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파서블 러브' 목소리를 위한 기다림
'임파서블 러브' 목소리를 위한 기다림
  • 변해빈
  • 승인 2022.08.22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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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조용히 쌓아올린 시간의 고고함"
ⓒ 디오시네마

<임파서블 러브>는 마지막 10분을 위해 2시간의 기다림을 견디는 영화다. 인물들은 대화, 혼잣말, 편지, 통화, 내레이션을 비롯해 말하기의 가능한 형식들을 최대로 동원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프레임 내부에 띄운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마지막 10분간의 대화를 거치지 않고선 쏟아지는 말들에 깊숙이 들어갈 수 없다. 그중에서도 내레이션에 주목하려는 이유는 샹탈(제니 베스)이 직접 겪은 적 없는 라쉘(비르지니 에피라)과 필립(니엘스 슈나이더)의 이야기가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읊어지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의 과거를 부연하던 샹탈이 실어 상태에 놓이는 순간 개입되는 외부의 목소리가 안내하는 부동의 진실을 찾아가기 위해서다.

필립이 라쉘을 떠난 후, 두 사람의 사랑을 증명하던 긴밀한 언어는 소통 창구의 확장성과 별개로 외연을 줄여간다. 필립의 언어는 '수취인 불명', '불가능, 유감' 따위의 최소 단위로 축약되어 일방적인 통보의 기운을 안긴다. 급기야 라쉘과 필립의 대화는 그들의 딸 샹탈의 출생신고서에 적힌 '친부 불명'의 제거를 둘러싼 관계의 파탄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증폭되는 거리감은 부고 소식마저 타인을 경유해 전해 듣는 위치로 가시화된다. 상대의 죽음으로부터 느끼는 고통이 주변인의 안부를 걱정하는 중얼거림보다 무감한 일이 된다.

여기서 분절되고 제거된 언어의 파편을 봉합하는 건 샹탈의 내레이션이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레이션의 성실한 조건을 갖춘 채 영화가 담지 못한 시간의 여백과 이미지의 이면을 부연한다. 무엇보다 <임파서블 러브>의 편지는 언어의 기능을 갖추고 있음에도 구태여 샹탈의 내레이션을 동원한다. 라쉘과 필립이 주고받은 편지는 내레이션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정황과 맥락을 관객에게 전한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푸른 잉크의 전적이나 라쉘이 여러 번 고쳐가며 쓴 편지의 세부적인 내용은 짐작에 그친다. 심지어 필립에게는 글 쓰는 자 특유의 섬세한 웅크림이나 손짓의 활기찬 리듬도 없다.

 

ⓒ 디오시네마

이례적으로 필립에게는 영상 이미지로서의 말하기가 있다. 정확히 <임파서블 러브>에는 필립이 편지 속 내용을 수신인에게 직접 낭독하는 샷(shot)이 두 번 등장한다. 하나는 라쉘을 떠난 필립이 그녀에게 성애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에는 자신을 떠난 샹탈에게 폭력성을 전가하기 위한 목적이 담겼다. 두 경우 모두 필립에 의해 읊어지는데 단지 화면 위에 음성이 얹어지는 게 아니다. 필립은 사진기 앞에 선 여느 피사체처럼 화면 중앙에서 정면을 응시한 채다. 전자에서 필립의 정면 샷은 라쉘의 정면 샷과 접합된다. 이 두 샷을 각각의 시점 샷으로 이해한다면 두 사람은 시공간을 탈피해 서로를 마주한 상태가 된다. 여기서 라쉘은 필립과의 숱한 대화에서와 마찬가지로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말없이 조용히 들으며 부서지는 마음을 홀로 감당한다.

전자가 라쉘의 발언을 차단하고 배제하는 차원에서 한 사람(필립)의 독백이라면, 후자의 경우 청자의 부재로 인한 독백극이 된다. 샹탈은 자기 고통의 근원이 필립에게 있음을 인정한 상태다. 그러나 편지 속 필립은 자신의 불온한 폭력성을 부인할 뿐만 아니라 상대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지배하기 위해 균열의 원인을 샹탈에게 전가하려 든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샹탈을 독자적인 샷으로 담아낸다. 샹탈은 필립과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 카메라는 유리창 너머에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녀에게 섣불리 접근하지 않는다. 영화는 편지를 낭독하는 필립의 목소리(내레이션)와 샹탈의 고통스러운 심경(이미지)을 접합시킬 생각이 없다.

이어지는 컷에서 샹탈이 시선을 맞추는 건 거울 속 자신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며 필립으로부터 물려받은 검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그녀의 행위는 폭력적인 세계로부터의 자생적 탈구로 이해된다.

필립의 편지와 낭독으로 중단되었던 샹탈의 목소리는 라쉘을 향한 편지와 내레이션으로 변주된다. 그러나 샹탈은 직접 겪지 않은 부모의 과거를 서술하는 것보다 자신이 겪은 고통과 겪는 '중'인 라쉘과의 관계의 굴절을 언어로 풀어내기가 보다 고역스럽다. 해소되지 않는 것은 라쉘에게도 있다. 라쉘은 성인이 된 샹탈이 스스로 탈구해낸 아버지라는 존재와 함께 미술품을 관람하는 현장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녀는 기억 속 그 투 샷의 의미를 헤아리려 애쓰는 '중'이다. 그동안 인물들을 초월해 관객에게 주어지던 샹탈의 내레이션은, 역설적으로 두 여인의 말문을 막아서던 필립이 부재하자 절단과 축출을 반복해온 어느 세월의 파편 속에서 하염없이 배회하게 된다. 심지어 라쉘과 샹탈에겐 영화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 5년의 세월이 더 있다. 그리고 배회하던 두 여인이 인파로 가득한 도심의 카페테리아에서 운명처럼 서로를 마주한 채 멈춰 섰을 때, 이들은 여태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던 말하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라쉘은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한 번도 꺼낸 적 없던 옛 연인 샤를리의 사진을 딸에게 건넨다. 샹탈은 프레임 내부의 낯선 존재보다 그가 "진짜 엄청 잘생겼다"는 뜻밖의 사실에 놀란다. 그것이 뜻밖인 이유는 사진에 포착되지 않은 샤를리의 진심과 인간성을 알 수 없더라도, 그녀에게 샤를리의 생김새는 친부인 필립에 관한 모종의 죄책감을 희석할 하찮지만 유일한 구실이었을 것이다. 성인이 된 샹탈과 샤를리의 최초 대면은 유년기의 샹탈이 사진 속 필립과 재회한 순간을 오버랩시킨다. 어린 샹탈이 직접 대면하고 접촉하고 생물학적으로 관계되어 온 필립은 낯선 이와 다름없어 오히려 그녀가 당시 즐겨 입던 옷에 대한 기억으로 대체될 뿐이다. 대신, 덕분에 모녀는 사진에 관한 무한정된 질문과 대답을 나누게 했다. 반면 샤를리를 사이에 둔 라쉘이 딸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건 많지 않다. 그러니 이 순간만큼은 오직 샹탈이 아버지로서의 필립을 거부하는 최후의 직언, "이분(샤를리)이 내 아빠였으면 좋겠다"를 생동하게 한다.

 

ⓒ 디오시네마

라쉘의 묵언이 샹탈의 심연 너머 결핍이자 욕망으로서 부모를 거부하는 '금기적' 발언을 허용했다면, 계속된 대화에서 샹탈은 (필립이 실패한) 청자를 위한 말하기를 구사한다. 표면적으로 물음 형식을 띤 샹탈의 말은 "다시 말하면?" "정말 그렇게 생각해?"의 집요한 되묻기를 통해 라쉘의 은유적이고 회피성 발언을 구체적인 묘사와 연쇄적인 서술로 추동시킨다. 어쩌면 모녀가 뛰어넘은 5년은 샹탈이 제 고통의 원인을 가해자(필립)의 입을 거치지 않고 자신의 논리로 언어화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의자를 가까이 끌어다 앉은 긴밀한 거리에서 그녀는 반드시 엄마에게 그 사실을 들려주어야만 했을 것이다. 라쉘의 입장에서 딸의 언어는 다소 현학적이지만, 이는 필립이 자신의 이기심과 폭력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의 무지를 무기화하던 차원과 다르다.

적확한 용어로 거듭 부연하기를 망설이지 않는 '샹탈의 말하기'는 국가, 종교, 사회적인 시스템에서 배제된 라쉘의 일생과 정체성, 그리고 부서진 마음을 복원한다.

라쉘-필립의 사진 위에서 손가락을 짚어가며 엄마의 임신한 상태를 진단하던 어린 샹탈의 호기로움은 라쉘-샤를리의 사진 끄트머리에 조심스럽게 머무는 성인 샹탈의 손끝으로 옮겨간다. 이 피상적이지만 간절한 손끝의 접촉은 두 여인의 마지막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샹탈의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을 감싸 안은 라쉘의 손바닥 위 뜨거운 감촉으로, 여기서 멈추지 않고 손가락을 하나씩 펼쳐가며 '말없이 조용히' 좌절하고 슬퍼져야 했던 라쉘의 생애를 부연하는 샹탈의 강인한 손짓이 된다. 그리고 종국에 교차로 마주 잡은 라쉘과 샹탈의 두 손은 심원적인 고통의 나날들을 지나며 무심한 외상을 감당해온 서로의 창백한 마음을 어루만진다.

이제 필립에 의해 탈구됐던 샹탈의 내레이션이 귀환할 차례다. 쓸쓸한 계절을 통과하는 모녀의 길 위로 샹탈의 내레이션이 고고하게 각인된다. 라쉘이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덧붙인 소설 구절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오는 건, 당사자의 처지를 고통스럽게 호소하거나 부연하지 않고, 은유적이고 현학적인 소설 구절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온전한 대화의 기능이 생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둡고 깊은 곳의 말을 털어놓은 뒤, 종이 위를 활보하던 라쉘의 손을 거쳐 샹탈의 목소리로 읊어지기에. 손과 목소리가 포옹하기에.

[글 변해빈, limbohb@ccoart.com]

 

ⓒ 디오시네마

임파서블 러브
An Impossible Love
감독
카트린 코르시니
Catherine Corsini

 

출연
비르지니 에피라
Virginie Efira
닐 슈나이더Niels Schneider
제니 베스Jehnny Beth
코랄리 뤼시에Coralie Russier
일리아나 자베스Iliana Zabeth

 

수입 달빛공장
배급 디오시네마
제작연도 2018
상영시간 135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2.07.28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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