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션 베이커 #1] '스타렛' 망각되지 않을 영원한 눈
[션 베이커 #1] '스타렛' 망각되지 않을 영원한 눈
  • 이현동
  • 승인 2022.07.0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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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 발타자르, 그리고 치와와 스타렛"
ⓒ 노바엔터테인먼트

밝은 태양과 더불어 온화하고 평화로운 기후를 체감할 수 있는 지역인 남부 캘리포니아 샌 페르난도 벨리(San Fernando Valley)에서 시작되는 <스타렛>(2012)의 첫 시퀀스는, 이러한 지정학적 요소를 상기할 수 없을 만큼의 자그마한 빛과 공간적 특징이 함께 투영되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장소에서 시작된다. 커튼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의 영향력이 공간을 덮기 전에 관찰할 수 있는 것은 침실 바닥 옆에 위치한 열린 여행 가방과 버려지듯 무심하게 위치한 옷가지들, 즉 정돈되지 않는 공간과 그 사이로 등장하는 제인(드리 헤밍웨이)의 강아지 '스타렛' 존재이다. 어떠한 전망도 없는 그녀의 어지러운 삶의 형태를 표출하는 공간은 모텔이나 다름없는 익명의 아파트를 주축으로 구현된다.

룸메이트인 멜리사(스텔라 매브)와 마이키(제임스 랜슨)는 물질의 관성에 의해 강제되는 관계로, 영화의 각박하고도 허술한 관계를 묘사하는데 동원된다. 그들의 대부분의 대화는 게임이나 마약이라는 본능적인 쾌락을 향유하는 방식으로만 표현되기에 그렇다. 그들의 관계를 형성하는 주체가 되는 유물론적 함의는 찬란한 기후마저 삭막한 공상으로 교합하는 파멸적인 양상으로 묘사된다. 무엇보다도 <스타렛>에서 이러한 갈등을 심화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건 제인이 근처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구입한 보온병에 보관된 10,000달러라는 돈과 직면했을 때 발생한다. 거액의 돈은 윤리적인 가능성을 겨냥하는 동시에 이중적으로 발동되는 제인의 삶의 양태로부터 탐색된다.

이 사건 이후로부터 두 종류의 서사를 견인하는 '물성'은 한쪽에서는 제인과 세이디(베세드카 존슨)와의 휴먼드라마, 다른 한편으론 로스앤젤러스의 현대 포르노 산업에 대한 폭로로 이어진다. 전자는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어느 가족>(2018) 속 시바타 하츠메(키키 키린)의 연금이 가족 구성원의 궁핍한 상태를 해갈 시켜줄 수 있는 대상으로서 연대를 확립하였듯이, 세이디의 보온병은 제인과의 연대를 구성하는 계기로 기능한다.

 

ⓒ 노바엔터테인먼트

제인이 돈을 확인하고 가장 먼저 연락하는 대상이 엄마라는 지점에서 발견되는 내면의 이미지는 가족이란 형상이다. 이는 모호하게 결합되어 있는 두 종류의 세계를 교호하려는 제인의 시도와도 절대 무관하지 않다. 성적 욕구를 독점하며 자본주의를 추동하는 포르노산업에서 제인의 외형은 짙은 화장과 아이라이너를 덧칠하고 성적 농담도 자연스러운 상품의 형상을 하고 있다면, 세이디와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과감히 드러낸다.

엄마와의 통화 후 제인은 곧바로 값비싼 매니큐어와 자기 강아지를 위한 화려한 목줄을 구입하는 행동을 하지만, 불안과 죄책감으로 인해 세이디를 찾아가 진실을 고백하려 한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심하게 거절당한 제인은 포기하지 않고 세이디와의 만남을 유도한다. 제인은 잉여의 상태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세이디와 동질감을 느끼고, 차츰 세이디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양가적인 몽타주로 교차된다.

 

ⓒ 노바엔터테인먼트

성공을 위해 성 상품화의 현장인 박람회 장소에 도착한 제인에게 소속사 사장은 "오늘 제대로 일하면 밤에 얼굴이 아플 거다"라고 말한다. 웃음이 강제되는 현장과 교차 편집되는 세이디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건, 스타렛을 잃어버린 상태로 길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이다. 이때, 마치 세이디는 스타렛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제인'을 잃어버린 것처럼 방황한다.

제인이 본명을 상실한 채 테스란 별명으로 활동할 때, 이는 세이디의 공간과 의식에 부재한 익명의 이름으로 은폐되고 있음을 상기해볼 수 있다. 제인을 조명하는 사회구조적 형상, 반대로 세이디의 자연주의적인 공간적 함의는 이러한 간격에서 추동되는 척력에 관한 진술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어떤 경로에서 세이디가 스타렛을 어떻게 찾았는지 알 수 없지만, 스타렛을 데리러 온 제인에게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더는 감당 못 한다"며 그녀에게 단호하고 말하고 내쫓는다.

결국 <스타렛>에 은닉되어 있는 두 종류의 세계를 파괴하는 건 탈-자본주의, 즉 자본이란 것에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세이디의 관점을 통해 해체되는 관계의 투명성으로부터 지시된다.

 

ⓒ 노바엔터테인먼트

교회에서 진행되는 빙고 게임의 시퀀스에서 물성으로 잠식된 또 하나의 불분명한 성질의 장소를 통해 제인과 세이디의 간극은 더욱 세부적으로 표현된다. 첫 번째 시퀀스에서 제인은 고작 150달러라는 최대 상금에 관해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지만, 세이디를 비롯한 참석인원들은 진중한 태도로 참석하며 이를 즐기기까지 한다. 두 번째 빙고 게임 시퀀스에서 제인은 세이디와 여행을 떠나기 위한 목적으로 200달러를 투자해 빙고게임을 시도한다. 여기서 빙고게임의 성질인 우연성은 마치 자연주의적인 형상으로 실제화되면서, <스타렛>에서 지속해서 투영되는 자본주의를 무용하게 만든다.

그다음 제인은 룸메이트인 멜리사와의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관계를 끊어냄으로 물성으로부터 탈주하여 세이디와의 여행을 준비한다. 종국에 세이디를 향한 제인의 의도가 발각될지라도 세이디는 그녀에게 무덤에 잠들어 있는 자기 딸의 자리를 허락할 때, 그것은 결국 초반에 언급했던 가족의 형상이 자본으로 대체될 수 없음을 호명한다. 이때 스타렛을 안고 있는 세이디의 표정은 묘하게 평화롭다. 딸의 잔상이 제인으로 변화되었음을 암시하는 장면은 제인이 이미 시간이 지나 시들어버린 꽃을 교체할 때이다.

밝고 햇살에 젖은 둘의 이미지는 감정에서도 합일을 이룬다.

 

ⓒ 노바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우린 모든 공간에서 잔존하는 스타렛의 의미를 묻게 된다. 스타렛은 공고화된 험악한 사회 구조의 모순을 끊임없이 목격하는 로베르 브레송의 <당나귀 발타자르>(1966)에서 발타자르와도 같은 존재로, 순진무구한 관찰자의 시선으로 모든 사건을 조망한다. 스타렛은 사회라는 지형을 탐사하는 동시에 단어의 의미(스타를 꿈꾸는 신인 여배우)와는 반대로 공허하고 황량한 현실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특성을 보인다. 물질은 세이디에겐 보온병은 쓰레기만큼이나 잊혀 질 것들의 속성인 셈이며, 제인이 이를 자각하는 마지막 순간의 빛은 희망과 공명하며 우리를 다독인다.

션 베이커의 영화에서 현장성을 극도로 강화하는 핸드헬드로 촬영한 미디엄 샷의 카메라 워크는, 프레임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사회의 불균질하고 비선형적으로 매설되어 있는 코드들을 직관적으로 응시하고 저항하지만, 그 안에 내밀하게 전개되는 휴머니즘을 상실하지 않는다. 산업화와 함께 도약한 포르노 산업의 현실을 유희적으로 묘사하는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나이트>(1997)가 오락 영화의 기능을 구현해냈다면, <스타렛>은 특정한 환경과 시선으로부터 증류되는 관계의 물음으로 진중하게 나아간다.

션 베이커가 <스타렛>을 연출하며 "I only have my chihuahuas"라고 규정할 때, 스타렛의 성질이란 관계를 가장 원초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렌즈가 휴머니즘이라는 지점에서 스타렛의 눈은 영원히 잊지 못할 '망각되지 않을 눈'이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노바엔터테인먼트

스타렛
Starlet
감독
션 베이커
Sean Baker

 

출연
드리 헤밍웨이
Dree Hemingway
베세드카 존슨Besedka Johnson
스텔라 매브Stella Maeve
제임스 랜슨James Ransone
케사르 가르시아Cesar Garcia
아민 조셉Amin Joseph

 

수입 매니아22
배급 노바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12
상영시간 103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14.02.20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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