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즉흥과 실험이 변주되는 마이크 피기스의 영화-음악 세계
[Interview] 즉흥과 실험이 변주되는 마이크 피기스의 영화-음악 세계
  • 이지영
  • 승인 2022.08.26 1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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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국제경쟁부문 심사위원장 '마이크 피기스'(Mike Figgis)

감독의 음악성은 영화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발전하는가

감독이자 음악감독, 그리고 뮤지션의 자아를 동시에 가진 인물과 영화와 음악을 논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우며 흔치 않은 기회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제천 국제음악영화제 국제경쟁 심사위원장으로 내한한 마이크 피기스는 위 3개 자아의 균형을 찾으며 지금도 새로운 영화적 실험을 진행 중인 현역 감독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중심에는 언제나 '음악'이 자리하고 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로 잘 알려진 그의 90년대 대표작들에서는 마치 음악의 즉흥 연주처럼 충동적이고 유희적인, 그러나 진한 페이소스를 보여주는 강렬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또 한편으로 <더 블루스-레드, 화이트, 그리고 블루스>(2003), <썸바디 업 데어 라이크스 미>(2019)와 같은 음악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사운드와 음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며 음악을 전면화한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 데뷔 이후 30여 년에 걸쳐서 영화와 음악의 관계에 관한 생각들을 어떻게 변주하고 성숙시켜 왔는지, 제천 하소 생활문화센터에서 그와 만나 대담을 나눴다.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지영

오래 영화를 찍어오면서 필모그래피의 중심에는 음악이 항상 있었다. 초반에 가지고 있던 영화와 음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궁금하다.

마이크 피기스

영화와 음악의 관계에 대한 내 생각은 그동안 변해왔고, 해를 거듭하며 성숙해왔다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영화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경이로운 음악의 힘에 빠져 있었다. 다른 영화감독들이 가지지 않은 음악이라는 비밀 무기를 가지고, 영화 음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복잡 미묘한 감정을 창조해 낼 수 있었다. 오리지널 스코어를 사용하든, 기존의 오페라나 재즈를 사용하든, 그 음악이 가진 힘이나 고유의 심리를 이해하고 있었고 이는 다른 영화감독들에 비해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다가 할리우드에 가게 되었고 이런 재능을 좋은 방향으로 활용했다. 할리우드에서 경험한 좋은 측면은, 풍부한 자본으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오케스트라도 쓸 수 있었고 세계 최고의 재즈 뮤지션들과 작업할 수 있었다. 모두 놀라운 경험이었다.

시간이 흘러 그런 작업의 요령을 터득하고 나니, 지루해졌다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새로움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지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을 하고 싶었다.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운드였으나 전자 음악이라든가, 혹은 음악을 배제한 작업도 시도하기 시작했다. 일상적 사운드의 음악적 활용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아주 멋진 음향 녹음 장치인 'Zoom'을 구입해 활용하고 있다. 얼마 전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는 사람에 대한 다큐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는 우림, 사막, 바다, 동물, 고래 등의 소리를 녹음하는 사람이다. 그가 나무의 소리를 녹음할 때는 나무 가운데에 마이크를 넣어서 나무 내부의 소리를 녹음한다. 이러한 모든 가능성은 놀라웠다.

이렇듯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자연의 소리도 훌륭한 사운드가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사랑했던 영화들은 항상 자연의 소리가 그 사운드트랙의 일부로 들어있었다. 바람, 나무, 물론 물의 소리도, 비, 천둥 등…… 며칠 전 서울에 폭우가 내리던 날 나도 서울에 있었는데, 당시 녹음기를 들고 외출해서 굉장한 빗소리를 녹음했다. 만족스러운 소리였고 앞으로 내 영화에 사용할 예정이다.

이지영

음악가로서의 정체성과 영화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보통은 좋은 시너지를 낼 것 같은데, 이 두 정체성이 서로 충돌할 때는 없는지.

마이크 피기스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화 음악 작곡가와 감독 사이에 충돌이 있을 때는 언제나 감독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어 있다. 작곡가가 더 많이 표현하고 싶을 때에도 그 부분에서 음악을 절제적으로 써야 한다고 정하는 것은 감독의 권한이다. 이것이 내가 감독과 음악감독을 둘 다 맡는 이유이기도 하다. 음악감독이 아름다운 곡을 썼을 때 이 곡이 너무 과하다, 혹은 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작곡가의 심기를 거스를 수도 있다. 반면에 자신을 스스로 설득하는 일은 좀 더 수월하다.

 

 ⓒ 영화 <썸바디 업 데어 라이크 미>(2019)

이지영

영화를 위한 음악(영화에 삽입될 스코어를 작곡, 음향 효과 삽입 등)과 음악을 위한 영화(음악 다큐 등, 음악이 전면화된 영화)를 작업할 때는 각각 어떤 차이점이 있나.

마이크 피기스

두 가지는 아주 다른 작업이다. 음악을 위한 영화의 경우는 음악을 가능한 한 오래, 끊김없이 들려주는 것이 영화감독의 의무다. 내게 있어 그런 영화에서의 가장 큰 실수는 음악을 일부 들려주다가 도중에 플롯의 진행을 위해 끊는 것이다. 음악에는 강력한 힘이 있어서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정보가 전달된다. 따라서 그 중간에 누가 끼어들어 덧붙일 필요가 없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더해지면, 나는 '음악 좀 듣고 싶으니 입 좀 다물어!'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누군가 보이스오버(내레이션)로 말하는 방식은 음악 영화에서는 이제 누구나 잘 활용하는 클리셰가 되었다. 그래서 연주를 하다 말고 '지미 헨드릭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한 사람으로…' 하는 설명이 나오면 나는 '지미 헨드릭스가 연주하잖아, 조용히 하고 음악 좀 들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즉 음악 영화를 만들 때 내 철학은 '입은 다물고 음악을 듣자'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영국에서 열리는 음악 콩쿠르에 대한 다큐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들의 강렬한 연주 장면을 있는 그대로 담았다. 거기에는 한국인 참가자들도 많았고, 다들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했다. 영화감독으로서, 누군가가 연주를 하면서 그토록 집중한 모습과 표정을 촬영한다는 건 정말 환상적인 영화 작업이다. 연주를 시작하면 인간은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다. 시각적인 측면에서 아주 풍부한 것을 얻게 되고, 손의 표현도 놀랍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로, 음악이 영화를 위해 삽입되는 경우라면, 가능한 음악을 과하게 쓰지 않고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이 둘은 사실상 완전히 반대되는 작업이다. 좋은 질문이다.

이지영

최근 영화 음악의 경향은 미니멀 하고 현대 음악적인, 혹은 멜로디보다는 음향 효과가 훨씬 강조되는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최근에 흥미롭거나 의미 있다고 느낀 시도들, 혹은 반대로 좀 아쉽다고 느낀 부분이 있었나.

마이크 피기스

새로운 시도가 효과적일 때는 나도 좋다고 느낀다. 그중에서도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것들이 있다. 반면에 일상 소음인 에어컨이나 냉장고의 소리도 약간의 변형을 통해 훌륭한 사운드 효과가 될 수 있다. 특히 데이비드 린치 감독은 그런 작업의 대가인데, 그의 사운드를 들으면 '와, 이건 하나의 음악이잖아!'하고 감탄하게 된다. 거기에 약간의 디지털 사운드를 깔아서 평범한 소리의 사실주의를 초현실, 혹은 극사실주의로 확장할 수 있다.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다른 일례로는 <팔로우>(2014)라는 영화가 있다. 7년 전인 2014년에 만들어진 미국의 독립 공포영화다. 아마 데이빗 로버트 밋첼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순수한 전자음악만을 사용하고 있어서 아주 강렬했다.

인간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거기에는 감정의 힘이 생기는데, 영화에서 그 힘은 로맨스를 위해서든 공포를 위해서든 지나치게 남용되어 왔다. 반면 순수한 전자 음악에서는 분명한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다.

나도 최근에 신시사이저를 사용하면서 순수한 전자 사운드와 펄스를 이용한 실험을 시작했다. 하우스나 테크노처럼 강한 펄스가 느껴지는 음악은 아니고 순수한 전자 파동을 사용하는데, 강력한 힘이 느껴져서 마음에 든다. 때로 나는 거기에 여성의 목소리나 단 한 가지의 악기를 조합해서 약간의 인간적인 느낌을 더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들은 강력한 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동시에 영상에 새로운 가능성을 더한다.

 

ⓒ 영화 <써스펜션>(2012)

이지영

최근 작들(<써스펜션>(2012) 등)에서 과거의 향수가 느껴지면서도 실험적인 편집·촬영 기법들을 시도한 점이 신선했다. 앞으로는 어떤 새로운 시도들을 해보고 싶은지.

마이크 피기스

앞으로도 실험적인 기법을 계속 시도할 생각이다. 나는 30대 초부터 꾸준히 영상을 촬영하고 사운드를 녹음해왔다. 그건 특별한 목적이 있어서라기보다도, 내 개인적인 흥미를 끄는 작업이었다. 이런 작업은 상당한 아카이브가 되었는데, 지난 몇 년간 나는 영국에 있는 내 스튜디오에서 그 쌓여온 영상과 사운드를 다시 편집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하고 있다. 또 거기에 텍스트를 이용하는 것에도 큰 관심이 있다. 단순한 자막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지에 추가되는 텍스트다. 포맷을 바꾸기도 하고 색깔을 바꾸기도 하며, 화면의 크기도 작을 때도 있고 아주 와이드할 때도 있다. 요새 관객들은 그런 다양한 포맷에 열려 있다. 이야기가 재미있기만 하다면 작품의 포맷이 한 가지로 고정되어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식이다.

앞으로도 여러 가지 실험을 계속할 생각이다. 지금 가장 지향하고 있는 방향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테크놀로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기술은 지루하다고 할까, 4K, 6K는 싫다. 16mm 영화, 혹은 <엘비라 마디간(1967)> 같은 작품을 보면 정말 아름답다. 색깔도 그 선명도가 지나치지 않고 마치 회화 같은 아름다움이 있는데, 이런 옛날 포맷을 좋아한다. 나도 때로는 동시대적, 미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선명도가 과하고 때로 보기에 흉한 영상도 활용하기도 한다. 사운드가 좋기만 하다면 사실 상관없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신경 쓰는 점은 사운드가 환상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음질도 훌륭하고 흥미로워야 한다. 아주 좋은 질문인데 이런 질문들은 요새 잘 들을 수 없다.

이지영

캐릭터 중에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인물들이 많다. 사회적 관습이나 규율에 따르지 않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상상해 본 일탈 장면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캐릭터들을 탐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마이크 피기스

나는 캐스팅 단계에서부터 즉흥적인 연기가 가능한 배우들을 캐스팅한다. 물론, 배우들은 대본을 따르기도 하고 필요한 부분에서는 대사를 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현장에서 마치 뮤지션처럼 연기를 하게 된다. 나 또한 재즈 뮤지션 출신이라, 순수한 즉흥 연주를 할 때가 있었다. 상대방의 연주를 바로바로 감지하고 즉흥 연주를 이어가면서, 5명도 순식간에 한 팀이 되어 함께 연주하는 스타일에 익숙하다.

물론 영화는 워낙 많은 인원이 참여하기 때문에 완전히 즉흥적으로만 진행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즉흥성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제작팀을 최소한의 규모로 꾸리는 것을 중요시한다. 즉흥적인 작업의 문제점은, 잘 해내지 못할 경우 제멋대로인 것으로 보이기 쉽다는 것이다. 결과물이 형편없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

 

ⓒ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

이지영

우리가 익숙하고 기대하는 배우의 이미지와는 다른, 의외지만 납득이 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한다.(리처드 기어가 특히 그랬다) 배우에게 낯설 만한 캐릭터를 제시하고, 같이 완성해가는 과정이 궁금한데.

마이크 피기스

언제나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최적의 배우를 캐스팅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리처드 기어를 처음 캐스팅할 당시에 그는 대중적으로 인기 많은 배우가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상당히 저평가된 배우였지만, 그럼에도 내 눈에는 흥미롭게 다가왔다. 특히 그에게는 자신을 스스로 증명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배우로서 그는 복잡한 사람인데, 내 영화의 인물들 역시 복잡한 사람이기 때문에 리처드 기어가 적격이라고 생각했고, 그는 실제로 그 역할을 멋지게 해냈다. 원래 제작사에서는 더 유명한 배우를 원했지만 내 생각에는 너무 뻔한 캐스팅이 될 것 같았고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그를 캐스팅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니콜라스 케이지도 마찬가지로 스튜디오 시스템의 아웃사이더였지만 진정성 있게 그 배역을 원했고, 이 캐릭터(벤)를 아주 좋아했다. 배우에게서 이미 100%의 에너지가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도 감독으로서 내 몫의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는, 유명한 배우가 배역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시간만 채우고 가는 경우다. 이때는 몇 배로 힘들게 작업을 해야 납득할 수 있을 만한 연기를 끌어낼 수 있다.

 

이지영

<미스터 존스>(1993)에서는 주인공이 악기점을 돌아다니며 여러 피아노를 치거나 베토벤 합창의 '환희의 송가'를 연주 중인 콘서트장에 난입하는 장면이 있다. 이렇듯 직접 캐릭터가 직접 음악성을 드러낼 때, 어떤 방식으로 연기 디렉팅을 했나.

마이크 피기스

이 부분은 어려운 작업이면서도 단순한 원리로, 배우가 음악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면 된다.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음악에 대한 이해도 없고, 음악적인 신체 움직임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안 좋은 결과를 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한국 드라마에도 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천재 피아니스트를 연기해야 하는데 피아노 치는 손을 직접 보여줄 수가 없으니 카메라는 손을 가린 각도에서 상체만 찍는 식으로 연출한다. 그 상태로 아무리 음악적 황홀경을 연기해봐야 연기에 몰입할 수 없다. 좋은 예시로 드라마 <밀회>(2014)의 경우, 유아인 배우의 피아노 치는 연기는 대단히 설득력 있었다.

이지영

그렇다면, 그런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마이크 피기스

음악적인 연기가 불가능한 배우는 절대 캐스팅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 그런 상황에 직면한 적은 없다. 다른 영화를 보면 색소폰을 연주하는데 손가락의 움직임이 전혀 맞지 않는다든지, 첼로의 운지가 틀린 것을 보면 노력을 충분히 기울인 것 같지 않아서 안타깝다. 최근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에도 출연해서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박은빈 배우의 경우, 전작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장면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것을 봤다. 실제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설득력 있는 운지법과 몸 움직임을 구사했다.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이지영

마지막 작품 이후 코로나 시기이기도 했던 3년의 시간이 지났는데,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마이크 피기스

팬데믹 시기에 홍콩에서 5개월을 머물렀는데, 그 동안 영화 작업을 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영화의 여건과 관련된 어려움이었는데, 당시 홍콩에는 코로나가 퍼지지 않았음에도 혼자 고립된 시간을 보냈다. 홍콩 내에서 지내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출국을 못 했기 때문에 갇힌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홍콩 안의 작은 커뮤니티에서 낯선 시간을 보냈다.

그 이후 한국에서 와서 영화를 찍기로 되어 있었는데 시기상 진행이 어려워져 2년여간 미뤄졌다. 그래서 다시 영국의 내 작업실로 돌아갔다. 홀로 고립되어 내면적인 성찰을 하면서 내게는 익숙한 사회적 삶, 즉 배우들을 만나고 영화를 제작하는 삶을 누리지 못하는 외로움에도 사로잡혔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운 작업들도 진행했다.

약간의 사진 작업도 하고, 앨범을 하나 내기도 했다. 내가 속한 쿼르텟의 음악 앨범인데 아름다운 작업이다. 두 달쯤 후 출시될 것이다. 프리 재즈 음악이고 4명이 기타, 베이스, 바이올린, 퍼커션, 색소폰, 플루트 등을 연주하며, 전부 즉흥 연주이다. 나는 트럼펫과 기타를 연주했다. 베이스 주자가 바이올린도 연주하고 색소폰 주자가 플루트도 연주하는 식으로 한 주자 당 여러 개의 악기를 연주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내 작업실을 녹음실로 개조해서 직접 녹음했는데 사운드도 아주 좋다. 음악이 내게는 사회와 연을 이어가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이지영

마지막으로, 최근 몇 년간 가장 많이 들은 음악을 소개해준다면.

마이크 피기스

하나만 꼽기는 좋아하는 음악이 너무나 많기에 불가능하다. 바로 어제를 예로 든다면 호텔에서 극장까지 운전을 하면서 차 안에서 한국 드라마 <밀회>(2014)의 사운드트랙을 들었다. 오케스트라 연주로 된 곡이었는데 두 개의 메인 주제가 아주 아름다웠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향을 일부 받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들은 영화 음악 중 가장 훌륭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영화 <엘비라 마디간>(1967)의 감독 보 비더버그의 1960년대 흑백영화 3편이 넷플릭스에 소개되고 있는데, 굉장히 실험적인 작품들이다. 그중 한 편의 영화 음악에서 정말 훌륭한 피아노곡을 들었다. 대체 누구 작품인가 궁금해서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인터넷에서 조사를 했는데 알고 보니 얀 요한손(Jan Johansson) 이라는 이름의 스웨덴 재즈 뮤지션이었다. 재즈 피아니스트인데 29세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스웨덴 재즈 뮤지션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인데 나는 이전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의 모든 앨범을 다 사서 그 이후로 항상 듣는다. 정말 경이로운 뮤지션이다. 또 그의 음악은 아주 영화적이기도 하다. 최근 자주 들은 음악이라면 이 두 가지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이지영, karenine@ccoart.com]

[통역·번역 조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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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몽 2022-08-27 21:58:57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인터뷰어 분의 질문이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