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머, 필름을 타고!' 그 시절의 사랑법
'썸머, 필름을 타고!' 그 시절의 사랑법
  • 배명현
  • 승인 2022.08.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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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러도, 어설퍼도, 앞으로도"

동아리에서 영화 한 편이 상영되고 있다. 영화는 상투적인데다 감정과잉인 대사를 남발한다. 로맨틱하다기보단 코미디에 가깝고 어설프다. 동아리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영화로 보인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을 가장 좋아하는 시기이기에 만들 수 있는 그런 작품. 그런데 즐겁게 관람하는 아이들 중 얼굴을 구기고 있는 한 사람이 보인다. 못 봐주겠다는 듯,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맨발'(이토 마리카)이라 불리는 그녀는 사무라이 영화광이다. 그녀의 목표는 단순하다. 손발 오그라드는 사랑 영화대신 사무라이 영화를 만드는 것. 하지만 쉽지 않다. 동아리 투표에서는 단 하나밖에 받지 못 했고, 자비로 영화를 제작해보려 해도 주인공의 이미지와 찰떡인 '린타로'(카네코 다이치)는 영화 제작에는 열정을 보이는 반면 배역을 맡는 건 거부한다. 물론,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고야 말겠다는 일념하에 고군분투한다.

 

ⓒ 싸이더스

<썸머, 필름을 타고!>는 성장영화이다. '깊이'라는 미명아래 '새로운 시각'이나 '개념적 발명'을 위한 다르게 읽기를 위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비평적 접근법이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을 가리고 만다. 일본의 10대, 청춘이라는 단어의 노골적인 사용, 친구들, 아마추어리즘과 난항 그리고 사랑 등등. 이 영화는 명징하게 성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지점은 이것이다. 이 성장은 과연 어떤 성장인가.

성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물리적 성장과 내적 성장. 전자는 시간의 흐름으로 나누어 구분할 수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내적 성장을 성취하진 않으니까. 이 내면의 성장을 가리켜 문학적 혹은 영화적이라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면의 성장은 '서사적 과정'을 요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이 과정을 통해 성취하는 것은 물질적 세계의 쓸모가 아닌, 세계 속의 어떤 진실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이 아닌 현실에서 '내적 성장'을 할 때가 있긴 하지만, 똑같이 '(본인과 타인 둘 다)납득할 수 있는 과정'을 요구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동일하게도 내적 성장은 문학적이라 말할 수 있다.

다르게 말하면 이 서사적 과정은 '변화'를 의미한다. 다만 '성장'이라는 긍정성이 가진 의미를 생각해보았을 때, 변화란 모종의 긍정성을 내포해야 한다는 점에서 절대 단순하지 않다. '더욱더 나은 무언가'라는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개념, 다만 엄존하기는 한 무엇. 작품의 세계 안에서 이 이야기의 기준은 관객인 우리에게 있다. 인물이 성취해낸 보다 깊어지고 넓어진 내면과 태도 그리고 변화를 긍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그 대한 우리의 대답. 우리는 이 질문에 답을 할 필요가 있다. '인물들이 사건을 경유한 과정과 다가간 진실을 긍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 싸이더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긍정에 가깝다. <썸머, 필름을 타고!>를 관람한 뒤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니깐. '인물들이 만들어낸 결과(영화)'가 뛰어나서가 아닌 '인물들의 선택'이 놀라워서. 맨발, 킥보드, 블루 하와이, 린타로 그리고 그 이외의 다른 인물들까지, 이들은 영화를 계기로 모였고 영화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들의 결과물은 영화 경계 바깥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것은 <썸머, 필름을 타고!>의 핵심 제재가 영화가 아닌 사랑임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영화는 이 중심 제재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보여준다. 감추어져 있던 사랑과 이루려 움직이는 사랑. 첫 번째 사랑은 모든 인물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이다. 고백도 해보지 못한 채 실연당한 킥보드(카와이 유미), 숨어서 순정만화를 보던 블루하와이(이노리 키라라), 영화의 결말을 만드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맨발과 린타로의 애정. 그리고 결국 결단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사무라이 영화는 사랑 영화와 같다는 점까지. 이들의 사랑은 감추어져 있었지만 결국 드러난다. 이 사랑은 용기 있게 고백한 이들을 환대한다. 블루하와이는 카린의 영화에 출연했고, 맨발과 린타로는 영화의 영역 바깥까지 이어져 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 사랑이 킥보드를 거부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고백을 용기의 성장이라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좋을 듯싶다. 누구나 각기 다른 성장 속도를 지니고 있다고.

두 번째 사랑은 맨발과 린타로의 사랑이다. 정확하게는 두 사람의 영화를 향한 사랑 말이다. 맨발은 영화의 종말을 앎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만든다. 린타로는 영화가 사라진 세계의 폐허를 재구성하고자 과거로 온다. 두 사람의 욕망은 우상을 경유하지 않고 온전히 제 모습으로 성취해내고자 한다. 이 직선적 움직임은 언뜻 우스꽝스럽고 초라해 보이지만 애달프다. 목적에 이르는데 그 어떤 힌트도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래에 영화종말의 이유로 지적된 문제는 짧은 길이의 영상만을 선호해서라 하지 않았던가. 이건 시스템 차원의 문제이다. 결국 두 사람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 달성해야 하는 것은 카린의 영화와 대결에서 승리가 아닌, 시스템과 대결에서의 승리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성장영화이다. 성장은 목적 달성과 무관하진 않으나 성취가 성장을 위미하지도 않는다. 그래서일까. 영화 초반 자주 등장한 버려진 자동차는 어느 순간 등장하지 않는다. 안식적 도피를 대신할 것들이 생겼다는 듯.

 

ⓒ 싸이더스

러닝타임의 후반, 결말을 다시 찍겠다는 장면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맨발이 결말을 다시 찍기 전, <썸머, 필름을 타고!>는 우리(현실 관객)에게 전체화면으로 완성된 영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일부러 더치 틸트(Dutch tilt)하여 '영화 속 영화'로 보여준다. 이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스크린을 재인식하게 되고 심리적 거리를 가지게 된다.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는 맨발의 혼란과 평행선을 이루는 이 척력은 인물들의 결단으로 인해 인력으로 탈바꿈하여 다시 영화를 움직인다. 더 이상 유예하지 않겠다는 마음과 용기의 결을 가지고 움직이는 이들은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한 킥보드까지 말이다.

영화는 칼을 맞대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급작스럽게 영화를 다시 찍는다는 맥락상 맨발은 린타로에게 '진짜 결말'을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맨발 본인도 모를 수 있다. 이 둘은 아직 과정에 있다. 이들이 만든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아이폰과 싸구려 짐벌, 페달로 발전하는 조명과 어설픈 조명, 바람에 머리가 날리지만 NG를 외치지 않는 완성도까지. 이들의 빛나는 아마추어리즘은 어떤 시절에만 가능한 것이라 말하는 동시에 이들의 성장을 따스하게 보듬는다. 그리고 <썸머, 필름을 타고!>는 그것을 유의미하게 사랑할 줄 알고 있는 듯하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싸이더스

썸머 필름을 타고!
It's a Summer Film
감독
마츠모토 소우시
Matsumoto Soushi

 

출연
이토 마리카
Itou Marika
카네코 다이치Daichi Kaneko
이노리 키라라Kirara Inori
카와이 유미Kawai Yumi

 

수입|배급 싸이더스
제작연도 2020
상영시간 98분
등급 전체 관람가
개봉 2022.07.20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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