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천만 영화
다시, 천만 영화
  • 배명현
  • 승인 2022.06.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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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선택한 영화"

모든 영화는 관객이 존재해야 존재론적 의미가 있고, 상업적, 비평적 성공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가져갈 의미와 성취가 있다. 그렇다면 <범죄도시2>(2022)가 천만 관객을 돌파한 지금,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고민했다. 처음부터 하나 마나 한 문장으로 시작한다는 게 방어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관객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선 상투적인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해보자. <범죄도시2>는 완성도(보편적으로 일컬어지는 테크니컬의 영역)가 훌륭한 영화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장르적 성취를 이루었는가. 역시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거꾸로 이 영화는 비천한가. 그렇진 않다. 이 영화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바를 정확하게 잡았고, 그 길을 정확하고 깔끔하게 걸어갔다. 부족한 부분은 있을지언정 군더더기라고 부를만한 부분은 거의 없었다. 관객에게 장르적 쾌감을 주기 위한 온갖 요소와 이론을 적용한다손 치더라도 실패하는 영화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 영화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성공했다. 여기서 앞서 말한 문장을 약간 변주하자면, 이 영화는 본 영화를 소비할 관객의 니즈(needs)를 정확하게 파악했고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천만 관객'이라는 단어는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 <범죄도시2>는 오늘의 관객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당연 '통쾌'이다. 극 중 마동석의 대사 "이유가 어디 있어 그냥 잡는 거지"처럼 이 영화는 시원하게 때리고 부신다. 나쁜 놈들은 마석도의 주먹 앞에 쓰러지고, 정의는 강철의 몸을 두르고 승리한다. 오늘날 인터넷에서 자주 만나는 댓글과는 상반된 서사이다. 경찰은 견찰이 되었고, 나쁜 놈들은 응당 받아야 할 징벌을 받지 않고 피해자만 억울한 상황이 반복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관객의 유아기적 망상을 충족시키는 대리보충물인가. 이와 같은 판단은 최대한 지양하고 싶지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가 현재 필자의 결론이다. 하지만 이 사실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리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 망상이 유지된다는 사실 자체가 현실에선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의 내면엔 여전히 '정의'를 믿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다.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다만 이 글에서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이런 것이다. 극장에 걸린 영화가 관객의 요구에'만' 응답할 때, 그 영화는 무엇이 되는가. 세일즈맨이 되어버린 영화. 소비재. 이 질문은 영화의 본질과 관련이 있다. 움직이는 이미지와 관객의 상호작용. 잠시 생각해보자. 이 문단의 첫 문장에서 관객이라는 단어를 소비자라고 바꾸었다고. 그러면 '영화'의 자리에는 다양한 매체가 들어갈 수 있다. 드라마, 만화, 소설, 게임 등등. 2022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상승한 영화 티켓 값 그리고 부차적으로 소모하는 팝콘, 음료 등의 비용을 생각해 봤을 때, 관객에게 '영화'란 외식처럼 비싼 '행사'가 되어버린 지금,

<범죄도시2>는 동일한 쾌감을 줄 수 있는 대체제가 넘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끔 한다. 요컨대 (어떤 의미에서든지) 굳이 영화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천만관객을 코앞에 둔 영화를 놓고 영화의 암담한 미래를 말하게 되는 이 아이러니는 우리의 영화 시장을 되돌아보게끔 한다. 영화 마니아 그리고 시네필이라는 소수 인구가 추앙하는 영화의 존재감과 영화 시장 전체를 떠받드는 대중이라는 무형의, 그러나 엄존하는 그들의 무게감을. 이 생각의 끝에서는 '영화라는 존재를 너무 과대포장하고 큰 기대를 걸었던 건 아닌지'와 같은 회의가 은밀하게 고개를 쳐든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새삼스럽다는 건 잘 알고 있다. 영화 시장의 지난한 상황은 한국 영화계가 탄생한 이래로 단 한 번도 자유로운 적이 없었으며(어쩌면 코리안 르네상스 시기야말로 이 문제로 가장 신음했던 시기가 아니었을까) 천만영화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이 영화는 정말 이 정도로 관심을 받을만한 작품인가'와 같은 반응을 피해 본 작품이 한 번이라도 있었는가. 하지만 오늘날 영화를 감싸고 있는 맥락이 새로 칠해졌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영화의 흥행이 가지는 의미는 더 의미심장하다. 관객(들)이 코로나 이후 처음 선택한 영화라는 것.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다는 행위는 단지 개봉작에 대한 호기심만은 아니다. 2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영화관이라는 공간을 다시 찾았다는 것은 새로운 비용과 에너지를 소모함을 의미한다. 그동안 돈과 시간은 OTT 혹은 다른 곳에 사용되었다. 게다가 스탑 버튼과 15초 스킵 버튼이 '감상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아버린 지금, 영화는 관객을 자리에 잡아두기 위해 더더욱 강력한 스펙터클과 속도감을 추구할―수밖에 없었을―것이다.

 

이 지난한 상황에서 <범죄도시2>는 관객을 끌어당기는 데 성공했다. 다만 본 영화의 시리즈가 8편까지 기획되어 있다는 점을 생각해보았을 땐 이야기가 달라진다. <범죄도시2>는 시리즈의 이전 작품과 전혀 다르지 않다. 같은 형태를 포장만 바꾼 상품이다. 일명 '마동석 영화'의 대표인 이 작품의 수명은 언제까지일까. <디 워>(2007)의 국뽕은 채 2년을 가지 못했고, <7번방의 선물>(2013)이 선택한 신파는 이제 관객들이 '믿고 거르는 코드'가 되었다. 앞서 '유아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관객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것을 기민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냉정하게 배제한다. 관객(우리)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이 상황에서 영화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소수의 관객이 지지하는―그러나 최소한의 자생이 가능한 규모를 유지할―영화를 만드는 것. 다른 하나는 계속해서 세일즈하는 영화를 만드는 것. 지금까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두 길을 가려는 영화 모두가 고려해야 할 점은 영화만이 줄 수 있는 독자적인 '재미'의 영역이 점점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태도가 이미 달라져 버렸다는 사실도 극장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OTT와 영화를 서사적으로 압축 요약해주는 유튜버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분명한 차별점이 필요하다. 그것이 4D든 IMAX에 대한 환상이든.

하지만 상황이 너무 비관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산업의 위기와 존폐의 위기는 완전하게 다른 의미이니 말이다. 영화 '시스템'은 자본적 의미에서나 예술적 의미에서나 유희의 의미에서나 모두들 꽤나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 번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그 시스템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필요한 부분은 창작자들의 고민이다. 영화 내부의 고민과 외부의 고민. 오랫동안 살아남을 영화를 기다린다.

[글 배명현, rhfemdnjf@ccoart.com]

배명현
배명현
 영화를 보며 밥을 먹었고 영화를 보다 잠에 들었다. 영화로 심정의 크기를 키웠고 살을 불렸다. 그렇기에 내 몸의 일부에는 영화가 속해있다. 이것은 체감되는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 문득 '아.' 하고 내뱉게 되는 영화. 나는 그런 영화를 사랑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영화를 온몸으로 사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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