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베이커 #2] '탠저린' 카메라와 연기 벗기기
[션 베이커 #2] '탠저린' 카메라와 연기 벗기기
  • 이현동
  • 승인 2022.08.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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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영화는 도구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가"
ⓒ 미로스페이스

애플과 박찬욱 감독이 합작하여 아이폰 13 pro로 촬영한 단편 영화 <일장춘몽>이 지난 2월 18일에 공개되었을 때 대중들은 무엇보다 카메라의 성능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을 것이다. 사실 박찬욱은 11년 전에도 KT의 지원을 받아 연출한 <파란만장>이라는 작품을 아이폰4로 촬영한 바 있다. 그는 <파란만장>의 시절과 비교하면서 <일장춘몽>에서의 기존에 카메라는 의식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놀라운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TV와 인터넷의 발전과 더불어 핸드폰을 통한 OTT의 서비스의 빠른 전파는 영화관을 안방으로, 안방에서 실시간으로 누구나 영화를 관람하고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도록 했다. 하지만 이러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션 베이커의 <탠저린>은 예산 문제로 인해 고급 카메라로 영화를 촬영할 여지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할까. 의도되진 않았지만, 이는 영화를 독창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환경으로 활용되었고, 감독은 Vimeo 채널에서 Film Pro라는 앱의 사용법을 참고하여 채도를 높이고 화면의 감도를 무겁게 처리하는데 그 기능을 도입했다.

여기서 다루는 젠더의 토착화(지역 특수성에 따라)가 영화의 지형적 개념으로 변환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심미적인 가치에 의해서 견인된다고 할 때, <탠저린>은 투박하면서도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적 사건과 주제를 주시한다. 어떤 이에겐 <탠저린>은 사유의 전환이자 양식의 변용을 수용하며 그 빈틈을 공략하는 작품이다. 백인이 아닌 흑인이라는 캐릭터의 설정도 그러하지만 크리스마스라는 미국적인 날, 눈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황량한 온도의 설계도 그런 예시다. 특히, 션베이커와 함께 공동으로 작업한 작가 크리스 베르고흐(Chris Bergoch)가 <탠저린> 다음 작품인 <플로리다 프로젝트>(2017)에서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디즈니 감성과 색감을 삽입한 것도 순수한 시선으로의 회귀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본능적인 상호 관계를 강조하려는 표현 양식의 일환이라면, <탠저린>도 그 유사한 형태가 도출된다. 알렉산드라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부르는 노래의 가사 중 "어린시절의 행복한 나라 신비롭고 즐거운 장난감 나라"는 분명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싶은 의도로 연출되었다는 점에서 우화와 같다.

 

ⓒ 미로스페이스

<텐저린>은 카메라를 이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배우를 차용하는 과정에서도 즉흥적이고 편의적인 용도로 구성된 작업 방식을 따른다.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뽑은 비전문 배우인 신디(키타나 키키로드리게즈)와 알렉산드라(마이아 테일러)의 섭외는 영화 전체를 유연하고도 단단하게 직조하는 리얼리즘의 반영이면서도, 기존에 LGBTQ+의 장르에서 특정 인종인 백인을 섭외하는 모종의 불문율을 수용하는 할리우드의 사고에 대항하는 것이기도 하다.(션 베이커는 인터뷰에서 에디 레드메인이 출현한 <대니쉬 걸>(2015)을 언급하면서 이러한 사례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이 영화의 광범위한 카메라 워크는 영화의 자유도를 확보하는 주요한 키로 작동한다. 카메라의 발전이 이륙해 온 이미지의 현존은 시각 콘텐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주시하는데, 이런 공포영화에서 등장할 법한 푸티지는 인물들의 궤적을 선명하고도 투명하게 추격하고, 픽션이라는 영화적 내성에 굴복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숏은 풍광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지목하는데, 이는 소형카메라가 가진 편의성과 신속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촬영하고 있다는 표증이기도 하다.

그 급박한 감정들을 신속하게 응집하여 표현하기 위한 카메라와 배우들의 교화는 <탠저린>를 보는 구심점이자 원심력이다. 촬영의 유기적인 활용은 배우와 연동되어 그 행위가 단순히 '연기'로 부합하지 않고, 실제 그 자체로 즉각적인 정동을 초래한다는 것으로부터 이 영화의 매력은 활력을 얻는다. 이 영화의 총체적인 힘의 원동력은 바로 무차별적 가능성에 온전히 의지할 때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종합하면 <탠저린>에서의 이미지는 단순히 '영화적'인가, '영화적'이지 않으냐는 개념을 탈주한 탈영화적 맥락 안에 거주한다는 지점에서 장르적으로 속박되지 않는 기묘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어쩌면 이것을 하이브리드 리얼리즘이라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 미로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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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를 벗길 때

탠저린은 껍질이 잘 벗겨지는 작은 오렌지를 의미한다. 오렌지라는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마치 인간이 너무나 쉽게 벗겨지는 가벼운 존재라는 걸 부각하기 위한 제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로드 무비로 관철되는 이야기의 플롯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애인을 구해주려다 교도소에서 수감된 트랜스젠더 신디는 출소하자마자 남자친구 체스터(제임스 랜슨)의 행방을 쫓는다. 그 사이에 바람이 났다는 소식을 듣게 된 신디는 친구인 알렉산드라와 함께 여자를 찾아서 분노의 무빙을 시작한다는 영화 내용은 크리스마스이브라는 하루라는 시간에 모든 사건이 종료된다. 이 과정에서 션 베이커가 담으려는 주제는 <스타렛>(2012)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정으로 집약된다는 점에서 동일성을 지닌다.

<스타렛>에서 시장 경제 체계라는 자본의 위계화가 도출되었던 그 험준하고도 쉽게 불화될 충족적 관계에서 탈각된 제인(드리 헤밍웨이)과 노파 세이디(베세드카 존슨)와의 진실 된 우정은 소유한 모든 것이 탈진되는 무의 상태에서 이뤄지는 순수한 관계다. <탠저린>에서 신디와 알렉산드라의 우정 또한 그 모든 것이 소진된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 우정은 어떠한 계약이나 조약도 필요하지 않다. 탠저린은 결국 무겁게 치장된 우리의 허물을 가볍게 벗겨내는 영화로 관찰된다. 배경으로 보면 인간의 신체에 대한 은유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구분과 무관하게도 자본의 논리에 의해서 쉽게 판매되거나 구매되고, 은밀하게 치장된 성적 취향도 너무나 쉽게 발각되어버린다. 특히 후반부는 이를 극적으로 표현하는데, 작품에서 등장하는 택시운전사 라즈믹(카렌 칼라굴리안)과 체스터와 잠자리를 한 여자 다이나(미키 오하간)가 바로 그 예시다. 아내와 아이가 있고 화목한 가정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의 동성애적 취향이 낱낱이 드러날 때 괴멸되는 가정의 모습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더불어 집에 돌아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 앞에 홀로 황량하게 앉아있는 그의 모습이나 다이나를 데려오는 과정에서 발생한 신디의 폭동으로 인해 더 이상 모텔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자 점차 조명에 함몰되어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은 인간이 너무나도 쉽게 벗겨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6자회담 끝에 각자 헤어지면서 신디는 젠더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오줌 세례를 받는다. 그런 신디를 목격한 알렉산드라는 세탁소에 데려가고 그 장소에서 가발과 윗옷을 벗는다. 신디가 안쓰러웠는지 자기 가발을 벗어주는 알렉산드라와 마찰하는 서로의 표정은 슬픔이 아닌 미소를 나눈다. 이처럼 <탠저린>은 실존을 벗기는 영화이자, 자신을 벗기고 우정을 씌어주는 따스한 이미지로 감응하는 영화이다. 카메라, 사회 구조, 그리고 인간 사이의 유대성과 순수성과 같은 실존을 해체하려는 총체적인 시도에서 작품의 승기는 아마 예견되었던 것은 아닐까.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미로스페이스

탠저린
Tangerine
감독
션 베이커
Sean Baker

 

출연
키타나 키키 로드리게즈
Kitana Kiki Rodriguez
마이아 테일러Mya Taylor
미키 오하간Mickey O'Hagan
카렌 카라굴리안Karren Karagulian
제임스 랜슨James Ransone

 

수입|배급 미로스페이스
제작연도 2015
상영시간 88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18.01.25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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