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 순간 배제되어있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Interview] 이 순간 배제되어있는 누군가를 기억하기
  • 홍상현
  • 승인 2022.08.22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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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시아의 시선상 수상작 <우시쿠> 토마스 애쉬 감독
「우시쿠」는 20년 세월 동안 일본에 체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토머스 애쉬 감독에게 6년 만에 두 번째 아시아의 시선상을 안긴 작품이다. (C)2022 USHIKU
「우시쿠」는 20년 세월 동안 일본에 살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토마스 애쉬 감독에게 6년 만에 두 번째 아시아의 시선상을 안긴 작품이다. (C)2022 USHIKU

갈색슈트차림의 사내가 미국에 도착해 입국심사대를 빠져나가기도 전에 날벼락을 맞는다.

갑작스러운 쿠데타로 여권을 발행한 나라 즉, 국적국(the land of citizenship)이 사라져버렸다는 소식. 졸지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그는 무기한 공항대기를 시작한다. 아니, '공항생활'이 정확한 표현일까. 하지만 관리 당국 입장에서 보면 사내는 단지 불청객에 불과할 따름. 갖은 수를 써서 자신을 밀어내려는 시도에도 굴하지 않고, 사내는 천진난만한 성품으로 하루하루 버텨낸다. 그 사이 하나둘씩 친구가 생기고 아름다운 승무원과의 로맨스까지 더해진다.

이상은 2000년대 초반 개봉한 스필버그의 대표작 <터미널>(2004)의 줄거리다. 동유럽 가상 국가 '크로코지아' 출신으로 설정되어있는 주인공 빅터(톰 행크스 분)의 신분은 "생활이 곤궁한 국민,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곤궁에 빠진 이재민" 바로 난민이다.

난민의 정의는 유엔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도 계속 발생하는 난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적용ㆍ보호 범위를 넓히기 위해 1951년 채택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에 따라 진즉부터 확대되어있었다. 조약은 난민을 "인종, 종교, 국적, 특정의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것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위험을 갖기 때문에 국적국 외에 있는 자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 또는 그러한 공포를 갖기 때문에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 자(물론 무국적자도 동일한 적용을 받을 수 있다)"로 규정한다.

 

토머스 애쉬 감독은 미국에 갈 때 ‘귀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아시아를 사랑해서? 그런 표현은 어색하다. 호불호의 문제를 떠나, 그는 그저 피부색이 다른 아시아인이기 때문이다. (C)2020 USHIKU
토마스 애쉬 감독은 미국에 갈 때 '귀향'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아시아를 사랑해서? 그런 표현은 어색하다. 호불호의 문제를 떠나, 그는 그저 피부색이 다른 아시아인이기 때문이다. (C)2020 USHIKU

하지만 안타깝게도 2021년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아시아의 시선상을 수상한 <우시쿠>(2021)의 등장인물들이 받는 처우는 모두에서 인용한 스필버그의 작품은커녕 유엔이 규정한 기본적인 기준을 떠올려봐도 무참한 수준이다.

영화의 타이틀인 '우시쿠'는 일본의 외국인 중 체류자격이 없거나 비자 갱신이 인정되지 않아 국외퇴거를 명령받은, 혹은 망명의사를 밝히며 난민자격을 신청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외국인을 수용하는 일본 내 19개 시설 중 하나인 동일본 입국관리센터(이바라키 현 우시쿠 시 소재)를 가리킨다. 토마스 애쉬 감독은 교회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찾아간 시설에 수용되어 있던 아홉 명의 난민자격 신청자가 처한 현실을 삼엄한 감시를 피해 고발한다. 대부분 목숨을 지키기 위해 모국을 떠나온 이들은 장기억류 상황에서 정신적 스트레스와 관리직원들의 비인권적 처사, 그리고 가족ㆍ친지에 대한 그리움 등에 시달리며 정신적ㆍ육체적으로 황폐화 되어간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코로나19 사태와 도쿄올림픽이라는 일련의 사건과 맞물려 관계당국의 집요하고 폭력적인 강제송환 시도 또한 강도를 더해간다는 점이다.

20년 세월 동안 일본에 체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며 2015년 연명치료를 거부한 주인공의 마지막 시간을 담은 <-1287>(2015)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처음, 6년 만에 <우시쿠>로 다시 아시아의 시선상을 수상한 토마스 감독을 도쿄에서 만났다.

 

「우시쿠」에는 날로 거칠어지는 당국의 추방시도가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 큰 원인의 하나인 올림픽 중단을 염원하는 수용자마저 등장한다. (C)2020 USHIKU
「우시쿠」에는 날로 거칠어지는 당국의 추방시도가 고통스러운 나머지 그 큰 원인의 하나인 올림픽 중단을 염원하는 수용자마저 등장한다. (C)2020 USHIKU

홍상현

2015년 <-1287>로 아시아의 시선상을 수상하신지 6년 만에 <우시쿠>로 같은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토마스 애쉬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참가했던 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한국에 가지는 못했지만 그런 영화제에 다시 초청되고 수상까지 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아사아의 시선상 자체가 워낙 의미 있고 중요한 상이잖아요. 이런 평가를 받음으로써 더 많은 분들께 <우시쿠>에 등장하는 친구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된 것 같아 영광이에요.

 

홍상현

우선 작가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보죠.

뉴욕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영화를 공부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일본에 오셨고, 20년이 지난 지금에는 미국에 갈 때 '귀향(going home)'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세요. 아시아를 고향으로 생각하고 계신다는 이야기인데요.

토마스 애쉬

일단 일본에 오게 된 계기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정확하게는 '일본에 오고 싶다'기보다 '어디든 가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강했어요. 그렇다 보니 가출하다시피 해서 이곳에 오게 된 거고요.

나고 자란 곳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불신감뿐만 아니라 뭔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계속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런 문제는 정말 그 환경에서 벗어나 보지 않고서는 심각성을 분명하게 파악할 수 없죠. 그래서 미국을 떠났는데, 그래 보니 미국의 많은 것들이 저를 힘들게 한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골이 더 깊어졌죠. 이제는 진짜 돌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식 투쟁 끝에 가석방을 다녀온 수용자도 있다. 정치적인 의도 때문에?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C)2020 USHIKU
단식 투쟁 끝에 가석방을 다녀온 수용자도 있다. 정치적인 의도 때문에? 단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였다. (C)2020 USHIKU

홍상현

도쿄대에서 학생들에게 다큐멘터리를 가르치고 계신데요. 영상작가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토마스 애쉬

학생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있어요. 사색할 수 있는 기회도 많고, 결국 강의는 제게 '교육'보다 '소통'의 의미가 더 강하지 않을까 합니다. 무의식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으면 '왜'라는 자문을 하지 않으면 끝까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이런 사고활동의 연장선에 있어요.

 

홍상현

다음은 필모그래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데뷔작품이 빈곤과 마약중독 등으로 고통받는 영국의 빈곤층 가족을 <비키와 제이크의 발라드>였습니다. 굵직굵직한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수상ㆍ초청된 이 작품은 감독의 영화인생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른바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사람들'에 주목하면서 현대자본주의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을 만들어 가겠다는 선언(declare)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런 경향이 이후의 작품에서도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요.

토마스 애쉬

제 작품들을 꼼꼼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그런데 딱히 의식적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해 본 적은 없네요. 오히려 일상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는 적이 많거든요. 20년 전만 해도 혼자 촬영은 물론 편집까지 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내는 거 자체가 불가능했죠.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문장력이 없다 보니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웃음)

여하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신 하나의 경향이 나타나게 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도 모르게 사회로부터 배제된, 그러니까 말씀처럼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두게 되는 게 사실이긴 합니다.

 

수용시설에 갇혀있는 그들의 신분은 불법체류자. 하지만 이런 꼬리표가 붙게 된 이유는 실로 얼토당토않다. 단지 ‘난민신청’을 했을 뿐이니까. (C)2020 USHIKU
수용시설에 갇혀있는 그들의 신분은 불법체류자. 하지만 이런 꼬리표가 붙게 된 이유는 실로 얼토당토않다. 단지 '난민신청'을 했을 뿐이니까. (C)2020 USHIKU

홍상현

자, 그럼 이제부터 작품에 대한 좀 더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보도록 할까요?

<우시쿠>를 본 관객 여러분께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언급하신 게 면회실 글라스 건너편에 있는 상대방과 손을 맞대는 장면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전해질 수 없는 상대방의 체온을 확인함으로써 인간적인 연대를 실감시켜주는 의식(ceremony) 같은 느낌이 좋았는데요.

토마스 애쉬

아, 말씀하신 것 같은 의미의 행동이 맞아요.

그런데 제가 먼저 한 게 아니라 수용되어 계신 분들께 배웠습니다. 그분들이 소통을 위해 하는 제스추어인데요. 좋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제 쪽에서도 자발적으로 글라스에 손을 대게 된 거죠.

 

홍상현

'선'이라든가 '정의' 같은 가치의 추구에 열정을 보이시는 평소 모습을 보면, 역시 성공회 신부이셨던 부친의 영향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토마스 애쉬

분명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모친도 간호사셨거든요. 아무래도 그런 부모님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겠지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까닭에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든가 제가 가진 것을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건 제게 무척 당연한 일이에요.

 

홍상현

<우시쿠>가 만들어지게 된 사회적인 배경에는 '타자에 관대하지 않은 법률'이라는 제도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에 앞서 좀 더 디테일한 개인적인 동기(motivation)가 존재하고 있을 거라고 보는데요.

토마스 애쉬

사명감이 가장 컸습니다.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이요.

수용시설의 상황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 안에 계신 분들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고민 끝에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증거를 남기자'는 거였어요. 소송 등이 진행되면 필요할 테니 그때그때 현황을 기록해두자는. 다음은 '발신'입니다. 내부의 상황을 더욱 많은 분들께 전해드릴 수 있다면 문제의 해결로 이어질 수도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러니 애초에 흔히들 생각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과 좀 차이가 있는 목적의식을 가졌던 겁니다.

 

억류생활은 버겁지만 그래도 목숨을 잃은 친구들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라던 수용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찾은 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C)2020 USHIKU
억류생활은 버겁지만 그래도 목숨을 잃은 친구들을 생각하면 감사할 따름이라던 수용자.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찾은 많은 관객들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C)2020 USHIKU

홍상현

다만, <우시쿠>의 제작환경에는 대부분의 촬영이 이루어질 장소가 여러 가지 제약이 가해지는 공간이라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한계를 감안해 불리한 상황을 하나의 상수로 인정하면서 진행된 촬영이 오히려 새로운 미학적인 시도(aesthetic attempt)라는 놀라운 결과를 낳지 않았나 싶어요.

토마스 애쉬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증거를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상작가이기도 한 까닭에 아무래도 시선이나 프레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는 사이에 촬영한 영상들이 최대한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낸 거죠. 수용시설 안에 계신 분들의 상황을 보는 이들이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홍상현

특히 <우시쿠>가 영화로서 가치를 지니는 것은, 수용시설 내의 여러 가지 비인도적인 상황들을 단지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행동을 위한 관객의 동의를 이끌어내는 다양한 표현기법이 사용되었기 때문 아닐까 합니다.

토마스 애쉬

관객들이 면회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연출했어요. 어두운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시게 되잖아요. 그래서 면회 장면에서는 일부러 사운드를 줄였습니다. 갇혀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말이죠.

반면 폭행이나 가석방 장면에서는 다시 사운드를 크게 했어요. 해서, 후자의 경우에는 해방감이 극대화되지요. 무의식적으로 압박해오던 답답한 느낌이 단숨에 해소되는 점을 염두에 둔 겁니다. 아울러, 영어와 일본어 자막을 영상 위가 아닌 검은 프레임에 집어넣은 것도 조형적인 의도가 있었습니다.

데모음성은 페이드아웃 화면에 자막만 입혔는데요. 음성만 흘러나오면 재미가 없으니 영상을 넣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는데 오히려 상상의 영역을 침범할지도 모르겠다 싶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가석방 장면에 다다르면 처음으로 하늘이 시야에 들어오니까 푸른 색체가 더 눈에 띄게 되고요.

 

수용자들은 흡사 재소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들만도 못한 처지다. 이런저런 구실로 정신적ㆍ육체적 학대를 당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C)2020 USHIKU
수용자들은 흡사 재소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들만도 못한 처지다. 이런저런 구실로 정신적ㆍ육체적 학대를 당해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C)2020 USHIKU

홍상현

등장인물 가운데서 특히 감정이입이 되는 분이 계셨을 것 같은데요.

토마스 애쉬

물론 아홉 명 중 누구라도 마음이 쓰이지 않는 분이 없었지만, 특히 충격적으로 기억되는 건 소년 알리였어요. 그렇게 활기가 넘치고 명랑하던 친구가 수용생활에 지쳐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할 정도의 변화를 보이는데 지켜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홍상현

워낙 절실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인 만큼, '카메라 밖'에서의 사건도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토마스 애쉬

그렇죠. 특히 가석방 이후의 일들이요.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좀 다루긴 하는데 그걸로는 부족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속편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우시쿠>에서 다뤄지는 내용이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점이에요. 미처 기록하지 못한 많은 일들이 있었답니다.

 

홍상현

<우시쿠>를 제작한 뒤에도 등장인물 여러분을 돕는 일을 이어가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토마스 애쉬

애초에 제 활동의 목적자체가 영화촬영이 아니었으니까요. 자랑으로 인식해서 반감을 가지시면 곤란하다는 생각에 SNS 등을 통해 일일이 공개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생계를 위한 일을 할 때 외의 시간에는 최대한 그들을 도우면서 지내고 있어요. 말하자면 제 '라이프워크'인 거죠.

오늘 아침에도 가석방 상태인 한 친구가 이사를 가는데 기부해주신 가구를 가지러 차를 빌려 가와사키 시까지 다녀왔습니다. 이런 현물 지원뿐만 아니라 지원금을 주시는 분도, 혹은 식료품 지원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그리고 아직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가거나 할 때 동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분들도 많은 도움을 주고 계시고요.

 

야당인 입헌민주당 비례대표 이시카와 타이가 참의원 의원처럼 선량한 이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들도 있다. 토머스 애쉬 감독은 이런 이들의 실천이 모일수록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C)2020 USHIKU
야당인 입헌민주당 비례대표 이시카와 타이가 참의원 의원처럼 선량한 이들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들도 있다. 토마스 애쉬 감독은 이런 이들의 실천이 모일수록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C)2020 USHIKU

홍상현

감독께서 생각하시는 <우시쿠>는 어떤 영화인가요.

토마스 애쉬

일본에서 난민신청을 한 상태로 일본의 수용시설에서 지내고 계신 분들에 대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어느 나라 관객이 보신다 한들 결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실 거예요. 비단 난민신청자가 아니더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 노숙인, 미혼모, 혹은 가정폭력에 시달려 보호처가 필요하신 분 등 현대사회에는 언제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배제되는 이들이 존재하니까요.

당장 <우시쿠>의 등장인물들을 도와주시기 힘든 상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각자, 자기의 주변을 돌아보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부디 각자의 형편에 따라 작은 실천이라도 해나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런 일들이 모여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 갈 테니까요.

 

홍상현

차기작 계획이 있으신가요?

토마스 애쉬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우시쿠>에 모든 내용을 다 담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예컨대 가석방되신 분들 가운데 가족이 있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아무래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을 아예 또 한 편의 영화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촬영은 <우시쿠>의 극장개봉으로 정신없이 바쁜 상황이 조금 진정 되는대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마 단편이 될 수도 있겠는데, 만들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웃음)

 

“당장 「우시쿠」의 등장인물들을 도와주시기 힘든 상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각자, 자기의 주변을 돌아보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부디 각자의 형편에 따라 작은 실천이라도 해나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런 일들이 모여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 갈 테니까요.” 토머스 애쉬 감독의 말이다. (C)2020 USHIKU
"당장 「우시쿠」의 등장인물들을 도와주시기 힘든 상황이라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각자, 자기의 주변을 돌아보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부디 각자의 형편에 따라 작은 실천이라도 해나가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런 일들이 모여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어 갈 테니까요." 토마스 애쉬 감독의 말이다. (C)2020 USHIKU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오늘날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있고, 이것을 본 뒤 크든 작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에 나서는 분들이 계시는 것처럼.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다른 이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꿈꾸며, 이를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이고 싶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함께 편의점에 들러 간단한 다과를 나누고, 함께 주변을 산책하며 친구로서의 회포를 풀었지만, 여느 인터뷰처럼 뿌듯하기만 한 기분으로 헤어질 수는 없었던 날.

일단 지원활동을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출연자들을 이용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악의에 찬 이들에 대응하느라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당시와 비교하더라도 눈에 띄게 수척해진 그의 모습도 신경 쓰였지만, 영화의 내용을 곱씹을수록 1.3퍼센트로 174개 대상국 가운데 139위를 차지한 한국의 낮은 난민인정률이 못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문득 기도하는 마음속으로 되뇐다.

세계가 보다 평화로워지기를. 필자를 언제나 '형제'(brother)라 불러주는 친구가 자신의 길에서 지치지 않기를.

홍상현
홍상현
 《코아르》 운영위원, 고토부키홈빌더 영화영상사업부 프로듀서.
정치학과 영상예술학 두 분야의 학위를 소지. 인문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으로 한일 양국 매체에 분석기사를 쓴다. 파리경제대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연구실 출신.
 프로듀서를 맡은 장편 다큐멘터리영화 <포 디 아일랜더스>는 2008년 제주영화제 개막작이었다.
 2013년부터 월간 《게이자이》에서 담당하는 경제평론지면이 에히메대 와다 제미나르의 교재로 쓰인다. 국제영화비평가연맹(FIPRESCI) 지부인 일본영화펜클럽 회원.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다수의 스테디셀러를 소개해온 번역가로도 유명하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선정하는 “세계의 영화인 7인” 중 1인이며 일본 TBS(채널 6) 주최 디지콘 6 아시아 심사위원, 《마이니치신문》 영화웹진 《히토시네마》 필진 및 마이니치영화콩쿠르 심사위원, 다카사키영화제 시니어 프로듀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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