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럭 뱅잉'의 농담은 곧 진담이 된다
'배드 럭 뱅잉'의 농담은 곧 진담이 된다
  • 이현동
  • 승인 2022.08.0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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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루었다'는 괴상한 농담"

부부 사이의 은밀한 행위로부터 촉발되는 <배드 럭 뱅잉>(2021)은 포르노가 유통될 때 발생하는 해프닝을 통해 교사인 에미(카티아 파스칼리우)가 마주하는 블랙코미디를 다룬다. 서두를 장식하는 포르노그래피(pornography)의 짧은 클립은 이미지의 자극과는 무관하게 담론장으로 초청하는 한 편의 편지로서 관객들에게 발송된다. 라두 주데가 이 영화의 주제를 '외설성'이라 고백했듯이 서양의 포르노나 일본의 AV(Adult Video)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의 강렬한 수위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전형성을 폭파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물, 인물들을 통해 사회 저변에 침식해있거나 마찰하는, 즉 각각의 유동적인 사유 이미지를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포르노의 유통, 영상매체 확대 재생산과 관련하여 가장 잘 알려진 폰허브(Pornhub)가 무려 아마존, 넷플릭스보다 방문자 숫자가 높다는 기록은 외설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인간 사회를 구축하고 있는지 관망할 수 있는 하나의 코드가 된다. 이러한 유통을 가능하게 동시에 일종의 성을 상품화하고 그 지위를 권력화하는 과정에서 돌출되는 건, '인간의 욕망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전시하고, 기록하고, 재현하고, 해체하고, 분석하고, 번역하는 데 있어 끊임없는 증식을 선언하고 있다는 것에 기인한다.

 

ⓒ 알토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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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부로 나누어진 <배드 럭 뱅잉>은 실험 영화의 미적 기능을 탐색하고 구현하는데, 이는 그가 수행하고자 하는 예술론이 점차 변용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라두 주데의 첫 작품 <아페림!>(2015)이 로드무비 형식이자 수정주의 웨스턴이란 장르를 표면화하면서 인종 차별과 노예 제도의 불합리함을 지적했다면, 최근의 작품 <어퍼케이스 프린트>(2020)는 그의 탐미적인 예술론의 결과물로 파편화된 아카이브 이미지를 콜라주의 방식으로 덧칠하여 사회 메커니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특히, <배드 럭 뱅잉>은 라두 주데의 영화 용법을 총집합한 작품으로 그 감각을 인정받아 제71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거리의 은유

에미는 루마니아의 수도인 '부쿠레슈티 거리'를 배회한다. 여기서 파올로 소렌티노나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로마나 마드리드 등에서 동시에 획득할 수 있는 국가의 대표성이란 건 각각의 역사를 불가분하게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지점에서, 에미가 걷는 부쿠레슈티의 거리는 루마니아의 정체성을 대변한다. 라두 주데가 목가적인 풍경에서 태어나고 성장했기 때문에, 루마니아의 수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한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는 차원이 아닌, 오로지 루마니아라는 국가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된다. 그리고 이 점을 유념할 때 그의 담론은 자기 반향적인 경향을 지닌다. 또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범국가적으로 제기될 수 있는 문제의식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기까지 하다.

제1부의 제목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책 이름을 딴 '일방통행로'라는 점에서 <배드 럭 뱅잉>(2021)의 최초의 이미지는, 인물보단 길거리에 배치된 사물들을 주목하며 그 저변에 사유의 궤적들을 추적한다. 다채로운 광고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서적, 플랜카드, 나뭇잎, 마네킹의 다리, 도박장, 낙후된 집의 구조물, 거대한 성당, 그리고 시네마 부쿠레슈티까지 진행되는 거리의 모든 존재는 모두 루마니아를 구성하는 시대의 소산물처럼 전시된다.

 

ⓒ 알토미디어

오즈 야스지로와 벤야민

라두 주데는 크리테리온 채널에서 인터뷰를 통해 오즈 야스지로를 향한 애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이 점은 에미를 이탈하고 나타나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용법인 필로 샷(Pillow shot)을 통해 그 유사한 특질이 관측된다. 오큘로 사이트에 업로드된 『국제심포지엄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 기념 「OZU 2003」의 기록 国際シンポジウム 小津安二郎 生誕100年 「OZU 2003」の記録』(하스미 시게히코, 야마네 사다오, 요시다 기주 엮음, 2004)에서 언급한 내용인 오즈의 반(反)휴머니즘과도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를 보지 않는다는 이 급진성은 오즈의 앵글이 인간이 없는 텅 빈 곳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에서 비역사적이며 정치적이다. 유사하게도 1부에 해당하는 이미지들은 사물로 구축된 배경을 통해 이런 보편적인 경향이 유출된다. 인물이 아닌 거리의 포커스는 형식을 배반하고, 더 나아가 초현실적이라 할 수 있는 메타 이미지들이기도 한 것이다.

알려지다시피 『일방통행로』의 관상학적 이미지에서 촉발하는 거리의 이미지가 초현실적인 모티브(motive)를 기술된다는 것을 주목한다면 이는 조금이나마 뚜렷해진다. 메타 적인 반영, 어쩌면 현재가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언급했던 시뮬라르크(Simulacra)로부터 번식하는 무수한 기호 이미지들의 세계라 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발화조건이 충족하기 위한 장치로 코로나의 현실과 가상의 대체물로 인물들이 착용하고 있는 마스크를 이용하기도 하고, 2부에서 등장하는 실험적인 다큐 장면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되는 구조적 양식을 나타날 때 이는 모사가 아닌 실제 시뮬라시옹(Simulation)의 세계에 진출하며 메시지를 전달한다. 주변부의 거리 이미지는 강제적으로 의식을 변환시키고 인식을 통제하기도 하지만, 통렬하게도 이 외설이란 주제를 관통하는 편견이란 전선에서 라두 주데는 승리를 선언한다.

 

ⓒ 알토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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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로부터

2부에서는 '일화의 표식들, 불가사의한 것 들에 관한 짧은 사전'이라는 제목으로 라두 주데의 직접적인 관심을 드러내는 비디오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인류학적 보고로 통용되는 이 짧은 클립들은 쇼비니즘(chauvinism)을 필두로 불의한 이미지를 배태한다. 가령 원주민 여성의 가슴을 만지는 식민지 개척자, 혁명가들로부터 문을 닫게 된 정교회, 유대인과 로마인에 대한 나치의 학살을 독려하고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의 행렬들은 광란적이며 무자비하다. 이는 에미의 성행위와 대치되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부부 사이의 평범한 성행위가 국가의 부패와 폭력보다 위중한가? 신속하게 연결되는 비디오 클립은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이미지에 대한 보고이자 반성이며, 규율화 되고 양식화된 인식을 통해 선뜻 위반하지 못하고 있는 인식의 경계를 배회한다.

현대가 과거의 보존의 역사이며 그 이미지가 통로로 활용되는 것을 가시화할 때 에미를 향한 시선은 '외설'이라는 선입견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1부에서 에미는 길거리를 지나치다 그녀를 알아보는 이들의 시선과 마주하기도 하고, 학교 교장을 찾아가거나 남편과의 통화를 통해 어떻게 하면 이 사태가 확장되지 않을 지를 고민한다. 심지어 길거리에 노인에게 희롱을 당하기도 한다. 3부는 이를 더욱 가시화하는 것으로 교사의 직위를 지닌 에미가 당하는 비난과 모욕, 혹은 호기심, 반유대주의라는 공세를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영화는 더욱 단단한 어조로 응답한다. 교육열이 높은 명문학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음성,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cool™ 셔츠를 입고 사람, 에미의 포르노 영상을 엄숙하게 바라보는 학부모들, 외국인을 혐오하는데 동원되는 '집시'의 명칭들 사이에서 그들은 자신의 존재를 위장한다.

에미가 히어로가 되어 물리적 위압을 가하는 마지막 장면의 유희는 전복된 세계관에 대한 희망찬 이미지로 변용된다.

라두 주데는 서사나 드라마, 갈등이 없다고 불평하는 관객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편화된 구조, 양식을 통해 더욱 충실하게 사물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영상처럼 이탈될 기미가 없이 무한히 연장되는 이미지가 존재한다면, 그 정반대로 분절된 이미지를 통해 의미를 통합하는 몽타주의 이미지가 있다. 앞서 논평했듯이 라두 주데는 두 종류의 이미지를 횡단하며 메시지를 세공한다는 점에서 루마니아의 차세대 뉴웨이브 선두 주자로 손꼽을 법하다. 벤야민이 "전통을 순응주의의 손아귀에서 구해내려는 노력이 각 시대마다 재개되어야 한다고"고 언급했듯이, 라두 주데는 기존의 영화 장르를 갱신하려는 노력에서 <배드 럭 뱅잉>은 진실로 유의미하다. 어쩌면 <배드 럭 뱅잉>의 이미지는 현대를 독해하는데 뛰어난 사례로 각인될 뿐만 아니라 창작자에겐 영감을 잉태하는 자궁이 될법한 환상적인 코미디 영화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알토미디어

배드 럭 뱅잉
Bad Luck Banging or Loony Porn
감독
라두 주데
Radu Jude

 

출연
카티아 파스칼리우
Katia Pascariu
클라우디아 이레미아Claudia Ieremia
올림피아 말라이Olimpia Malai
니코딤 웅구레아누Nicodim Ungureanu
안디 바슬루이아누Andi Vasluianu
알렉산드루 포토신Alexandru Potocean

 

수입|배급 알토미디어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6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1.07.28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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