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여자 없는 남자들
'실종' 여자 없는 남자들
  • 김민세
  • 승인 2022.06.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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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고, 마주하고, 이어가기"

<실종>은 충분히 불편해질 수 있는 영화다. 연쇄 살인마의 범행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가시화하는 점에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살인마의 기이하고 불쾌한 병리적 성적 욕구가 드러나는 점에서 그러하다. 또 트위터를 통해 자살을 모의하는 행태와 이를 이용해 욕구를 해소하는 살인마의 모습은 한국 관객들에게 동시대 한국을 들썩이게 했던 디지털 범죄들의 단면을 상기시키며 몸서리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서사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여성 살인, 자살 모의, 안락사 등의 극단적 사회 문제들은 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줄 수 있는 불편함의 정서를 극대화함과 동시에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 윤리적 논의의 층위를 한층 더 두텁게 만든다.

 

ⓒ 디스테이션

그러나 <실종>이 우리에게 주는 불편함은 단순히 과도한 수위와 소재의 민감함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행위이기 이전에 행위의 주체이고, 절대 악으로 묘사되는 연쇄 살인마 '야마우치 테루미'(시미즈 히로야)가 아니라 그의 조력자로서 기능하는 '사토시'(사토 지로)의 존재이다. 일용직 공사 현장 노동자인 사토시는 아내와 딸의 추억이 있는 탁구장을 다시 운영하기 위해, 그리고 아내의 죽음 이후 홀로 딸을 보살피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동일시 가능한 욕망을 가진 인물이다. 반면 영화는 야마우치 테루미가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는지에 관해서는 설명하지만, '왜'에 대한 부분은 쉽게 이해될 수 없는 것으로 남겨둔다.(자살을 원하는 사람을 돕는 것이라는 야마우치 테루미의 말은 그의 행위의 이유라기보다는 변명에 가깝고, 사토시를 범죄에 끌어들이기 위한 속임수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토시의 실종이 야마우치 테루미의 범죄 행위에 가담해 돈을 벌기 위한 자작극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중반부부터 우리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마치 영화가 야마우치 테루미의 잔혹하고 이해되어서는 안 될 범죄 행위를 사토시라는 인물을 불러들이며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하고, 그 정당성을 납득시키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점으로 <실종>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영화가 결국은 사토시의 서사로 끝나야 한다. 그의 계획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사토시의 계획, 즉 '사토시의 이야기' 안에서 맺어지는가의 문제이다.

 

ⓒ 디스테이션

<실종>은 느슨하게 3부 구성을 취한다. 1부는 실종된 아빠 사토시를 찾으려는 딸 카에데(이토 아오이)의 시점으로, 2부는 사토시의 실종과 연관된 것으로 추측되는 야마우치 테루미의 시점으로, 3부는 아내의 죽음 이후에 야마우치 테루미의 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사토시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는 시점을 바꿔가며 진실과 배후에 가까워진다. 1부에서는 카에데를 따라 미궁으로 들어가고, 2부에서는 미스터리로만 남겨졌던 야마우치 테루미의 정체가 밝혀지며, 3부에서는 사토시의 계획안에서 모든 일이 밝혀진다.

그러므로 3부에서 영화가 맺어진다는 것은, 결국 <실종>이 사토시의 영화가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마지막에서 이야기의 주체는 뒤집어진다. 1부에서 실종이라는 미끼를 던져 카에데를 움직이게 했던 사토시는 이제 카에데의 트위터 메시지라는 미끼를 문다. '사토시의 이야기'에서 '카에데의 이야기'로. 사토시를 감옥에 집어넣는 것은 '그'(사토시)의 실패가 아니라 '그녀'(카에데)의 신고이다. '그'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이야기로. 머릿속이 멍해지는 엔딩의 탁구 신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읽어내야 한다.

 

ⓒ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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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한 것처럼 사토시는 가족이라는 명분 안에서 자신의 범죄를 합리화하고, 나아가 영화 자체에서 가시화되는 범죄를 정당화시키려는 인물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까지나 <실종>을 '그'의 영화로 봤을 때 그러하다. '그녀'의 영화로 읽어내자면, 이 영화에서 드러나는 폭력과 외설은 마치 이 시대의 피해자 여성에 대한 죄책감의 무의식처럼 다가온다.

'움직이지 않는 여자'(시체)가 좋다고 말하는 야마우치 테루미은 살인함으로써 여성을 소유하는 동시에 파괴한다. 그가 연쇄 살인을 하는 이유는 그가 여성을 얻는 동시에 잃기 때문이다. 반면 루게릭병에 걸린 아내의 고통을 지켜볼 수 없어 야마우치 테루미을 통해 아내를 안락사시킨 사토시는 돈을 목적으로 찌르레기를 살해하는 와중에 아내의 환영을 본다. 딸을 지켜내겠다는 미래를 향한 목표가 뒤틀린 수단으로 이뤄질 때, 과거의 죄의식이 얼굴을 들이민다.

<실종>의 남성들에게 여성은 잡으려 할 때 미끄러지고. 잊으려 할 때 떠오르는 존재이다. 즉 이 영화의 폭력과 외설은 남성성의 뒤틀린 발현이 아니라 여자 없는 남자들이 꾸는 악몽이다. 야마우치 테루미라는 뒤틀린 남성성을 둔탁한 망치로 내려찍었던 사토시는 이제 찌르레기라는 악몽을 촘촘히 짜인 끈으로 조여야 한다.

돌아온 악몽 앞에서 사토시는 그 어떤 때보다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허공에 망치를 휘두르던 첫 장면처럼, 그는 기표 없는 유령과도 같은 악몽을 향해 허우적거리고 있던 셈이기에.

 

ⓒ 디스테이션

결국, <실종>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아니, 이 게임의 승자는 누구인가. 영화의 초반부 사토시는 카에데를 보고 입술을 오므린 채로 움직이며 규칙을 알 수 없는 게임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반대로 카에데가 사토시를 상대로 똑같은 게임을 한다. 만약 제대로 된 규칙이 있었다면,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카에데의 게임에 반응했어야 한다. 사토시는 다시 한번 난감해진다. 애초에 규칙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규칙이 없다면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그 게임에 존재하는 것은 '주고받는 것', '액팅과 리액팅' 뿐이다. 이상하게도 오랫동안 지속되는 탁구 랠리처럼.

<실종>은 사토시가 망치를 들고 허공에 휘두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카에데가 손에 들려있지 않은 가상의 탁구공을 쳐서 랠리를 이어 나가는 것으로 끝난다. 그가 복수와 구원, 욕망과 책임이라는 단어를 던질 때, 그녀는 그것들을 죄의식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응한다. 이것은 단순한 응징이 아니다. 홀로 허우적거리던 사토시는 이제 카에데와 함께 주고받고 있다. 이제 이 삭막한 세상 속의 우리는 그 주고받는 게임이 계속 이어져 나가길 간절히 바라고 기다릴 뿐이다.

[글 김민세, minsemunji@ccoart.com]

 

ⓒ 디스테이션

실종
Missing
감독
가타야마 신조
Shinzo Katayama

 

출연
사토 지로
Sato Jiro
이토 아오이Aoi Ito
시미즈 히로야Hiroya Shimizu
미사토 모리타Misato morita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3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2022.06.15

김민세
김민세
 고등학생 시절, 장건재, 박정범 등의 한국영화를 보며 영화를 시작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영화부에 재학하며 한 편의 단편 영화를 연출했고, 종종 학생영화에 참여하곤 한다.
 평론은 경기씨네 영화관 공모전 영화평론 부문에 수상하며 시작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 작가들에 대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와 관련한 단행본을 준비 중이다. 비평가의 자아와 창작자의 자아 사이를 부단하게 진동하며 영화를 보려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누벨바그를 이끌던 작가들의 이름을 하염없이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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