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어' 아름다움과 애환의 음악적 몽타주
'모어' 아름다움과 애환의 음악적 몽타주
  • 이지영
  • 승인 2022.07.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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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 판타지 뮤지컬 다큐' : 새로운 장르의 탄생
ⓒ 엣나인필름

<모어>의 미학을 상징하는 하나의 이미지가 있다면 배우 모어(모지민)의 민낯과 화려한 화장이 반씩 공존하는 얼굴을 클로즈업한 포스터가 아닐까. 무대 위에는 누구보다 화려한 방식으로 자신의 창조성을 드러내는 모지민의 모습이 있다. 무대 아래는 맨얼굴에 담긴 쓸쓸하고 지친 표정, 그리고 숭고함을 품고 있는 무용수의 나체가 있다. 이것은 광장과 고향집 앞 마당의 대비이며, 마치 표현이 극대화된 낭만주의 음악과, 미니멀하지만 이상적이고 정제된 고전 음악 사이의 대비 같기도 하다.

서로가 불가분의 관계인 상반된 두 아름다움은 음악과 춤, 인물의 내레이션을 경유하여 한 데 섞이고, 이일하 감독이 '소프트 판타지 뮤지컬 다큐멘터리'라고 부르는 독특한 장르로 재탄생한다.

영화 도입부의 시퀀스는 모지민의 걸음을 따라 화려한 드랙퀸의 삶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과장된 표정, 기호가 되어버린 여성성과 섹슈얼리티의 전시는 축제처럼 그려지는 한편, 대기실에서 자기 가슴에 꽂힌 천 원짜리 지폐들을 꺼내 던지는 환멸의 순간마저도, 그리 무겁지만은 않게 포착한다. 외설스럽고 장난스러운 대사("팁이나 많이 내놔, X것들아")는 이 인물이 현실의 무게를 견디며 스스로 무기력과 절망으로부터 들어올리기 위해 가벼움과 해학이라는 지렛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렇게 모지민이 살아가고 있는 드랙퀸의 삶은 영화의 출발점이자, 잊지 말고 돌아와야 할 회귀점이다. 그것은 뉴욕이 상징하는 스펙타클하고 비일상적이며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희망, 그리고 과거의 아름답고도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직시하기 위해 도약했다가 다시 사뿐히 내려앉아야 하는, 엄연히 사라지지 않는 단단한 현실이다.

 

ⓒ 엣나인필름

지나간 꿈과 다가올 꿈은 육체에 아로새겨지고

<모어>는 아티스트 모지민이 가진 고유한 아름다움과 아우라를 끝까지 파고드는 영화이며, 그것이 이일하 감독이 추구하는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과거의 어떤 시간들을 통과하여, 표정과 동작 하나에서도 이 같은 독특한 형식의 예술성을 지닐 수 있게 되었는지 알려면 우선 모어의 유년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어린 시절 발레의 꿈과 대안으로 선택한 드랙쇼란 현실에는 아름다움과 애환이 동시에 들어 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었던 시골 소년에게 아버지가 사준 값비싼 발레복, 발레 하나로 이뤄낸 성취, 앞날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발레리나의 가벼운 손짓만큼이나 한없이 들뜨고 아름답다. 하지만 발레리나의 발톱이 몸의 하중을 받느라 짓뭉개지고 발에는 굳은살이 배기는 것처럼, 그의 여성성에 가해진 무차별한 폭력과 몰이해가 그 이면에 똬리를 틀고 있다. 절망 끝에 이태원의 환락가 클럽으로 도망치듯 들어가서 시작한 드랙쇼는, 항상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것 이상의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는 고통스러운 작업인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잊을 정도로 '행복한 끼순이'가 될 가능성을 열어준다. 모지민은 드랙쇼가 역설적으로 자신을 구원한 '신의 창조물'이라 부른다.

우리는 <모어>의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두 이미지의 성질을, 화려하고 전시적인 새의 이미지와 내면으로 침잠하는 물고기의 이미지라고 불러볼 수 있겠다. 지하철 안에서 마치 새의 날갯짓처럼 우아하게 속눈썹을 파르르 떠는 자태와, 새로 산 토슈즈를 신고서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는 모습, 그리고 나체로 웅크린 채, 마치 심해의 물고기처럼 유영하는 듯한 움직임은 같은 사람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정반대의 이미지를 추구한다. 거침없는 '끼 부림'과 관객들을 향한 매혹, 그 이면에는 죽음에 가까웠던 기억과 아직 낫지 않은 상처들이 있다. 아름다운 붉은 옷을 두른 채 노래를 부르며 잠수교 위를 걷는 당당한 드랙퀸의 모습과 어두운 육교 위를 붉은 하이힐만 신은 채 고독하게 걷는 모습은 명암처럼 극명히 대비된다. 우리는 스크린을 통해 이 모든 희로애락을 통과해 온 사람의 단단한 얼굴과 대면한다. 이일하의 섬세한 편집은 이처럼 복잡다단하고, 강인하면서도 섬세한 아티스트의 내면을 몽타주 기법으로 엮어 낸다. 그리하여 과거의 꿈과 미래로 도약하려는 현재의 움직임이 서로 자연스럽게 조응하도록 한다.

 

ⓒ 엣나인필름
ⓒ 엣나인필름

피사체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것

이일하는 자신 혹은 제삼자의 내레이션을 완전히 배제한 채, 모지민에게 자기 삶의 스토리텔러로서 목소리를 부여한다. 이로써 아티스트는 카메라의 피사체인 동시에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주체로 거듭난다. 마치 자서전을 읽는 듯한 담담하고 밝은 톤의 보이스오버 내레이션, 지인들을 찾아가 대담 형식으로 말하는 과거의 이야기, 남편 제냐와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한영애 '조율'을 드랙쇼의 과장된 제스쳐로 립싱크하는 모습, 자신과 아버지와의 가상의 대화에 감정을 담아 낭독하는 모습, 제냐와 함께 밤바다에서 부르는 이상은의 '담다디'도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주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이다. 자신이 스스로 정의하기 이전에, 누군가가 대상화된 시선이나 사회적인 잣대부터 들이대었던 숱한 세월에 저항하기라도 하듯, 모지민은 삶의 행적들이 지니는 의미를 만인 앞에 선언할 기회를 누구보다 먼저 부여받는다. 아래와 같은 문장들에 눌러 담은,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는 모든 것을 일부러 말하지 않음에도 많은 것을 들리도록 한다.

"난 어리고, 아리고, 어리석었다."

"난 밤마다 신께 기도를 드렸고 귀신은 내 갈 길을 인도해 주었다."

모지민이 한국 광화문 광장을 배경으로, 벚꽃나무 아래와, 눈 쌓인 숲길과 동양적인 정자, 고향의 항구를 배경으로, 또 뉴욕 광장을 배경으로 노래하고 춤출 때 느껴지는 미감이나 이질감은 매 순간 다르다. 특히 광화문 광장에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연출된 퍼포먼스에서는, 전작 <카운터스>와 <모어>의 분기점을 포착할 수 있다. <모어>에서 이일하의 카메라는 동성애 반대시위와 퀴어 퍼레이드라는 두 진영의 대치 상황조차 뒷 배경으로 만들어버리고, 오직 아티스트 모지민에게만 집요하게 포커스를 맞춘다. <카운터스>에서의 혐한 시위와 <모어>의 동성애 반대 시위, 과장된 남성성을 가진 집단 '오토코구미'와 두 진영 사이를 초연하게 걸어가는 모어의 과장된 여성성은 대비되는 의미를 서로 주고받으며 공명한다. 노래에 맞춰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나의 조국'에게 과장된 날리는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장면은, 아직도 나아갈 길이 먼 한국 사회에 날리는 모어만의 통쾌한 일갈이자 살풀이 방식이다.

 

ⓒ 엣나인필름

현실의 재료로 빚어내는 판타지

<라라랜드>, <틱,틱,붐!>등 헐리우드 뮤지컬 영화에서 때로 주인공의 꿈과 사랑이 양립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모어>는 꿈과 사랑 모두 한 인간이 끝까지 버티고 생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요소임을 역설한다. 모지민은 그의 우상인 <헤드윅>의 존 카메론 미첼과 우정을 이어가고, 뉴욕의 더 큰 무대로 나아갈 준비를 하는 동시에, 고향을 찾아가서 자신을 언제나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준 가족에게 깊은 사랑과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남편 제냐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는다. 20년의 드랙퀸 세월만큼이나 모지민에게 중요한 것은 제냐와 함께한 20년의 세월이다. 제냐는 그가 일평생 사랑한 대상이자, 고통에 찬 삶에서 끝내 생존한 자신에 대한 증인이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하는 제냐를 '포켓몬 GO' 같은 가상세계 안에 잠식되지 않게 하는 것,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예술만큼이나 모지민에게 중요한 과제이다.

결국, <모어>가 뉴욕에서 스톤월 항쟁 50주년 공연을 하는 동안, 제냐도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밑작업을 행한다. 흔한 커플들의 성격 차이나, 행정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두 사람이 마침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은, 앞서 감독이 규정한 장르(소프트 판타지 뮤지컬 다큐) 중에서 '판타지'적인 요소라고 부를 만할 정도로, 이상적인 해피 엔딩의 결말이다. 사회의 불편한 일면을 직시하도록 우리를 추동하는 것도 다큐이지만,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난 사람이 빛의 세계로 나와 첫 번째 짓는 표정을 기록하는 것 역시, 다큐의 역할이라는 것을 이일하의 카메라는 주장한다. 

모지민의 못다 이룬 꿈이 기어이 뉴욕의 무대와 조우하는 풍경, 즉 <13 후르츠케이크>에서 자신의 평생 꿈인 발레리나로 데뷔하는 슬로우모션 시퀀스만큼이나 강력하고 극적인 것은, 고향집의 앞마당에서 부모를 모셔 놓고 고등학교 콩쿨 무대를 재연하는 씬이다. 감독이 우연히 카메라를 끄지 않고 동네 슈퍼에 다녀오는 바람에 찍혔다는 아버지와 말없이 TV를 보는 정적인 롱테이크는, 미첼과 처음 조우하는, 모어 스스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감격스러운 장면만큼이나 진실된 감정을 담고 있다.

모지민과 제냐를 태운 아버지의 경운기가, 어머니가 밭을 매고 있는 풍경을 지나가는 씬에서는, 언뜻 보면 서로 안 어울릴 것 같은 인물들과 의상과 배경의 조합이 신선한 시각적인 충격을 주면서도,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인물들의 자연스러움이 그 이질감을 상쇄한다. 이것은 표현되고 연출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근 몇 년간 한국 다큐에서 본 가장 순일하고 평화로운, 기억에 남을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 이지영, karenine@ccoart.com]

 

ⓒ 엣나인필름

모어
I am More
감독
이일하
E Il-ha

 

출연
모지민
존 카메론 미첼John Cameron Mitchell
예브게니 슈테판Evgeny Shtefan

 

제작 익스포스 필름
배급 엣나인필름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8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6.23

이지영
이지영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평이한 문장이지만 사색을 담은 글을 씁니다. 투박하고 건조한 문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진실의 일면에 다가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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