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3월 11일 태평양 해역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 지진해일이 이와테 현 소재 인구 약 2만 3천 명의 작은 도시 리쿠젠타카타를 덮쳤다. 시내 중심부가 궤멸되었고 관내 다섯 개 전철역 중 네 군데의 역사가 유실되면서 발이 묶인 주민들은 전체 가구의 7할 이상이 피해를 보았다. 같은 해 4월 14일 국토지리원(GSI)이 발표한 리쿠젠타카타 시의 지반침하는 84센티미터. 17개월 뒤 집계된 사망자는 1,555명, 실종자 223명.
재해 이후 10년 넘게 계속된 복구 작업으로 소방서와 공립병원 등의 시설이 다시 지어졌지만, 위치가 산록의 고지대로 바뀌었다. 집합주택을 포함, 거주 지역 정비작업도 이뤄졌으나 침수지역에는 상업ㆍ스포츠시설이 자리 잡고 주민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10년간 가건물을 사용하던 시청도 신청사가 완성되면서 이전했다. 사건 당시 초등학교가 있었던 자리. 1층이 완전히 침수됐었다. 주민들이 불안해하자 시 당국은 방조제 등 만반의 대비를 해두었으니 설령 동일본 대지진 당시와 같은 수준의 지진해일이 다시 들이닥친다고 해도 걱정이 없다 설명했다.
사라진 마을들 위에 신시가지가 들어섰으니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것일까. 하지만 피해지역 자원봉사를 계기로 활동을 시작, 사람들의 기억ㆍ기록을 먼 미래에 전달하기 위한 작업에 매진해 온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초청작 <더블 레이어드 타운>의 두 감독, 고모리 하루카와 세오 나츠미의 생각은 다르다. 여기서 타이틀에도 쓰이는 '더블 레이어드 타운'이라는 이름은 옛 마을을 기억하는 가운데 새로운 마을에서 2031년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세오 나츠미가 글로 써두었던 '이야기'다.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2018년 네 명의 여행자가 리쿠젠타카타를 찾는다. 아직 어린 나이인 그들은 그날의 사건으로부터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부터 왔다. 따라서 지진해일에 휩쓸린 옛 마을의 일도, 둑 돋기 공사로 만들어진 새로운 마을의 일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여행자들은 낯선 토지의 풍경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대화를 거듭하는 한편, 때로는 소설 같고 때로는 시 같은 텍스트 '더블 레이어드 타운'을 낭독한다. 그렇게 타자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고, 재구술하는 행위가 반복되는 가운데 기적 같은 순간을 맞이한다.
대학(도쿄예술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한 두 연출자는 리쿠젠타카타 시에서 진행되는 워크숍에 참가한 네 젊은이가 자신들의 언어와 육체로 그곳의 어제와 오늘을 경험하며 내일로 향하는 과정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낸다. 그렇게 무심한 듯 보이는 팩트의 행간에 파고들어, 아로새겨진 상처를 어루만지고, 떠난 이들의 뒤에 여전히 남아 거리를 부유하는 이야기를 그리며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다.
두 사람의 연출자 가운데 영화미학교 픽션과를 수료하고 다큐멘터리감독으로 활동하며 이번 작품에서는 영상작업을 담당한 고모리 하루카 감독을 만나보았다.
홍상현
네 편째의 장편다큐멘터리영화 <더블 레이어드 타운>으로 셰필드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거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오셨습니다. 아직 인류가 코로나19로 크나큰 고통을 받고 있는 와중이라 의미가 남다르실 것 같은데요.
고모리 하루카
경쟁부문 초청이 결정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더블 레이어드 타운>이 일본 이외 지역에서 다큐멘터리 작품으로써 평가받았다는 사실을 대단히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우리가 시도한 비당사자 입장에서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가는 일, 즉 '계승'의 모습을 인정받은 것에 대한 기쁨이기도 했고, 비단 동일본 대지진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작품에 내재된 보편성을 실감해주셨구나 싶어서이기도 했어요. 코로나19를 포함해 세계적으로 온갖 재난이 끊이지 않고 있지요.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안고 있는 분들이 분명히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영화제에 직접적으로 참석할 수 없어 직접 관객 여러분의 반응을 접할 순 없었지만, 아무쪼록 한국의 상영관에서도 듣기와 말하기를 이어갈 힘을 전해받는 만남이 이루어졌기를 바랍니다.
홍상현
다음은 '홍상현의 인터뷰'를 통해 뵙는 분들께 늘 드리는 질문인데요.
평소 한국영화를 즐겨보시는지요. 좋아하시는 감독이나 작품, 배우 등이 있다면 소개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고모리 하루카
부끄럽게도 영화자체를 그리 많이 보는 편이 아닙니다만,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참가, 한국 다큐멘터리 작가 분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이런 다큐멘터리가 있었구나, 있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많은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이길보라 감독의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4)가 인상 깊었고,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홍상현
2014년 발표하신 첫 장편다큐멘터리 이후 독창성과 미적 감각이 대단히 뛰어난 영상작가로서 주목받아오셨는데 아직 많은 한국 관객들께서는 감독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본인과 예술적 동반자인 세오 나츠미 감독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모리 하루카
지금까지의 작품을 그렇게 봐주셔서 영광입니다.
우리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후 함께 자원봉사를 하러 재해지역에 갔던 일을 계기로 결성된 아트 유닛(art unit)입니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1년 뒤 이와테 현 리쿠젠타카타 시라는 지진해일의 피해를 크게 입은 지역으로 거점을 옮겨 3년 동안 살았지요. 주민분들과 연대하면서 그곳의 이야기나 풍경의 기록을 중심으로 작품을 만들어왔어요. (현재는 센다이에 살고 있지만) 미술관에서 설치미술작품을 발표하거나 영상작품을 상영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감상기회의 제공과 더불어 워크숍을 열어 대화의 장을 마련할 때도 있고요.
각자 개인 활동도 하고 있는데 세오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요. <더블 레이어드 타운>에서는 워크숍의 기획ㆍ진행이나 이야기의 장소를 설계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저는 장편다큐멘터리영화 <숨의 흔적>(2016), <리스닝 투 디 에어>(2018) 등을 발표했는데 이 두 편도 모두 리쿠젠타카타 시를 무대로 그 자신 재해의 당사자이면서 이야기를 전하거나 기록을 하는 이들을 다루는 작품들입니다. 아트 유닛으로 작품을 만들 때는 촬영ㆍ편집 등 영상기록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홍상현
두 분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고모리 하루카
저희는 도쿄예술대학교 미술학부 첨단예술표현과 동기입니다. 막상 대학시절에는 같이 작업한 적이 없었는데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살던 장소가 가까워서 서로의 집에 자주 오가게 되었죠. 재해가 닥쳤을 때 가까이 있었던 것이 같이 자원봉사를 하러 가는 활동으로도 이어진 게 아닐까 합니다.
홍상현
필모그래피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죠. 감독에게는 역시 동일본 대지진이 현재까지의 예술 활동에 커다란 전기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자연재해의 참상을 경험한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법론을 가진 예술가표현자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에너지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고모리 하루카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미대나 영화학교 안에서 밖에 배움이 없었던 까닭에 작품을 만드는 것이 곧 자기표현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그게 너무 힘들었던 걸까요. 제 안에서 뭔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끓어오르지 않아서 항상 소재를 찾아다녔어요. 하지만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돌연 아무 인연도, 연고도 없는 곳에 가서 흔히들 생각하는 '이재민'이나 '피해지역'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생활이나 삶의 기술에 대해 알게 됨과 동시에 저 자신의 불가능성에 대해서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만난 분들은 지진해일에 휩쓸려간 존재들을 그저 사라진 거로 치부해버리지 않고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는데요. 당신들의 '전하는' 행위에는 제가 이제껏 작품을 만들면서 해왔던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만큼의 절실함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자연스레 그분들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졌고요. 이것이 제가 처음, 도저히 피해 갈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카메라를 잡게 된 계기였습니다. 단지 예술가나 표현자이기 때문에 표현이나 발신을 하는 게 아니라 제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야 할 소명이 있음을 인식하게 된 계기가 동일본 대지진이었던 거고요.
홍상현
본격적으로 영상작업을 시작하는 거점으로 센다이를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모리 하루카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리쿠젠타카타 시에 있었고 센다이 시로 거점을 옮긴 건 2015년 봄이었습니다.
당시 리쿠젠타카타 시에서는 새로운 시가지를 조성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지진해일이 덮친 지역에는 옛 거리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 흔적은 사람들의 기억과 잃어버린 것들을 이어주고 있었어요. 이것이 12미터 높이의 토사로 채워지는 걸 보면서 자연재해 이후 진행되는 '부흥'이 앗아가는 것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그 거대한 흙덩어리가 등장하는 풍경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수십 년 후의 리쿠젠타카타 시를 찍어 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서 고심 끝에 오래 기록작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현지와 거리를 둘 필요가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 세오와 의논해 센다이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무렵 센다이에 동일본 대지진 이후에 기록 작업을 해 온 크리에이터들이 모여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장기적인 활동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 싶어 하는 동료들과 일반사단법인 NOOK라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NOOK는 지금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홍상현
<더블 레이어드 타운>에 대해 좀 더 깊이 들어가 볼까요. 사실 이 작품은 2014년 작 <파도의 아래, 땅의 위>에서 시작된 예술적 행보의 집대성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고모리 하루카
말씀처럼 리쿠젠타카타 시에서의 활동을 집대성하는 프로젝트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타이틀도 당사자에서 비당사자로 '화자'가 바뀌는, 다시 말해 계승이 시작되는 장소를 가리키는데요. 저와 세오의 입장에서는 우리 두 사람에서 네 사람의 여행자들로 '청자'가 바뀌는 '도전'의 의미가 있었어요. <파도의 아래, 땅의 위> 등에서 볼 수 있듯 지금까지 우리는 단지 리쿠젠타카타 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우리를 거치지 않고 양쪽이 만날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 중요해진 거거든요.
그런데 막상 리쿠젠타카타에서 2주를 보내면서 상황을 보니까 어느 순간 주민들과 스태프들이 곳곳에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을 보살펴주고 있더라고요. 영화 속에서 보여주지 못했지만 듣고 말하는 자리가 수도 없이 생겨나고 있었던 겁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7년이라는 시간이 축적된 결과지요. 덕분에 <더블 레이어드 타운>도 영화적 풍요로움을 갖게 되었어요.
홍상현
<더블 레이어드 타운>에는 끊임없이 시적인 내레이션과 영상이 등장합니다. 제가 "민요의 맹아와도 같은 시간을 그린 기적의 영화"라는 선전문구를 접한 건 그 뒤의 일입니다만, 충분히 납득이 되더라고요.
고모리 하루카
영화에서 네 명의 여행자가 낭독하는 '더블 레이어드 타운'이라는 이야기는 2015년에 세오가 집필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 2031년(동일본 대지진 20년 후)을 살아가는 등장인물이 흙더미에 파묻혀버렸을망정, 옛 마을의 흔적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울러 그 무렵부터 세오와 작은 낭독회를 각지에서 개최하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됨으로써 이야기 자체도 변용되어가는 것을 목도하는 재미를 만끽했습니다. “교대지에 노래를 얹는다”는 계승프로젝트에 아주 좋은 타이밍에 합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라쿠젠타카타 사람이 아니라 여행자라는 것도 좋았습니다. 땅에서 태어난 이야기가 여행자들에 의해 멀리 옮겨지는 부유감이 있었거든요.
작품에서 여행자들이 리쿠젠타카타에서 들은 에피소드를 카메라 앞에서 재구술하는 신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저는 누군가의 말을 다시 이야기하는 일의 어려움, 그 당황스러움조차 낭독을 하는 것으로 승화되어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를 영화 속에서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관객 여러분께서 보시는 바와 같은 결과를 거두게 된 거죠.
홍상현
한편, <더블 레이어드 타운>은 대안적 서사를 시도하는 장르적 성취 또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등장하는 인물들은 다큐멘터리의 인터뷰이이기도 하면서 드라마의 배우로서 연기도 보여주고 있는데 연출로서 의도하셨던 건가요?
고모리 하루카
딱히 연출을 한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은 거지만 그들을 선택했던 이유와는 관련이 있을 수 있겠네요.
네 사람의 여행자는 공모로 선발되었습니다. 딱히 연기 경험을 요구하지는 않았고요. 동일본 대지진 당시 고교생 이하의 연령이었을 것, 리쿠젠타카타 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 <더블 레이어드 타운>을 낭독할 것 등의 조건을 붙였어요. 그런데 역시 출연자 모집이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더니 배우 일을 하시는 분들의 응모가 많더군요. 선발된 네 명 중에서 세 명은 배우, 한 명은 싱어송라이터였습니다.
오디션 때 텍스트 낭독을 시켰는데 이분들이 연기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내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나름 거리를 두면서 각자의 목소리로 단단하게 텍스트와 낭독을 전달하는 사람 사리에 서 있는 느낌이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는 청자로서, 또한 화자(혹은 퍼토머)로서 타자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에 믿음이 갔어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배우로 촬영에 임해 달라고 요구한 건 아니지만 역시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홍상현
여러 장르가 혼재되어있는 가운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면에서 <더블 레이어드 타운>은 파스카토어가 이야기하는 총체극으로서의 측면 역시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모리 하루카
아트 유닛으로서 작업을 할 때 기획이나 콘셉트의 조립은 세오가 담당합니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것도 세오였죠. 2017년경 처음 기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당시 시가지 중심부 조성이 완료되고 상점과 쇼핑몰이 문을 열면서 리쿠젠타카타의 일상이 새로운 거리 위에서 움직이기 시작했죠. 아울러 일상 속에서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도 조금씩 줄어드는 걸 실감할 수 있었고요.
한편, 간토나 칸사이 지방에 전시 등을 하러 방문을 해 보면 동일본 대지진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뭔가 해 보고 싶다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야기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는 리쿠젠타카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건네는 일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양쪽이 만나는 장소를 만들기 위해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2018년에 촬영을 진행했는데 출연자 모집, 리쿠젠타카타 현지에서 이뤄질 촬영을 위한 교섭과 스케줄 조정, 제작비 모금 등 구체적인 사항을 단계적으로 진행해 가는 사이에 말씀하신 것과 같은 틀을 갖추게 된 것 같습니다.
홍상현
작품의 미장센이 대단히 뛰어난데요. 어떤 비주얼 플랜을 세워놓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고모리 하루카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어떤 비주얼 플랜을 잡아놓은 건 아니었어요.
세오와 공유하고 있던 내용은, 여행자 네 사람의 얼굴이 <더블 레이어드 타운>의 주인이 된다는 것과 나머지는 거의 휴식시간이나 식사시간 등, 워크숍이 이루어지지 않는 시간에는 촬영을 하지 않는다 등 간단한 규칙 정도였거든요. 편집을 할 때도 세오는 늘 제가 어느 정도 진행을 하고 난 결과물을 보기만 했지요. 영상의 아웃풋과 관련한 부분은 제게 모두 일임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전 준비를 할 때는 다큐멘터리영화 작업을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촬영이나 녹음 스태프가 따로 선임되어 있기 때문에 스태프들과 무엇을 어떻게 공유할는지, 어디까지 맡길 것인지, 기자재를 어떻게 할 것인지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밖에 현장의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카메라나 마이크의 방향도 결정하고 편집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살릴지에 대해 의견 조율도 거쳤고요.
홍상현
<더블 레이어드 타운>이 관객에게 신선하게 어필하는 것은 역시 2031년이라는 미래와 현재를 교대지라는 공간을 매개로 연결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실로 놀라운 발상인데요.
고모리 하루카
부피가 확장된 거리라는 게, 물리적으로 촬영을 진행해도 시각화를 시키기가 힘들더라고요. '이 지면 아래 거리가 있다'는 느낌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하지만 그런 국면에서 단서가 된 건 세오가 “더블 레이어드 타운”을 쓰던 2015년 당시 건설 중이었던 신시가지나 방조제가 현실 속 풍경이 되어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촬영은 2018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풍경을 픽션처럼 미래로 설정하고 찍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던 곳도 있어서 각도를 달리하면 지면 아래쪽의 거리로 이어지는 길과 흔적도 남아있었고요.
이런 상황들을 체크하면서 땅 밑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 옆으로 이어지는 거리의 풍경을 여행자들의 걷는 속도와 눈높이에 맞춰 장거리 이동촬영으로 찍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게 이어진 지대의 길을 걸으면서 미래와 과거나 떠오르고 사라지는 모습을 잡을 수 있지 모르겠다는. 실제로는 어떨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시도해본 거죠. 그랬는데 “공간을 매개로 연결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니 너무 기쁘네요.
"한국에서 다시 상영할 기회가 꼭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울러 이 작품을 통해 한국에서의 더블 레이어드 타운에 대해, 혹은 당사자ㆍ비당사자 사이의 계승 가능성에 대해 여러분의 경험이나 접근방법을 공유해보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고요.
서울에 사는 친구 중에 매년 센다이에 기록을 하러 오는 아이가 있는데요. 아직 한국을 가 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는 꼭 만나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차기작 계획을 물으니 이번에는 센다이를 떠나 전혀 새로운 곳에서 촬영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 중이란다. 어느 한 아웃풋에만 치우치지 않고 협동하는 커뮤니티와의 관계에서 바람직한 자극을 받고 있는 까닭에 <더블 레이어드 타운>을 만들게 되기까지 이어온 크리에이터들과의 관계 또한 여전히 돈독하게 유지하게 될 것이라고. 무려 20년 가까이 이어온 그들의 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상황에 있다는 이야기다.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두 청년예술가과 대면 인터뷰를 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