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의심의 몽타주, 그 미학의 결계
'헤어질 결심' 의심의 몽타주, 그 미학의 결계
  • 이현동
  • 승인 2022.07.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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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하는 아이러니"
ⓒ CJ ENM

우리의 감각경험이 의식에 온전히 반응하기 위한 모종의 의심은 불가결하다. 창작자에 의해 추동되는 반역적 이미지는 청자로 하여금 오인되거나 적법하게 측정될 수 없는 희미한 단서들로 의식을 시험한다. 어디에서부터 어디로 종결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시간과 이미지를 증류해서 표기될 수밖에 없다면, 영화를 비평하는 행위 자체는 특정 기호를 번역하고 해석하는 작업이라 칭할 수 있다. 박찬욱의 영화에서 의심은 인간의 속성을 가장 확대할 수 있는 렌즈이다. 그를 대표하는 작품인 <올드보이>(2003)에서 서사를 인도하는 건 전방위적 의심이라는 것을 상기해보자. 누군가의 의뢰로 15년간의 영문 모를 감금을 당하는 오대수(최민식)에게 축적된 의심은 보이는 모든 것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한다. 의심으로부터 욕망이 극렬하게 포커스 되는 박찬욱의 카메라 양식에서 <헤어질 결심>은 이전 작품들의 미학적 결계를 초극하여 또 다른 지평의 영화적 '결심'을 추동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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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의 해준(박해일)은 형사라는 직업 윤리적 관성에 의해서 습관적으로 의심을 하는, 원칙·규범·질서를 삶의 슬로건으로 삼는 인물이다. 그는 산에서 추락한 시체가 타살인지 자살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주말부부로 지방을 오고 가는 와중에도 아내 정안(이정현)에게 애정을 쏟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한, 시민을 보호하고 범인을 효율적으로 생포하기 위한 그의 성격과 습관은 그가 착용하거나 사용하는 인공눈물과 정장, 운동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그러나 그의 삶은 강팍하기 그지없다. 졸음운전을 하며 후임인 수완(고경표)에게 '잠복근무를 해서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잠이 안 와서 잠복하는 거야'라고 호소하며 불면증을 달고 살 정도로 피로가 누적된 상태이다. 이러한 해준의 꼿꼿하고 경직된 몸과 다소 고지식한 정서는 그의 기능적인 양식들을 파기하기 위한 준비동작으로 위치한다. 철두철미한 그의 생활을 부지불식간 교란하는 것은 추락한 기도수(유승목)의 아내인 중국인 송서래(탕웨이)부터이다.

해준이 서래를 향한 일말의 의심을 거두지 않고 그녀의 행적을 수소문하며 취조하는 과정에서 <헤어질 결심>은 비로써 세밀하게 세공되는 카메라 워크와 몽타주, 미장센으로 본격적인 의심을 가동시킨다. 쇼트를 마감하고 연결하는 줌 인, 아웃과 점프 컷, 초현실적인 교차 편집이 신속하고 정밀한 속도로 이어질 때, 마치 현실과 환각의 사이에서 각각의 쇼트는 기묘하고도 우아하게 진열된다. 그가 그녀를 취조할 때, 대칭적으로 표류하는 앵글과 더불어 서래의 상체가 모니터 스크린에 비칠 때, 그 앞에는 해준의 모습이 거울에 반사되듯 두 명의 인물이 자기 모습을 반추하듯 프레임에 배치된다. 이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인 「금지된 재현」(1937)에서 현시되는 모호한 불가해성, 앵글을 여과하여 비치는 세계를 표방하고 반영하는 이미지라는 방식, 즉 초현실적 풍경이 결국 이미지의 의심으로 태동하는 어느 세계에 관한 짤막한 각주로도 관측될 수 있다면, 이 영화에서 해준과 서래는 미끄러지듯 서로를 매개하고 결합하기 위해 의심한다.

더불어 해준이 그녀를 감시하는 장면에서 익숙하게 보이는 히치콕의 <이창>(1954)과 이를 오마주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시스터스>(1973)와 같은 영화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해준의 공상은 위에 언급한 영화와는 달리 우발적이거나 윤리적인 가능성을 내포하지 않는다. 그의 관음은 단지 범인을 추궁하려는 행위로만 전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상상은 서래의 행위를 탐닉하려는 시도로 전환되고, 곧바로 해준이 행하는 서래의 공간을 침투하는 공상은 허상으로만 정체되지 않고 실존적으로 혹은 정서적으로 서래의 공간과 행위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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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몽타주로 조립되는 로맨스의 행방은 아이러니하게도 의심으로부터 깨어진다. 후반부에 해준은 그녀의 옷이 파란색이었는지 녹색이었는지를 정확히 기억해내기는커녕 색채에 대한 일말의 의심조차 하지 못한다. 서래가 영원히 미결될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다에 파묻을 때 의심의 위압은 해준의 감정을 고조하고 촉발시키는 데, 이때 의심을 형상화하는 역할로 기술하는 건 '안개'라는 장치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1964)의 내용을 토대로 연출된 김수용의 <안개>(1967)에서 영감을 받은 '안개'라는 속성은 보일 듯 보이지 않는 명멸하는 관계를 드러낸다. 안개를 뚫고 서래를 찾아 나서는 해준은 서래의 공간을 이제는 민감하게 공상하고 추정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감각과 감정이 어둔해진 채로 배회한다. 실존하지 않는 공간인 <안개>의 '무진', <헤어질 결심>에서 '이포'는 동시에 안개로 흐릿해 '질' 관계의 종말을 어렴풋이 상상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의 모든 의심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 때 발각되는 감정의 형태, 미결되거나 미결되지 않을 실존으로 묻힌 어떤 것이다. 찾지 못한 서래의 행방처럼, 어쩌면 찾았을지 모르는 공허하고도 결연한 공상처럼 말이다. 그렇게 정훈희의 안개는 계속 영화에서 연주된다.

첫 번째 남편은 산에서 던져지고, 두 번째 남편은 물에 잠긴다. <헤어질 결심>이 "산에서 시작되고 바다에서 종결된다"라는 트리트먼트로 기획되었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산'과 '바다', '시작'과 '종결', 그리고 제목이 암시하는 헤어'질'이라는 미래 형태와 접합한 '결심'이란 단어의 윤곽 속에서 서사가 잔류함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여러 사람이 겪은 경험을 묶은 '산해경'은 산과 바다로 이루어진 우주를 상징하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전승을 통해 쓰인 책이다. 세계에 편재하고 있는 산과 바다의 그림인 산해경이 서래의 집 벽면에 도배된 이 영화가 소유한 고유한 세계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박찬욱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대부분의 내용이 완결되지 못하고 추락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결과적으로 산과 바다는 상승에서 하강이란 움직임을 포착하는 단서이다. 박찬욱 감독이 영화의 배경에 관하여 산과 바다를 1부와 2부로 기획했다는 지점에서 실상 불가항력적인 추락이 예고될 때, 추락하는 것은 단순히 서래의 남편 기도수뿐만이 아니다.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서래가 안위를 위해 증거인멸을 지시하는 해준의 말은 단지 '사랑'으로만 해갈되지 않는다. 휴대폰을 "깊은 바다에 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요"라는 해준의 말은 감정의 추락으로 변용되거나 관계를 단절해버리는 계기가 되고, 종국에 해준의 말을 실행하는 서래는 더욱 밑을 향한다.

박찬욱의 우주는 그렇게 누군가는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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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이 입을 맞출 때

둘의 교감은 호흡과 말로 연결된다. 해준은 서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몸이 '꼿꼿'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힘을 안 줘도 흐트러지지 않는 건 그녀의 신체뿐만 아니라 모든 제스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녀는 한국어 공부를 위해 TV에 방영되는 드라마와 영화 등을 틀어놓고 습관적으로 딕테이션을 한다. 이를 통해 발성과 언어는 점차 숙련되고 유연해지지만, 중국인이 가진 고유의 악센트는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둘의 어조는 미묘한 공통점이 있다. 형사 해준의 둔탁하고 사무적인 어조를 구사하고 중국인인 송서래의 메마르고 이질적이면서 끊기는 어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감정은 결합한다.

해일과 서래의 교류는 스마트기기로도 확장되는데, 서래가 혼자 중얼거린 중국어가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라고 번역될 때 스마트기기가 가진 오역가능성은 둘의 관계가 언어로만 매개되지 않는다는 것을 동시에 나타낸다. 나중에 '심장'이 '마음'이란 단어였다는 사실로 교정될 때 둘은 서로의 관계를 점차 자발적으로 모색하고, 호흡마저도 일치시키는 관계로 변모한다. 불면증을 달고 사는 해준에게 서래는 자신의 숨소리에 맞춰 잠을 잘 것을 요청한다. 의식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푹 잠을 잔 해준의 모습에서 우리는 둘의 신체적, 정신적 결합이 이뤄진 것을 직감한다. 박찬욱 감독 영화에서 주류 이미지였던 살인, 폭력, 섹스 등의 시청각적인 자극이 아닌 호흡으로 소묘되는 <헤어질 결심>에서 언어는 무엇보다 음탕한 것으로 보인다.

박찬욱 감독이 "제 경력은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를 보기 전과, 보고 난 후, 이렇게 두 시기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박찬욱의 몽타주 p233)라고 말할 때 우리는 그의 영화에서 사뭇 세이준의 향기를 채취할 수 있다. 스즈키 세이준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괴기하고도 강박적인 캐릭터들의 구성이 야쿠자, 킬러, 군인, 화가 등이 지닌 관행적인 코드를 무시하고, 뒤틀리고 우스꽝스러운 연출로 구현되는 건 <헤어질 결심>에서도 유사하다. 캐릭터의 스타일이 붕괴되는 과정뿐만 아니라 가학적이며 작위적인 연출 또한 그 미학을 대변할 수 있다고 본다면, 이 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즉각적으로 작동하는 감식안을 교란하고 모든 영화를 합쳐놓은 듯한 이미지와 대사의 조합으로 경지에 도달한 인상을 준다. 시네필들에겐 오락 영화처럼, 일반 대중들에겐 생동하는 여운으로 기억되는 굉장히 공적인 영화로 말이다.

그렇게 <헤어질 결심>은 만조처럼 영원히 밀려 떠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런 영화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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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Decision To Leave
감독
박찬욱
ChanWook Park

 

출연
탕웨이
박해일
이정현
박용우
고경표
김신영
박정민

 

제작 모호필름
배급 CJ ENM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2.06.29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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