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th BIFAN] '링 원더링' 끊어지지 않는 영화라는 링
[26th BIFAN] '링 원더링' 끊어지지 않는 영화라는 링
  • 이현동
  • 승인 2022.07.19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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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절된 시선이 한 덩어리로 묶이기까지"

영화의 제목인 '링 원더링'(ring wandering)은 일본식 영어로 자신이 가고 있는 장소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장소를 배회한다는 의미의 등산 용어다. <링 원더링>(2021)의 첫 시퀀스에서 주인공인 소스케(카사미츠 쇼)가 입고 있는 등산복은 제목과 부합하는 것 같이 어떠한 공간을 헤맨다. 그는 명확한 시선으로 위치를 탐색하지 않는다. 전설로 내려오는 일본 늑대를 찾는 소스케의 목적지는 식별가능성을 배제한 신화적 공간이자 과거와 현재를 포섭하는 비시간적 구현을 매개로 전진한다. 이를 보면 들뢰즈가 영화를 '시간과 공간의 한 덩어리의 묶음'이라 표현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비유다.

시간을 변용한 타임 슬립이라는 영화 이미지가 시공간을 경유하여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장면에서 <링 원더링>은 영원히 절멸하지 않을 것 같은 시간과 공간의 이미지로 결합한다. 가령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2021)가 동일본 대지진을 통해 과거로부터 현재를 연동하여 희망을 방출한 것이 특정한 시퀀스와 대사를 관통하여 영화 표면에 잠식된 수사적 기술로 작동한다면, <링 원더링>은 조금 더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으로 시각화된다. 과거 전승으로 전해 내려오는 일본 늑대를 시각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노력으로부터 기인하는 영화 전체는 시간과 공간으로 귀속된 타임슬립이라는 판타지를 2차 세계대전과 결부시킴으로써 일본이라는 정체성 혹은 폭력의 문제에 대하여 재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멸종된 신화 같은 존재인 일본 늑대와 고독한 사냥꾼의 배틀 만화를 구상하는 소스케는 과거, 현재, 만화라는 환영을 탐사하며 주제를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 Kinone

 

일본 늑대로 통합된 시선

이미지의 편린들로 시작되는 오프닝 시퀀스는 각각 분절된 클로즈업을 통해 통합된 시선이 아닌, 분리된 시선으로 일본 늑대의 묘연한 행방을 뒤쫓는다. 어디론가 관류하는 '물', 온전하게 프레임에 담기지 못하고 스케치 되는 '그림', 불분명한 소스케의 '응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상한 공간 속에 침전되어 있을 뿐, 현상되지 못하는 이미지로 머무른다. 카메라의 시선을 넘어 도착한 갈대숲은 모두 같은 색으로 채색된 보편의 공간으로 프레임 전체를 포박한다. 시야의 불능 성 속에 소스케가 마주하는 것은 그가 애타게 찾고 있었던 일본 늑대가 아닌 한 아이다. 아이는 "어디서 왔어"라고 묻는다. 소스케는 '도쿄'라고 말하고, '나도'라고 아이는 대답한다. 이 말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물음으로 도래한다. 과거의 존재인 아이와 현대를 상징하는 소스케, 둘의 공간과 시간이 접합할 때 영화는 한 지점으로 시선이 묶인다. 스케치북의 그림을 개로 보고 있는 아이를 나무라며 '일본 늑대'라는 소스케의 핀잔과 멸종되었다는 그의 언급을 아이는 반박된다. "아직 여기에 있을 것"이라 반문하는 아이의 시선은 갈대숲 전체를 통합한다. 곧이어 소스케의 시선도 갈대숲에 무언가를 응시할 때 우리는 그의 시선이 도착하는 대상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자연풍광을 지목했던 오프닝 시퀀스가 끝난 뒤에 프레임에는 도쿄에 위치한 스카이트리가 이전 자연 세계인 갈대숲을 대비하며 분리된 세계를 가늠하는 척도로 위치한다. 이러한 분리된 세계가 일치되는 공간으로 판별될 수 있는 이유는 건축 현장에서 발견한 어느 짐승의 뼈 때문이다. 소스케는 뼈의 정체가 일본 늑대의 두상과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아무도 의심할 수 없는 밤에 다시 현장에 찾아가 발굴을 시도한다. 그 과정 중에 소스케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이는 미도리(아베 준코)를 만나 그녀가 시로라는 강아지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행방불명된 시로는 현재를 사는 소스케의 배경에서 '불꽃놀이'와 전혀 다른 목적을 가진 청각적 도구로 관철된다. 2차 세계대전을 암시하는 증거들이 포착될 때 미도리가 말하는 '펑'이라는 사운드는 '전쟁'을 호명하는 과거의 소리이고, 현재의 불꽃놀이는 과거를 관류한 소리이다. 소스케는 다리가 삔 그녀를 업고 시로를 찾아다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사진관으로 가서 식사하고 시로로 추측되는 그림을 그려주기도 한다. 이때 소스케는 그들의 세계가 과거라는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는다.

 

ⓒ Kinone
ⓒ Kinone

소스케는 다음 날 사진관을 찾아가지만, 그가 어제 만난 미도리와 가족들은 전쟁 중에 폭격으로 사망하고 남동생인 코타만 살아 있음을 알게 된다. 노인이 코타에게 소스케는 자신이 발굴한 머리뼈와 가죽으로 된 목줄을 보여주자 노인은 그것이 시로의 것임을 눈치챈다. 코타는 소스케에게 과거의 사진이 수집되어 있는 앨범을 답례로 준다. 이어서 소스케는 자신의 만화에서 늑대를 사냥함으로 결말을 맺으려고 했던 내용을 수정하기로 결심한다. 만화 내용 중에서 일본 늑대를 총으로 쏘려는 사냥꾼을 결정적으로 막아서는 것은, 일본 늑대에게 희생을 당했던 자신의 딸 코즈에의 영혼이다. 이는 '폭력'의 과거를 우화적인 방식으로 청산하려는 감독의 의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소스케는 코타가 언급한 일본 늑대를 찍었다는 장소인 갈대숲을 다시 찾아간다. 코타가 앨범에 수집한 사진은 퍼즐처럼 분절되어 파악할 수 없이 배열되어 있다. 일본 늑대의 모양은 현재의 시선으로는 관측할 수 없는 외화면적 요소이다. 소스케는 역시 일본 늑대는 멸종했다고 말하며 갈대숲에 누워 잠을 청한다. 하지만 영화는 소스케의 시선으로만 영역을 제한하지 않는다.

분절된 사진들을 한 번에 모은 것처럼 점차 줌 아웃되는 마지막 쇼트는 프레임 전체를 통해 일본 늑대의 형체를 목격하게 한다. 마치 소스케를 껴안고 있는 형국인 이 장면에서 과거와 현재를 통합하는 일본 늑대의 존재는 <링 원더링>에서 끝없이 방황하는 일본이란 내재적 대상이 도착해야 할 종착지에 대한 은밀한 은유로 선언된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만화라는 초현실적인 공간은 서로의 지평을 유기적으로 융합하면서 현재태와 잠재태를 동시에 증류함으로 발생하는 서정적인 이미지의 조화는 <링 원더링>의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작년 개봉했던 페도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패러렐 마더스>(2021)에서도 마찬가지로 과거와 현재가 연대하기 위한 상징적 도구로 과거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과 '마드리드'라는 장소, 직접적으로 두 주인공의 세대 차이를 활용한 사례와도 <링 원더링>은 중첩되어 보인다. <패러렐 마더스>에서 과거의 유골이 누워있던 자리가 현재의 인물로 변화하는 과정, <링 원더링>에서 멸종되었다고 말한 일본 늑대가 부상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장소의 정체를 또렷이 목격한다. 여전히 소실되지 않은 과거의 양식인 '사진', '그림', '뼈', '가죽 띠' '코타와 소스케', 심지어 '펑'이라는 소리. 이것은 '링'에 묶여 있는 과거의 현재를 잇는 잔여물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에 대입해보면 '링 원더링'(ring wandering)의 의미처럼 영화란 존재는 앞으로도 동일한 장소를 배회하며 분절된 퍼즐을 찾는 과정으로 연장되는 것은 아닐까.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Kinone

링 원더링
Ring Wandering
감독
카네코 마사카즈
KANEKO Masakazu

 

출연
Shô Kasamatsu
Junko Abe
Ken Yasuda
Reiko Kataoka
Hatsunori Hasegawa

 

제작 Kinone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03분
등급 12세 관람가
공개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이현동
이현동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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