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아호, 나의 아들' 누아르와 가족 사이에서
[NETFLIX] '아호, 나의 아들' 누아르와 가족 사이에서
  • 김민세
  • 승인 2022.08.14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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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햇빛의 무게를 견디며"

<아호, 나의 아들>은 예상치 못한 폭력과 함께 시작한다. 오토바이 위의 두 남성이 거센 비를 뚫고 식당에 도착하더니 그중 한 명이 다짜고짜 숨겨둔 칼을 꺼내 누군가의 팔을 자른다. 칼을 휘두른 '무'의 얼굴에 피가 묻어있고, 팔이 잘린 남성은 사방에 피를 튀기며 바닥을 구른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무'의 오토바이 뒷좌석에 있던 '아호'는 예고도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폭력 앞에서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잘린 손은 공교롭게도 끓고 있는 탕에 들어가 서서히 익어간다.

앞서 말한 영화의 첫 장면은 익히 봐왔던 범죄 누아르 영화의 장면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맥락 없이 제시된 칼로 팔을 내리치는 그 짧은 순간 이전까지는 영화의 서사와 무드를 포함한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없었기에 이 폭력의 이미지는 난감함을 넘어서 다소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심지어 배경에 깔리는 사운드트랙은 이상할 만큼 서정적이다. 또한 이 장면 뒤에 펼쳐질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은 폭력이 난무하는 누아르 영화와는 정반대의 결을 갖고 있기에 사후적인 판단으로도 첫 장면의 이미지가 주는 자극은 비정상적으로 여겨진다. 이 폭력의 무드는 소년원에 수감되었던 '무'가 다시 등장하는 영화의 중반부에서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다시 전복될 것이다.

 

ⓒ 3 NG FILM

<아호, 나의 아들>의 반복과 전복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은 '이중의 서사'이다. 누아르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 그림자의 서사와 빛의 서사. 누아르의 서사는 폭행을 죄목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아호와 추후에 그를 찾아오는 무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가족의 서사는 첫째 아들 아하오의 의대 입시를 응원하며 둘째 아들 아호를 매정하게 떨쳐내려는 아원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누아르의 서사는 순식간에 우리를 자극하는 반면 가족의 서사는 구축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아원이 아호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누아르의 세계가 자신의 가족으로 섞여들 것을 거부하는 몸짓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누아르의 서사는 소년원이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독립적으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누아르의 무드는 아원이 정의 내린 가족에 틀에 교묘하게 침투한다. 그의 집 문을 열게 하는 두 번의 초인종 소리와 함께. 첫 번째는 아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샤오위이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호가 석방될 때까지 샤오위의 임신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하는 아원은 아호에 대한 원망감이 더욱 커져만 간다. 두 번째는 첫째 아들 아하오의 죽음이다. 한밤 중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아원이 문을 열자 문밖의 이웃은 아하오가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말을 전한다. 첫 장면에서 맥락 없이 제시되었던 폭력의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아하오의 자살은 영화 전반에 걸쳐 그 어떠한 암시나 징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충격적이고도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아하오의 장례식에서 아원은 죄수 신분의 아호와 재회한다. 아원은 여전히 그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가족에 대한 아원의 태도가 빚어내는 어딘가 익숙한 형상에 있다. 아원은 성적과 외모 모든 면에서 뛰어난 아하오를 아꼈고, 그에 비해 떨어지는 아호를 외면했다. 그의 지속적인 관심으로 아하오는 의대 입시를 계속하고, 아호는 사고를 치고 다니다 소년원에 들어간다. 아호의 아이를 임신한 샤오위는 자신이 알바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 한마디로 그는 가족 구성원의 능력과 기질에 있어서 냉정하다. 용서와 선처는 용납되지 않는다. 그의 고집 있는 신념을 통해 만들어가려는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가부장적 관념을 등에 업은 누아르의 가족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아호는 무로 대표되는 범죄의 세계, 아원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적 세계 아래에서 이중의 누아르적 서사를 겪고 있는 셈이다.

 

ⓒ 3 NG FILM

운전면허 강사인 아원은 자식이 몇 있냐고 물어보는 수강생에게 의대를 갈 아들이 '하나' 있다고 답한다. 그가 말하는 아들은 물론 아하오이다. 그에게 가족은 자신의 발화로 수정될 수 있는 것, 즉 자기 자신이다. 사라진 사람을 찾기 위해 항아리를 깨뜨렸다가 그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 사마광의 이야기처럼. 아원이 보고자 하는 자기 자신은 아하오이다. 그리고 아하오가 죽는다. 아원의 꿈에서 아하오는 마치 유령처럼 그의 앞에 나타난다. 꿈에서 깬 뒤 아원은 꿈에서 나왔던 길을 따라 걷다가 그 길 끝의 편의점에서 아호를 만난다. 아원의 꿈에서 나온 아하오는 상상적 자기 자신이다. 그리고 그 환상 끝에 보게 되는 아호는 현실적 자기 자신이다. '아들 하나가 있습니다'라는 그의 입에서 나온 문장이 상상에서 현실이 되었 듯이.

여기서 이상한 셈을 발견할 수 있다. 아원은 이 집에 아들이 하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바람에 응하듯이 아호가 소년원에 간다. 그리고 아하오의 죽음으로 인해 아원의 셈은 0으로 수렴한다. 그러나 셈은 다시 하나로 돌아온다. 같은 말을 하지만 의미가 달라졌다. 그를 둘러싼 세계가 변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의 발화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내면이 변했음을 증명한다. 그가 생각하는 가족의 가치관과 태도가 흔들리고 있다.

아원은 셈을 바로잡기 위해 누아르의 세계에 진입한다. 죽음의 위기 앞에 있는 아호를 돕기 위해 돈으로 무를 설득하다가 결국 살해한다. 그의 세계가 붕괴했다. 또는 그가 갖고 있던 가부장적 욕망, 누아르의 욕망이 폭발했다. 누아르의 밤이 끝나고 가족이라는 햇빛의 무게가 그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붕괴되지 않는다. 진실을 비추는 빛 아래에서 그의 아내가 절규하며 울부짖을 때, 아원은 아내의 몸을 붙잡고 버틴다. 그리고 끌어안는다.

<아호, 나의 아들>의 결말은 지극히 가족의 서사에 기대고 있음에도 한편으로는 누아르의 서사를 떠오르게 만든다. 결국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아원의 모습은 과거의 잘못을 청산하고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려는 몸부림처럼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청몽홍 감독은 누아르의 서사와 가족의 서사라는 이중의 서사를 함께 진행시키고 교묘하게 비틀며 스릴 있고 감동적인 기이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가족에 대한 영화가 넘쳐난다고 느껴지는 요즘, 흥미로운 스타일과 서사를 지닌 <아호, 나의 아들>은 이 시대의 가족을 기록하는 색다른 사례가 될 것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3 NG FILM
ⓒ 3 NG FILM

 

아호, 나의 아들 
A Sun
감독
청몽홍
Chung Mong hong

 

출연
진이문Ivan Chen
가숙근Ke Shu qin
무건화Chien-He Wu
유관정Liu Kuan-Ting
허광한Greg Han Hsu
윤형Yin Shin
온정릉Jenny Wen
오대릉Apple Wu

 

제작 3 NG FILM

제공 넷플릭스
제작연도 2019
상영시간 155분
등급 15세 관람가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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