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즈 라이트이어' 스크린을 경험의 접점으로
'버즈 라이트이어' 스크린을 경험의 접점으로
  • 배명현
  • 승인 2022.06.2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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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한계 그 사이 어딘가"

'버즈 라이트이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토이 스토리>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토이 스토리 1편>(1995)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그는 처음부터 '장난감'으로 자신을 인식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실제 우주 항해를 하는 영웅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현실과 기존 인식(상상)의 낙차로 인해 괴로워하던 인물이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잠시 <버즈 라이트이어>(2022)를 보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어떤 동기가 작용했기에 이 영화를 선택했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서사를 알고 있는 '어른'들이라면 당연히 버즈가 '대체 어떤 서사를 가지고 있었길래...'라는 호기심이다. 그리고 이는 픽사의 제작 동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캐릭터의 존재가 가지고 있는 숨겨진 이야기를 경험하고 싶어 한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만든 가상의 이야기가 아닌 '픽사'라는 '원본의 생산지'에서 공식적으로 내놓은 정식판 서사이다. 쉬운 말로, '진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진짜'는 관객에게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1995년에 개봉한 <토이 스토리>를 관람한 관객에겐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보이는, '이 영화가 바로 그 영화이다'라는 대사로 다시 한번 오리지널 이야기를 회상하게 한다. 이 회상은 <버즈 라이트이어>를 작동시키는 거대한 동력이다. '예전' <토이 스토리> 원작을 모른다면 기존의 무수한 영화들과 같은 방식으로 관람하게 될 영화이지만, 원작을 관람했다면 기억이 '지금' 관람하는 이 영화에 영향을 끼친다. 처음부터 정해진 버즈는 장난감이라는 진실(스크린 속)은 변함없이 공고하지만, 버즈라는 인물의 진실을 가리고 있던 흥미로운 사실을 관객에게 전달해 원작의 인물을 더욱 잘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객이 '현재 관람하는 영화'를 잘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닌, 앞서 존재해 온 원작의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는 데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뭔가 이상하다. 왜 우리는 <버즈 라이트이어>로 과거의 이야기를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 걸까. 흔히 말하는 프렌차이즈 영화와 시리즈물은 전작을 통해 후속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기에, 전작의 이야기는 다음 작품을 위한 빌드업 혹은 못다 한 이야기로 이해되었다.(심지어 프리퀄 시리즈조차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반대의 노선을 따른다. <버즈 라이트이어>는 '2022년' 서사 예술이 함양하고 있어야 하는 점(미적 스킬과 정치적, 윤리적 고민)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95년에 나온 <토이 스토리 1편>의 이야기 이후로 넘어갈 수가 없다. 이는 본 영화가 보여준 서사는 모두 '거짓'이라는 불변의 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버즈가 미래의 자신을 뛰어넘었을 때 보여주는 삶의 진실이라던가, 영화적 감동(픽사스러운)이 관객의 심정에 깊은 파동을 일으키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마주한 버즈의 생동과 아픔의 결과가 모두 거짓이 될 것이라는 자명한 결과를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버즈 라이트이어>는 감동적이라기보단 애달프다. 오히려 이 영화에서 받은 감동의 크기가 더욱 커질수록, 관객에게 주어질 후폭풍의 크기도 더욱 커진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토이 스토리>를 통해 아픔을 극복한 버즈를 봤던 관객이 다시 이 영화를 통해 아픔 이전으로 돌아가 버즈의 상처를 이해한다. 버즈의 비하인드 스토리라는 아이디어는 분명 매혹적이지만, <토이 스토리>가 지어놓은 한계선은 너무나 높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렇지만 <버즈 라이트이어>의 서사적 한계는 현재 영화산업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움직임'을 발견하는데 매우 좋은 예시가 된다. 현대 영화 산업의 정상에 위치한 디즈니사의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떠올려보자. 마블은 평행우주라는 사기에 가까운 설정을 이용해, 이전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 시리즈(2002~2007)와 마크 웹 감독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2012~2014)의 두 주인공을 현재의 <스파이더맨> 시리즈(2017~2021)로 불러온다. 영화 속 인물들은 이 만남을 평행세계의 원리로 이해하지만, 스크린 밖에 있는 관객들은 시간의 원리로 받아들인다. 다시 말해 관객은 기억-시간의 경험치를 하나의 영화 안에서 재조립한다. 이는 영화 내부의 서사 그 이상의 것을 영화 서사로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즉, '영화가 영화 속의 영화로 작동하는 것', <버즈 라이트이어>가 작동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점은 관객이 능동적인 참여자라는 믿음이다. 관객이 영화 서사 전반에 뛰어들어 영화 속 인물들이 이해하는 세계 그 이상을 감각하는 것. 일견 낭만적이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하나의 영화가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영화가 많아질수록 관객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아짐을 의미한다. 영화는 물론, 서사 장르 전반의 매체가 피하려고 하는 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능하다. 디즈니이기 때문에. 헐리웃이라는 영화 절대 우위의 자리한 이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시스템. 그들의 영향력.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이름을 모를 수 없는 캐릭터를 가진 이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영화 감상법. 관객의 참여를 가장 상업적인 방법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가장 상업적인 상상력. 이 감상법을 채택한 영화가 디즈니사 자장 아래에 있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의 마블 이후, <버즈 라이트이어>의 픽사라는 점은 분명 눈여겨볼만 하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한 관람법에 대한 모종의 결과를 예측하기란 아직 섣부른 구석이 있다. 디즈니가 '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지 않는다면 극장 개봉작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다소 노골적인 속셈을 드러내긴 했지만, 아직은 특징적인 몇몇 작품에서만 나타난 움직임일 뿐 시스템 전체로 확대되기 위해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블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와 픽사의 <버즈 라이트이어>에서 보여준 방법론은 관객에게 '반가움'을 자극함으로써 흥미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분명 효과적이었지만, 쉽게 질릴 것이다. 말 그대로 반가움은 가끔 느낄 수 있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 감상법이 시스템으로 안착할 것인지 아니면 몇몇 작품의 특징으로 끝날 것인지는 극장 밖 관객에게 달려있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버즈 라이트이어
Lightyear
감독
앤거스 맥클레인
Angus MacLane

 

출연(목소리)
크리스 에반스
Chris Evans
피터 손Peter Sohn
케케 팔머Keke Palmer
타이카 와이티티Taika Waititi
데일 솔레스Dale Soules
우조 아두바Uzo Aduba
제임스 브롤린James Brolin

 

제작 디즈니 픽사
수입|배급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작연도 2022
상영시간 105분
개봉 2022.06.15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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