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ney+] '타미 페이의 눈' 눈앞에 맺힌 자기 눈의 위안
[Disney+] '타미 페이의 눈' 눈앞에 맺힌 자기 눈의 위안
  • 변해빈
  • 승인 2022.06.16 11: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응시의 위력에서 물러난 눈에 자력을 불어넣는 법"

상대의 눈을 들여다보는 일이 단순히 얼굴 전체를 보는 것과 다른 의미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영화와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현실에서 다른 상대의 눈을 마주하기가 때로 엄청난 합일이 이뤄져야 한다면, 영화는 우연의 기적이나 소통의 곤욕을 겪지 않고도 그 전능한 능력을 누리게 한다. 이 글은 우리가 응시의 능력을 마음껏 부릴 수 있는 스크린 속 눈의 여정에 대해 생각했다.

 

ⓒ Searchlight Pictures
ⓒ Searchlight Pictures

<타미 페이의 눈>은 TV 전도사로 유명세를 탔던 베이커 부부의 만행을 폭로하는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미 페이라는 한 인간의 사생활을 나열한 전기영화에 가깝다. 더욱이 미디어에 알려진 타미 페이의 사생활을 본다는 행위에 있어, 영화의 허구성에 기반한 재현의 기능은 인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식 자체에서 머무른다. 오히려 새로운 인식을 불러오는 건 타미 페이의 분장 아래 위치한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이며, 그러므로 스크린을 장악하는 건 다른 존재의 내부로 완벽히 숨어든 배우가 아니라 오히려 타미 페이 캐릭터가 입은 제시카 차스테인이라는 외피에서 비롯된다.

<타미 페이의 눈>을 통해 아카데미 수상자로 호명된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 인생이 타미 페이의 일생을 압도하여 뒤덮은 격이다. 누구라도 예상 못한 결과였겠지만, 타미 페이라는 존재는 애초에 관객의 눈 밖에 밀려나 있는 것만 같다. 이는 타미 페이의 시선의 문제 그 자체이기도 하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 속 붉은색 섀도우가 아름답던 배우 이영애의 눈동자가 흑백 프레임 안에서 카메라 렌즈를 정확히 응시했을 때, 마주친 눈동자 앞에서 관객은 무엇이든 느껴야만 한다. 끝장을 보고 말았다는 희열이건, 복수 후 차갑게 끓어오르는 절망이건 금자의 눈이 절실하게 말을 건네고 있기 때문이다. 금자의 눈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에서 타미 페이의 눈 역시 외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녀의 눈동자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복잡해질 필요가 없다. 타미 페이의 눈동자는 관객과 맞닿은 눈이 아니라 그 무엇과도 시선을 마주칠 수 없는 조리개가 닫힌 눈이기 때문이다.

 

ⓒ Searchlight Pictures

제시카 차스테인의 녹색 눈동자가 <타미 페이의 눈> 속에서 푸른빛으로 처리됐다는 사실은 인식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있거나 의도적으로 감춰진다. 돌이켜보면 그녀의 눈동자를 가까이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들에서 오히려 그것들은 채도를 잃은 채였다. 우리가 가장 먼저 그녀의 눈을 인식하게 된 오프닝에서, 출산과 불륜 스캔들을 연달아 겪고 약물에 의존하게 되었을 때, 환각에 빠져 스튜디오 복판에 드러누웠을 때 타미 페이의 눈동자는 회색빛에 근접해있다. 구원을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그림자극의 허상에 가려진 어린 타미 페이의 눈이 흡수해버린 어둠이 그녀의 무너진 성취와 나란하게 여전히 소진되지 않고 새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래로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싶다던 젊은 날의 타미 페이의 말처럼 스크린에서 자취를 감추는 마지막 순간까지 목소리를 크게 울렸던 그녀였다. 노래뿐 아니라 TV 속 타미 페이의 손엔 늘 마이크가 쥐어있으며, 삶의 굴곡은 그녀와 그녀를 둘러싼 말 한마디로 변곡점을 그린다. 그러나 <타미 페이의 눈>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한 인간의 과잉 소비되는 이미지를 강조한다. 배우가 전신 분장을 감행했음에도 유독 강조되는 것은 과잉 이미지로서의 타미 페이의 눈이다. 오프닝 장면에서 실사 이미지들 사이에 유일하게 영화적 이미지로 존재하는 것 역시 타미 페이의 눈인데,

그 눈은 검은 마스카라에 둘러싸인 눈이면서 그녀의 스캔들을 보도하는 뉴스 프레임들 사이에 갇힌 눈이기도 하다. 신내림을 연기하기 위해 허옇게 뒤집은 눈이면서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눈이기도 하다. 그런데 배우와 캐릭터의 관계 전복이 그려내듯 타미 페이의 눈은 카메라의 눈앞에서 종종 자력을 잃는다.

영화를 촬영하는 카메라 렌즈에 비친 피사체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타미 페이의 눈>에서 이것은 하나를 보고 있으면 다른 걸 볼 수 없는 눈의 한계를 짚어내는 것만 같다. 타미 페이의 얼굴을 비추는 동안, 카메라는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을 바라볼 수 없다. 인간의 신체로 비유된 카메라의 한계는 타미 페이가 살아온 삶과 존재성에 대한 은유로 이어질 수 있다. 엄마의 이혼을 상기한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어선 안 되는 존재였던 그녀가 유명 전도사 부부로 TV에 출연한 후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기가 불가능해졌을 때, 구원받고자 했던 절실함은 이제 그녀 자신조차 제대로 꺼내 볼 수 없는 심연 아래로 밀려난다.

 

ⓒ Searchlight Pictures

타미 페이의 '눈'에 비전이 있다면 환각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그녀가 환각에 빠졌을 때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환각을 만들어낼 때이다. 전자의 환각은 망각과 허상으로의 도피가 아닌 리얼을 향한 각성이다. 약물에 취해 후원 방송 녹화에 들어간 타미 페이는 방청객 사이에서 엄마의 환영을 목격한다. 잠시 후 환영임을 알아차린 그녀는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가짜로 꾸며진 해변 세트장임을 새삼 깨닫는다. 그녀의 눈은 환각의 몽롱 속으로 빠져들고 녹화장 사람들의 시선에선 비정상적인 상태로 지목되지만, 타미 페이의 정신은 되레 진짜 구원이 도달해야 하는 결핍의 근원과 허상적 믿음 간의 자리를 바꿔놓는다.

마지막일지 모를 무대 위에 오르기 전 분장실 거울 앞에 앉은 타미 페이가 기도문을 작게 읊조리는 장면이 있다. 영화의 시작점에서 화장을 덜어내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스태프의 말에 지울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응답한 다음 대목이다. 누군가 장난을 쳐놓은 것처럼 두껍게 깔린 문신과 화장을 한 타미 페이를 보고 있자면 외화면 바깥에서 들려온 스태프의 제안이 실은 그녀의 독백은 아니었을지, 얼굴을 한 겹 지워낸다 한들 혼탁한 눈동자에 박힌 잔영들이 사라질 리 없다는 확언처럼 들린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한 가지 달라진 것은 타미 페이의 눈과 카메라의 눈이 동일한 방향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거울을 경유한 이 숏에서 타미 페이는 어두운 벽면도 가짜 세트도 아닌 자기 눈앞에서 기도한다. 이 기도를 듣는 이는 오직 그녀 자신이며 삶을 구원받겠다는 심정의 기저에는 엄마나 남편을 비롯한 타인, 세상사의 고통을 대신하여 기억 속 어린 자신이 있다.

 

ⓒ Searchlight Pictures

기도문이 타미 페이에게만 도달한다는 말에는, 무대 위 찬송가로 눈물짓게 되는 것 역시 그녀뿐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객석은 어둡고 청중들은 냉정하다. 조명 한줄기가 유일한 무대는 그 조명마저 구원과 축복의 여명이라기보다 타미 페이의 몰락을 목격하려는 것처럼 오롯하게 그녀만을 향해 쏘아진다. 역설적으로 그 빛은 너무나 밝고 적나라해서 혼탁하던 눈동자마저 가장 투명한 푸른빛으로 돌게 한다. 자신을 더 이상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으니 타미 페이에게 다시금 환각의 힘이 필요한 때다. 세트장에서의 환각이 진실을 비췄다면 무대 위의 환각은 반대로 철저히 상상과 망상을 동원한다. 카메라가 타미 페이와 같은 것을 응시하게 되는 기적은 여전히 벌어지지 않지만 대신 타미 페이에겐 눈물이 주어진다. 객석의 청중이나 카메라의 눈에는 없는 것, 맹렬한 응시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눈물, 정확히는 그 눈물을 흘리는 눈이 타미 페이에게는 있다.

혼자 선 무대 조명 빛이 그녀의 눈물에 굴절되자 커튼 뒤에 숨었던 코러스 군단이 나타나 목소리를 보태고 그녀의 시점을 경유한 객석은 눈물바다가 된다. 객석 샷이 타미 페이의 시점 샷으로 이해된다면, 뿌옇게 처리된 가장자리는 눈물의 번짐과 닮아있다. 정말로 그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눈물은 환각에 빠진 프레임 속에서 현실을 부여잡는 장치처럼 느껴진다. 그러니 이 무대 위에서 누구도 그녀와 눈을 마주쳐 주지 않아도 좋다. 지금 그녀에겐 제 눈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의 자기 위안만 있으면 된다. 달리 말하면 타미 페이의 지난한 여정의 끝에 그녀의 응시를 허용하는 건 자기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다. 전술했듯 <타미 페이의 눈>은 베이커 부부의 만행을 폭로하거나 미디어에서 알려진 타미 페이의 인생을 달리 혹은 실재와 근접하여 보겠다는 시도와 거리가 멀다. 다만 마지막 순간에 화장과 문신에 덮인 그녀의 눈이 조금은 달리 보인다면, 타인의 응시 위력에서 벗어나 자기 눈앞에 맺힌 자기 위안의 눈물을 응시하는 한 사람의 눈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글 변해빈, limbohb@ccoart.com]

 

ⓒ Searchlight Pictures

타미 페미의 눈
The Eyes of Tammy Faye
감독
마이클 쇼월터
Michael Showalter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Jessica Chastain
앤드류 가필드Andrew Garfield
빈센트 도노프리오Vincent D'Onofrio
체리 존스Cherry Jones
샘 재거Sam Jaeger
프레드릭 렌Fredric Lehne

 

제작 Fox Searchlight Pictures
제공 Disney+
제작연도 2021
상영시간 126분
등급 15세 관람가
공개 2022.03.30

변해빈
변해빈
 몸과 영화의 접촉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다. 면밀하게 구성된 언어를 해체해서 겉면에 드러나지 않는 본질을 알아내고 싶다. 2020 제1회 박인환상 영화평론부문 수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