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 현실에 비현실이 당도한 이후
'비상선언' 현실에 비현실이 당도한 이후
  • 변해빈
  • 승인 2022.08.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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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와 직면해 상실하는 힘으로 세상은 굴러간다"

1.

혼란한 세계를 빠져나온 뒤의 공허함은 무언가를 불가항력적으로 연상하게 만들어서일까, 끝내 연상해낼 수 없음에 대한 자각 때문일까.

한재림 감독이 밝힌 대로 <비상선언>이 실제 코로나 팬데믹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은, 팬데믹이 창작자의 의도를 건드리는 시대에서 중요하게 여겨져야 한다. 현실에 비현실의 필터를 씌워서 현실로 믿게 하려던 것이 다시금 비현실에 가깝거나 같은 맥락에서 지적된다면, 또 그로 인해 영화가 그린 '현재'의 느슨함이 현실의 결여에 의한다면, 지금 관객이 추구하고 요구하는 현실성은 '이후'(post)의 시대에 당도해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다만, 이 영화가 지난한 재난서사에 머무르고 있거나 '이후'로 흐르는 현실적인 예측으로 나아가지 못한 실패의 결과물로만 인식되는 까닭이 코로나 팬데믹뿐만 아니라 현실에 대한 자각에 기인해 있다면, 영화의 바깥(현실)에서 안으로 흐르는 시선의 운동을 정지시켜 그 시선을 이야기 내부에서 집요하게 회전해볼 필요성을 고심하게 한다.

 

ⓒ 쇼박스
ⓒ 쇼박스

2.

군중 너머로 가려지는 화자, 얼룩이 선명한 유리창을 경유한 인물의 시점, 화면에 들어온 형체마다 흐릿하게 부서지는 외곽선, 카메라 앞을 지나치는 비와 구름과 태양과 어둠은 렌즈 위에 덧입힌 필터가 되어 화면을 뿌옇게 흩뜨린다. 지상에선 얼굴과 얼굴 사이 가림막이 여러 겹 축적되며 불투명 정도를 높여간다. 렌즈와 빛이 조우해 생기는 플레어가 눈가를 예민하게 건드리다가도 눈물 고인 흐린 눈으로 조망한 이 세상은 애초에 무엇인가를 화면에서 겹겹이 감춘 채였다.

<비상선언>의 눈물은 재난영화의 클리셰 화법의 결과로만 거론되기엔 아쉬운 구석이 있다. 특별하다기보다 흐린 화면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이 오히려 잊혀지지 않아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최현수(김남길)는 무언가를 보았지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듯 흘려 넘긴다. 그러나 최현수가 본 것이 아내의 죽음에 도의적인 책임을 떠안은 박재혁(이병헌)이며, 그가 오히려 그것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본 사실을 착각이라고 믿으려 마음먹었음이 뒤늦게 드러난다. 여기서 최현수가 제 시지각을 불신하려는 믿음이 가능했던 건 시야를 흩뜨리는 필터(인파) 덕분이고, 그런 마음의 근원 역시 두 인물 사이 거리를 은유하는 필터 한 겹의 위력에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가 일단 무언가를 감추고 시작한다는 것. 화면을 구성하는 제작 과정에서는 어떤 효과와 장치, 설정을 추가한 것이지만 영화 내부에서는 해상도를 낮추고 대상물을 가리면서 화면 속에 존재하던 것을 감춘다. 자연적인 조건과 환경을 그대로 살린 혹은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필터들이 영화의 허구성을 덜어내 현실에 가까워지는 방법임은 익히 알려져 있다. 화면의 흐린 시야 곧 영화의 해상도에 영향을 주는 일종의 필터들은 호흡 경로를 동반한 바이러스에 의한 재난의 성격을 고려하면 오늘날 거리두기와 격리의 풍경을 연상케 하는 기표임은 구태여 부연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거대하게 확대되거나 극도로 정제되고 선명하게 포착해내지 않는 것이 인간의 눈(시각)의 생태학적 구조와 움직임에 기반한 리얼리티라면, 지속적인 이물감으로 시야와 시력을 인위적으로 변환해 제한하는 일이 비실재와 비현실성을 동반했을 때 가능하다는 것 또한 함께 지각되어야 할 사실이다. <비상선언>의 현실성은 비현실에 대한 감각을 동시적으로 추구할 때 발생한다. 현실(맨눈)에 비현실(필터)을 더하면 그 현실(영화 속 자연적인 환경, 조건, 관계)은 현실(관객인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보다 더한 현실(영화)이 된다. 일상과 보편을 벗어난 극한의 조건에서 가장 솔직한 인간 군상이 드러나게 된다는 메시지를 원초적인 영화적 체험 즉, 시각적 경험의 충족감의 정도에 빗대려던 것 같다.

 

ⓒ 쇼박스

3.

흐린 가운데 선명하게 포착되는 건 도리어 눈 밖의 존재다. 류진석(임시완)이 액체를 가루화해 분사한 바이러스 입자 하나가 어두운 기내에서 빛을 받아 화면 중앙에 정체를 드러낸다. 영화는 화면에 들어오는 것 중 무엇보다 작고 놓치기 쉬운 것을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화소로 확대하여 보여준다. 선명도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점 단위의 픽셀 수가 많을수록 보장된다. 대신 픽셀은 육안으로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작고 미세해서 그 밀도가 촘촘할수록 확연한 구분이 수월하다. 하나의 픽셀로서 바이러스 입자는 인간의 침과 피와 눈물과 죽은 신체로 화소를 높여가면서, 종국에는 항로 데이터 맵 속의 노드(node)로서의 항공기의 몸체로 변주한다. 상공의 작은 점 하나가 지상과 전 세계의 문제로 확산하여 가면서 영화의 흐린 시력을 뚫고 들어온다. 류진석이 도심의 최대 다수가 아니라 공간의 제약을 우선시한 까닭은 이런 점의 응집력에 따른 해상도에 있다.

작은 점들이 조밀하게 모인 기표는 카메라 렌즈 앞 외에 스크린 위에서 포착되기도 한다. 구인호(송강호)가 동네 아이들이 제보한 류진석의 테러 예고 영상을 간과하지 않았음에도 항공기의 이륙을 막지 못한 일차적 원인은 그가 영어에 취약하다는 데서 온다. 여기서 구인호에게 주어지지 않은 번역본은 바이러스 최초 생존자(강말금)의 증언을 표기하는 자막으로 포진한다. 호흡을 보조하고 생존을 돕는 의료기기와 바이러스 차단막 너머, 자음과 모음의 단위로 증폭된 픽셀의 교직, 곧 자막이 생존자의 부정확한 언어를 여과된다. 바이러스 입자가 외곽을 확장하며 생존자의 몸으로 범주를 늘려간다면, 반대로 겹겹이 쌓인 필터 너머 부서지는 생존자를 말을 그래픽 입자들의 응집을 통해 고화소로 들여다보는 셈이다. 그러나 상대의 어눌한 음성을 부연하는 자막이 이를테면 홀로그램처럼 떠오르는 현실은 여전히 미래에 기대어 있다. 구태여 이 비현실의 자막까지 동원한 까닭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우리는 귀로도 듣고 눈으로도 봐야 한다. 최초 생존자가 현미경으로 목격한 바이러스 포자의 형상이 누군가 실제로 죽고 그 사실을 은폐하여 흔적을 감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순 없다는 것을 프레임 속에서 직접 보고 듣게 만든다.

영화가 감추는 것 중에는 류진석도 있다. 류진석은 바이러스의 본격적인 살포와 동시에 감염되어 죽는다. 단순히 인파에 가려진 정도가 아니라 죽어서 화면 속에서 사라진다. 류진석의 이른 죽음과 퇴장은 영화의 한계로 언급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생화학 바이러스 테러의 주범으로서 캐릭터 본연이 가진 테러의 의도와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악한 욕망이 그의 죽음으로 제거된 이후에는 예측 불가한 사태만 미약하게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류진석의 죽음은 이후부터 그를 존재하지 않게 만드는 건 아니다. 다시 말해 류진석의 죽음 '이후'는, 영화의 느슨함의 원인이 아니라 인물들이 '이전'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이후'를 대처하기 위해선, 그러니까 백신의 확보는 류진석의 삶의 궤적(이전)을 추적한 경로를 기반으로 삼는다. 과거를 추적하는 일은 인간을 구성하는 여러 측면 가운데 필요에 따라 선별하고 방점을 찍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다. 충족되지 않은 과거의 맥을 짚어 보는 과정은 구인호가 류진석의 화장실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되돌아 나오던 길에 범죄의 증거가 되는 주검을 발견했던 것처럼, 앞을 향해가면서 놓친 무언가를 위해 고개를 돌려보는, 불신을 신뢰하는 일이지 도태가 아니다.

 

ⓒ 쇼박스

4.

과거를 선명하게 안다고 해서 '이후'가 제한된 지금, '이전'이 '이후'를 대신한다고 말하는 것 같진 않다. 국토부장관 김숙희(전도연)가 이것을 몸소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김숙희는 구인호와 더불어 생존 이후를 상징하는 존재다. 그녀는 류진석의 신상과 과거, 그의 '착한(필터를 쓴)' 얼굴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과 별개로 그의 불우한 성장환경과 테러의 상관관계는 추측에 그칠 뿐이라고 말한다.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류진석이 바이러스를 변이해 살포했고 그 자신도 똑같이 죽을 수 있는 인간이며, 무엇보다 '이후'의 인물들이 진실을 도모하려는 욕망과 달리 한계에 직면해있다는 것이다. 이 대답마저 모호하자 국토부장관의 발언으로 합당한 태도인가에 대한 물음이 김숙희에게 한 번 더 주어진다. 이때도 마찬가지로 김숙희는 해명이나 반박, 역질문의 모든 가능성을 배제한 채 국토부장관직을 사임하여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지워낸다.

<비상선언>이 말하는 '이후'의 삶이란 새로운 가능성과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생사를 가르는 변혁을 겪고서도 발견은 이전에 존재하던 것을 인정하는 일이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깨달음보다 한계를 직면했을 때 오는 상실감이 세계를 작동하게 하고 있음을 응시하는 여정이다.

영화는 비행기의 착륙과 탑승객들의 생존 성공 여부를 알리는 결정적인 컷을 잘라내 감춰뒀다가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직전에 꺼낸다. 그사이에 개입해 성공 여부를 흐릿하게 만드는 컷들은 마지막 한 컷을 위한 일종의 필터다. 첫 번째 필터는 구인호를 둘러싼 '이후'의 광경이다. 구인호는 스스로 감염자가 된 후 백신 임상시험 대상자를 자처한 탓에 휠체어와 의료기기에 의존한 상태다. 구인호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걷고 움직이고 서서히 할 수 있는 게 많아질 거라는 동료 형사의 말과 살아서 지상으로 돌아온 눈앞의 탑승객들은 그를 웃게 한다. 두 번째 필터는 앞서 언급했던 김숙희를 둘러싼 '이후'다. 추측에 불과하건 한계에 직면했건, 형식에 불과하건 예상 밖의 반응이건, 김숙희와 청중들은 웃는다. 이 웃음들은 적어도 영화의 마지막 컷이 등장하기 전까지 슬프거나 비난받지 않는다.

오히려 두 개의 필터로 마지막 컷이 뿌옇게 가려져 있는 동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던 착륙과 생존을 오롯이 현실로 믿어보게 한다. 그런 다음, 지상의 광경과 웃음들이 다가 아니라는 듯 마지막 컷이 삭제되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에 멈춰 선 비행기와 그 주변으로 몰려드는 구급 차량이 더해지니 대다수 관객은 착륙과 생존을 믿는 듯하다. 혹은 그렇게 읽어내기를 요구받는 것 같다. 아마 인과적 관계를 따졌을 때 '이후'의 광경과 웃음들이 '이전'인 마지막 컷이 담고 있는 착륙 현장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인식 작용 덕분일 테다. 그러나 지운 채로 마무리하지 않고 구태여 덧붙인 마지막 컷이 구인호와 김숙희라는 필터들이 '이후'의 시대를 오롯이 대변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우리가 보고 듣고 믿는 것이 절멸이라는 비현실보다 생존이라는 현실에 기울어있는 것은 아닌지 고심하게 된다. 끝내 연상해 낼 수 없음에 대한 자각보다 현실을 불가항력적으로 연상해냈음에 대한 충족감. 아무래도 이 현실은 혼란하고, 비현실적이어서 공허하다.

[글 변해빈, limbohb@ccoart.com]

 

ⓒ 쇼박스

비상선언
EMERGENCY DECLARATION
감독
한재림Han Jae-rim

 

출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제작 매그넘나인
배급 쇼박스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4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8.03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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