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선언': 프로덕션의 비상(飛上), 감독의 비상(非常)
'비상선언': 프로덕션의 비상(飛上), 감독의 비상(非常)
  • 이현동
  • 승인 2022.08.0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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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인내할 수 있는 영화적 중력은 어디까지일까"

'비상선언'(EMERGENCY DECLARATION)은 화재, 기술 결함, 연료 고갈, 구조 파손과 같은 불가항력적 재난 상황에 부닥친 항공기가 무조건적 착륙을 선언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그러나 제목과 무관하게 <비상선언>의 엔진은 급박하게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선사하지 못하고, 항공기 연출이란 거대한 연출을 성사하기 위한 프로덕션의 위력만으로 간신히 생명력을 부지할 뿐이다. 영화의 결함은 결국 한재림의 비상(非常)을 선언한다.

한재림 감독의 <비상선언>은 감독의 욕망이 깊숙이 투영된 작품으로 장단점이 너무나도 극명하다. 비행기라는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식별할 수 없는 재난의 공포,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몸부림은 구조적으로 탄탄한 도구들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공간사용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소모되는 캐릭터와 서사의 이미지는 끝끝내 관객들에게 착륙하지 못한다. 영화는 메시지를 노출하기 위한 '감독의 연출이 과잉되어 드러난다'는 지점에서 의도적인 결함이 유출된다.

 

ⓒ 쇼박스
ⓒ 쇼박스

너무나 의도적인

전작 <더 킹>(2016)을 제작하고 한 인터뷰에서 내레이션을 비롯한 다큐멘터리 요소를 삽입함으로 관객들이 현실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기를 원했다고 말한 것과 같이, 감독에 의하면 <비상선언>에서도 앵글을 진척하는 암묵적인 플레어(Flare)도 이런 다큐멘터리의 이미지를 부각하며 관객들에게 생생한 현장을 반영하려 애를 썼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의도가 깊숙하게 관철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프레임에 표상되는 이미지의 결과물이 아니라 후반부에 의식적으로 소멸하거나 중첩되는 기이하고도 괴상한 몽타주의 삽입에 있다.

<비상선언>의 초반의 이미지를 배합하는 연계 과정은 자연스럽다. 가령 오프닝을 장식하는 장면인 비행기가 위치한 공항에서 아스팔트의 열로 인해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는 판별 불가능한 재난을 예견하고, 재난의 동기를 제공하는 류진석(임시완)이 탑승하기 전에 공항에서의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아지랑이가 그러한 예이다. 또한 구인호(송강호)와 경찰들이 동영상을 통해 테러를 암시했던 류진석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과 류진석이 공항에 진입하는 장면이 교차하는 이 연쇄적인 몽타주는, 영화의 서스펜스를 부각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의도는 관객들과 적절하게 호응한다. 비행기에서 바이러스 전파가 시작되고 최초 희생자의 죽음에서 발각되는 류진석의 정체와 이를 동요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증후 한 무게감을 추가한다.

그럼에도 재난영화의 관습에서 <비상선언>은 자유롭지 못한다. 어떻게든 결말을 내려는 모종의 의도는 이 영화가 견인하는 위치가 하늘이 아닌 지상에 있음을 선언함으로써 일찍이 하강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 쇼박스

지상선언

재난영화의 대부분의 클리셰는 개인과 가족, 그와 대립하는 국가와 특정 공동체로부터 특정되어 진다. 영화에서 일종에 불문율(不文律)에 해당하는 테러는 개인사에 의해 호명되고 이후 협상테이블을 통해 서사의 리듬은 조율되기 마련이다. 이 영화가 급격하게 하강하는 지점은 몇몇 재난영화가 그러하듯 무리하게 공동체와 국가가 개입할 때 발생한다. 부정적인 예로 김성수 감독의 <감기>(2013)가 그런 사례가 될 수 있을 텐데, 바이러스로 격리된 환자와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폭력적인 방식은 너무도 적나라하게도 어떠한 담론도 끌어내지 못하는 피상적이고 과격한 영화라는 점에서 피로감을 준다는 것이다.

<비상선언>은 초반의 전술을 소거하고, 국토부 장관인 김숙희(전도연)으로부터 영화는 본격적으로 피로를 유발한다. 지상에 체류 된 인간은 무력하게 묘사된다. 물리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상공에 위치한 장소에서 선언되는 비상선언은 지상에서의 선언으로 환원된다. 바이러스의 위험성에 의해 미국 측의 착륙 불허가 떨어지고, 연료 부족을 우려한 부기장인 최현수(김남길)의 일본의 나리타 공항에 착륙하겠다는 결단과 비상선언도 무기력하게 불허되고 공허하게 메아리친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국가들의 요구에 발만 동동 굴린다. 이것이 정치적 효과 혹은 의도로 착상했는지 개인적인 의문이 들지만, 이 소재들이 쉽게 휘발될 때 영화의 단점은 명확하다.

어느 순간부터 지상과 상공의 비행기 템포가 어긋나고 있었고, 이미 그것을 봉합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채 비행기는 끝을 향해 유영한다. 그들이 바이러스의 걸렸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윤리적인 기능으로 인해 소멸한다.

 

ⓒ 쇼박스

심지어 국가청원에 의해 착륙을 반대하는 국민들의 여론은 미국, 일본과 별 다른 것이 없는 인간 군상의 적나라한 현실을 반영하면서 <비상선언>의 서사는 더욱 아이러니하게도 갈수록 앙상해진다. 상공과 지상이 연결된 긴장감 없는 네트워크의 활용은 핸드폰을 통해 현장을 생중계함으로 영화적 긴장감을 삭제한다. 여론에 관한 뉴스를 본 탑승객들이 하나같이 지상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비행기에서 내리지 않겠다고 말할 때, 이어지는 영상통화 시퀀스와 구인호가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이뤄낸 항바이러스 실험 성공은 영화의 급박한 마무리와 더불어 한국에서 여전히 회자하고 있는 사건을 상기시킨다. 세월호와 대구 지하철 방화가 연상되는 영상통화 장면에서 이것이 국가적인 잘못이든지, 사회구조의 문제인 것인지 명료하게 지적하지 않음으로 영화는 안전하고 모범적인 영화로 마감된다.

이렇듯 <비상선언>의 곳곳에서 잔재하는 편의적인 활용은 결국 평면적인 서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감독이 상정했던 '희생'이란 주제 또한 관객들에게 온전하게 도달하지 못한다. 영화가 세련되지 못하고 둔탁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이러한 주제를 바로 전달하려는 강박적인 태도에 있다. 코로나 시국에 바이러스는 지구촌을 이 영화에 등장하는 항공기와 같이 세상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대변할 뿐, 관객들에게 납득할만한 이미지를 재현하지 못한다. 재난영화에 과제인 ‘신파’의 구현은 필연적일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그 ‘신파’의 완력에 대해 믿지 않는다)

<비상선언>의 이야기가 관객들을 설득하기 위한 준비과정에서 소비되는 여러 에피소드는 박정우 감독의 <연가시>(2012)가 연상되기도 한다. 제약회사의 음모를 비롯하여 해독제를 취하는 과정까지의 에피소드와 반전은 이 영화의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했다. <비상선언>에서는 초반을 제외한 모든 장면에서 감지되는 허술함은 프로덕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코리아 탑건 이병헌에 의해 아주 미세한 쾌감을 선사할 뿐, 주제의식에 충실하게 부합하지 못하고 감독의 의도에 의문점만이 발견된 채 마무리된다. 재난영화의 중력이 관객의 수준과 결부하고 있음을 직시할 때, <비상선언>의 활공은 관객으로 회항하지 못하고 추락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쇼박스

비상선언
EMERGENCY DECLARATION
감독
한재림
Han Jae-rim

 

출연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임시완
김소진
박해준

 

제작 매그넘나인
배급 쇼박스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4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8.03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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