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th BIFAN] '미증유' 두 사람이 만날 때
[26th BIFAN] '미증유' 두 사람이 만날 때
  • 김민세
  • 승인 2022.07.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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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를 배회하는 유령으로써의 시네마"

영화는 만남의 장소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만남, 대상과 카메라 간의 만남, 스크린과 관객 간의 만남 등 영화의 내부와 외부를 오가며 일사불란하게 일어나는 만남의 순간은, 영화 안에서 작동하는 구체적인 움직임(배우-사람), 영화가 카메라라는 도구를 통해 스스로 작동시키는 방식(숏-연출), 그리고 세계와 스크린 사이를 잇는 상(相)(맥락-세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는 위기에 처했다. 혹자는 이러한 위기를 영화 산업의 측면에서 극장 스크린, 즉 영화의 장소가 처한 위기로 이해하곤 한다. 관람의 형태로 영화와 만나는 관객의 입장에서는 스크린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우와 제작자가 처한 위기는 앞선 예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의 정부령 안에서 접촉할 수 없는 사람들과 조화되지 못하는 세계. 카메라 안의 배우와 배우들은 어떻게 만나는가. 배우라는 허구와 코로나 시대라는 동시대는 어떻게 만나는가. 팬데믹의 세계와 카메라는 어떻게 만나는가. 팬데믹의 중심에 있었던 2020년. 모든 것이 멈추었다고 생각될 때, 그때의 영화 제작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는가, 또는 수행될 수 있었는가.

영화의 장소의 위기가 아닌, 장소로서의 영화의 위기. 만남의 상실은 곧 영화 그 자체의 상실이다. 그러므로 팬데믹 시대의 창작자는 코로나 시대라는 맥락을 아카이브 할 새로운 방법론이 필요하다.

2020년 4월, 팬데믹의 한가운데에서 촬영된 쿠도 마사아키의 <미증유>는, 어떻게 이야기하더라도 코로나 시대의 담론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거리의 엑스트라들과 더불어 마스크를 쓰고 등장하는 배우들,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 방역으로 돈벌이에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 영화의 픽션과 논픽션은 코로나 시대를 영화적 배경으로 지목한다. 또한 영화 제작 환경에 있어서 팬데믹으로 인해 로케이션은 오키나와에서 도쿄가 되었고, 스탭 인원과 촬영 시간은 대폭 축소되었다. 이렇듯 코로나19 사태는 <미증유>의 내용, 형식, 제작 방식, 나아가 제작 동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호스트 일거리가 줄어들자 아마추어 포르노를 촬영하려는 '루', 경제적 문제로 포르노 촬영과 매춘을 시도하려는 '사쿠라',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동성 성매매를 이어가는 '마나부', SNS 인플루언서인 마나부의 연인 '유카', 코로나 때문에 회사 일에 문제가 생긴 '루이', 그리고 루이의 아내 '히사노'. 영화는 각자의 서사를 교차시키며 이들의 욕망이 어떻게 충돌하고 실패하고 미끄러지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코로나 시대의 맥락으로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은 배우 간의 만남(또는 실패), 대상과 카메라의 만남(또는 실패)을 통해 '영화됨'과 '그것의 실패' 사이를 끊임없이 진동하는 영화의 자의식이 영화 이미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극 중에서 쇼트가 바뀌고, 씬이 바뀐다는 것은 원씬 원컷과 교차편집의 연출 방식에 따라 결국 누구의 서사를 따라가 어떠한 도식을 세울 것인가라는 선택의 의미가 된다. 모든 장면이 원씬 원컷과 교차편집으로 연출된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가 대상(들)을 담는다'는 입장에서 영화를 처음부터 따라가면 이러하다. 카메라는 홀로 있는 마나부로 시작해 함께 있는 마나부와 루로, 그리고 홀로 있는 사쿠라로, 그리고 다시 함께 있는 마나부와 루의 쇼트로 돌아온다. 이 연결은 루가 마나부의 차에서 내리면서 끝난다. 잠깐의 암전 후 다시 시작해서. 카메라는 홀로 있는 사쿠라로 시작해 함께 있는 사쿠라와 루로, 그리고 홀로 있는 유카로, 그리고 다시 함께 있는 사쿠라와 루의 쇼트로 돌아온다. 이 연결은 사쿠라와 루가 헤어지면서 끝난다. 그리고 긴 암전.

첫 번째 도식. 한 사람이 있을 때, 두 사람이 만날 때, 그리고 두 사람이 헤어질 때. 일련의 두 연결에서 쇼트(씬)를 지속시키는 것은 '두 사람의 만남'이다. 반대로 두 사람에 한 사람이 될 때 쇼트는 전환된다. 홀로 있는 한 사람의 쇼트는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쇼트와 만나길 기다리는 쇼트일 뿐이다. 두 번째 도식. 마나부는 루를 만나 포르노 촬영을 위한 카메라를 빌려주고 헤어진다. 루는 사쿠라를 만나 촬영을 시도했다가 카메라는 제대로 사용하지도 못하고 헤어진다. 마나부의 카메라는 쇼트(씬)를 시작하고 쇼트(씬)를 닫는다. 마치 소멸의 위기에 있는 코로나 시대의 영화를 안간힘으로 지속하듯이. 그리고 결과적으로 마나부의 카메라(코로나 시대의 영화)로 무언가를 기록하려는 시도('영화됨'의 시도)는 실패한다. 긴 암전은 이 실패를 바라보는 침묵의 쇼트이다.

다시 시작해서. 카메라는 마나부와 성매매 고객이라는 두 사람, 사쿠라와 성매매 고객이라는 두 사람에 도착한다. 마나부는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성관계(접촉)를 바라는 그의 고객과 유사 성행위(유사 접촉)를 한다. 사쿠라는 그녀의 고객에게 10만 엔을 받기로 약속한다. 마나부는 유사 성행위를 마친 뒤 고객의 뺨을 때린다. 사쿠라는 피임기구를 사러 간 고객을 기다린다. 두 사람과 한 사람,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마나부가 왜 고객의 뺨을 때렸는지, 홀로 있는 사쿠라의 얼굴이 관계 후의 쇼트인지 기다림의 쇼트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접촉이 대체되고 무효화되며 숨겨지고 미끄러진다는 사실이다. 물질과 관념이라는 대상을 담는 카메라 앞에서 마나부는 정서가 생략된 행위(물질 이미지)로만 남고, 사쿠라는 행위가 생략된 정서(관념 이미지)로만 남는다. 거기에 있길 실패한 대상과 장소를 상실한 카메라와 함께.

 

영화의 중반부, 루이와 히사노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미증유>가 쇼트(씬)를 통해 만들어온 서사의 선은 새로운 방향을 갖는다. 이전의 연결들을 한 사람의 쇼트와 두 사람의 쇼트가 서로 주고받는 '서사의 끝말잇기', 또는 남겨진 자들을 따라 갈라지는 '서사의 분열(또는 증식)'이라고 할 수 있다면, 히사노가 마나부와 루가 있는 술자리에 가게 되면서 발생하는 일련의 쇼트들은 '서사의 교란'이자 '장소의 교란'이다. 남편 루이와의 다툼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히사노. 연인 유카와의 다툼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마나부. 히사노는 루와 대마초를 나눠 피고, 마나부는 호스티스 다아키와 오셀로 게임을 한다. 히사노의 서사를 따라가는 카메라는 히사노와 루라는 두 사람을 개별 쇼트로 분열시키고 후경에 마나부와 다아키를 담는다. 반대로 마나부의 서사를 따라가는 카메라는 마나부와 다아키라는 두 사람을 개별 쇼트로 분열시키고 후경에 히사노와 루를 담는다. 히사노의 서사와 마나부의 서사가 만나는 술자리라는 장소에서 두 사람의 구도는 분열하고 각자의 서사는 서로의 서사의 잔여물로 남는다.

접촉이 부재한 시대. 인물들은 개별 이미지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면서, 또는 쇼트와 쇼트라는 시선을 잇고 분열시키면서 영화라는 장소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더불어 카메라는 대상 앞에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그리고 대상은 카메라 앞에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장소로서의 영화를 만들고 허문다. <미증유>는 코로나 시대라는 맥락 안에서 배우라는 존재와 쇼트라는 응시가 어떻게 영화가 되는지, 만남의 장소로서의 영화는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이다. 그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를 진동하는 영화의 무의식은 배우의 몸과 영화 이미지라는 표층 아래를 떠도는 유령이 아닐까. 그 유령의 순간을 포착한 것으로 <미증유>는 유령의 몸으로 코로나 시대를 배회하는 시네마의 새로운 정체성을 온전히 아카이브 한 영화가 된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미증유
Unprecedented
감독
쿠도 마사아키
KUDO Masaaki

 

출연

TAKAHASHI Yusuke
KURITA Manabu
OGURA Ayano
Chie Tsuji
Rina Sakuragi
Dai Isono
Kenichi Tsukagoshi
Nikichi Kondo
Yuki Kitahawa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99분
등급 18세 관람가
공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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