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itique] 붕괴 후 찾아온 붕괴
[Critique] 붕괴 후 찾아온 붕괴
  • 이상용
  • 승인 2022.08.12 11: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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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서래'(탕웨이)는 왜 자살 했을까? 더 정확히 질문하자면 어째서 그러한 방식으로 자살을 했을까? <헤어질 결심>에 대한 많은 말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서래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와 죽음의 방식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는다. 말한다 하더라도 서래의 마음에 대해 이런저런 개인 차원의 추론으로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영화에 충실한 접근은 서래가 말했던 "나는 당신의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었나봐요"를 따라가는 방식이다.

하지만 '해준'(박해일)의 미결 사건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서래가 선택한 헤어질 결심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서래의 자살을 한 인간의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여기더라도, 수많은 자살의 방법 중 만조에 이른 바닷가에서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이과두주 한 병을 마시고, 자살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간과해 버린다. 자살로 끝나는 영화의 결말을 서래의 해방이라고 읽든 또 다른 무엇이라고 부르든 간에 서래가 선택한 삶을 통해 이 영화가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서래의 자살에 대한 의문에 다가가기 위해서 산에서 바다로, 부산에서 이포로, '기도수'(유승목)의 죽음과 '임호신'(박용우)의 죽음으로 반복되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 구조와 반복에 대해 살펴야 한다. 반복은 이 영화의 구성 방식이자 보여주기 방식이며, 영화를 이끌어가기도 하고, 사라지거나 미끄러지게도 만드는 등 다양하게 작용한다. 수많은 해석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사실 서래가 바닷가에서 양동이를 들고 모래밭을 파는 모습은 전반부에서도 익히 보았던 장면이다. 서래는 양동이로 땅을 파고 죽은 까마귀를 묻는다. 까마귀를 묻고 있는 서래 앞에 고양이가 나타난다. 서래는 고양이에게 혼잣말을 한다. 해준은 이 말을 녹음한다.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 주세요" 나중에 서래는 해준에게 심장이 아니라 마음이었다고 정정해 준다. 그런데 서래가 이 말을 한 것은 까마귀를 대신해 형사의 마음을 선물로 달라고 고양이에게 한 일종의 고백이었다. 서래는 마지막 장면에서 까마귀가 아니라 자신을 묻는다. 이 또한 형사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행동과 관련된 반복적 이미지일 수 있다.

 

ⓒ CJ ENM

하지만 이 정도의 반복적 이미지의 제시만으로는 서래의 자살 동기와 방식을 납득할 정도로 이해시키지는 못한다. 전체적인 영화의 반복과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서래의 행동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서래는 남편을 살해한 용의자(전반부는 참고인이었다)로 두 번 등장하지만 실제로 세 번의 살인을 저지른 인물이다. 서래의 첫 번째 살인은 중국에서 어머니를 독살한 것이었다. 이것은 서래의 어머니가 원했던 죽음이었다. 서래가 중국으로 돌아갈 경우 법적 처벌을 면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서래는 한국으로의 밀항을 결심한다.

두 번째 살인은 해준과 서래를 만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서래는 산행을 좋아하는 남편 기도수를 살해하기 위해 협박편지와 가짜 유언장 등의 서류를 만들었고, 치밀한 계획아래 완전범죄를 꾸민다. 해준은 서래의 범행을 사고사로 종결한 후(사랑에 빠진 후) 비로소 알아차린다. 서래를 대신해 '월요일 할머니'(정영숙)를 돌보며 핸드폰을 살폈을 때 서래가 저지른 범행 방식을 간파한다. 서래를 찾아간 해준은 진실을 밝히는 동시에 이 사건을 묻어 버리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은 해준의 헤어질 결심이 되었다. 형사로서의 품위를 깨뜨리는 결과였기에 부산을 떠나 아내의 근무지가 있는 이포로 내려온다. 여전히 경찰 업무를 이어가고 있기는 하지만 아내 '정안'(이정현)의 말처럼 '폭력과 살인'에 흥미를 갖고 살아온 해준에게 이포는 무료한 곳이다. 전반부의 보조 사건으로 등장하는 칠곡동 살인사건의 진범을 쫓는 일에 비하면 이포에서 벌어지는 추격전은 자라 강도의 오토바이를 쫓는 일이다. 그런 탓에 해준은 운동화가 아니라 구두를 신는다.

운동화와 구두의 반복에 대해서도 영화의 전체적 정서와 관련하여 한 마디 얹을 수 있다. 부산의 형사 시절 운동화를 신던 해준은 사찰에서 서래와 데이트를 하던 중 끈이 풀렸다는 지적에 운동화 끈을 다시 맨다. 그런데 이포에서 구두를 신던 해준은 서래를 찾아 헤매는 마지막 장면에서 운동화를 신고 있다. 해변을 헤매던 해준은 물에 젖은 운동화 끈을 동여맨다. 이러한 반복을 두고 서래와의 사랑을 회복한 해준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운동화 끈을 맨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는 그러한 의도들이 충분히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그런 점에서 박찬욱 감독의 로맨스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2006) 이후 가장 유희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기도수 사건의 결말 이후 13개월이 흐른 뒤 이포에서 해준 부부는 서래 부부와 마주친다. 그리고 서래의 남편이 타살된채 발견된다. 해준은 "내가 그리 만만해요"라며 서래를 피의자로 지목하고 살인을 증명하고자 한다. 하지만 진범 사철성이 잡힌 후 사건은 또다시 종결되어 버린다. 해준은 이 결과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는 기도수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경찰이며, 임호신의 죽음에도 서래의 역할이 있을 거라는 의심을 버리지 못한다. 그런데 처음과 딜리 서래의 태도는 의연하고 여유롭다. 취조를 하던 해준은 두 번의 사건이 일어났음에 대해 "그것참 공교롭네"라고 하지만 서래는 "참 불쌍한 여자네"라며 응수한다. 그녀는 변화했다. 화려해진 외양에서부터 취조실에서의 태도 그리고 보드라워진 손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서래는 처음에 만난 해준에게 마음이 끌리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그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저녁을 만들어주겠다는 해준의 집에서 종결된 사건의 사진을 불태우며 자신과 관련한 기록을 태우기도 하고, 사찰에서 데이트를 하며 해준의 잠복 중 녹음한 내용을 들은 후 기록을 지우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해준의 동료 형사 '수완'(고경표)이 그녀의 집을 찾아왔을 때 일부러 집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처럼 해준의 말을 몰래 녹음한다. 이 녹음이 후반부에서 해준이 서래의 핸드폰 파일을 확인하였을 때 붕괴라는 말뜻의 '무너지고 깨어짐'이라는 녹음 파일이다. 서래는 이 녹음 파일을 사랑 고백이라고 했지만 애초의 시작은 '의심'이었다.

이 영화의 진정한 반복 중 하나가 바로 의심하며 녹음하고, 그 결과 사랑에 빠진다는 아이러니다. 해준은 잠복근무 중 서래의 행동을 녹음하면서 사랑에 빠진다. 서래 또한 집으로 찾아와 언성을 높이는 해준을 보며 몰래 녹음 기능을 누른다. 그런데 이 말은 서래에게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온다. 서래의 완전 범죄를 밝힌 후 월요일 할머니의 핸드폰을 새 걸로 바꾸었다며 기록이 담겨 있는 이 핸드폰을 바다에 던지라고 할 때, 서래는 깨닫는다. 그가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 CJ ENM

핸드폰이 되는 서래

"핸드폰은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요.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서래는 이 말을 사랑의 고백으로 번역한다(받아들인다). 반면 해준에게는 이별의 말이다. 번역은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옮기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옮겨갈 때(trans) 일어나는 다양한 작용을 모두 가리킨다. 해준의 붕괴는 서래에게 사랑의 고백으로 번역되고, 해준의 입장에서는 고백한 적이 없는 말이 된다. 이러한 차이는 붕괴의 고백 이후 이포에서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확연하게 달라진 서로의 입장으로 표현된다. 해준은 더 이상 서래를 믿지 않고,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의심한다. 하지만 서래는 해준을 사랑하기 위해 끊임없이 다가가고자 한다. 서래의 "나는 당신의 미결 사건으로 남고 싶었나봐요."는 서래의 변화된 마음을 함축하는 말일 것이다. 두 사람의 달라진 관계 설정은 서래의 말로 명백히 들여다볼 수 있다. "당신의 사랑한다고 말했을 때 당신의 사랑이 끝났고, 당신의 사랑이 끝났을 때 내 사랑이 시작됐죠." 해준의 붕괴 고백은 해준에게는 이별이었고, 더 이상 속지 않고자 하려는 의심의 출발이 되었지만, 서래에게는 사랑의 시작이 되어 이포로 찾아오기에 이른다.

<헤어질 결심>은 두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다루는 영화다.

그런데 서래가 이포에서 사건을 일으킨 것은 전반부와 달리 자신을 위함만이 아니었다. 해준과 서래의 관계를 알게 된 남편 임호신이 해준의 아내 정안에게 전화를 걸어 두 사람 관계를 폭로하려고 하자 서래는 사철성을 자극하기 위해 철성의 어머니를 독살하고 그 결과 임호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해준은 이러한 사실을 바다에서 건진 임호신의 핸드폰 문자 대화를 보고 알아차린다. 그제야 해준은 두 번째로 일어난 사건은 서래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해준을 보호하기 위해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데 서래는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서래가 사랑 고백이라고 여기며 녹음한 파일의 이름은 무너지고 깨어짐, 즉 '붕괴'다. 그에게 사랑하는 이가 붕괴되었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면 도저히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품위 있는 남자를 붕괴시키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증거다. 붕괴 후 만난 해준을 또 한 번 붕괴시킬 수 있는, 그리하여 해준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다. 서래는 녹음 파일이 들어 있는 핸드폰을 고스란히 차 안에 둔 채 바다로 향한다. 해준은 그것을 뒤늦게 확인하며, 그의 말이 어떻게 서래에게 다가갔는지 이해하거나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이미 사라진 서래를 찾으며, 경찰 병력을 동원하라는 지시를 내리며 안간힘을 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만조의 바다 위에서(아마 거의 정확하게 서래가 묻혀 있는 그 위에서) 소리치고 방황하는 해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마침표를 찍는 이미지가 아니라 영원한 붕괴를 향해 뻗어가는 이미지다. <헤어질 결심>은 해준의 두 번의 붕괴를 그리고 있다. 첫 붕괴가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됨으로써 형사의 품위기 손상되었기에 일어난 윤리적 배신에 의한 붕괴라면, 두 번째 붕괴는 자신을 사랑한 여자가 사건의 진실을 묻기 위해 스스로 수장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일어나는 사랑의 붕괴다.

이러한 붕괴를 초래하기 위해 서래는 '무너지고 깨어짐'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다. 서래는 한국 드라마를 열심히 보는 인물이다. 한국 드라마는 서래의 한국어 교본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서래는 그 말을 따라하며 실천한다. 전반부에서 해준은 서래의 몸에 난 상처의 이유를 묻는다. 남편과 산에 가기 싫어 자해를 했다고 말하자 해준은 "자해하는 걸 보고 남편이 뭐라던가요?"고 묻는다. 그러자 서래는 "독한 것"이라고 답한다. 이 말은 서래가 즐겨보는 사극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대사다. 13개월이 흐른 후 집으로 찾아온 사철성에게 얻어맞은 후 서래가 드라마를 보며 남편에게 이사를 가자고 한다. 그녀가 보는 것은 '적색비상'이라는, 원전을 소재로 한 드라마다. 이포에는 원전이 있으며, 해준의 아내 정안이 일하는 곳이다.

 

ⓒ CJ ENM

서래가 탐독하고 빠져 있는 드라마 세계는 전반과 후반을 가르는 중요한 지표다. 영화의 전반부가 고풍스러운 사극의 말투로 해준과의 사랑이 피어나는 과정이라면(사찰은 두 사람의 데이트 장소 중 하나다), 후반부는 원전을 소재로 하는 현대극을 따라 현대적 패션과 헤어스타일로 멋을 낸 서래가 이포로 오는 이야기다. 한국 드라마는 서래의 한국어 선생님이자 말투의 근원이며 동시에 욕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두 개의 드라마는 모두 로맨스 장르다. 서래가 드라마를 흉내내는 것은 말투나 패션 그리고 장소만이 아니라 이 드라마의 내용처럼 지독하고 열렬한 사랑을 꿈꾸는 탓인지도 모른다. 서래에게 드라마와 같은 로맨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품위'있는 남자 주인공이 중요하다. 서래의 입에서 나온 '품위'라는 단어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보는 드라마처럼 서래의 삶을 지배하는 또 하나의 목소리(드라마)가 있다. 그것은 해준이 남긴 목소리다. 마치 드라마를 보듯이 해준의 헤어짐에 대한 통보를 사랑의 고백처럼 들으며, 그 말을 따라하고 위로받는다. 서래에게 드라마는 따라하는 세계이자 위로받는 세계이며, 지독한 사랑의 세계이자 꿈꾸는 세계다. 자동차에 두고 간 서래의 핸드폰에서 녹음 파일을 찾아낸 해준은 그녀를 찾으며 플레이 기능을 누른다. 이 녹음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월요일 할머니의 핸드폰을 숨기라는 것이었다. "핸드폰은 바다 깊숙한 곳에 버려요. 아무도 찾지 못하도록"

드라마의 열혈독자였고, 해준의 녹음을 사랑의 말로 반복해서 들었으며, 이 사실을 남편에게 들킨 탓에 위기에 빠졌던 서래가 중요하게 '암시'당했던 말이 바로 바다이다. 깊숙한 곳에 버리라는, 아무도 찾지 못하게 하라는 해준의 당부였다. 그것은 서래를 보호하려는 애정어린 당부였고, 진실을 묻어 버린 채 떠나야 하는 해준의 이별 통보였다. 해준이 핸드폰에 무슨 파일이 있냐고 다그쳐 물었을 때 서래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말이라고 답한다. 해준의 말을 따르지 않은 채 월요일 할머니의 핸드폰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서래는 눈이 내리는 호미산에서 월요일 할머니의 핸드폰을 해준에게 건네주면서 '재수사'를 하라고 하는 말을 하고 바다로 떠난다. 그리고 자동차에 녹음 파일이 들어 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남겨둔 채 이번에는 스스로 바다로 들어간다. 그것은 스스로 핸드폰이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해준이 모든 것의 진실을 찾기 위해서는 월요일 할머니의 핸드폰처럼, 아니 바다에 던져진 임호신의 핸드폰처럼 자신을 발견할 때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준이 찾지 못하도록 아주 깊숙한 죽음의 세계로 스스로 들어간다. 바닷속으로.

서래의 결심은 해준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붕괴의 경험을 제공한다. 해준의 당부를 흉내내고 실천한 서래의 의지와 행동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사랑이란 혹은 그녀의 사랑이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지, 정말 이 모든 것은 의심과 사랑 사이를 오가는 영화 속 세계인지 아니면 현실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인지를 두고 해석하고 헤매게 만든다. 그것은 현실(부산)에서 가상(이포)으로 이동하는 이 영화의 전체적 구조를 닮은 거대한 공백이자 깊은 곳에 묻히는 사랑의 감정으로 인해 피어나는 붕괴의 경험이다.

[글 이상용 영화평론가, poema@ccoart.com]

 

※ 추신

8월 6일(토)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된 <헤어질 결심> 관객과의 대화 ⓒ 이상용 영화평론가

1.

취조실에서 초밥을 사주던 해준이 핫도그를 가져다주자 달라진 태도를 알아챈 서래는 그의 사랑을 되찾으려고 한다. 그것은 꽤나 기이한 마음이다. <헤어질 결심>이 여러모로 닮아 있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1958년작 <현기증>에서 전반부에 매들린을 흉내 내고 자살 소동을 벌였던 주디는 후반부에서 다시 남자 주인공 스카티를 마주치게 되자 처음에는 도망가려고 잠시 고민 한다. 하지만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그의 사랑을 되찾기 위해 기꺼이 매들린 흉내를 낸다. 흔히 이 영화의 핵심은 스카티의 집착적인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더 흥미로운 것은 가짜를 흉내 냈던 주디가 그가 보여준 뜨거운 사랑에 목말라, 사랑을 되찾기 위해, 죽은 매들린을 또다시 연기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스카티의 집착적인 사랑보다 훨씬 더 초과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이러한 설정을 서래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처음에는 교묘하게 기록을 지우던 서래가 해준의 붕괴 고백을 들은 후 진정한 사랑에 목말라한다. 그것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사랑의 고백이었다. 그리하여 이포로 온 서래는 살인 사건을 일으키고, 해준의 용의자가 되어,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호미산에서 가족의 소원을 해결한 후 남자(해준)를 가족들에게 선보이고, 그의 사랑을 영원히 봉인하기 위해 진정한 붕괴를 일으키고자 한다. 그것은 사라짐으로써 갈구하게 만드는 영원성의 추구다.

2.

영화의 반복은 사건과 사태를 명징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교묘하게 뒤섞거나 사라지게 만든다. 다음과 같은 숫자 놀이가 이 성찰에 도움이 된다. 영화 속에서 언급되는 서래의 살인 사건은 총 세 번이지만 실제로는 총 네 번의 살인이 일어났다. 그것은 어머니의 죽음과 남편의 죽음으로 다시 정리해 볼 수 있다. 서래의 어머니와 철성의 어머니가 죽었고, 서래의 두 남편이 모두 죽었다. 숫자 2,3,4는 흥미롭게 교차하면서 어떤 사건이 어떻게 관련을 맺고 영향을 끼치는가를 교묘하게 직조한다. 영리한 시나리오다.

3.

이 글의 토대가 되는 것은 8월 6일 '더숲 아트시네마'에서 행한 <헤어질 결심>의 숲톡이다. 다음은 강연의 소개글이다.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의 친절한 영화다. 용의자를 추궁하는 두 번의 사건은, 산에서 바다로, 초밥에서 핫도그로, 해준의 사랑에서 서래의 사랑으로 반복되며 변주된다. 여기에는 히치콕의 더블 이미지, 인간 죄의식에 대한 집요한 관심사와 함께 모던한 러브스토리를 구사하며 감정을 압도하는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 현실(부산)과 가상(이포)을 오가면서 안개 속에 사라지는 미결의 완성을 선보인다."

 

ⓒ CJ ENM

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감독
박찬욱ChanWook Park

 

출연
탕웨이
박해일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김신영
박정민

 

제작 모호필름
배급 CJ ENM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6.29

이상용
이상용
1997년 『씨네21』 2회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영화 비평을 시작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봉준호의 영화 언어』,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공저로 『씨네쌍떼』 『30금 쌍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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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2022-08-12 13:29:00
글이 참 쑥쑥 읽히고 좋네요~ 헤어질 결심을 재미있게 본 사람으로써 흥미롭게 읽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