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어' 여전한 혼란
'큐어' 여전한 혼란
  • 배명현
  • 승인 2022.07.27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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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적 인간에 대한 기요시적 진단"

1.

어느 날 의문의 살인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난다. 범인은 경찰, 교사, 의사, 회사원 등 각각 평범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살인을 하는 것이다. 서로 만난 적도 교류를 나눈 적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사건에 있어선 기묘한 공통점을 가진다. 피해자의 목 아래에 칼로 엑스자 형상을 남긴다는 것과 살인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타카베 켄이치(야쿠쇼 코지)는 이 사건을 수사한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2.

<큐어>는 구로사와 기요시 본인이 정말 순수하게 개인의 영화적 욕구로 만들었다는 말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다양한 의미가 도출되는 기묘한 작품이다. 특히 이 영화가 개봉한 1997년 12월이라는 시간을 생각해본다면, 그 이전인 1995년 3월 20일에 발생한 옴진리교 사린테러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과 그 상처가 채 상흔이 되기도 전이라는 기간을 상기해보았을 때, 그리고 이 영화가 명백하게 '오컬트' 장르의 영화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 영화가 가지는 일본의 사회적 메타에 대해 유의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형사-탐정 서사는 사건이 발생한 뒤에 시작해, 사건을 역행해 거슬러 올라가는 과정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데 그 의의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도구가 인간의 이성이라는 점이다. 논리추론을 통해 인과를 밝히고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증거를 잡아낸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주축은 혼란한 사건을 해결하는 도구가 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이성은 세계의 불확실성 안에서도 진실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절대적이며 객관적인 무기가 된다.

하지만 '오컬트'는 그렇지 않다. 인간의 세계가 아닌 이질적인 그 무엇이 이 세계에 존재하며, 그 존재는 인간의 세계에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 인간의 위에 군림한다. 인간은 이 존재에게 공포와 대항 불가능성으로 인한 무력감을 느끼고 결국 절망하게 된다. 인간은 철저하게 무기력한 존재가 된다. 여기에 인간의 논리는 어떤 진실도 밝혀내지 못한다.

 

3.

<큐어>는 여기서 시작하는 영화이다. 켄이치는 인간의 논리적 방법을 따라 사건의 공통점을 밝혀내고 살인의 방법론까지 알아내지만, 수사를 진행할수록 점점 절망한다. 의지를 절멸하고 그 어떤 희망도 긍정할 수 없게 점멸해버린다. 사건을 수사하면서도 계속되는 살인은 막을 수 없으며 마미야 쿠니히코(하기와라 마사토)는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질문만을 던지며 정신을 붕괴시키기만 한다. 이때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건 마미야의 전사나 어떻게 최면이 효과를 발휘하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그저 기이한 이야기가 발생하는 과정 안에서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이다.

 

ⓒ 엠엔엠인터내셔널

기억상실증에 걸린 마미야는 자신에 대해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너는 누구야"라며 불쾌할 정도로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타인에게 다가서려 한다. 반복해서 묻는 말에 그 대상은 자신의 직업과 상황으로 답변하지만, 마미야는 그것이 그를 완벽히 설명하진 못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마미야는 어떤 절대적인 위험을 가진 존재로 비친다. 다가갈 수 없는 존재. 대화가 불가능한 일방적인 소통의 존재. 대면하는 순간 우리에게 최면을 걸어버리는 존재.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점은 마미야가 인간이 아니라 치환하여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미야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형상을 한 정신적 '병원균'이라고. 다만, 이렇게 규정하게 된다면 오해의 여지가 생기게 된다. 마미야가 인간의 정신을 오염시켰다는 오해. 하지만 영화의 대사에서 명징하게 밝혔듯이 그는 최면 대상의 기본적인 윤리관은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나라는 존재'로 향하는 결계를 해체하고 그것을 드러내게 한다. 이는 최면 때문에 '살해할 수 있는' 인간으로 변모한 게 아니라, '살해를 할 수 없게 하는' 사회적 장막을 벗긴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4.

"가면을 쓴 젊은 남자 다섯 명이 우산 끝으로 비닐봉지를 찌른다. 곧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역에서 우르르 내린다.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 몇 명이 쓰러지고, 곧 승강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두통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언더그라운드』에 쓴 1995년 3월 20일 도쿄의 아침이다.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가 그해 11월 최후의 전쟁으로 세계가 멸망한다고 한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서였다. 이건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일견 상식적으로도 사이비 종교를 믿는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들지만, 교주의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본인이 직접 나선다니 말이다. 이건 예언이 아니라 예언을 옳게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 엠엔엠인터내셔널
ⓒ 엠엔엠인터내셔널

현실의 이야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을 포괄하지만, 서사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다루어진다. 그리고 이 서사화를 하는 과정에서 작가가 가지는 태도가 그 사회에 대한 인식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우리는 <큐어>를 통해 당시 일본에 대한 기요시 감독의 진단을 어렴풋하게라도 읽어볼 수 있다. 기요시 감독은 옴 진리교에 대한 이해는 불가능한 것(인간의 상상 범위를 뛰어넘는 것)으로 규정한 뒤,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현실의 영역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과연 우리는 정말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당신은 누구야'라는 쉬운 질문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의 모습이 붕괴된다면, 이 현실은 얼마나 위태하고 불안한가.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해야 하는 존재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 우리의 이해할 수 있는 (혹은 있다고 믿었던) 존재라고.

 

5.

켄이치의 아내는 빈 세탁기를 돌리고 생고기를 저녁식사로 차려놓는다. 그는 아내를 떠올릴 때면 최면에 걸린 듯 환상을 보고 환상에 잠긴다. 하늘 위를 부유하는 버스를 탄 쇼트와 그녀가 자살하는 쇼트 그리고 중간중간 매우 빠르게 삽입되는 쇼트. 이 방법론은 정확하게 미디어가 인간의 심리를 조절할 수 있다는, 한때 널리 퍼진 유사과학의 방법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심지어 칼을 꺼내는 켄이치를 보여주는 쇼트는 아내의 정신과 의사와 만난 쇼트 전에 잠시 삽입된다. 우리는 여기서 편집의 혼재함으로 시간이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감각을 잃어버리고 혼란함을 공유한다. 그리고 결국 켄이치는 마미야를 총으로 살해한다. 모든 사건이 종결되었나 싶은 이때, 영화는 갑자기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켄이치를 비추고 켄이치를 마주한 종업원은 문득 칼을 집어드는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의 러닝타임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앞서 말했다시피 오컬트란 인간의 무기력을 다루는 장르이다. 큐어가 빛나는 지점에 있는 이유는 이 불길한 존재를 신적 혹은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 인간 내면의 존재로 치환했기 때문이다. 미지의 존재가 인간을 무기력하게 하는 것이 아닌, 인간의 내면이 인간을 절망하게 한다는 것. 바로 이 판단이 기요시의 당시 일본에 대한 진단이다. 기요시는 염세로 세계를 진단했다. 하지만 큐어가 정말 무서워지는 이유는 그 해결 방법에 대한 그 어떤 힌트도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아직 유효하다면, 그 원인은 아마 이 영화에서 질문하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 물음에 우리의 답이 너무나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진단만 있을 뿐 그 해결법은 알 수 없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엠엔엠인터내셔널

큐어
Cure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Kurosawa Kiyoshi

 

출연
야쿠쇼 코지Koji Yakusho
하기와라 마사토Hagiwara Masato
우지키 츠요시Tsuyoshi Ujiki
나카가와 안나Anna Nakagawa
오스기 렌Ohsugi Ren
도구치 요리코Douguchi Yoriko

 

수입|배급 엠엔엠인터내셔널
제작연도 1997
상영시간 11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7.06

배명현
배명현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인생의 어느 순간 아! 하고 만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그런 영화들을 만나려 자주 영화를 봤고 여전히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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