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로 읽어보는 '탑건 : 매버릭'
대사로 읽어보는 '탑건 : 매버릭'
  • 이현동
  • 승인 2022.06.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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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헌정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

<탑건 : 매버릭>(2021)의 이전 작품인 토니 스콧의 <탑건>(1986)은 '톰 크루즈'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로 그가 발산하는 강렬한 에너지를 체험하는데 최적화되어 있는 영화다. 조셉 코신스키는 인터뷰에서 <탑건 : 매버릭>은 '탑건 2'로 부를 수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지표는 '매버릭'이라는 캐릭터로부터 집약되기 때문이다. 스턴트맨 없이 모든 비행들을 소화한 이 영화의 모든 어트랙션은 감각을 각성시키는데 동원된다. 영화제작 전에 실패로 판명되었던 베트남 전 이후로 최초로 할리우드가 미군의 막대한 지원을 받고 제작된 <탑건>은 이를 의식한 듯이 국수주의적인 내용을 배제한 제법 담백한 영화로 완성되었다. 놀라울 정도의 거대한 흥행에도 불구하고 톰 크루즈는 속편을 제작할 마음이 없었다고 한다. <탑건>의 완성도를 염두하고 다음에 나오게 될 속편으로 인해 영화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는 것을 우려했고, 단지 <탑건>을 오락영화로 즐겨주었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톰 크루즈의 말대로 속편에 걸 맞는 스토리가 완성되자 <탑건: 매버릭>은 36년 만에 비행 준비를 마무리하고 개봉하게 되었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 롯데엔터테인먼트

"생각하지 말고 그냥 봐"

영화를 관통하는 톰 크루즈의 대사 중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해"라는 대사가 있다. 매버릭(톰 크루즈)이 전작 <탑건>에서 훈련 중에 발생한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은 후방관제사인 구스의 아들인 루스터(마일즈 텔러)에게 주문하는 이 문장은 영화의 의도와 목적을 총괄하는 말처럼 들린다. <탑건 : 매버릭>에 기대하는 바가 시각적인 반응이라면 이 작품은 영화의 원초적인 목적인 '전율'을 체험하도록 현상된다. 가령 뤼미에르의 <열차의 도착>(1895)에서 질주하는 기차가 스크린 앞으로 나올 것 같아 관객들이 극장 밖을 뛰쳐나갔다는 이야기나 에드윈 S. 포터의 <대열차강도>(1903)의 마지막 씬에 돌연 총을 쏘는 캐릭터를 보고 어떤 이가 기절했다는 이야기는 '본다'라는 행위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해답으로 적절한 사례들이다.

우리의 눈이 어떠한 '이미지'에 반응할 때를 생각해보라. 이것이 실제인지의 구분이 모호해질 때, 본다는 행위는 사고를 즉각적으로 동작시키지 못한다. 사고를 관통하는 건 결국 이미지의 형상이 스크린 앞에 어떻게 배열되는가로 귀결 난다고 했을 때, 탑건은 그 목적을 완벽하게 달성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탑 건> 시리즈는 사유하는 영화가 아닌, 영화의 리듬에 자신을 온전하게 맡기는 '보는' 영화이다.

이를 설명하는 초반 인서트 숏(Insert shot)은 이 탑 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극초음속으로 지칭되는 마하 10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는 매버릭의 시도에서 비롯된다. 이 시퀀스에서 쇼트는 세 종류로 구성된다. 매버릭의 표정, 몸짓, 대사, 제스처의 생동성, 비행기체 구석구석을 클로즈업할 때 발견되는 금속성의 성질, 계기판, 외부의 광택, 기체의 공간감, 그리고 매버릭의 비행을 관측하는 동료들의 염려를 나타내는 모든 제스처는 마하 10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직조된 이미지들이다. 마하 10이라는 속력의 한계치에서도 매버릭은 멈출 줄 모르고 속도를 올림으로 한계를 초월한다. 마치 전작을 추월한 듯이 보이는 이 시퀀스에서 '한계'를 초월하기 위해 <탑건: 매버릭>에서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축조되고 발현되었는지를 살펴본다면 유의미한 접근이 될 것이다.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한계를 모른다

영화의 한계는 무엇일까. 뤼미에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스튜디오 촬영을 고수했던 조르주 멜리에스는 영화기법을 개발하여 우주를 공상할 수 있었고, 무한한 판타지를 꿈꿀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주었다. <탑건: 매버릭>이 어느 성격에 더 가깝냐고 한다면 뤼미에르겠지만, 과거로 돌아가 그에게 과연 실제 제트기를 타고 영화를 찍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극한의 리얼리즘으로 자각되는 이 영화는 진실로 한계를 모르는 것처럼 움직인다. "적은 우리와 같은 전술을 공유하고 활용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한계'를 모른다"라는 매버릭의 대사는 '본다'라는 행위에 이어서 어떻게 대중들이 이 영화를 기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이기도 하다. 이러한 한계는 아날로그적 촬영을 고수함으로 성취된 것들이다.

매일 아침 모든 배우, 해군 조종사, DP, 편집자는 2시간가량의 브리핑을 시작으로 모든 스토리보드와 쇼트를 살피고 그날 완성해야 할 내용들을 위해 필요한 사항들인 날씨, 안전, 지형, 조명 배치, 그리고 F-18의 조종석 모형으로 배우들을 리허설하고 트레이닝시키는 이 일련의 고단하고 수고스러운 과정을 거친 후에 촬영에 본격적으로 돌입한다. 몇 달 동안 필요한 모든 샷을 얻기 위해 설계된 훈련과도 같은 과정은 영화가 극복하기 위한 현재의 도전으로 비춰진다. <탑건>에서 경이로웠던 날것의 연출이 현대로 이행되는 과정에 있어서 한층 더 발전하고 핵심적인 것으로 전제되는 것은 이러한 팀웍이다. 지휘자인 톰 크루즈부터 연주되는 캐릭터들의 전우애는 모두 그로부터 지시되는 것이라는 것임을 상기할 때 매버릭은 우리에게 이렇게 답변하는 것만 같다. "자네 같은 파일럿들은 결국 멸종할 수밖에 없어", "오늘은 아닙니다"(바꿔 말해 톰 크루즈는 "한계를 모른다"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을지도)

 

ⓒ 롯데엔터테인먼트

본능적으로 탑건을 회억하기

<탑건: 매버릭>은 <탑건>에서 봉인된 과거를 소환하기도 하고, 개량화된 기체로부터 측정되는 강화된 기동력을 통해 36년 동안 이륙해온 발전을 목도하게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시리즈의 부활은 냉각되어 있던 시간을 회억하는 데에 큰 동기를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연료를 얻기 마련이다. 몇 가지의 사례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2015), <블레이드 러너 2049>(2017), 듄(2021) 등에서 체감되는 세월의 잔상은 CG와 특수효과의 발전으로 진술될 수 있는 속성이라고 한다면, 조셉 코신스키의 <탑건 : 매버릭>은 전작의 감성을 복권하면서도 더 나아가 시각적인 체험을 계승하고 진화시킨다.

시간의 문양처럼 새겨진 주름, 신체의 노쇠함과는 무관하게도 전작과 이번 작품의 오프닝 장면에서 잔류하는 해럴드 팔터마이어와 케니 로긴스의 사운드트랙인 'Danger Zone'가 들려질 때 데자뷰처럼 봉인된 과거는 개봉된다. 매버릭은 여전히 초음속 전투기와 오토바이를 몰고 바람을 가르며 지상과 상공을 활공하며 1편에서 매버릭과 아이스맨의 경쟁 구도에 상응하는 루스터와 행맨(글렌 파월)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대위에서 대령으로 진급한 매버릭의 계급이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는 마지막 지위인 만큼 탑건이 기다려온 세월은 그만큼 회억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크레딧이 올라간 이후에 우리는 조셉 코신스키의 이름을 그제야 발견한다. 이건 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탑건'의 정신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전쟁 영화가 아닌 스포츠 영화로 규정한 조셉 코신스키는 <탑건>을 프로파간다 영화로 비평한 평론가들에게 토니 스콧이 '재미'만을 위한 영화로 봐 달라던 반박과 더불어 그 동일한 정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린 깊숙이 묻혀있던 기억의 끝자락에서 묘한 데자뷰를 경험하게 될 뿐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해 집단적 열망을 투영할 수 있는 강렬한 체험이 있는 곳인 영화관으로 기어코 탑승하게 될 것이다.

[글 이현동, Horizonte@ccoart.com]

 

ⓒ 롯데엔터테인먼트

탑건: 매버릭 
Top Gun: Maverick
감독
조셉 코신스키
Joseph Kosinski

 

출연
톰 크루즈
Tom Cruise
마일즈 텔러Miles Teller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nelly
존 햄Jon Hamm
에드 해리스Ed Harris
글렌 포웰Glen Powell
제이 엘리스Jay Ellis
그렉 타잔 데이비스Greg Tarzan Davis

 

수입|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30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2.06.22

이현동
이현동
 영화는 무엇인가가 아닌 무엇이 아닌가를 질문하는 사람. 그 가운데서 영화의 종말의 조건을 찾는다. 이미지의 반역 가능성을 탐구하는 동시에 영화 안에서 매몰된 담론의 유적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한다. 매일 스크린 앞에 앉아 희망과 절망 사이를 배회하는 나그네 같은 삶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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