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셔젤] '라라랜드' 두 인물이 그리는 곡선의 서사
[데미안 셔젤] '라라랜드' 두 인물이 그리는 곡선의 서사
  • 선민혁
  • 승인 2022.06.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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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의 조화와 서사의 유연함이 그린 아름다움"

<위플래시>(20141)가 발표되기 이전부터, <라라랜드>(2016)는 데미언 셔젤에 의해 계획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제작사들로부터 거절당해왔던 <라라랜드>를 제작하기 위해, <위플래시>를 먼저 만들었다고 한다. 이는 <라라랜드>보다 <위플래시>가 제작사들의 눈에 더 상업적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는 의미인데, 재미있게도 우리는 <라라랜드>에서 대중적 재미를 훨씬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위플래시>가 우리에게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을 것을 요구함으로써 타이트한 몰입을 이끈다면, <라라랜드>는 대중들이 아주 익숙하지는 않은 뮤지컬 영화의 형식을 부분적으로 취하고 있으면서도, <위플래시>에서는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운 유머와 능청을 가지고 있어 더욱 가벼운 방식으로 우리를 영화 속으로 이끈다.

 

ⓒ 판씨네마
ⓒ 판씨네마

전작과의 '차이'

너무나도 잘 알려진 <라라랜드>의 오프닝 장면은 교통체증 상태의 LA 고가도로 위에서 시작한다.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인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차들에서 사람들이 한둘씩 내리고, 이들은 노래를 하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들은 꿈을 쫓아 고향을 떠난 청춘에 대해 노래하는데, 이는 이 영화의 스토리에 대한 개요가 되기도 한다. LA를 찾은 젊음이 노래하는 가사처럼, 이 영화는 <위플래시>와도 같이, 스스로 정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에 집중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주인공 앤드류가 철저히 극의 중심이 되어 서사를 이끌어 나가는 <위플래시>와는 달리, <라라랜드>는 두 주인공이 중심이 되며, 그들은 앤드류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 죽어가는 재즈를 살리기 위해 LA의 기념비적인 장소에 클럽을 열고자 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어린시절 이모에게 받은 영향과 영감을 쫓아 배우가 되기 위해 LA를 찾은 미아(엠마 스톤)는 위대한 드러머를 꿈꾸는 앤드류만큼이나 자신들이 목표로 삼은 것을 간절히 원하나, 앤드류만큼이나 광기에 휩싸이지는 않는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위플래시>의 앤드류와 무엇이 다를까?

앤드류의 집념과 광기가 그의 스승 플레처를 통해 발현되는 것처럼, 세바스찬과 미아 역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앤드류가 플레처를 통해 겪는 변화와 세바스찬과 미아가 서로를 통해 겪는 변화는 '그 성격'이 달라 보인다. 오직 앤드류만이 주체가 되어 서사를 이끄는 <위플래시>에서, 그 이외의 인물들은 단순히 그를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들은 그에게 영향을 주지만, 그가 끌어나가고 있는 서사의 방향에는 변화를 줄 수는 없다. 이를테면 플레처가 할 수 있는 것은 앤드류가 전개하고 있는 서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뿐이다.

<위플래시>에서 플레처의 비중은 상당하나, 이 영화의 중심은 줄곧 앤드류의 서사이며 이것에는 템포의 변화만 있을 뿐 직선으로만 흘러간다. 그러나 <라라랜드>에서는 다르다. 앤드류만이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위플래시>의 서사가 일직선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면, 세바스찬과 미아라는 두 인물이 만들어 나가는 <라라랜드>의 서사는 곡선을 그리며 나아간다. 이 이야기에서 두 인물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할 수 없으며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미아가 세바스찬에게 하는 행동은 그들의 서사가 진행되는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만한 영향력을 가진다.

 

ⓒ 판씨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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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와 변화

세바스찬은 정통 재즈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고, 그것의 가치를 강하게 믿는 인물이다. 재즈가 다른 무언가와 맥락이 부족한 상태로 결합되거나 그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지 않고 그것을 활용하는 행위에 대해 큰 반감을 품으며, 그가 소장하고 있는 위대한 뮤지션이 앉았던 의자에 그의 자매가 앉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처럼, 타협과는 거리가 먼 자이다. 생계를 위해 레스토랑의 피아노 연주자로 일하지만, 오너가 요구한 곡을 연주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곡을 연주하여 해고당하는 일도 흔하게 겪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세바스찬은 그의 신념 때문에 생활적인 부분에서 불편을 겪으면서도, "지금은 인생의 펀치를 맞아주는 것일 뿐, 코너에 몰리는 순간 반격의 펀치를 가할 것"이라고 자신의 누나에게 말하며, 스스로 설정한 'Very serious plan'을 실현하는 것에 집중한다. 극중 초반 '세바스찬'은 스스로 설정한 목표를 향해 <위플래시>의 '앤드류'와 같이 일직선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는 곧 변화한다.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을 만나게 되면서. 그는 절대 사랑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미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를 위해 자신의 가치관을 기꺼이 수정한다. 돈을 벌기 위해 친구 키스(존 레전드)의 밴드가 하는 음악이 진정한 재즈라고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밴드의 멤버가 되고,

재즈 클럽을 여는 자신의 'Very serious plan'을 뒤로 미룬 채, 그가 향하는 지점을 다른 곳으로 돌린다. 그는 스스로 "철이 들었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상대방으로 인해 변화하는 것은 미아도 마찬가지이다.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에 집중하던 미아는 세바스찬의 제안으로 인해 직접 자신의 극을 연출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인극으로 인해, 미아는 그녀가 오로지 쫓던 배우의 꿈을 포기하게 된다. 그러나 세바스찬으로 인해 그녀가 튼 방향은 다시 한번 돌려진다. 고향으로 떠난 미아 대신 오디션 제안 전화를 받게 된 세바스찬은 그녀의 고향을 무작정 찾아가 그녀를 설득하고, 이것은 미아가 그녀가 꿈꿨던 대로 유명한 배우로 성공하는 계기가 된다. 또 합격한 오디션의 촬영을 위해 미아가 파리로 떠나자, LA에 남아서 '자신이 할 일'을 한 세바스찬은 그가 목표한 진정한 재즈를 위한 클럽을 열 수 있게 된다.

 

ⓒ 판씨네마

세바스찬과 미아의 서사는 그들 스스로 인해 만들어지면서도,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을 통해 그 방향을 다른 곳으로 틀었다가, 다시 또 다른 곳으로 돌리기도 하며 이루어진다. <위플래시>에서 주인공 앤드류의 일직선형 서사의 속도 조절로 인해 탁월한 템포가 만들어진다면, <라라랜드>에서는 세바스찬과 미아가 가진 색의 조화로 인해 하나의 그림이 만들어진다. 꽉 막힌 회색 도로 위에 각자의 색을 가진 인물들이 하나씩 등장하여 뮤지컬 공연을 펼치는 오프닝 씬에서 자신의 파트가 끝난 인물이 다음 파트의 인물을 태연히 등장시키는 것처럼, 따지자면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세바스찬과 미아의 만남은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루어진다.

또한, 지루한 파티를 마친 미아가 우연히 들어선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세바스찬을 마주치고, 세바스찬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장면에서처럼 미아의 파트와 세바스찬의 파트는 절묘하게 전환되고 관객들이 인식하지 못했을 만큼 자연스러운 순간에 이들은 한 파트를 공유했다가, 다시 각자로 분리하기도 한다. <위플래시>에서 데미언 셔젤이 한 가지를 맹목적으로 쫓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풀어낸 자신의 템포에 관객들을 매료시켰다면, <라라랜드>에서는 곡선을 그리며 서사를 전개하는 두 인물이 자신들의 그림에 결국 이뤄낸 것, 끝내 이루지 못한 것, 순간이었지만 영원한 것 등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조화롭게 담게 함으로써 관객들을 다시 한번 자신의 세계에 매료시킨다. 

[글 선민혁, sunpool2@ccoart.com]

 

ⓒ 판씨네마

라라랜드
La La Land
감독
데이미언 셔젤
Damien Chazelle

 

출연
라이언 고슬링
Ryan Gosling
엠마 스톤Emma Stone
존 레전드John Legend
로즈마리 드윗Rosemarie DeWitt
J.K. 시몬스J.K. Simmons
소노야 미즈노Sonoya Mizuno
제시카 로테Jessica Rothe
리 헤르난데스Callie Hernandez

 

수입|배급 판씨네마
제작연도 2016
상영시간 127분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16.12.07

선민혁
선민혁
《코아르》 영화전문기자.
 영화를 보는 것은 현실을 잊게 해주기도 하고, 더 자세히 보게 해주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부분들을 기억하고 공유하고자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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