와 사건들이 실재 사건과 겹쳐지거나 연상작용을 일으키면서 실재와 가상을 오가는 '대체 역사'를 써내려간다. 대체 역사는 기존의 역사를 토대로 새롭게 역사를 재창조하거나 가정법으로 틀어버리는 서사의 전략이다.

<헌트>의 출발은 '동림'으로 불리는 내부 간첩을 찾는 이야기였지만 어느새 동림은 맥거핀이 되어 버리고, 영화의 중심에 떠오르는 것은 군부독재에 저항하려는 군인 출신의 2팀 차장(국내팀) 김정도의 분노다. 김정도의 플래쉬 백으로 통해 재현되는 1980년도 광주 장면들은 그의 분노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상세히 알려준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궁금한 것은 '동림이라 불리는 1팀 차장(해외팀) 박평호가 어떻게 해서 남파 간첩이 되었는가'하는 점이다. 박평호가 오래전부터 활동했다는 것은 집으로 초대한 김정도와의 대화에서 드러나기도 한다. 10.26 사건 당시 군인이었던 중앙정보부 요원인 자신의 손가락을 고문하며 심문했다고 언급하는 장면은 정도를 과거사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일본의 잠복 근무 장면 역시 중앙정보부의 이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동림이 되었고, 무엇을 위해 이 일을 하는지, 왜 그는 적화 통일에 반대하는지는 드러나지 않는다. 북한의 다른 간첩들이 박평호를 붙잡은 후 충성심 테스트를 하는 장면도 느닷없어 보인다. 심문을 받던 박평호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통일전선부가 아니라 '인민무력부'의 대남 총책임자 천보산이 등장한 이유는 적화통일을 진행시키려는 북한의 본격적인 공작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이러한 해석은 영화 속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채 주변을 맴돈다. 후반부로 흘러갈수록 '동림'의 존재감은 사라지고 군부 내의 소수파인 김정도에게 집중된다. 그는 박평호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다. 확연하게 그 연유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대통령 암살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것처럼 언급하지만, 이러한 공감대 형성은 충분히 허술하기도 하다. 그 결과 태국의 사건 현장에서 박평호는 김정도를 방해하기에 이른다. 이 또한 김정도를 중심으로 흘러가나 서사를 갑작스럽게 뒤집어 버리면서, 박평호의 선택이 보여주는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가중시킨다. 두 인물을 오가며 갑작스럽게 패를 뒤집어 버리는 이야기의 선택은 후반으로 갈수록 집중력을 흐린다.

영화 속 또 하나의 반전은 박평호가 보호하고 있던 조유정이다. 그녀는 평범한 대학생이 아니라 박평호를 감시하고 있던 간첩이었다. 중앙정보국 시절 박평식의 정보원이자 조총련이었던 조원식(이성민)이 사고로 사망을 하고, 자연스럽게 박평호는 조유정의 보호자가 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녀는 박평호에게 총을 겨눈다. 두 인물의 대화 속에서 조유정의 정체를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박평호를 짐작할 수 있지만(자동차 안에서 박평호는 '박은수'라는 가명이 적힌 여권을 건낸 후 "너는 다르게 살 수 있어."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과 같은 간첩의 생을 살지 말라는 당부처럼 들린다.) 이 또한 드라마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채 지나친 생략이 되어버렸거나 반전의 카드로 넘겨버린다. <헌트>는 첩보 영화라고 선전되지만, 실상 간첩들에 관한 내밀한 묘사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많은 것을 가져오기는 했지만, 정작 첩보 영화의 기본적 관습들이나 드라마투르기(drama turgie)의 구현은 미약하다.

영화의 액션도 아쉽다. <헌트>에서 영화 초반의 시선을 끄는 워싱턴에서의 총격전,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일본에서의 총격전, 대미를 장식하는 태국에서의 총격전은 두 인물의 구도만으로는 지루해질 수 있는 상황을 시각적으로 돌리며 사건을 요리조리 몰고 가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빠른 속도감을 통해 시각적 충격을 가하지만 정교한 액션의 합이나 편집의 구성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베를린>이 선보였던 표종성의 액션과 비교해 보면 밀도의 차이가 크고, 정교한 장면의 연결이 아쉽기만 하다. <베를린>의 액션은 느슨하게 엮어진 북한의 정치적 상황이나 권력의 투쟁 과정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상쇄할 만큼의 시선을 구축하며 압도한다. <헌트>의 총격이나 액션 장면들이 빠르기는 하지만 도대체 어떤 장면인지 다가오지 않을 때가 많다.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그럼에도 <헌트>의 순항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헌트>는 기존의 분단 영화 혹은 첩보 영화들이 지닌 요소를 대범하게 끌어와 붙인다. 서로서로를 감시하고 처단하는 북한 스파이들의 세계(이중간첩), 적을 향한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모순과 문제를 향한 분노(<공작>), 액션을 통한 대립의 구현과 표출(<베테랑>), 주인공들의 대결 구도(<강철비>)를 아우르며 자신의 서명을 남기고자 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수많은 영화들의 참조나 장르적 관습에 대한 고민 때문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분단의 현실 자체가 강력한 실제로 소환되는 경험을 제공한다. 미그기를 타고 넘어온 이웅평 귀순사건, 대통령 암살을 시도한 아웅산 테러사건, 두 인물의 대화 중 언급되는 장영자 사기 사건 등 1980년대는 그 자체로 스펙터클한 사건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역사는 다양한 음모론이 피어나기에 충분하다.

<헌트>는 자신의 방식으로 한국의 1980년대를 보여준다. 과거의 사실은 영화 속에서 빠르게 녹아들면서 손쉽게 외면할 수 없는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 낸다. 비록 연속적이기보다는 비연속적인 인상이지만, 이 영화가 지닌 불균질함은 로빈 우드가 1970년대 미국 영화를 설명하면서 제시한 '불균질성'을 떠올리게 한다. 비연속적인 영화의 특성이 에너지를 일으키며 영화의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만들어 내고, 대중들을 끌어당긴다. 이정재의 '응답하라 1983'은 실재와 가상을 오가며, 스파이 활동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이는 스파이와 스파이 색출에 관심이 없는 요원 사이를 오가며, 군부 독재야말로 제일 먼저 제거되어야 할 역사라고 말한다. 대체 역사의 영화로서, 새로운 역사 쓰기의 시도는 대중 영화의 역량이 되어 호소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역사의 가능성은 과연 무엇인가?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poema@ccoart.com]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헌트
Hunt
감독
이정재

 

출연
이정재
정우성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
김종수
정만식
최민
박윤희

 

제작 (주)아티스트스튜디오 , (주)사나이픽처스
배급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25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8.10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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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자 2022-08-30 11:39:30
평소 이쌤 팬인데 이번 글도 정말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