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셔젤] '퍼스트 맨' 목표를 쫓는 인물의 내면에 대하여
[데미안 셔젤] '퍼스트 맨' 목표를 쫓는 인물의 내면에 대하여
  • 선민혁
  • 승인 2022.06.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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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셔젤 스타일의 완성"

현재로서 데미안 셔젤의 최신작이라고 할 수 있는 <퍼스트맨>(2018)이 그의 두 전 작품만큼이나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특히 국내에서는 <위플래시>(2014)와 <라라랜드>(2016)에 비해 이 작품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으며, 개봉 당시 극장에서도 큰 흥행은 거두지 못했다.

처음으로 달에 닿은 인류 닐 암스트롱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이전에 큰 흥행을 거뒀던 <그래비티>(2013)나 <인터스텔라>(2014)와 같은 체험을 기대했던 관객들이 우주 공간을 담은 장면이 주가 되지 않는 <퍼스트맨>에 비주얼적으로 실망했을 수 있었겠다. 혹은 '우주영화'로서가 아닌 '데미안 셔젤의 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 중에서도 역시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장면들과 감상들을 마주한 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이전작들에서 동시에 연상되는 다소 빠른 호흡과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음악이라는 요소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퍼스트맨>은 '데미안 셔젤'을 작가주의 감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이자, 앞으로 그가 만들 작품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 유니버설 픽쳐스

필자는 <위플래시>에 대해 이야기한 이전 글에서 데미안 셔젤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주목할 만한 공통점으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인물'이 극의 중심이 되어 서사를 끌어나간다고 썼다. 이야기한 대로 <위플래시>에서는 위대한 재즈 드러머를 꿈꾸는 앤드류가, <라라랜드>에서는 재즈의 가치를 실현하려는 세바스찬과 성공한 배우가 되려는 미아가, <퍼스트맨>에서는 달에 닿으려는 닐 암스트롱이 극의 중심이 되어 서사를 나간다. 흥미로운 점은 세 작품에서 극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에 각각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인데, 각 작품의 방식이 모두 최신작에 가까울수록 이전작보다 인물에 대한 많은 것을 담는 복합적인 방식으로 변화한다.

<위플래시>에서는 앤드류라는 주인공이 철저한 중심이자 극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주체가 된다. 주변 인물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앤드류의 다음 행동을 유발하거나 감정상태를 드러내는 도구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위플래시>가 앤드류라는 인물이 목표를 향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여 그것을 일직선으로 쫓는 것 자체를 주요한 재료로 삼아 관객을 몰입시킨다면, <라라랜드>에서는 두 인물을 극의 중심으로 삼고, 그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도록 한다.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으로 인해 이들의 가치관은 변화하기도 하고, 목표한 것에 닿기 위해 설정한 전략은 수정되기도 한다. <위플래시>가 철저히 중심이 되는 한 인물이 직선으로 목표에 향하는 과정의 템포를 조절하며 매력을 만들어낸다면, <라라랜드>는 두 인물의 조화를 통해 서사에 유연함을 부여하여 곡선의 매력을 끌어낸다. 

다만, <퍼스트맨>이 없었다면 이는 단지 <위플래시>와 <라라랜드>의 서사 진행 방식에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차이였겠으나, 이 영화까지 놓고 본다면 인물과 서사를 다루는 데미안 셔젤의 방식에 지속적인 확장이 일어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 유니버설 픽쳐스

<퍼스트맨>에서도 물론 중심이 되는 인물 닐 암스트롱(라이언 고슬링)이 존재하며, 그는 <위플래시>의 앤드류나 <라라랜드>의 세바스찬, 미아에 비해서도 굉장히 원대해 보이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역시 다미엔 셔젤은 중심인물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게 만들고,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을 서사의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전작들과 같이 관객들로 하여금 '주인공이 목표를 과연 이룰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영화를 몰입하게 만들지 못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대부분 우리는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명 실화 기반의 설정은 다미엔 셔젤이 이번에는―특히 <위플래시>에서와는 달리―인물이 그의 목표를 과연 달성할 것인가에 대한 여부보다 '다른 것을 더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보게 만든다.

<퍼스트맨>는 목표 달성을 위해 닐이 얼마나 큰 집념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그것만을 위해 노력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대신, 그가 '역사에 기록된 우주인'이 되기까지 그의 내면이 어떻게 이루어져 갔는가를 이야기한다. 어린 딸을 잃은 슬픔과 그것에 대한 트라우마, 지속해서 마주하게 되는 동료들의 잇따른 죽음, 가족, 동료, 주변 인물들과 만들었던 소소한 사건들과 그들에게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모습 등 그가 내면을 형성해온 과정에 비중을 둔다. 우리는 <위플래시>에서 앤드류가 그의 목표를 쫓는 과정에 매우 큰 흥미를 가지고 몰입할 수 있지만, 영화가 끝난 후에 앤드류가 어떤 인간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알기는 어렵다. 그에 비해 <라라랜드>는 세바스찬과 미아가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등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통해 각 인물이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물의 내면 또한 조명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 유니버설 픽쳐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세 작품에서 드러나는 '다미엔 셔젤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발견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위플래시>는 삶이란 의지와도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앤드류는 위대한 드러머가 되겠다는 매우 강한 집념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것을 포기해도 괜찮아질 정도로 그것에 열중하고, 결국 그가 목표했던 경지에 다다른다. <라라랜드>에서의 세바스찬과 미아 역시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으며, 서로의 꿈을 지키고자 하지만 이들은 그들의 목표 이외에도 다른 것을 중요하게 여길 수 있는 인물들이며 미아의 성공은 그녀의 의지가 아닌 우연이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절대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서로를 사랑하게 된 것처럼, 이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그들이 나아가는 방향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퍼스트맨>은 조금 더 강하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닐은 물론 달 도달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매우 큰 의지를 다지고 있고 더욱더 노력하지만, 이러한 그의 의지는 전작들과 달리 오직 그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전 직장에서 징계를 받지 않고, 그의 딸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그는 달 착륙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달 착륙 성공에 대한 그의 의지는 동료의 잇따른 죽음 등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을 겪으며 점차 강해진다. 더욱이 이 영화에서 개인의 의지로만 이뤄지지 않는 예측할 수 없는 삶에 대한 메시지는 오직 주인공 닐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닐과 결혼했어" 닐의 아내 자넷(클레어 포이)는 안정적인 성격을 가진 닐과 함께라면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있다고 그와 결혼했지만, 이 이야기를 그녀의 친구에게 할 때는 이미 언제 남편의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삶 속에 놓여있었다.

<퍼스트맨>은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이라는 거대한 이벤트를 다루면서도, 그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한 인물의 내면이 형성되는 과정에 더 깊이 있게 집중하는 것을 보면, 이는 이전작들 간의 단순한 차이가 아닌 다미엔 셔젤이 지향하고 있는 하나의 방향이라고 해도 될 것이다. 이 영화는 곧 다미엔 셔젤 스타일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자, 그가 추구하는 주제의식이 일관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는, '다미엔 셔젤 스타일'이 완성되는 작품이다. 이는 곧 공개를 앞둔 그의 차기작 <바빌론>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유니버설 픽쳐스

퍼스트맨
First Man
감독
데미안 셔젤
Damien Chazelle

 

출연
라이언 고슬링
Ryan Gosling
클레어 포이Claire Foy
제이슨 클락Jason Clarke
카일 챈들러Kyle Chandler
패트릭 후짓Patrick Fugit
코리 스톨Corey Stoll
시아란 힌즈Ciaran Hinds
루카스 하스Lukas Haas

 

수입|배급 유니버설 픽쳐스
제작연도 2018
상영시간 141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8.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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